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135화 (135/200)

135화 갑질

“종현이와 지운이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단 말이죠.”

“아직 그렇게 눈에 띄는 수준은 아닌데, 신경은 좀 써야 할 것 같아.”

배우들의 멘탈 관리는 준혁이 형님이 해 주고 있었는데, 그사이 몇 가지 일이 쌓였다고 했다.

사실 그렇게 충격적이진 않았다. 첫 촬영 후 회식 때의 일과, 사이사이 트레이닝에 있었던 일들.

굳이 내가 충격적이진 않았다고 한 것은 백종현과 박지운의 성향이 워낙에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명은 천재형이죠, 굳이 따지자면. 한 명은 노력형이고. 그러니 뜻이 안 맞거나 방식이 안 맞을 순 있을 것 같습니다.”

“종현이는 받아들이는 게 빨라. 대본이든 움직이든, 가르치는 대로 흡수를 잘하는 느낌이랄까. 지운이는 그것보단 느리지만…… 뭐랄까, 그만큼 더 노력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타입이지.”

정말 대비되는 타입이다.

다른 8명의 배우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이만큼 처음부터 두각을 보이고 정확한 캐릭터를 보여 주는 출연자는 참 찾아보기 힘들었다.

“종현이는 <당잠사> 때와는 또 다른 게 보여서 가르치는 게 재밌네.”

“지운이는요?”

“지적하고 가르칠 때마다 확실히 조금씩 늘어가지.”

“그러니 둘이 신경전 벌일 만하네요.”

촬영을 진행하면서 나도 어느 정도 느꼈었다.

백종현의 컷보다 박지운의 컷이 훨씬 많다.

다만 백종현은 그 컷 대부분을 거의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고, 박지운은 몇 번의 반복 후에 쓸 만한 컷이 나온다.

완성도는 비슷하나 걸리는 시간은 달라서, 그 부분을 편집에서 어떻게 살릴까 우철민 PD와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문제가 될까요?”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그렇게 물었다. 준혁이 형님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웃대다가 대답했다.

“아직은 모르겠네. 그렇게 눈에 띄게 반목하는 것도 아니고, 트레이닝도 둘 다 열심인 건 맞으니까.”

“음…….”

현재 1화 편집본의 완성도는 83%.

방영 시 화제성을 잡을 확률이지만, 그 화제성은 올곧이 좋은 화제성이어야 한다.

만약 주요 출연자 두 명이 싸우고 그 과정을 숨겨야 할지 고민할 타이밍이 온다면, 그건 방송이 무너지는 것과 다름없다.

차라리 이 자리에 그 두 사람이 있다면, 얼굴 보고 확률이라도 볼 텐데.

방송 마지막까지 출연자들 사이에서 문제가 일어날 확률을 보려면…….

머리를 굴리다가 나는 방법이 하나 있음을 깨달았다.

“늦었는데 일어나시죠. 내일은 촬영이 없어도 스케줄은 있으실 거잖아요.”

“나? 난 내일 오프인데?”

“……부럽기 그지없네요, 형님.”

내일도, 아니 정확히는 오늘도 NBS로 출근해야 하는 나는 이를 악물며 웃어 주고는 카페에서 나왔다.

그가 택시를 타고 가는 것을 본 다음, 서둘러 힙플스튜디오 사무실로 향했다.

거기 회의실에는 전체 일정 및 출연진 등이 적혀 있는 화이트보드가 있었다.

지난 <언더커버 싱어> 때의 방식대로, 방송 끝날 때까지의 확률을 볼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건물 밑에 도착했는데,

“……저거 편집실 아닌가.”

힙플 사무실, 그것도 편집실 창문에서 불빛이 보였다.

이 시간에 사무실에 누가 있다니. 분명 전부 퇴근했을 시간인데.

나는 조심스레 사무실 문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편집실에서 불빛이 새어나왔다. 이 장면은 며칠 전에 봤었는데, 하는 기분으로 창문 틈을 확인하자,

“우 PD님. 이 시간에 뭐 하십니까.”

내가 문을 벌컥 열자, 헤드폰을 끼고 있던 그가 화들짝 놀라 돌아보았다.

“어, 어어. 강 PD…….”

무슨 나쁜 짓을 하다가 걸린 중학생처럼 놀라는 그의 뒤편으로 보이는 모니터에는,

“그거 전에 저랑 같이 끝낸 편집 아닙니까?”

“어, 어어…….”

내 등장을 전혀 예상 못한 듯 그가 당혹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의 자리 옆에 있는 스크립트를 본 다음 다시 그를 보았다.

“리테이크? 다시 편집하라는 겁니까?”

“……아,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럼요?”

AGD 앱은 분명 그 편집본이 클라이언트가 맘에 들어 할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그동안 AGD 앱이 틀린 적 없으니, 리테이크는 아닐 것이다.

나는 예의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빼앗듯 스크립트를 손에 들었다.

“설마, 다른 버전으로 제작하는 겁니까?”

“…….”

우철민 PD는 난감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다가, 결국 이야기했다.

