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영상 분석
“야, 야. 강대한.”
문득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불퉁한 얼굴의 민희가 있었다.
“아, 미안.”
난 보고 있던 스마트폰을 얼른 덮고서 영업용 비슷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 행동에 민희가 하아 하고 한숨을 짓더니 눈앞의 커피를 쪽 빨아 먹었다.
“네가 워커홀릭인 건 익히 알고 있는데 말이야, 사람 눈앞에 두고 일만 하고 있는 건 좀 자존심 상하지 않겠니.”
“미안. 일한 거 아니야.”
“게시판마다 돌아다니는 게 일한 게 아니면 그럼 뭐야.”
괜히 변명했다가 한소리 더 듣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민희의 말대로 나는 지금 각종 게시판을 계속 체크하고 있었다.
나만이 아니라 힙플에서도 열심히 모니터링을 돌리고 있을 텐데, 이 마케팅 플랜을 진행한 게 나다 보니 내가 제일 가슴이 졸이는 것이다.
“에휴.”
아차. 또 딴생각을 했다.
나는 아예 스마트폰을 집어넣고 민희를 보았다.
“이제 안 볼게. 저녁 먹으러 가자.”
하긴, 나만 바쁜 것도 아닌데 굳이 데이트하면서까지 일할 건 아니었다.
<당잠사>도 곧 본격 촬영을 들어가야 하니 민희도 분명 바쁜 시기인데, 나를 위해서 하루 연차를 내고 시간을 뺀 것이다.
내 행동이 예의가 아니긴 했다.
예약해 둔 레스토랑으로 이동하면서 민희가 물었다.
“그렇게 불안해?”
“……음, 내가 벌인 일이니까 좀.”
오늘 오전에 일을 저질러 놓고, 약속한 반차를 내고 민희와 데이트를 나왔다.
진득하게 이렇게 데이트하는 것은 오랜만이라 집중해야 할 텐데, 사실 내내 그쪽에 신경이 가 있긴 했다.
민희도 중요성을 알기에 한숨을 지으면서도 아주 뭐라고 하진 않는 것이다.
“잘될 거야.”
그녀의 응원에 괜히 더 머쓱해져, 손을 잡고 나아갔다.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을 때는 일부러 폰을 꺼내지 않았다. 코트 주머니에 넣어두고서 식사와 데이트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코스가 끝날 즈음, 웨이터가 와서 디저트를 내올지 물을 즈음이었다.
민희는 스마트폰을 꺼내 두고 있었다. 가끔 업무 연락 같은 것이 오는 정도로, 나처럼 대놓고 들여다보고 있진 않았다.
그런 그녀가 메시지 알림음을 듣고 푸시를 슬쩍 봤다가 스마트폰을 들었다.
“……어. 대한아. 이거 봐.”
“응?”
그녀가 메신저를 열어, 연결된 링크를 띄워 나에게 보여주었다.
민희가 자주 들어가는 연예 전문 게시판 첫 화면에 ‘급상승’이라는 문구가 붙은 글이 있었다.
『[급상승!] 신작 영화 카메라 테스트 장면 유출?』
그때야 나도 내 코트에서 폰이 진동하고 있는 것을 눈치챘다.
서둘러 꺼내 확인하자, 우철민 PD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우철민PD: 바이럴 영상 반응 왔어]
* * *
권민헌 선배가 무슨 말이냐고 되물으려는 걸 막으면서, 나는 조용히 그를 빈 회의실로 가자고 이끌었다. 그러고 나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서인하 국장의 이름을 딱히 거론하지 않더라도, 권민헌 선배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지환이는 지금 외근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야. 오는 대로 네 자리로 올려 보내줄게.”
“바쁜 일 있거나 한 건 아니죠?”
“그랬다면 애초에 된다고도 안 했지. 걱정 말고, 지환이한테 이것저것 가르쳐 줘.”
내가 가르칠 게 있으려나. 도움을 받으면 받을 텐데.
그렇게 30분 정도 시간이 지나고, 지환이가 내 자리로 올라왔다.
“선배님, 부르셨다고 해서 왔습니다.”
“아, 그래. 오랜만이다. 커피 한잔 하러 갈까?”
가끔 단톡방에서 메시지는 했어도 이렇게 얼굴 보는 건 참 오랜만이었다.
나는 그를 끌고 1층 카페로 향했다.
권민헌 선배에게 아무런 언질도 듣지 못하고 온 지환이는 긴장하고 있었다.
그게 어떤 의미의 긴장인지 알 것 같아서, 나는 커피를 그의 앞에 놓으면 피식 웃었다.
