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128화 (128/200)

128화 카메라 테스트

배우 안주환.

소속은 건실한 배우 전문 기획사인 ‘블루액터스’로,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배우들이 소속되어 있다.

“나도 거기서 제안받은 적 있어. 오래되기도 했고, 좋은 선배님들도 많은 데지.”

“나도 몇 개 하청 받아서 한 적 있지.”

준혁이 형님이나 우철민 PD나 둘 다 그 회사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안주환이라는 이름을 거론하자 둘 다 고개를 저었다.

“내가 요즘 신인급 애들을 잘 모르긴 하지…….”

“나도 최근엔 드라마 쪽을 잘 안 봐서…….”

지난 1차 심사 이후로 나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은 배우다.

트러블이 일어날 확률이 무려 95%였으니, 심사에서 떨어뜨린 이후로 나로서는 신경 쓸 이유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신동욱 실장과 있는 모습을 본 후였기에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때 심사 보다가 통과시키자고 했던 사람이 누구였죠?”

나는 다른 테이블 쪽으로도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지금 우리는 첫 회식을 나누고 있었다.

어제까지 면접 심사를 보느라 다들 고생하기도 했고, 오늘 또 본의 아닌 기사 때문에 욕을 들어먹기도 해서, 사기 진작 겸 자리를 갖기로 한 것이다.

내 시선에 옆 테이블에서 고기를 굽다가 손을 든 것이 조정아 메인 작가였다.

“최근에 통신사 CF에 나왔잖아요? 지난번에 출연한 드라마도 꽤 평 괜찮았고. 젊은 배우 중에서는 현재 반응이 괜찮게 들어오고 있는 배우라서 추천한 거예요.”

확실히 이력서상으로는 그다지 태클 걸 것이 없었던 기억이 있다.

더욱이 키도 크고 마스크도 좋은 편이었다.

인기를 얻고 있다는 말이 절로 이해가 됐다.

AGD 앱이 아니었다면 1차는 무난하게 통과하고, 별일 없으면 2차 면접도 프리패스였으리라.

“그런데 강 PD님은 왜 떨어뜨리자고 한 거예요?”

조정아 작가가 나를 보고 묻자, 다른 팀원들의 시선도 나에게 돌아왔다.

“그러게. 그때 강 PD가 무슨 소문을 들은 게 있다고, 통과시키면 안 될 것 같다고 하지 않았어?”

우철민 PD도 거드니 나는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더라로 좀 들은 게 있어서요. 헛소문일 수도 있지만, 위험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땐 그렇게 말씀드린 겁니다.”

“그래? 뭐, 그 배우가 저쪽 영화에서 캐스팅된 거면, 우리가 딱히 미안해할 건 아니지. 있는 일 뺏은 건 아니니까.”

우철민 PD가 그렇게 정리했고, 다른 팀원들도 별말은 없었다.

아무래도 우철민 PD는 같은 식구여서인지, 팀원 관리를 확실하게 했다.

하지만 준혁이 형님은 여전히 궁금하다는 눈치였다.

“무슨 소문인데 그래.”

은근하게 물어보는 준혁이 형님.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내 능력을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나는 소주잔을 매만지며 시선을 떨구었다.

“말하기 복잡한 일이야?”

그런 모습을 그는 다르게 해석했는지 걱정 투로 다시 덧붙였다.

“아뇨, 복잡한 일이라기보다…… 정말 카더라로 들은 거라서 쉽게 이야기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음…… 그래, 하긴. 카더라나 찌라시로 죄 없는 연예인들이 다치기도 하니까.”

“예. 그래서예요. 나중에 혹시라도 수면 위로 올라오거나 하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알았어.”

휴우, 일단 그 정도로 봉합은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잔을 부딪치면서 준혁이 형님은 한 번 더 물어왔다.

“그 카더라가 우리 방송이나 저쪽 영화에 영향을 끼칠 만큼 큰일이야?”

“…….”

소주잔을 든 채 잠깐 멈칫했다.

