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130화 (130/200)

130화 바이럴

『‘더 라이벌’ 최종 출연자 10명 확정!』

『NBS―강대한 PD 배우 오디션 예능 본격 촬영 들어가……』

아침부터 쏟아지는 기사를 먼저 보고 알려 준 것은 민희였다.

[민희: 댓글에서는 여전히 난리던데, 회사 반응은 어때?]

제주도에 가 있으면서도 이렇게 관심을 가져 주다니, 좀 고마운데?

<당잠사> 시즌6가 국내 제작으로 확정된 후로 안 그래도 국내 이곳저곳을 취재 다녔던 민희였다.

그러다 제주도로 확정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지금 민희는 최종 답사를 진행 중이었다.

연애 초엔 불타올라야 정상일 텐데, 이렇게 서로 바쁘니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회사에서야 뭐 신경쓰지말라고 하지]

[민희: 10명 다 괜찮던데. 캐릭터도 각각 있어 보이고.]

[캐스팅에 대해서는 평 좋아. 나도 그거 믿고 가야지]

제작진의 입장에서, 10명의 출연진을 확정한 것은 정말이지 그 자체로 뿌듯한 일이었다.

“AGD 앱 없이 말이지.”

최종 미팅을 갖고 10명의 리스트를 확정한 뒤 정민우 팀장에게 공유할 때까지도 나는 AGD 앱으로 확률을 확인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디까지나 예능에 대해서야 빠삭하다고 해도, 연기력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는 내가 보는 확률이 정확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더욱이 확률에 기대지 않아도, 내 옆에는 두 명의 전문가가 있었다.

최종 출연자 10명의 인선은 AGD 앱보다 금완승 감독과 류준혁 배우의 선택을 믿어도 좋지 않을까.

이 두 사람은 베테랑이니까.

[민희: 목요일에 올라가니까 금요일에 볼까? 나 연차 낼 건데]

연차라. 내가 올해 연차를 쓰긴 썼던가.

그럴 시간도 없이 사방으로 뛰어다니다 보니 한 해가 지나가고 있는 것 같은데.

[연차는 힘들 것 같고... 반차 낼 수 있을지 볼게]

[민희: ㅇㅇ]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머릿속으로 스케줄을 떠올리면서 출근했다.

자리에 짐을 내려놓자마자 정민우 팀장에게 보고를 하고, 급한 업무들을 처리하고 곧장 힙플로 가려고 했는데.

“강 PD, 좀 들어와 봐.”

서인하 국장이 지나가면서 내게 손짓했다.

아까 정민우 팀장에게 보고할 때 듣기로는 왕이범 이사 만나러 올라가셨었다던데.

이 타이밍에 나를 부를 때는 늘 무슨 일이 있을 때라서, 불안해하면서 국장실로 들어갔다.

“일단 여론은 많이 잠잠해졌어.”

소파에 앉자마자 그가 그렇게 말했다.

“네. 기사 올라온 것들 확인했습니다. 여전히 욕은 많던데요.”

“그래도 전보다 덜하잖아? 여기저기서 손을 좀 많이 써 줬어.”

서인하 국장이 그 차고넘치는 인맥을 가동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물론 <무비 메이커> 측의 추가 기사가 없는 와중이라 좋게 어필된 점도 있겠지만, 따뜻한 논조를 보여 주는 기사가 여럿 있었던 데는 서인하 국장의 힘 덕분이었을 터.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기운 잃지 말고 잘 만들라는 뜻이야.”

“옙.”

“그런 의미에서…….”

그런 응원을 해 주려고 부르진 않았으리라. 나는 긴장하며 그를 보았다.

“이르지만, 방송 홍보가 좀 필요할 것 같아.”

“네? 티저 말씀이십니까? 편성 잡히면 티저 올릴 생각이었는데요.”

안 그래도 정민우 팀장에게 그렇게 보고한 와중이었다.

“그래, 알아. 그런데 현재 스케줄상 1월은 되어야 스케줄이 빌 거거든.”

1월?

