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평행선
금완승 감독이 참여했을 때부터 류준혁은 회식 자리가 길어질 것을 익히 예상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은 비껴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류준혁은 제작진을 먼저 보냈다.
촬영이 끝났다고 해서 제작진의 업무가 끝난 게 아님은 류준혁도 잘 알았다.
이런 자리에서까지 발 묶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회식이 새벽까지 가게 될 줄이야.
“……그러니까, 들어봐, 류 배우. 내가 그 영화를 사실 좀 더 강하게 찍으라고 지시는 했는데…….”
금완승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우이독경에서 제작하여 곧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에 대한 것이었다.
우이독경에서 금완승의 조감독으로 있다가 이번에 입봉을 하게 된 감독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 제작을 진행하면서 있었던 비화를 배우들 앞에서 늘어놓고 있었다.
금완승과 친한 류준혁으로는 아마 다섯 번 이상 들은 이야기였지만, 다른 배우들은 처음이라 차마 끊지도 못하고 있었다.
“확실히 그건 감독의 스타일마다 다른 거니까, 제가 뭐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군요.”
“뭐, 그건 그렇지. 그렇지만 말이야, 그 컷은 좀 더 타이트하게 찍어 줬어야 하는 건데…….”
새벽까지 이어진 자리다 보니 사실 출연진도 많이 남아 있진 않았다.
배우들도 네 명 정도, 트레이너는 두 명.
그중 백종현이 이야기에 관심을 표하며 끼어들었다.
“금 감독님께서 그래도 제작자이시니까 좀 더 강하게 이야기하실 수 있는 부분은 아닌가요?”
“뭐…… 못할 건 아니지만, 그래선 아니 되지. 그 감독의 입봉작이니까 감독의 의견을 따르는 게 맞아.”
“그렇지만 그래서 영화가 덜 매력적이다는 말씀 같아서요.”
“내가 그랬나?”
백종현은 금완승 앞에서도 그다지 긴장하는 투 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직 신인급이고 금완승을 처음 보는 배우들은 하나같이 긴장하기 마련인데도.
‘하긴, 종현이는 처음 봤을 때부터 그다지 긴장은 하지 않았지.’
되레 카메라 테스트에서 금완승을 홀려놓고 사라졌었다.
“제작에 관해서는 저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동안은 제작자분들이 지시 내리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크흠. 뭐, 민감한 이야기긴 하지만, 다들 이제 시작하는 입장들이니 내 한마디 하지.”
금완승이 슬쩍 배우들을 둘러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지론은 그러우. 제작사가 아무리 세고, 제작자나 투자자 입김이 크다고 해도, 영화나 드라마의 주체는 감독이고 배우야. 그 이외에는 사실 부차적인 문제지. 감독의 고집일 순 있지만, 감독이 고집을 부린다면 부릴 만한 이유가 있는 거라고 봐야 해. 배우가 고집을 부릴 때도 마찬가지고.”
그 이야기를 하면서 류준혁을 슬쩍 보았다. 마치 동의를 구하듯이.
“앞으로 연기를 해 가면서 아마 많은 일을 겪겠지만, 나는 그대들이 자기 고집을 꺾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그 고집이 모이고 모여서 그대들 스타일이 되는 거고, 배우가 자기 스타일을 가지면 어디서든 일은 들어오게 되어 있거든.”
그렇게 자신의 고집을 하나씩 찾아 지금의 자리에 오른 금완승의 이야기기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난 그래서, 제작자이긴 해도 감독의 뜻에는 대다수 따르는 편이야.”
“감독이 되시면 또 제작자 말 안 듣기로 유명하시고요.”
“그렇지. 내가 괜히 회사를 세웠겠나?”
낄낄 웃어대면서 다시 술잔을 드는 그를 따라 모두가 잔을 들었다.
기꺼이 잔을 비우는 와중에 류준혁은 백종현 옆의 박지운을 보았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얼굴이라서, 계속해서 그를 신경 쓰고 있던 류준혁이 박지운에게 물었다.
“무슨 고민 있어?”
나이도 있고 경력도 있고, 이제 배우들에게는 전부 말을 놓게 된 류준혁이었다.
대선배의 질문에 박지운이 흠칫 놀라 그를 봤다가, 다시 시선을 떨어뜨렸다.
“고민 있으면 말해 봐. 이런 자리 흔치 않으니까.”
자리가 길어질 때부터 이미 어느 정도 각오한 류준혁의 말에, 박지운은 몇 번 고민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배우의 고집이란 게……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떤 의미로?”
“고집이 스타일이 된다고 하셨지만…… 아직 제가 고집을 부릴 여건은 아닌 것 같아서요. 신인이고…… 아직 배우기도 많이 배워야 하는 입장에…… 고집을 부린다면 오히려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류준혁이 앉아서 본 바, 박지운도 술은 꽤 마셨다.