오후에 남양주까지 가서 촬영장 앞을 맴돌다 돌아온 일.

그때 발견한 배우 안주환.

그의 얼굴을 기억해 낸 직후, 나는 그 자리에서 확률을 확인했다.

안주환이 캐스팅되어, 바람처럼의 영화나 ‘무비 메이커’에서 큰 트러블이 일어날 확률이 얼마일까.

우리 방송에는 95%였다. 무슨 트러블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정말이라면 저쪽 방송에서도 마찬가지 확률이 나오리라.

그리고 보인 숫자는,

[100%]

이전보다 5% 올라간, 완전한 확률이 안주환의 머리 위에 떠올랐다.

나는 준혁이 형님에게 말해 주었다.

“만약 터진다면…… 보통 일이 아닐 겁니다.”

그것은 확신에 가까웠다.

* * *

뒤늦게 내가 ‘무비 메이커’ 촬영장으로 뛰어갔다는 소식을 들은 정민우 팀장은, 출근하는 날 회의실로 데려가 혼을 냈다.

내 죄를 알고 있으니 그저 고개만 조아렸다.

“휴우. 그냥 돌아와서 다행이지, 인마. 만약 마주치기라도 했으면 더 안 좋은 일 일어났을 거야.”

“심려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너 앞뒤 못 가리는 놈이었어? 아니잖아. 앞뒤 잴 줄은 알잖아. 억울하더라도 조심해. 알았지?”

“……예.”

진심으로 걱정하는 말투였다. 가뜩이나 내 죄를 내가 알기에, 나는 순순히 대답했다.

“오늘 기사들 뜰 거야. 기름 좀 쳐 놨으니까 여론은 그래도 괜찮아질 거다.”

“감사합니다.”

“그쪽 일은 일단 회사 차원에 맡겨 두고, 뭐가 중요한 건지는 알지?”

“그럼요. 잘 만들겠습니다.”

이러나저러나 내 책임은 방송을 잘 만드는 것.

이제야 굴러가기 시작한 <더 라이벌>을 제대로 론칭하는 것이다.

“앞으로 일정 어떻게 돼?”

“현재 3차 연기 심사 볼 서른 명에게 일정 확정했습니다. 거기에서 20명을 뽑을 예정이고, 최종 카메라 테스트 통해서 10명 확정 지을 예정입니다.”

“10명 선이 나올 일정 대략적으로 알려 줘. 보고 올려서 편성 잡을 테니까.”

편성.

드디어 편성을 논할 때까지 온 것인가.

NBS뿐만이 아니라, 올해 들어 방송사 내에서 기존 굳어져 있던 편성 시간대를 변화를 주는 흐름이 생겨났다.

뉴스 시간이 9시에서 8시로 옮겨가거나, 금요일 밤에 드라마가 편성되거나 하는 등의 변화다.

더 이상 방송이 방송만으로도 평가되지 않고, 시청자들의 시청 패턴도 변화되면서 일어나는 변화였다.

이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것은 NBS도 마찬가지였다.

주력 예능이 배치되던 금요일 밤이나 토요일 밤 시간대는 지난달부터 드라마가 차지했다.

예능국 입장에서야 애석한 일이지만, 좋은 반응을 얻고 있기도 했다.

“국장님이나 내가 생각하는 베스트는 금요일 밤 편성인데, 어쩌면 다음 드라마가 편성될 수도 있어.”

금토 밤 드라마 편성은 아직까진 실험적인 단계.

지금 드라마의 추이를 보고 계속 이어 나갈지 결정될 텐데, 아직 사실상 확정된 건 없었다.

확률을 봐 볼까…… 하다가 접었다.

지금 봐 봤자 어떤 결과든 생각할 거리만 많아질 테니까.

어차피 어떻게 결정된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기에, 당장은 프로그램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이사님들 신경전이 심하겠네요.”

“그래……. 아무래도, 신 이사님과 왕 이사님이니까.”

예능 총괄인 왕이범 이사에 비해 발언권이 약했던 신호현 이사는, 외부 스튜디오와 인재 영입을 적극적으로 행하면서 최근 들어 드라마 제작 쪽의 발언권이 세졌다.

