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133화 (133/200)

133화 클라이언트

프로필 촬영, 타이틀 촬영 등을 위해 출연진 10명이 모두 파주 스튜디오에 모였다.

힙플이 소유하고 있는 외부 촬영장인데, 다른 제작사나 방송사에도 대여해 주는 장소였다.

하필이면 그 대여 일정이 빡빡해서 실소유주인 힙플이 정작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였는데, <더 라이벌> 본격 촬영에 앞서서 드디어 조정이 가능해졌다.

“잘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신인답게 외치듯 인사하면서 들어오는 배우들을 흐뭇하게 보고 있는 것은, 주로 여성 스태프였다.

“보기만 해도 흐뭇하네요.”

“길쭉길쭉한 애들이 이렇게 많다니…….”

“참 어쩜 저렇게 그림체도 다르게 잘 생겼는지…….”

“그러게 말입니다. 줄지어 세워 놓으니 훈훈해지는 광경 아닙니까. 우리가 참 잘 뽑았어요.”

“맞아요. 참 잘 뽑…….”

문득 끼어드는 목소리에 조정아 작가의 시선이 홱 나에게 돌아왔다.

“강 PD님.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면 오해 받으세요.”

“네? 뭐가 말입니까.”

“하긴, 명리더랑 그렇게 친하시다면서요.”

“아, 그러셨지…….”

여성 스태프들이 자기들끼리 뭔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을 황망히 보다가, 문득 알아차렸다.

“저 여자친구 있습니다.”

“누가 뭐래요?”

깔깔깔 웃음을 터뜨리고 흩어지는 그녀들을 멍하니 쳐다봤다가 돌아서자, 준혁이 형님이 혀를 차면서 서 있었다.

“그러게 왜 끼어들어 가지고는.”

“아니…… 그냥 솔직한 감상을 말한 것뿐인데…….”

내 이미지는 어디로 가는가.

도대체가 저놈의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다.

준혁이 형님이 내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자자. 외삼촌이 힘내서 일해야 해외에 있는 조카도 열심히 일하지 않을까.”

“전혀 격려가 안 되는데요.”

효명이는 최근에 다시 출국하여 미국에서 지내고 있었다.

엑시트의 새 앨범 녹음 때문이라곤 하는데, 내년 초부터 예정되어 있는 해외 투어 때문에 내년 말까지는 국내 체류가 더 드물 것 같다고 벌써부터 우는 소리였다.

그래, 외삼촌은 국내에서 열심히 일할 테니, 조카는 외화나 많이 벌어 오너라.

그런 마음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준비 다 됐습니다.”

카메라 감독이 오케이 사인을 보여주면서 본격적인 프로필 촬영이 시작되었다.

일단 각자 개인 컷을 찍고, 이어서 단체 컷까지 순조롭게 촬영되었다.

힙플에서 수배한 포토그래퍼가 찍은 사진들을 함께 체크하고 영상을 모니터링하는 동안 오전 시간은 금방 훌쩍 지나갔다.

“밥 먹고 합시다!”

내가 신호를 보내 점심시간을 알렸다.

이미 때가 늦어도 한참 늦은 점심이었기에 다들 기쁘게 박수를 쳐 주었다.

때마침 마지막 촬영 순서였던 백종현이 쪼르르 달려와 내게 인사를 했다.

여느 때 같은 진심 담긴 여우짓을 웃으면서 받아준 다음, 나는 그를 돌려세워 스태프들을 주목시켰다.

“아, 참고로. 오늘 밥차는 백종현 씨 팬카페에서 쏘셨습니다!“

“와아아! 고마워요!”

“잘 먹을게!”

백종현이 쑥스러움을 담은 웃음을 사방으로 뿌리고, 우리는 촬영장 밖에 차려져 있는 테이블들에 자리했다.

“첫 촬영부터 밥차를 쏘고. 종현이 팬덤이 정말 두꺼운가 봐.”