내가 모르는 편성 스케줄을 듣고 오기라도 한 건지, 서인하 국장은 제법 구체적인 시기를 들고 나왔다.

그런데 1월에 스케줄이 빈다는 게 무슨 말이지.

“생각하시는 스케줄이 있으십니까?”

“금요일 밤 9시.”

“……<강철 사제> 시간대 아닙니까?”

그 드라마가 1월에 끝난다고 알고 있긴 한데…… 후속작은 드라마가 붙는 게 아닌가?

“그 시간대를 놓고 지금 실험 중인 걸 모르진 않지? 어떻게 보면 전통적으로 예능을 배치했던 시간대인 것도 알 테고.”

모를 수가 없었다. <당잠사> 같은 굵직한 대표 예능이 포진해 왔던 시간대인데.

어쨌든 드라마가 차지한 마당에, 주도권을 다시 빼앗아 오겠다는 걸까.

그제야 왕이범 이사실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를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서인하 국장은 피로가 잔뜩 쌓였는지, 미간을 잠깐 주무르면서 나를 다시 보았다.

“<당잠사>는 현재 내년 봄 시즌을 노리고 진행하고 있어. 그럼 그전에 <더 라이벌>을 배치해서 바통 터치를 하는 게, 우리 입장에선 가장 적절한 흐름이야.”

말하는 느낌을 봐서는 딱히 드라마국과 협상이 된 건 아닌 듯싶었다.

상층부에서의 기 싸움이야 새삼스러운 건 아니지만, 어쩐지 거기에 직접적으로 휩쓸린 느낌이라서 나도 모르게 아찔했다. 잠시 현기증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는 실례임을 알면서도 마른세수를 한 다음에 그를 보았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티저 이전에 바이럴을 일으킬 수 있는 방도가 좀 필요해. 괜찮은 방법 있으면 이야기해 봐.”

갑자기 들은 이야기다. 제대로 된 생각이 나올 수가 없는데,

“사실 고민하고 있던 게 있는데…… 들어봐 주시겠습니까.”

“그래? 이야기해 봐.”

“촬영은 꽤 전부터 시작해서 데이터는 많이 쌓여 있습니다. 그중에 사실…….”

나는 내가 그동안 생각해 오던 것을 서인하 국장에게 이야기했다.

“……호오. 그래. 카메라 테스트 영상 말이지.”

사실 방송에서 어떻게든 녹여 내려고 했던 부분인데, 어쩌면 바이럴로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당장 촬영이 바쁘고, 또 전문가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 멈춰 둔 생각인데, 차라리 잘되었다 싶어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네. 일단 확정된 10명의 캐스팅은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제작 발표회에서나 나갈 예정이었는데, 그 영상을 편집하고 모자이크 걸어서 공개하면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지 않을까요.”

정식 티저나 선공개 이전의, 유출 영상 같은 스타일로 공식 채널에 올리겠다는 것이다.

<더 라이벌>용 공식 미튜브 채널은 개설하려고 이미 계획은 하고 있었는데, 이 기회에 좀 더 구체화하여 보고하기로 했다.

“진행해 봐. 나도 어떤 식으로 나올지는 모르겠으니 영상 나오면 한번 보여주고.”

“네, 알겠습니다.”

이상의 내용을 정민우 팀장에게도 공유하겠다고 하면서 서인하 국장은 나를 내보냈다.

문을 열고 나가려 하다가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국장님. 혹시 지금 <당잠사> 팀은 여유 좀 있습니까?”

“<당잠사>? 뭐 거긴 지금 답사 진행 중이니까 당장 바쁘다거나 하진 않지. 왜?”

“편집에 도움을 좀 받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요. 머리 좀 굴려보고, 정식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일단 양해를 구한 다음 국장실을 나섰다.

곧장 우철민 PD에게 전화를 걸어 이 소식을 알리자, 그렇게 놀라워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자체적으로도 1, 2월 방영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니 그렇게 당겨진 건 아니네.”

“그렇지만 일단 당장 바이럴 영상부터 준비해야 하니 그리 여유 있지도 않습니다.”

