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127화 (127/200)

127화 저격

지난 통화에서 내비친 신동욱 실장의 뻔뻔함을 생각해 봤을 때, 적극적인 언론 플레이를 할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다.

다만.

“뭔가 내용이 문제가 있습니까?”

“일단 봐.”

그 내용이 문제였다.

『국내 최초 영화 제작 리얼리티 예능을 표방하는 ‘무비 메이커’(가칭)가 촬영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제작 준비부터 촬영까지 들어가는 기간이 일반적인 예능에 비해 상당히 짧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 그것은 사전 기획이 철저하게 준비되었음을 반증한다.

.

.

……이날, 영화 ‘갈 데까지 간다’(가제)의 제작진 미팅과 함께 첫 촬영의 신호탄을 알린 ‘무비 메이커’는 주연 오디션을 비롯한 배역 선정을 시작으로, 영화 제작에 얽힌 뒷이야기들을 리얼하게 그려 낼 것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채널T 측은 ‘무비 메이커’의 방영을 내년 상반기로 보고 있다…….』

거기까지는 별다를 것 없는, 보도자료를 읊는 기사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마지막 문단이 문제였다.

『……어긋난 욕심으로 인해 공정성의 의심을 받는 오디션 프로그램 등의 예능으로 말미암아 TV 앞을 떠난 시청자들의 마음을, 이 새로운 시도의 리얼리티가 어떻게 사로잡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내가 알기로, 오디션이나 경연 프로그램은 모든 방송사를 통틀어 일제히 제작 보류에 들어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우리만 <더 라이벌>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시기에 굳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걸고넘어진다는 것은,

“저를 저격하는 거군요.”

대놓고 그런 의도가 명백했다.

“강 PD, 너만이 아냐. 우리 예능국, NBS 방송국 전체를 저격하는 거지.”

나의 반응에 서인하 국장이 고개를 저었다. 내 반응이 건방지다는 것이 아니라, 나 혼자 그 부담을 질 필요는 없다는 투였다.

“그쪽 팀장 이름이 뭐라고 했지?”

“신동욱 실장입니다. 영화사 ‘바람처럼’의.”

“그래, 이 리얼리티 기획을 본인들이 진즉에 준비하고 있었다고 했지?”

“전에 통화에서 그랬습니다.”

“진짜인 것 같아?”

“그럴 리가요.”

거짓이 분명했다. AGD 앱을 굳이 확인하지 않더라도 뻔한 일이다.

아…… 확률을 볼걸 그랬다. 100%를 달성했을 텐데.

서인하 국장은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인 뒤 정민우 팀장을 보았다.

“정 팀장도 일단 주변에 수소문해 봐. 움직일 수 있는 기자는 움직여 보자고.”

“저도 민준기 기자에게 연락해 보겠습니다. 어차피 이번 면접 결과에 대한 보도자료를 보낼 예정입니다.”

“그래. 위에서 일단 민감하게 보고 있으니까, 잘 대처해 보자고.”

“예.”

대답을 하고 곧장 국장실을 나섰다.

“신동욱 실장, 어떤 사람이야?”

자리로 돌아오면서 정민우 팀장이 물어와서, 나는 잠깐 눈을 굴렸다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신호현 이사 같습니다.”

“……별로 좋은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좋은 의미로 한 말이 아니니까요.”

그가 진득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전에 접대 어쩌고 하는 통화를 받았을 때도 영 안 좋은 이미지이긴 했는데, 꽤 더러운 짓도 할 줄 아네.”

“저도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이 바닥이 이런 술수를 쓰는 데이긴 하지. 특히 주머니 밖으로 튀어나오는 송곳이 있다면 말이야.”

자리에 앉으며 나를 쳐다본 그가 말했다.

“강 PD는 일단 하던 거 계속해. 이쪽은 우리한테 넘기고. 알았어?”

“예.”

그렇게 순순히 대답하고 자리에 앉았다고 해도, 그다지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다시 그 기사를 찾아 들어갔다. 기분 나쁜 본문은 집어치우고 댓글을 확인했다.

『―‘무비메이커’ 응원합니다!

―간만에 좀 기대되는 예능 나오는 듯

―바람처럼이면 그래도 영화 잘 만든다는 데 아님? 기대해도 좋을 듯ㅇㅇ

└알바심? ㅎㅎㅎㅎ

―저기서 근데 예능 만든다고 해도 잘 만들까

└리얼리티 제작은 외주 주겠지

―개나 소나 오디션하는 시대에 자기 뚝심있게 갈 길 가네

└강모씨랑은 다르게 말이야 그치?

└우리 외삼촌 욕하지 마라!

└엑빠들이 왜 여기에 기어들어와』

당연한 듯 여론이 좋지 않다. 속 보이는 저격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여론을 흔들기에는 좋은 것이다.