맞은편에 앉은 준혁이 형님이 밥차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고 있는 백종현을 보며 말했다.

바이럴 마케팅 이후로 동영상 플랫폼 등에서 백종현의 이름은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었다.

매니저의 말을 들으니, 인터뷰 요청이나 섭외가 두 배로 늘었다고 한다.

그게 가능한 것도 백종현이 그동안 충분한 팬덤을 모아 둔 덕분이고, 바이럴 마케팅 계획도 그것을 전제로 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대신, 조금 부작용은 있었다.

“…….”

“…….”

그다지 말이 없이 밥만 먹는 배우들이 있었다.

그 표정에 담긴 묘한 시기와 질투를 읽어 내지 못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 기분을 직접 표출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사실은 충분히 성숙한 것이겠지만.

내 시선을 알아챘는지 준혁이 형님도 그쪽을 힐끔 보고는 말했다.

“걱정 마. 이런 걸로 소란 일으킬 애들은 아니라는 거 알고 뽑은 거잖아.”

“그럼요. 형님의 눈을 저는 믿습니다.”

“뭐야, 내 책임으로 미루는 거야?”

히죽 웃으면서 그냥 밥에 집중하려 했는데, 옆에서 같이 웃던 우철민 PD가 갑자기 옷을 뒤졌다.

“네, 사장님.”

그가 전화를 받으면서 일어났다.

저쪽에서 한참 통화를 하던 그가 몇 번 전파 너머로 허리를 숙이더니, 전화를 끊고 나에게 달려왔다.

“강 PD, 사장님께서 지금 촬영장에 오신다는데.”

“네? 힙플 사장님이요?”

힙플스튜디오의 국성재 사장.

처음 계약할 때 한 번 만난 이후로 거의 본 적 없이 없어서, 드문 성씨구나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힙플 사무실 출근 때도 거의 보이지 않아서 출근을 하긴 하는 건가 생각했었는데, 오늘?

“첫 촬영이라고는 보고는 했는데, 근처에 오셨다가 한번 인사라도 하고 가겠다고 하시네.”

“네, 뭐. 밥차지만 밥이라도 한 끼 하고 가시라고 하시죠, 그럼.”

국성재 사장이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5분쯤 뒤였다.

정말 근처에 있었던 것인지, 주차장으로 검은 세단이 하나 미끄러지듯 들어오더니, 거기에 머리가 거의 벗겨진 50대 초반 남자가 내렸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국성재 사장이 손을 들어 대충 인사를 하고는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두 번째 뵙는군. 국성재요.”

“강대한입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러다 준혁이 형님을 보고는 히죽 웃으면서 악수를 나누었다.

준혁이 형님과는 처음 보는 만큼 조금 더 살갑게 인사를 하는 듯하더니, 밥을 먹고 있는 이들을 둘러보고 물었다.

“촬영 잘 되고 있소?”

“네. 오전 촬영이 조금 늦게 끝나긴 했는데, 큰 이상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 PD님이 여러모로 신경 써준 덕분이죠.”

“내가 뭘…….”

일부러 우철민 PD를 언급하자, 그가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국성재 사장이 그런 그와 나를 한차례 번갈아 보더니 쩝 하고 입 다시는 소리를 냈다.

“그럼 오늘 좀 늦게 끝난다는 건가?”

“1시간 정도? 늦을 순 있을 것 같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그래?”

그가 시계를 보는 듯하더니 잠깐 우철민 PD 좀 데려가겠다고, 그를 스튜디오 구석으로 끌고 갔다.

뭐라고 둘이 대화를 하더니 우철민 PD가 화들짝 놀라고, 손을 내젓자 국성재 사장이 어깨를 잡고 뭐라고 더 낮게 이야기했다.

결국 우철민 PD가 고개를 끄덕이자, 국성재 사장은 흡족하다는 듯 웃음을 띠고는 내게로 돌아왔다.

“그럼 촬영 잘하시고. 다음에 또 봅시다.”