“바이럴이라……. 그 계획대로라면 편집이 좀 중요할 것 같은데, 애들한테 일단 준비시킬게.”

본사에서의 지시 사항을 전달하고서 나도 일을 정리한 뒤 곧장 일산으로 이동했다.

힙플 사무실에 도착하니 회의실에서 모두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강 PD님!”

“이쪽으로 오시죠.”

팀원들의 안내를 받으면서 회의실로 들어가자, 그동안 오가면서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도 앉아 있었다.

“우리 스튜디오가 이전에도 바이럴용 영상을 몇 개 제작했었거든. 그때 도움을 줬던 외주 사람들이야.”

협력사인가. 말이 협력사지, 외주의 외주에 가까울 테지만.

내가 자리에 앉자 우철민 PD가 스크린으로 몇 개의 영상을 보여 주었다.

바이럴 영상이다 보니 아무래도 제품 광고 같은 형식이 많았다.

정식으로 TV에서 방영되는 CF가 아닌, 마치 일반인이 억지로 짜맞추고 자막도 눌러 쓴 듯한 그런 영상들이 샴푸나 마사지기 같은 제품들을 설명했다.

호흡도 빠르고 위트도 있다.

그렇지만 어느 하나 우리 방송 콘셉트에 맞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잠시만요.”

나는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서, 오래 묵혀 둔 기획안을 띄웠다.

방송용 기획안이 아닌 ‘<더 라이벌> 마케팅 기획안’이었다.

티저 선별부터 보도자료 구성 등등이 적혀 있는 기획안인데, 맨 뒷장에 추가 내용으로 바이럴 마케팅에 관한 것들이 쓰여 있었다.

그동안 손을 놓은 티가 나는지, 당시 수집해 둔 자료 몇 개와 동영상밖에 없었다.

그 동영상들을 몇 개 틀어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콘셉트를 팀원들에게 전했다.

외주사에서 온 사람들도 진지하게 들어주더니, 다른 영상을 꺼내 시연했다.

“이건 이전에 저희가 버스 광고용으로 만든, 웹예능 티저입니다.”

웹예능 장면들이 몇 개가 지나가고, 그러면서 맨 마지막에 요일과 시각만 표시되었다.

“웹예능이 공개되는 시간을 이 광고 영상 안에서 유추하게 하는 식이었습니다.”

“효과 괜찮았나요?”

“웹예능이다 보니까 큰 반향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 제작사에 만든 다른 예능들보다는 확실하게 조회수가 늘었다고 하더군요. 인터넷에서도 많이 퍼져 나갔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런 걸 원합니다. 우리 방송 자체는 드러내지 않지만, 카메라 테스트 영상을 통해서 시청자들이 흥미를 갖고, 스스로 정보를 찾게끔 하고 싶어요.”

“바이럴의 기본이겠네요…….”

광고 외주사 담당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서,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렵겠습니까?”

“그럴 리가요. 바이럴은 저희가 가장 잘하는 분야입니다. 맡겨 주신다면 한번 가안이라도 만들어서 바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우 PD님, 이분들한테 카메라 테스트 영상 공유해 주시고, 일정 맞춰 주세요.”

“오케이.”

빠르게 일은 성사되었다.

정식 계약 이전에 가안을 본 다음 판단하기로 한 뒤, 제작 일정을 확인하고, 팀원들은 출연진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촬영되는 영상을 방송, 마케팅 등으로 우리가 이용한다는 계약은 이미 일찌감치 나눈 상태라서, 협의보다는 통보에 가까웠다.

그렇게 하루가 지난 뒤.

외주사에서는 정말 빠르게 연락을 해 왔다.

우리는 회의실에 모여 그들이 보내 온 영상들을 검토하기로 했다. 준혁이 형님도 동석했다.

하지만…… 막상 본 영상은 실망스러웠다.

카메라 테스트 영상을 짜깁기한 예고편에 가까운 영상이었던 것이다.

“……바이럴이 이런 건가?”

“그냥 방송용 티저 같아요.”

“이대로 티저로 내보낼까요?”