딱히 얼굴에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눈매가 조금 풀려 있긴 했다. 그만큼 술이 올랐고, 오른 만큼 한번 말을 내뱉자 고민이 줄줄 흘러나오는 듯했다.
류준혁은 박지운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그는 한번 아이돌로 데뷔를 했다가 실패를 맛봤다. 원래의 꿈인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다시금 실패가 돌아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었다.
류준혁은 그 심정을, 플래티넘으로 이적하면서 살짝 맛본 적이 있었다.
전 회사와 계약 해지를 한 직후, 세간에는 밝히지 않았어도 혼자서 가슴앓이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회사를 하든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답은 하나임을 류준혁은 알고 있었다. 단어를 잘 골라서, 고민하는 후배에게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다.
“무슨 그런 고민을 해.”
그때 끼어든 것이 옆자리의 백종현이었다.
비슷한 양의 술을 마셨을 텐데도 전혀 티가 나지 않는 해맑은 얼굴로 말했다.
“사실 신인이면 어딜 가나 기대치는 낮아. 잘하면 잘하는 대로 칭찬이 오고, 못하면 못하는 대로 질책이 오는 거잖아. 금 감독님이 고집이라고 이야기는 하셨지만, 어딜 가나 자기 연기에 대한 자세를 잃지 말라는 말씀이시지, 고집부리고 감독과 싸우라는 이야기는 아니지 않아?”
‘그쵸?’ 하고 확인하는 투로 금완승을 돌아보는 백종현이었다. 금완승도 벌게진 얼굴로 ‘어어, 그렇지.’ 하고 대충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마 내일 아침에는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리라.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못할 경우에 대해서 두렵다는 거지. 노력은 하겠지만…… 그게…….”
“거참. 뭘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해. 어차피 못하는 게 당연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을 텐데. 앞으로 잘 배우면 되지. 여기 이분들이 잘 가르쳐 주실 거잖아.”
또 ‘그쵸?’ 하면서 이번엔 류준혁을 보았다.
류준혁은 박지운을 진지하게 보았다.
“그래, 맞아. 그걸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이 프로를 하는 거고, 전문가들이 이렇게 모여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거봐. 그러니까 쓸데없는 걱정은 빨리 날려 버리는 게 좋아.”
“그게 쓸데없는 거라고…….”
“쓸데없는 거지 그게. 아님 뭐야?”
백종현과 박지운, 둘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둘 다 술이 오르긴 했을 테지만, 겉모습에서는 전혀 달랐다.
한 명은 헤실헤실 웃고 있고, 한 명은 딱딱하게 굳어 있다.
그 겉모습만큼이나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류준혁은 단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뒤로 백종현과 박지운은 자리가 끝날 때까지 오랫동안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류준혁이 끝까지 지켜본 바로는, 결국은 평행선이었다.
* * *
[89%]
내가 확인한 동영상의 최초 확률은 그러했다. 완성도보다는 클라이언트가 맘에 들어 할 확률이었다.
우철민 PD의 설명에 따르면, 처음에는 아주 만족스럽다고 가져갔다고 한다.
그것이 우리 <더 라이벌> 팀이 만들어지기 직전의 컨펌.
그런데 이제 와서 수정 요구가 왔는데, 그 수정도 기존의 편집을 꽤 뒤엎는 것이었다.
“다른 편집자에게 시키지 그러셨어요.”
“사장님 지시잖아.”
실장이 굳이 할 일인가 싶어서 한 이야기였는데, 우철민 PD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거기다 내가 한 작업이니까 그냥 내가 하는 게 빨리 끝날 수 있어.”
“참…… 직장인이란 게 힘드네요.”
“그러게.”
웃는 그를 도와서, ‘100%’ 달성을 목표로 편집을 도왔다.
다행히 소스는 이미 충분히 갖춰진 상태로 편집을 손보는 것이고, TV용도 아닌 인터넷용이라서 자막도 편집기로 충분했다.
“그 뒷부분 20초 정도를 앞으로 좀 땡겨 오는 게 어떨까요.”
[91%]
“주제넘지만, 제가 좀 손 봐도 될까요? 자막 위치를 좀 올리고, 여기다 팝업으로 그 영상을 삽입하면…….”
[94%]
“아냐, 그 부분은 뒤쪽에서 다시 나오니까 안 넣어도 돼. 차라리 여기를 클로즈업해서…….”
“아, 그러면 안 잘리고 좋겠네요. 그럼 클로즈업 위에다가…….”
우철민 PD와 작업을 하면서, 새삼 다시 손발이 잘 맞는 것을 느꼈다.
박주영 선배와의 편집 작업을 떠올리게 하는, 스타일은 달라도 다른 의미로 호흡이 괜찮았다.
그러면서 우철민 PD의 몰랐던 사생활들을 여럿 알게 되었다.
“작년에 결혼하셨어요?”
“뭐, 그렇지. 아직 신혼여행을 못 가서 욕을 먹고 있지만.”
“왜요?”
“그때 때마침 큰 프로젝트 두 개가 겹쳐서 말이야.”