이전 <언더커버 싱어> 때처럼, 방송 마지막까지 사건이 없을지 확률이라도 봤어야 할까.

이 자리에 그냥 앉아 있어도 되는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다 벌떡 일어섰다.

“우 PD님. 예, 접니다. 기사요? 예, 봤습니다.”

복도로 나가면서 우철민 PD에게 물었다.

“‘무비 메이커’를 만든다는 그 외주 스튜디오, 위치 좀 알아봐 주세요.”

그사이 준혁이 형님에게 연락이 오고, 민희와 박주영 선배에게도 연락이 왔다.

평소에 이렇다 할 연락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닌 권민헌 선배에게도 연락이 온 것을 보니, 다들 나를 걱정해 주고 있었다.

“예, 그럼 곧장 기사 올리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민 기자님.”

일산 힙플 스튜디오 사무실에 도착할 때까지 민준기 기자와의 통화도 마무리 짓고서, 차를 대고 곧장 위로 올라갔다.

이젠 딱히 양해도 구하지 않고 문을 벌컥 열자, 사무실에 있던 이들이 벌떡 일어났다.

“강 PD님!”

“네, 다들 좋은 오후입니다. 면접자들 연락은 잘되고 있어요?”

내가 없어도 일단 일은 지시한 대로 돌아가고 있다. 자리에 없는 우철민 PD를 대신해 배두언 조연출이 지휘를 맡고 있다가, 나에게 쪼르르 달려왔다.

“지금 절반쯤 연락은 끝냈고, 오늘 중으로 3차 심사에 대한 안내는 전부 끝날 것 같습니다.”

“잘됐네요. 빨리 끝나는 대로 오늘은 일찍 퇴근해서 쉽시다. 우 PD님은요?”

“통화하러 나가셨습니다.”

기다릴까 하다가, 통화를 한다면 어차피 장소는 뻔하다 싶어서 사무실을 도로 나갔다.

복도 끝에 베란다가 있는데, 그곳에서 우철민 PD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가 고개만 까딱여 인사를 한 뒤 손짓했다.

“……어, 그래. 고마워. 내가 이 은혜 잊지 않을게.”

내가 가는 것과 때마침 통화가 끝났다.

“누구예요?”

“전 스튜디오에서 같이 일하던 친구. ‘무비 메이커’ 찍는 촬영소, 곤란하다는 것을 겨우겨우 물어봤어.”

“그래도 알아냈군요. 어딥니까?”

위치는 일산과 완전 정반대인 남양주였다.

주소를 찍어주고서 우철민 PD가 걱정스레 나를 봤다.

“알아내긴 했는데, 어떡하려고? 신 실장이라는 사람 전화도 안 받는다며.”

“어떡하긴요. 가서 따져야죠. 무슨 짓이냐고.”

“그렇다고 말을 들을까?”

“안 듣겠죠. 그래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현준영 일을 해결할 때만 해도 회사 내부에서 여러 눈치를 보았다. 내 위치와, 그의 위치와, 그 윗사람들과.

아마 그래서 서인하 국장과 정민우 팀장이 이번 일에 나는 물러나 있으라고 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동욱 실장이 내가 눈치를 봐야 할 사람인가?

그럴 리가.

내가 이끄는 스튜디오도 아니고, 내가 눈치 볼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가 봐야 그 사람이 없을 수도 있어.”

“그래도 갔다 오겠습니다. 여기 일은 좀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제작을 해 오면서, 우철민 PD가 믿을 만하다는 것은 확실했다.

나는 그에게 오늘 처리를 맡기고, 곧장 남양주로 향했다.

* * *

원래는 바람처럼에 가는 게 맞다. 하지만 신동욱 실장은 당연히 전화를 받지 않고, 바람처럼에 간다고 해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 차라리, 촬영을 하고 있을 촬영소로 쳐들어가는 게 빠를 것 같았다.

그 생각은 맞았다.

우철민 PD가 찾아준 곳은 바람처럼에서 계약한 외부 촬영장이고, 그곳에 오늘 ‘무비 메이커’ 촬영이 있다고 했다.

1시간 반 만에 도착해서 촬영장 앞을 향하자, 발전차와 밥차 등등 한참 촬영 준비가 한창이었다.

조금 먼 곳에 차를 대고 일단 살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당연히 안면이 있진 않았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이전 바람처럼 사무실에 방문했을 때 몇 번 본 얼굴들이 지나다니는 것이 보였다.

정확하게는 몰라도 신동욱 실장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이겠지.

나가서 붙잡고 신동욱 실장의 위치를 물어보려 했다.

그때였다.

『배우류준혁』

지잉― 하는 소리와 함께, 거치대에 둔 스마트폰이 울렸다.