지난 편집본은 클라이언트 측에서 맘에 들어 했고, 통과는 되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대신 새 버전으로 다시 하나 제작해 달라는 오퍼가 왔다는 것이다.

“그게 언젠데요?”

“사흘 전……?”

그럼 우리 촬영을 한 뒤에, 새벽에 이렇게 남아 편집을 하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나는 황당해서 그를 쳐다봤다.

“우 PD님. 왜 말씀 안 하셨어요.”

“아니…… 폐 끼칠 순 없잖아. 지금 촬영 잘 굴러가는데.”

그 대답에 괜히 울컥 감정이 치솟아서, 그것을 삭였다.

“국 사장님입니까?”

“…….”

많은 부분이 생략된 질문이었지만, 우철민 PD는 무언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내 표정을 읽은 우철민 PD가, 그 서글서글한 얼굴로 내 팔을 붙잡았다.

“아니, 강 PD. 오해하지 마. 이건 내가 하던 일이니까 하는 것뿐이야. 우리 회사 일이잖아.”

“그러니까요. 왜 그걸 굳이 우 PD님이 해야 하냐는 거죠. 이 회사엔 일할 사람이 없나요?”

“그게…….”

며칠 전에도 봤던 표정을 다시 어색하게 지어 보인다.

참 많은 감정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때 그에게 들었던, 국성재 사장과 엮인 과거.

그래서 그의 말을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이 시간까지 고생하면서 그가 하라는 대로 하고 있을 만큼.

“하아…….”

나는 복잡한 마음에 그냥 의자에 주저앉았다.

내 눈치를 보고 우철민 PD도 쭈뼛쭈뼛 의자에 도로 앉았다.

“강 PD, 걱정 마. 며칠 동안 그랬지만 촬영에는 지장 없이 할게. 주말에 출근해서 좀 열심히 하면 금방 끝낼 수 있어.”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제가 지금 우리 촬영 때문에 이러는 걸로 보이십니까?”

화는 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야 했다.

“방송사와 외주사의 관계지만, 우리는 같은 팀이잖아요. <더 라이벌>을 같이 만드는 동료라고요. 같은 팀 동료가, 우리 일도 아닌 일에 이렇게 앉아 있는 건 보고 있기 힘듭니다.”

“내가 그래서 새벽에 굳이 나와서 한 거긴 한데…….”

“차라리 말씀해 주지 그랬어요. 돕기라도 했을 텐데.”

말을 하면서도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내 팀이긴 하지만, 우철민 PD는 힙플의 직원.

만약 사장이 지시하면 그것을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

이것을 어떡해야 할까.

나는 머리를 긁다가 잠깐 편집실을 나갔다. 탕비실에서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를 가지고 와서 그에게 넘겼다.

“마시세요. 이거, 아침까지 끝냅시다.”

“응?”

“이야기는 그다음에 하죠.”

“어, 그, 그래.”

그렇게 목청 좋았던 사람이, 지금은 그저 얌전한 양이 되어 고개만 끄덕였다.

그 이후로 아침까지 우철민 PD와 편집실에서 작업을 했다.

출근 시간이 되어 팀원들이 출근했다가, 편집실에 붙어 있는 메인 PD와 서브를 보고서 화들짝 놀랐다.

“밤새우셨어요?! 왜요?!”

그들에게 달리 뭐라고 설명할 수도 없어서 그냥 웃으면 넘긴 뒤에야 우리는 작업을 끝마쳤다.

[100%]

만족도 100%를 달성했다 하더라도,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일단 이걸 넘기시면 될 겁니다.”

“고마워, 강 PD. 괜히 고생시켜서 미안해.”

“아뇨, 미안해하실 일은 이게 아니죠.”

무슨 말인지 모를 사람은 아니라, 우철민 PD가 면목 없다는 듯 시선을 깔았다.

그 모습에 한 번 더 울컥하면서 나는 편집실을 나왔다.

“NBS 다녀오겠습니다. 아침 회의는 일단 저 없이 진행해 주세요. 그러고 나서는 좀 들어가서 쉬시고요.”

“강 PD는? 안 쉬고?”

“회의 결과 알려 주세요.”

다행히 오늘 촬영 회의는 내가 없어도 된다.

그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나는 차를 끌고 NBS로 돌아왔다.

머리에 피가 돌아서 그런지 하룻밤을 새웠어도 그다지 피곤하지가 않았다.

모두 출근했을 시간이지만 내가 목적으로 하던 정민우 팀장은 자리에 없었다.

전화할까 하다가 메시지를 보냈다.

[팀장님 혹시 지금 좀 뵐 수 있을까요]

[정민우팀장: 별관에 있다 지금 와 ㅇㅇ]

<뮤직스케치> 촬영 준비 중이었나.

나는 송구스러움을 일부 느끼며 별관으로 향했다.

별관 스튜디오에서 이리저리 오가는 스태프 한 명을 붙잡고 물어봐서, 정민우 팀장의 위치는 금방 확인되었다.