내 뜻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건지, 아니면 광고사 측에서 잘 이해를 못 한 건지.

방송에 대한 흥미야 돌겠지만, 이런 영상을 두고 딱히 정보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진 않을 듯했다.

“리테이크 하고 한 번 더 받아 보죠.”

그래도 다시 기회를 주기로 하고, 그날 오후.

두 번째로 도착한 영상을 보고서도 팀원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좀 더 사람을 숨겼을 뿐이지, 크게 달라질 건 없는 것 같아요.”

누구보다 냉정하게 평가하는 조정아 메인 작가는 정말 영상 자체가 맘에 안 드는 것 같았다.

“형님은 어떠세요.”

“난…… 광고를 잘 모르긴 하지만, 아닌 건 알겠어.”

제품 광고를 전문으로 하는 광고사이다 보니 역시나 한계점은 있는 걸까.

나는 내 노트북을 노려보았다.

[64%]

사실 이 결과는 이미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바이럴 마케팅을 성공시킬 확률을 확인했을 때부터 60%를 넘지 않는 확률이었다.

나만 보이는 확률이고 당장에 거절할 명분 자체가 없었던 만큼 진행은 시켰는데, AGD 앱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만 증명되었다.

“다른 광고사 한번 찾아봅시다. 아니면 뭐, 우리가 만들어도 되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팀원들이 서로의 눈치를 본다.

하기야, 스스로 만들 줄 알았다면 애초에 외주사와 협력하지도 않았겠지.

그걸 알면서도 한번 해 본 말인데, 분위기가 이렇게 되니 내가 다 머쓱했다.

나는 일부러 힘을 실어 우철민 PD에게 지시했다.

“다른 광고사 좀 알아봐 주세요. 시간이 없으니 당장 가능한 곳으로만. 대신 우리가 먼저 확인은 하는 방향으로요. 저는 저대로 한번 좀 알아보겠습니다.”

“알았어.”

회의가 끝난 후 준혁이 형님은 금완승 감독을 만나러 나갔다.

<더 라이벌> 촬영, 다시 말해 10명으로 추린 오디션 배우들에게는 시추에이션별로 작성된 대본들을 전달할 예정인데, 우이독경 측에서 그 대본들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준혁이 형님은 그 대본들을 금완승 감독과 함께 선별해 주고 있었고.

“오늘 내로 몇 개 정리될 예정이니까, 되는 대로 바로 올려줄게.”

“예. 저도 진행 상황 알려 드릴게요.”

힙플 앞에서 각자의 차로 헤어진 뒤에, 나는 차에 올라 서인하 국장에게 전화를 했다.

그에게 몇 가지 확인을 한 뒤, 메시지 창을 새삼 다시 확인했다.

[민희: 며칠 만에 회사 오니 어색해]

[민희: (사진)]

빈 사무실에서 브이를 그리고 있는 민희의 셀카가 도착한 시간을 확인하고서, 나는 방송국으로 향했다.

* * *

<당잠사> 사무실에는 권민헌 선배와 민희가 있었다.

“어, 강대한!”

노크를 하고 들어가자, 화이트보드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던 두 사람이 돌아보았다.

민희가 손을 번쩍 들면서 조르르 달려오는 뒤로, 권민헌 선배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따라왔다.

“뭐야, 여자친구 얼굴 보러 왔어?”

“어라, 그런 거야? 사진으로는 만족이 안 돼?”

여자친구와 친한 선배가 합심해서 놀리는 건 새삼 놀랍지도 않은 일이었다.

외려 오랜만이라는 것이 슬플 뿐.

“여기에 박 선배가 없어서 참 다행이네요.”

“아, 불러 올까?”

“한 번만 봐주세요, 선배. 제발.”

얼굴 보는 건 오랜만인데 옛 <당잠사> 팀이 떠오르는 광경이었다.

잠깐 인사를 나눈 뒤에, 민희를 잠시 들여보내 놓고 권민헌 선배와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부탁을 좀 드리고 싶어서요.”

“왜, 무슨 일인데.”

난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지환이 좀 빌려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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