예능은 왕이범 이사, 드라마는 신호현 이사라는, 이사진의 파벌 구도가 확고해졌다는 것이 정민우 팀장의 설명이었다.

“신 이사님은 직접 투자해서 영화를 만들 생각도 있어 보이는데, 그걸 지금 우리 예능이 먼저 이뤄 놨으니까 다소 찝찝할 거야.”

“아…… 그래서 이전부터 <더 라이벌> 만드는 것을 도와준다고 했던…….”

“그래. 그땐 이해 못 했는데, 다 목적이 있었겠지.”

시간이 흘러서 알게 되는 것은 늘 있는 법이지만, 방송국 상층부 내에서 돌고 도는 이 힘의 게임은 언제 들어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방송 하나 만드는 데 대체 얼마나 재고 또 재야 하는 건지.

바깥의 일도 많은데 방송국 내에도 이렇게 따질 게 많으니, 어쩐지 어깨가 늘어졌다.

내 반응을 보더니 정민우 팀장이 피식 웃었다.

“너는 거기까지 신경 쓸 건 없어. 너나 나나 눈앞에 일만 잘 처리하면 돼.”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으면 그렇게 세상 짐 다 짊어진 표정 하지 말고.”

한 번 더 잔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민우 팀장의 말대로, 그리고 내 결심대로 나는 눈앞의 일만 집중하기로 했다.

준혁이 형님 또한 모든 스케줄을 정리하고, 정말 <더 라이벌>에만 집중하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냈다.

그 열정에 보답하기 위해서도 메인 PD인 내가 다른 일에 신경 쓰고 있을 순 없었다.

3차 연기 심사를 통해서 스무 명의 배우를 선발했다.

그중에 백종현과 박지운은 충실하게 합격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각자 개별 연락을 통해서 최종 4차 심사를 알렸다.

“최종 4차 심사는 카메라 테스트입니다.”

3차 연기 심사는 준비해 온 연기를 심사단 앞에서 보여 주는 것이었다.

따지자면 연극 같은 무대용 연기.

하지만 카메라 테스트는 다르다.

배우가 카메라 안에서 얼마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지, 그리고 감독 또한 카메라 안의 배우를 얼마나 살릴 수 있을지 판단해 내야 했다.

그래서 이 심사는 필연적으로, 금완승 감독이 필요했다.

“괜찮은 배우 보이십니까.”

‘우이독경’이 가지고 있는 영화 촬영 스튜디오에서,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는 금완승 배우에게 다가갔다.

사무실에서 보고, 술자리에서 술에 진탕 취한 모습을 보고.

하지만 감독으로서의 모습은 사실 나는 본 적이 없었다.

모니터 앞의 자리에 같이 앉아 있는 준혁이 형님은 매우 편해 보였지만, 그 옆의 나는 금완승 감독의 옆선 하나하나를 눈으로 좇고 있었다.

“보자…… 강 PD, 지금 얼마나 끝냈지?”

“좀 전에 14명째였습니다. 앞으로 6명 남았네요.”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되나?”

“그러셔도 됩니다.”

여전히 돌아가고 있는 <더 라이벌> 촬영 카메라 쪽을 확인하자, 그 옆에 있던 우철민 PD가 OK 사인을 그려주었다.

좀 전까지 카메라 테스트를 받고 대기실로 돌아가는 배우의 뒷모습을 힐끔 보고서, 금완승 감독이 나를 보았다.

“총체적으로 별로야.”

“…….”

잘 뽑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전문가의 입장은 다른가.

나는 준혁이 형님 쪽을 힐끔 보았다. 금완승 감독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그가, 묵묵히 앉아 있기만 했다.

“근데, 싹수가 보이는 사람이 많아.”

씨익 웃어 보이는 금완승 감독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

“어때, 요런 투로 이야기하면 예고편 각 나오나?”