그에게 양해를 구해서 빈 방으로 간 나는 대뜸 이야기했다.

“힙플 사장님하고 드잡이 좀 해도 됩니까?”

“뭐?”

아무 설명 없이 던졌더니 정민우 팀장의 표정이 해괴해졌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민우 팀장도 알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어갔다.

“국성재 사장이 옛날부터 사람 심하게 굴리기로 유명했지.”

“그렇습니까?”

“그 사람, 지상파 방송국 마케팅팀 출신이거든. 그때 방식대로 일하다가 직원들 여럿 바뀌었다고 알고 있어. 지금도 그런가 보네.”

“하아…… 그런 회사를 저한테 추천해 주신 겁니까.”

“말은 똑바로 해야지. 거기 고른 건 강 PD잖아.”

그건 그렇지. 미팅 나온 우철민 PD가 참 괜찮아 보였고, AGD 앱도 괜찮다 했으니.

“뭐, 화가 났다는 건 알겠어. 그래서, 어쩌고 싶은 건데?”

“우 PD님이 올곧이 우리 팀 일만 하게 하고 싶습니다.”

내 소망은 뚜렷했다.

외주 제작사의 사정이 그렇다 한들, 우철민 PD는 내 팀 사람이다.

나랑 같이 고생하는 건 몰라도, 그 혼자 다른 일로 고생하는 것은 보기 싫다.

그것을 막아 주고 싶었다.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방법이야 있긴 한데. 이건 내 선에서 결정하긴 좀 그러니, 국장님한테 확인 좀 할게.”

그는 잠깐 나가서 통화하더니 다시 돌아왔다.

“아마 들으면 강 PD 네가 싫어할 거야. 하지만 국 사장 같은 캐릭터한테는 분명 효과적인 방법일 거야.”

“어떤 방법인가요.”

정민우 팀장은 영화에 나오는 악당과 같은 얼굴로 말했다.

“가서 갑질해.”

* * *

머리가 멍해진 채로 힙플로 돌아왔다.

그 상담 때문에 보고를 제대로 했는지도 기억은 나지 않는다. 뭔가 말은 하긴 한 것 같은데, 단어 하나만 머리에 맴돌았다.

“갑질이라.”

정민우 팀장의 이야기는 간단했다.

우철민 PD는 지금 내 방송을 함께 만들고 있는 사람이다. 이 방송 이외의 일 주지 마라. 만약 그럴 시, 그냥 다른 제작사를 알아보겠다고.

갑질이고, 협박이었다.

계약서에 상호 성실에 관한 조항이 있기에, 걸면 충분히 걸리는 상황이고, 국성재 사장이 상대적 갑인 입장인 NBS 눈 밖에 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민우 팀장의 유추였다.

서인하 국장한테도 확인을 받은 일이니, 이것은 컨펌 받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사용할지 안 할지는 네가 정해.”

그러나 정민우 팀장은 나에게 선택권을 맡겼다.

그러면서 안 될 시 다른 방법들도 알려 줬지만, 미봉책에 가까운 일이었다.

결국, 방송국을 등에 업고, 그 힘을 휘두르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라도 덧붙였다.

“……갑질이라…….”

그래서 나는 주차장에 차를 댄 채 고민했다.

어떡해야 하지.

갑질이라니. 나한테 갑질을 하라고?

지금까지 평생 갑질이란 것을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나한테 그 갑질을 하란다.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뛰었다.

이게 화가 나서인지, 흥분해서인지 알 수가 없지만.

“갑질…….”

몇 번이나 되뇌어 봤자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답을 얻으러 갔다가, 더한 고민을 안고 온 기분이었는데.

부웅―

비싼 외제차 하나가 눈앞을 지나갔다.

주차장에서 몇 번 마주친 차여서 아무 생각 없이 눈으로 좇다가, 그 차에서 국성재 사장이 내리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누군가와 희희낙락하면서 통화를 하면서 내 차 앞을 지나갔다.

나는 이끌린 듯 차 문을 열고 내렸다.

“그래, 김 사장. 간밤에 잘 들어갔나? 어젯밤 술을 너무 마셨나 봐. 목이 칼칼해.”

낄낄대면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는 국성재 사장이 목을 주물렀다.

“골프? 좋지. 남자는 허리가 중요하잖아. 골프가 허리에 그렇게 좋대요. 누구긴 누구야, 내가 하는 말이지.”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가, 옆에 서는 존재에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내가 그 옆에 서 있었다.

“어어, 김 사장. 내 다시 전화할게. 끊자고.”

그가 황급히 전화를 끊더니, 업무용이라고 써 붙인 듯한 미소를 띠었다.

“아이고, 강 PD. 지금 왔소? 출근길에 겹치는 건 처음 있는 일 같네그래.”

국성재 사장이 친밀한 듯 인사를 건네와서, 나도 인사를 해 주었다.

“우철민 PD에게 저희 팀 이외의 일, 맡기지 말아 주십시오.”

“응?”

“한 번 더 그런 일이 일어날 경우엔, 제작사 바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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