“우리 팀으로 오라고 하는 거 아니니까 걱정 마. <당잠사> 팀에서 아주 잘하고 있다고 알고 있어.”
“……어, 그, 아닙니다. 많이 부족해요.”
<당잠사> 팀에선 막내 PD인 지환이가 예전보다 훨씬 더 늘었다는 이야기는 민희한테 슬쩍 들은 바가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대놓고 칭찬하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다는 듯 쑥스러움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이런 면은 전혀 변하지 않은 것 같네.
“다름이 아니라, 지환이 너한테 도움을 좀 받고 싶어.”
“어, 저한테요?”
“그래. 내 주변에선 네가 가장 전문가일 것 같아서.”
“무슨……?”
나는 가지고 간 노트북을 꺼내, 기획안을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더 라이벌>에 대한 바이럴 영상을 만들려고 해. 좀, 날티 나는 유출 영상 같은 편집으로.”
“바이럴요?”
“응. 정식 티저 전에 시청자들이 흥미를 갖고 직접 찾을 수 있게.”
편법이라면 편법인 마케팅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특별하지는 않다.
방송계에서 많이 쓰이지 않는다뿐이지, 분명 사용된 예는 있었으니까.
나는 지환이가 해 주어야 할 부분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고, 지환이는 조용히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어때 보여?”
마지막으로 물어보자, 지환이는 이제 붉은 기가 사라진 얼굴로 대답했다.
“재밌을 것 같아요. 예전 인터넷 영상 편집하던 식으로 하면 될 것 같은데요.”
역시. 이야기가 빠르다.
지환이는 NBS 이전에는 동영상 플랫폼 채널 관리를 하는 외주 회사에서 일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드라마나 예능 원본 영상을 받아 인터넷 콘텐츠 스타일로 재편집하는 일들을 맡았고, 그때의 감각을 <언더커버 싱어> 편집 때 톡톡하게 활용했다.
그 경험을 기반으로, 나는 바이럴 마케팅 기획안의 제작자 이름을 ‘오지환’으로 써 넣었다.
[89%]
우철민 PD가 소개한 외주사보다 훨씬 높은 확률이었다.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언제부터 하면 될까요?”
“지금부터.”
“네?”
이미 권민헌 선배에게 허락도 받았겠다, 시간이 여유롭지도 않겠다, 나는 강하게 밀어붙였다.
어안이 벙벙해진 지환이를 끌고 곧장 힙플로 왔다.
컴퓨터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긴 했다.
하지만 촬영 영상은 죄다 힙플 서버에 저장된 상태.
차라리 힙플로 데리고 오는 편이 일이 빠를 것 같다는 계산이 섰다.
그렇게 새벽까지.
힙플 스튜디오의 편집실에서 우린 수십 시간 분량의 영상을 뒤져서 그럴싸한 바이럴 영상을 제작했다.
[94%]
새벽녘에 영상을 완성하자 기획안의 확률은 다시 뛰었다.
나는 기쁜 맘으로 공식 채널용으로 만들어 둔 계정에 아무 설명도 없이 툭 올려 두었다.
그때가 오전 시간이었다.
아마도 내 초조함은 그 직후부터였지 싶다.
* * *
영상은 단순했다.
최종 출연 확정자 중 백종현의 카메라 테스트 영상을, 일부러 화질을 낮추고 영상 각도를 꼬아서, 마치 누군가가 몰카로 찍어 유출한 듯이 편집했다.
교묘하게 각도마다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붙이고, 거기에 일반인이 달아 둔 듯한 어색한 자막을 붙여서 읊고 있는 대사를 전달했었다.
『[급상승!] 신작 영화 카메라 테스트 장면 유출?
―오늘 오전, 설명 없는 미튜브 계정에 정체불명의 영상이 올라왔다.
새로 제작이 진행되고 있는 영화나 드라마의 캐스팅을 위한 카메라 테스트로 보이는 영상에서……
<동영상 링크 첨부>
……이에 네티즌들이 영상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게 대체 뭐라고 몇 번이나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얼굴도 안 보이는데 연기가 쩐다는 건 일단 알겠어ㅇㅇ
―근데 ㅅㅂ 그래서 누구냐고 이게
―목소리가 너무 안 들리는 거 아니냐 인터넷 전문가들 어디 감?
―내가 소리 보정해 봤다 (주소 클릭)
└안 들리긴 마찬가지자나 디질래』
하지만 자막으로 깔린 대사를 가지고 사람들은 내용을 유추해 냈다.
『―찾았다 저거 있는 영화네
―카메라테스트니까 있는 대본 가지고 연기 주문했겠지
―카메라테스트인 건 확정임?