“감독님께서 예고편까지 신경 써 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에이, 그래도 이건 예능 방송이잖우. 요런 자극적인 것도 필요하지 않나?”

낄낄 웃어 대는 그의 옆에서 준혁이 형님이 피식 웃었다.

이 아저씨들이 정말이지 방송물이 들어서는.

나는 고개를 젓고서 다시 물었다.

“방송은 제가 알아서 잘 만들 테니까 정확한 평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떠셨어요?”

“큼, 재미없는 사람 같으니. 뭐 그 말 그대로야. 어차피 높은 연기력을 기대한 건 아니라서 재미는 없는데, 그래도 키워 보면 괜찮을 것 같은 소질들은 분명하네. 잘 뽑았어, 다들.”

그 직접적인 칭찬에 나와 준혁이 형님은 눈을 마주치고 어깨를 으쓱했다.

“준혁이 형님께서 잘 보셨습니다.”

“대한이가 심미안이 있더군요.”

“얼씨구. 둘이서 잘 노네, 아주.”

그의 반응에 우리를 다시 낄낄 웃었다.

그래도 내심 안심이 되었다.

우리가 뽑은 배우들이 결코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다는 것이 금완승 감독의 입을 통해 증명된 거니까.

나중에 음향 체크 하면서 한 번 더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우철민 PD의 신호에 맞춰서 확성기를 들었다.

“자, 다음 사람 들어오세요.”

대기실에서 배두언 PD가 또 한 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배우들에게는 카메라 테스트의 형식을 일절 알려 주지 않았다.

그저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확인할 것이니 연기를 준비해 오라고만 해 두었다.

그래서 문을 통과하면서 제작진에게 인사하다가, 그 중앙에 앉아 있는 금완승 감독을 보고는 한차례 얼굴이 굳었다.

그러나 이번 등장한 배우는 달랐다.

“아니, 이런! 금완승 감독님 맞으시죠? 이렇게 뵙게 되다니!”

만면에 미소를 떠올리면서 능청맞게도 와다다 달려와 금완승 감독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는 모습에, 금완승 감독도 놀랐다.

“어, 어어. 그래, 금완승이라고 해.”

“평소부터 정말 존경했습니다! 오늘 제 연기를 봐주시는 건가요?”

“그, 그렇지. 그러려고 왔지.”

“와아, 이럴 수가. 언제든 감독님 앞에서 연기해 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카메라 테스트지만 그런 기회를 받을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시 허리를 꾸벅 하고 숙여 보이고는, 그는 재빨리 제 위치를 찾아가 섰다.

폭풍이 지나간 듯이, 뭔가에 홀린 듯이 눈을 껌뻑이고 있는 금완승 감독에 반응에 나는 풉 하고 터지는 웃음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참가 번호 15번, 백종현입니다. 전에 말씀드렸던.”

“아, 아아…… 그래, 그 친구인가.”

준혁이 형님의 말에 그제야 금완승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생글생글 웃으면서, 금완승 감독의 카메라만이 아니라 <더 라이벌> 카메라에도 모두 눈인사를 날리고 있다.

“여우 같다더니 정말이군. 한데 저런 얼굴로 그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 너무 해맑아 보이는데.”

그런 금완승 감독의 의견에는 나도, 준혁이 형님도 동감은 했다.

지난번 연기 심사 때도 본인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로맨틱한 드라마 남자 주인공의 연기를 가지고 왔었다.

연기력에서는 딱히 태클 걸 데가 없어서 통과는 시켰지만, 오늘까지 머리 한구석에서 걱정은 하고 있었다.

“백종현 씨. 준비되었습니까?”

나는 확성기를 들어서 물었고, 백종현은 여전히 해맑게 웃으면서 머리 위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

주변에서 풉 하고 웃음이 튀어나왔다가 사그라들고, 나는 금완승 감독의 신호에게 확성기를 넘겼다.

그는 카메라 감독과 디테일한 조정을 하더니 다시 자리에 앉아, 확성기를 들었다.

“그럼, 준비해 온 연기 한번 봅시다.”

직후, 백종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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