“애기는요?”
“아직. 서로 바빠서 애기를 아직 생각도 못하지.”
그러다가 힙플에 들어온 경위도 들었다.
“사실 다른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그러다 친구랑 같이 창업을 했다가, 망했어. 그때 나한테 같이 일하자고 제안 주신 게 지금 사장님이고.”
“은인이시네요.”
“그렇지. 좋은 분이야.”
끄덕거리는 그를 이 심야까지 남겨서 일하게 만든 장본인이긴 하지만, 시작은 그렇게 좋았던 모양이다.
아마 그 시작 때문에 우철민 PD가 더더욱 사장 지시를 거스르지 못하는 것도 있지 않을까.
“강 PD는 어쩌다 이 업계에 들어왔어?”
“저는…… 뭐, 대학교 다닐 때부터 예능 프로들을 좋아했거든요.”
그렇게 내 이야기도 하고, 내 연애 이야기도 하고.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진 않아서, 그렇게 대화를 하며 새벽까지 이어진 작업이 힘들진 않았다.
“오케이…… 이 정도면 된 것 같아. 덕분에 생각보다 일찍 끝났어. 고마워.”
“아뇨, 제가 뭘 했다고요. 고생하셨습니다.”
시계를 힐끔 보니, 3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이렇게 고생했는데, 클라이언트가 마음에 들어 해야 할 텐데 말이야.”
“물론 그럴 겁니다.”
나는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100%]
확률이 알려 주고 있었으니까.
“나는 최종 정리하고 들어갈 테니까, 강 PD는 얼른 들어가.”
“예. 우 PD님도 얼른 들어가세요. 내일부터는 저희 방송에만 집중하는 겁니다.”
“알았어.”
웃음기 담은 그의 대답을 듣고서 나는 편집실을 나왔다.
* * *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1월 말 방영에 맞추어서 짠 스케줄의 흐름은 대략 다음과 같다.
공식 촬영일은 목요일.
대신 추가 촬영, 개인 촬영 등은 따로 진행.
발성, 발음, 호흡 등의 기본기 체크.
감정, 표정, 액션 연기 등의 연기 체크.
노래, 춤 등의 개인기 체크.
이 모든 체크와 트레이닝이 마무리되는 시점부터 연기 연습 촬영.
마지막으로 최종 연기 심사까지.
이 과정에서 10명의 출연진은 각 연습, 촬영마다 2인씩 조를 짜서 서로의 진행 상황을 평가한다.
방송 제목인 <더 라이벌>은 그래서 붙은 이름이기도 했다.
연습과 촬영을 거친 후 2인씩 1조로 구성해 2인극을 공연하고, 그것을 시청자들에게 평가받은 후 최종적으로 1명을 뽑는 식의 구성이었다.
준혁이 형님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더 라이벌> 팀이 만들어지면서 팀원들과도 세심하게 그에 관한 촬영 계획을 짰다.
그 와중에 사실 가장 걱정이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당잠사>였다.
준혁이 형님은 <당잠사> 시즌6에도 출연하기로 되어 있는데, 그 촬영이 유동적이어서 좀처럼 확정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일단 1월 초 촬영에 2월 방영일 것 같아. 제대로 확정 나오면 너한테 가장 먼저 알려줄게.”
권민헌 선배가 그렇게 이야기를 해 주어서, 일단 촬영 스케줄은 그대로 진행하게 되었다.
그렇게 12월을 맞이한 우리 팀은 본격적으로 기본기 체크 촬영에 들어갔다.
신인 배우들인 만큼, 아무리 눈에 띈 연기를 한 백종현이라 하더라도 기본기에서 부족한 부분들이 있었다.
“의외로 기본기는 지운이가 나아.”
카메라 체크 중에 준혁이 형님은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렇습니까? 사실 전 문외한이라 잘 모르겠어서요.”
“대사 끊는 호흡도 조절할 줄 알고, 발음도 명확해서 전달이 좋잖아.”
“그럼 종현이는요?”
“대사 외우는 속도가 빠르고 상황을 이해하는 건 확실히 특출 난데…… 가끔 대사를 흘릴 때가 많지? 음감님도 뭐라고 하시던 것 같은데.”
하긴, 카메라 체크를 하면서 음향 체크도 했는데, 음향팀에서 종현의 대사가 한 번씩 주변 소리에 삼켜질 때가 있다고 했다.
방영본에서야 보정을 하겠지만, 전달력이 약하다는 것은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말일 수도 있으리라.
그렇게 나도 잘 모르던 분야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촬영은 순조롭게 데이터를 쌓아 갔다.
[83%]
1화 방영본 편집을 하던 도중에도 그렇게 좋은 완성도를 알려 주고 있어 어느 정도 안심했는데,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었다는 것을 나는 새삼 알게 되었다.
새벽 2시의 힙플 사무실 앞.
준혁이 형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가기 전 사무실에 들르려고 한 나는, 사무실 층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