악수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또 악수를 하고서 그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저 멀리 사라져 가는 검은 세단의 뒤꽁무니를 보고 있는 우철민 PD의 눈빛이 매우 복잡해 보여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었습니까?”

“응?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요. 격려 방문이라도 되는 줄 알았는데, 사실 그게 전혀 아닌 것 같고.”

준혁이 형님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서 무슨 일이냐고 묻자, 우철민 PD는 한숨을 푸욱 내쉬더니 낮게 말했다.

“내가 전에 하던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게 조금 문제가 생겨서 재편집을 해야 하나 봐. 클라이언트 측에서 요청을 했는데, 나밖에 할 사람이 없다고. 사장님은 그걸 오케이해서 가져오셔서…….”

“애프터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건가요.”

“뭐, 그렇지.”

대충 들어도 반드시 해야 할 필요는 없는 일 같긴 한데.

“언제까지요?”

“오늘.”

“예?”

기한이 말이 안 된다. 클라이언트에서 그것을 요구한다고 해도 사장 선에서 잘라야 하는 거 아닌가.

그걸 그대로,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실장에게 가지고 온다고?

황당해하는 우리의 반응을 알아채고, 우철민 PD는 웃어 보였다.

“큰일은 아니야. 오늘 촬영 끝나고 내가 좀 만져서 보내면 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촬영에만 신경 씁시다.”

그러나 그 웃음이 억지에 가깝다는 것을, 우리가 모를 리 없었다.

* * *

프로필, 단체 사진 촬영이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서 금완승 감독과 트레이너들이 모였다.

금완승 감독과 준혁이 형님이 모은 트레이너들이 배우들과 인사를 나누고, 개중에는 내로라하는 유명인도 있어서 시끌벅적해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마지막 인사를 준혁이 형님과 금완승 감독이 서로 미루다가, 결국 이 프로그램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준혁이 형님이 앞으로 나섰다.

“3번 카메라, 클로즈업 하나 더 잡읍시다.”

내 무전을 들은 카메라 감독이 각도를 바꾸는 타이밍에 준혁이 형님이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앞으로 세 달가량,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여러분 앞에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기본부터 다시 배우는 것도 있을 거고, 원래 가지고 있을 버릇을 버리기도 해야 할 거고, 아마 많은 변화를 겪고 배워 나갈 겁니다. 다만……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저도, 사실 배울 것들이 많은 사람입니다. 배우란 결국 평생 배워 나가는 사람이니까요. 힘들기도 하겠지만, 지나고 나면 서로에게 좋은 시간이 될 수 있길 제가 먼저 노력할 테니, 여러분도그래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음, 멘트 좋고.

사실 준혁이 형님의 멘트는 어느 정도 내가 손을 보긴 했다. 하지만 나는 마사지를 하듯 조금 다듬었을 뿐이고, 거의 준혁이 형님 혼자서 준비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래서일까. 진심이 담겨 있는 것 같아 듣기 좋았다.

더욱이 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니 진정성이 넘쳐흘렀다.

백종현과 박지운을 비롯한 배우들이 박수를 치고, 트레이너들과 제작진도 박수를 치자 준혁이 형님은 쑥스러워하는 미소를 띠어 보였다.

“각 카메라, 표정 놓치지 말고 잡아 주세요.”

뒤에서 무전기로 그렇게 지시를 내리면서 모니터를 체크한 후, 나는 손을 들었다.

“컷! 수고하셨습니다.”

편집점이 잡히자 모두의 몸에서 긴장 같은 것이 사라지는 듯 보였다.

좀 더 편하게 각자 인사를 나누는 중에 박지운이 준혁이 형님의 악수를 한 채 연신 고개를 숙였다.

“정말……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편집점을 잡았다 해도 거치 카메라는 아직도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모르는 듯 솔직함이 진솔하게 느껴지는 행동이었다.

‘배우는 평생 배우는 자’라는 말을 면접에서도 인용했던 박지운이니, 아마 지금의 인사가 참으로 감격스러우리라.