└아니라면 그게 더 이상함ㅇㅇ
―살인마 연기 지린다 ㄹㅇ』
반응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그 글은 즉시 각종 SNS로 퍼져 나가더니, 갑자기 동영상 조회수가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급상승 동영상 #7』
급기야 10위권 안으로 딱지가 붙는 것을 보고, 나는 곧장 우철민 PD에게 연락했다.
[다음 동영상 올립시다]
[우철민PD: ㅇㅋ]
기다렸다는 듯이 계정에 동영상이 추가되었다.
“이건 누구야, 박지운이라는 걔?”
“응. 우리 방송 투탑이 될 것 같아.”
카메라 테스트에서 가장 좋은 평을 받은 둘을 이용한 바이럴.
그중 백종현은 그나마 얼굴이 알려졌지만, 박지운은 그보다는 덜했다.
그렇지만 박지운의 영상에는, 백종현의 연기와는 차이가 나는 액션이 있었다.
『―혼자서 액션연기 하는 거임 지금?
―상대역 없어 보이는 것 같은데
―ㅋㅋㅋㅋ 쪽팔림 오질 듯ㅋㅋㅋㅋ
―액션스쿨 출신이심?ㅋㅋㅋㅋ
―아놔 전거는 각도 때문에 얼굴 안 보이더니 이번에는 너무 움직여서 안 보이잖아-_-
―목소리 어디서 들어봤는데』
박지운은 백종현 영상에 비해 소리 보정을 덜해서 원래의 박지운 목소리와 흡사했다.
하지만 워낙 격정적인 카메라 테스트였기에, 얼굴이 비추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 영상도 즉시 SNS를 통해 인터넷 세상으로 퍼져 나갔다.
데이트를 하면서 내가 일에 신경 쓴다고 불평을 했던 민희도, 결국 카페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을 때는 내 옆자리에 앉더니 스마트폰을 같이 확인했다.
그녀가 다니는 게시판, SNS들을 캡처해 줬는데, 곳곳마다 영상과 반응이 날뛰고 있었다.
1시간쯤 뒤, 포털에 기사가 등록되었다.
『<바로지금!> 의문의 바이럴 영상 분석!』
『신작 영화 카메라 테스트 유출? 급상승 동영상 3위!』
이쯤 되자 서인하 국장과 정민우 팀장, 그리고 준혁이 형님에게도 메시지가 왔다.
[서인하국장: 분위기 좋다 이대로 주말까지만 끌자]
[정민우팀장: 기자들한테 소스 던져 놨으니까 주말 지나면 바로 풀릴 거야]
[배우류준혁: 이게 정말 통하다니... 금 감독님이 불평하더라 자기는 전혀 안 나온다고]
아니, 감독님이 나오면 바이럴이 아닌데요.
나는 피식 웃으면서 죄송하다고 해 달라고 답장했다.
메시지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오지환PD: 선배님 말씀대로 진짜 이게 통하네요!]
[오지환PD: 영상 더 만들까요 지금 갈까요?]
[ㄴㄴ충분해. 고마웠다]
가장 고생해 준 지환이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다음, 나는 스마트폰을 뒤집어 테이블에 올려 두었다.
“이런 역사적인 순간에 같이 있다니. 감개가 무량한걸.”
민희가 옆에서 중얼거리는 소리에 피식 웃으면서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집에 가자.”
“더 안 봐도 돼?”
“나머지는 우 PD님이 알아서 할 거야.”
심야가 되어 우철민 PD로부터 캡처 한 장이 날아왔다.
‘카메라테스트’라는 키워드가 포털 실시간 검색어 10위권 안에 등록되어 있었다.
그는 약속대로 곧장 계정에서 영상들을 삭제했다.
그리고 아예 계정 자체도 비공개로 돌렸다.
『―뭐야 영상 어디 사라짐?
―어차피 다 퍼져나갔는데 지워 봤잨ㅋㅋㅋㅋ
―계정주 튀었나 보네 그래서 영화가 뭐라고요?』
하지만 이미 인터넷으로 퍼져 나간 동영상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그 또한 의도했던 것.
주말 동안만 장작 타듯이 타 주면 더할 나위 없었다.
그렇지만, 일말의 불안함은 있었다.
내가 장치해 둔 한 가지를, 아직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96%]
그렇기에 아직 바이럴 마케팅의 확률은 100%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조건만 채워진다면, 계획대로만 간다면 월요일에 높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텐데.
그러한 일말의 불안함과 기대감을 가지고 잠에 들었다.
새벽녘.
뒤척임 때문에 일어나 잠시 열어 확인한 스마트폰을 보고 나는 미소를 지었다.
『카메라테스트 영상 속에 안 보이던 얼굴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