“대한아, 너 지금 어디야.”

“……남양주입니다. 사무실 오셨습니까?”

“그래, 혹시나 싶어 왔는데 우 PD가 너 나갔다잖아. 얘기 다 들었다. 남양주 촬영장에 간 거지?”

“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요.”

“가서 뭘 어떻게 하려고.”

준혁이 형님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차분했다.

“진정해. 강대한.”

그가 강대한이라고 부르는 건 처음이어서, 순간 나도 치솟은 감정을 물리고 통화에 집중하게 됐다.

“지금 여기서 네가 나선다고 해도 잘 풀릴 거라는 보장은 없어.”

“…….”

스피커폰으로 켜놔서 차내에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침을 삼키고 대꾸했다.

“그냥 저쪽에서 무슨 짓을 하든 가만히 있는 게 맞는 걸까요?”

“너보다는 내가 이 바닥을 더 잘 알아. 이런 일에는 반응하면 할수록 몇 배가 돌아오는 법이야. 애초에 그런 기사로 언플하는 사람이, 네가 촬영 현장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이용 안 하겠어?”

말문이 막혔다.

그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

요 며칠간 면접을 보면서 사람 상대에 지쳐 있었던 데다, 계속 신경을 긁고 있던 일이라 그 가능성을 무시한 채 너무 감정에 치우쳐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대한이 네가 한 말을 잘 떠올려 봐. 저쪽에서 어떻게 나오든 우리는 우리 방송만 잘 만들면 돼. 아니야?”

그랬다. 내가 그런 말을 하긴 했지.

“방송 성공시키고, 영화 성공시키자고 했잖아. 냉정히 생각해. 네가 어떻게 해야 할지.”

준혁이 형님은 더 설득하지 않겠다는 듯 전화를 끊었다.

뭐랄까. 한겨울의 폭포 아래에서 물을 맞는 기분이었다. 발끝까지 차 있던 열이 싸악 빠져나가는 기분.

“……젠장.”

앞뒤 안 가리고 일을 칠 수야 있지만, 형님 말대로 좋은 결과로 돌아올 것 같진 않았다.

어떤 여론이든, 기본은 내 방송을 내가 잘 만드는 것이다.

“그래, 그게 맞지…….”

나에게 들려주듯 그렇게 중얼거리고서, 깊게 심호흡을 했다. 열로 흐려졌던 시야가 정상을 되찾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내가 주차한 차 옆으로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갔다.

촬영장 입구 쪽에 서는가 싶더니 출구에서 신동욱 실장이 내렸다.

역시. 여기 오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대로긴 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벌컥 문을 열고 뛰어나갈 생각은 없었다.

그게 도움이 안 될 것임을, 지금이나마 깨달아서 다행이었다.

물론……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거치대에서 스마트폰을 빼 내 전화를 걸었다. 신동욱 실장에게.

그는 내 눈앞에서 어딘가로 이동했고, 곧 통화가 연결됐다.

“예, 신동욱입니다.”

“강대한입니다.”

“네, 어쩐 일이신지? 다시 연락 안 하실 줄 알았는데요.”

첫 마디부터 조소가 가득히 달린 것 같은 말투였다. 나는 참을 인을 새기며 말했다.

“그러려고 했죠. 하지만 한 말씀 드리고 싶어서 전화했습니다.”

“해 보시죠. 바빠서 오래는 통화 오래는 못 합니다.”

“오늘 올라온 기사 잘 봤습니다. 참으로 염려해 주시는 것 같아서, 그 기대감에 걸맞게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아, 그러세요.”

“예. 그러니…… 마지막까지, 서로 방송 잘 만들어 보지요. 지켜보겠습니다.”

“저도요. 어디 열심히 해 보십시오.”

전화가 툭 끊겼다. 이건 뭐, 내가 날카롭게 말을 던지는 게 익숙해졌다지만, 이런 사람한텐 아직 새 발의 피구나 싶었다.

그때였다.

큰 밴 하나가 흙먼지와 함께 내 차 옆을 지나쳤다.

촬영장 입구로 향하는 밴을 보고, 다시금 내 시야 안으로 들어선 신동욱 실장이 반갑게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출연자인가? 지금 차를 빼면 티가 날 것 같아서 잠시 기다리는 사이, 밴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내렸다.

신동욱 실장이 반갑게 웃으면서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과 인사하고, 그 옆의 훤칠한 키의 배우와도 악수를 나누었다.

그 배우의 얼굴이, 어쩐지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누구지……. 최근에 봤는데.”

낯이 익은 것도 아닌데, 모르는 얼굴도 아니었다.

“……아.”

떠올랐다.

[95%]

1차 이력서 심사 때, 트러블이 일어날 확률을 보고 떨어뜨렸던 바로 그 안주환 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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