“이거 참. 너무 그렇게 나오면 쑥스러운데. 뭐야, 울어?”

준혁이 형님이 피식 웃으면서 난처한 듯 박지운을 달래는 모습을 보면서, 이거 제대로 찍히고 있어야 할 텐데 하고 체크를 위해 우철민 PD를 돌아보았다.

“……?”

그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모니터는 그의 바로 옆에 있어서 확인할 수 있었지만, 모두가 회식을 위해 이동할 때까지 우철민 PD의 행동이 영 뇌리에 남았다.

회식이 끝난 것은 12시가 거의 다 되어서였다.

금완승 감독이 흥에 취해 2차를 외치는 것을, 준혁이 형님이 솔선하여 끌고 갔다.

그 뒤를 배우들도 빠질 수 없다는 듯 따라가자 금완승 감독은 더욱 기뻐하며 나에게 손짓했다.

“오늘은 내가 쏜다! 강 PD! 같이 가.”

“여러분끼리 좋은 시간 보내세요. 저희 제작진은 오늘 뒤처리를 해 두어야 합니다.”

다른 팀원들의 눈치도 있어서, 그렇게 단호하지만 부드럽게 끊었다.

준혁이 형님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들을 이끌고 2차로 향했다.

내가 한 말이 결코 거짓은 아니었기에, 나는 팀원들과 남은 자리에서 일정을 체크한 뒤에 일어섰다.

“다들 고생했습니다. 내일 뵈어요.”

“고생하셨습니다!”

“잘 들어가세요!”

택시를 타고 모두가 사라지는 사이, 나도 집까지 부른 택시에 몸을 실었다.

도로를 한참 달리다가, 문득 힙플 사무실에 노트북을 두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일 보고해야 하는데…….”

보고할 자료들이 노트북에 들어 있으니, 할 수 없이 자유로를 달리고 있던 택시를 돌려서 일산 힙플 사무실로 향했다.

아무도 없어야 하는 시각.

하지만 카드키를 찍고 안으로 들어가자, 편집실 쪽에 불이 켜져 있었다.

“이 시간에 누구…….”

가까이 다가가서 창문 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봤다가, 나는 편집실에 우철민 PD가 있는 것을 보았다.

똑똑.

갑작스런 노크 소리에 안쪽에서 흠칫 놀라 일어나는 그림자가 보이고, 문을 연 우철민 PD가 나를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어라, 강 PD. 집에 안 가고 왜 왔어?”

“노트북을 안 챙겨서요, 챙겨가려고 왔죠. 집에 안 가시고 뭐…… 아. 그 일 때문입니까.”

안쪽을 살피자, 모니터에는 나도 처음 보는 영상이 떠올라 있었다.

그가 의자 하나를 내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어쨌든 오늘 해서 보내야 하니까. 내일도 일인데 내일까지 끌 수는 없잖아.”

기획실장 정도 되는 사람이, 사장의 억지 때문에 자기 일 끝나고 이 시간까지 하고 있어야 하다니.

“고생하십니다.”

“고생은 뭐. 외주 제작사는 다 이런 법이야. 우리가 우리 콘텐츠를 제대로 만들면 모르겠지만…… 보통은 다 클라이언트가 있으니까. 클라이언트가 신이지.”

그 말에는 살짝 수긍하기가 힘들었다. 그 클라이언트도 결국 시청자 눈치를 봐야 할 텐데.

하지만 이들 외주 제작사의 사정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나는, 그 말에 태클을 걸 수는 없었다.

내일 그의 일을 빼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회사 다니는 사람으로서 해 줄 수 있는 말밖에.

“오래 안 걸리세요? 일찍 들어가셔야 할 텐데.”

“몇 시간 정도면 될 거야. 수정이 많은 것도 아니니까.”

나는 그가 살피고 있는 스크립트를 슬쩍 훔쳐보고서 제안했다.

“좀 도와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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