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126화 (126/200)

126화 아이돌 출신

연기일 확률 5%. 하지만 그 5%가 뭔지 묻는 건 어려웠다.

대놓고 묻는다고 해서 말해 줄 것도 아니고.

결국 면접이 끝날 때까지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결과는 소속사 쪽으로 알리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결과를 기다릴게요.”

꾸벅 인사를 하고, 또 카메라마다 눈웃음을 남기고 백종현이 연습실을 나갔다.

“허 참.”

가장 먼저 소리를 낸 것은 준혁이 형님이었다.

“무슨 여우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네…….”

“그쵸,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정말…….”

“끼가…….”

그도 그렇고, 여성 스태프들이 모두 혀를 내둘렀다.

“아까 눈 마주치는 거 보셨어요? 저게 남자들의 여우짓 아니에요?”

“그걸 여자한테만 하면 모르겠는데, 류 배우님한테도 똑같이 하던걸?”

작가들의 이야기에 우철민 PD가 내 쪽을 보았다.

“<당잠사> 때도 혹시 저랬어?”

“예…… 면접 때부터 방송하는 내내 저렇게 해맑게 다녔었죠.”

캐스팅하려고 잔뜩 긴장하고 갔던 민희도 뭔가에 홀린 듯이 괜찮다며 돌아왔었지.

아마 오늘 여기 앉아서 처음 백종현을 본 사람들이 느낀 감정과 비슷할 것이다.

대번에 이 인원들을 홀리고 간 것을 보니 정말 구미호가 전생이라도 한 건 아닌가 싶다.

“여우 캐릭터라.”

괜찮은 것 같은데. 이력서에다가 ‘여우, 구미호’라고 몇 자를 써 놓는 사이에, 준혁이 형님이 면접관들의 시선을 모았다.

“자, 일단은 평부터 해 보죠. 어떠셨습니까.”

나는 우리 좌석 뒤쪽에 있던 모니터 화면을 한차례 확인했다. 심사 장면은 정확하게 잘 찍혀야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결점으로 보이는 건 전혀 없어 보여요. 이력서는 원래 그렇고, 마스크도 보이스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연기력도 좋고요.”

우철민 PD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작가들도 동조했다.

준혁이 형님은 다소 찝찝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뭔가 걸리는 게 있으십니까?”

“음, 아니. 면접 보는 모습이 너무 꾸며 낸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말이야. 좋은 인상을 주려고 꾸미는 것 같기도 하고.”

“그게 너무 심하다는?”

“그런데 또다시 생각해 보면 저게 자연스러운 본래 모습 같기도 하단 말이지. 확신이 잘 안 서네.”

“진심일 겁니다. 백종현의.”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95%의 확률로’라고 나도 모르게 덧붙이려다 목 너머로 삼켰다.

“그렇게 보여?”

“<당잠사> 때와 전혀 달라진 게 없는 태도잖습니까. 제가 걱정되는 건 오히려 영화의 캐릭터와 맞을까 하는 건데, 그건 3차에서 또 보면 되겠죠.”

2차 면접으로 골라낸 사람들은, 3차에서 사전 대본을 건네주고 지금보다 본격적으로 연기력 평가를 받는다.

백종현의 경우, 2차 면접에서 크게 탈락시킬 이유를 찾지 못했으니 3차로 올리는 것이 타당했다.

“그래, 그게 맞지. 그럼 만장일치로 3차로 올리는 걸로.”

“예.”

“진행하겠습니다.”

우철민 PD가 백종현의 이력서에 체크를 한 뒤에 내게 눈짓으로 신호를 주었다.

나는 모니터 쪽을 한 번 더 확인한 다음에 다음 참가자를 호출했다.

5일 사이에 100여 명의 면접자를 면접한다는 것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지난 방송 제작 때도 이렇게 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5일차가 되자 정말 모두가 녹초가 되었다.

그래도 시간 배분을 잘 해냈다고 자축하고 싶은 기분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면접 막판이 되자 모두의 눈밑에서 다크서클을 찾을 수 있었다.

준혁이 형님이 상쾌한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응원을 해 주지 않았더라면 다들 지쳐서 퍼졌을 거였다.

“우리도 힘들지만 기다리는 대기자들도 많이 힘들 테니, 조금만 더 힘냅시다.”

“힘이 나야 할 텐데…….”

“처음엔 저 미소도 은혜로웠는데…….”

하지만 효과가 처음만큼 짱짱하진 못했다.

처음엔 준혁이 형님을 참 잘 따랐던 제작진도 이젠 그 미소의 효과가 덜한가 보다.

준혁이 형님은 전보다 차가워진 반응에 씁쓸하게 미소를 짓고서는 나를 보았다.

“맞습니다, 형님. 우리는 더 힘내야죠.”

나는 뜨뜻미지근한 대사를 던져 주고 밖으로 신호를 보냈다.

문을 열고 다음 면접자가 들어오는 것과, 내가 이력서를 넘기는 것은 거의 동시였다.

『박지운』

아, 그 아이돌이군.

“안녕하십니까. 박지운입니다.”

허리를 숙여 보이고, 다소 딱딱한 걸음걸이로 의자에 앉은 그는, 바로 박지운이었다.

준혁이 형님이 미간을 주무르던 손을 내리고 그를 보았다.

“박지운 씨……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 25세, 연기를 이제 막 시작한 햇병아리 배우입니다. 배우는 평생 배워 가야 해서 배우라고, 제가 좋아하는 어떤 배우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처럼 평생 배움의 자세를 잃지 않는 배우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라, 저 어설픈 아재 개그는 분명…….

나는 슬쩍 준혁이 형님을 눈짓했다.

“그 말은…… 제가 시상식 때 한 말인데. 4년 전인가, 5년 전인가.”

“예, 그 말을 듣고 배우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잠깐 그 말에는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당연하지만, 이력서에는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력서를 넘겨 보면서 준혁이 형님은 마음을 다 잡는 것처럼 보였다. 그 틈을 타 내가 말했다.

“놀랍네요. 류준혁 배우님이 이 방송을 이끈다는 기사를 보고 아주 잘 찾으신 모양이에요.”

비슷비슷한 내용의 면접을 100번 가까이 연이어 보는 동안, 나는 날카롭게 말을 건네는 방법을 습득했다.

이렇게 압박 면접을 하는 꼰대가 되어 가는 거겠지?

“아니요, 가장 좋아하는 배우이자 존경하는 분이 바로 류준혁 배우님이십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류준혁 배우님께 연기 지도를 받을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게 제 지원 동기입니다.”

말하는 중, 다소 흥분하는 것처럼 보였다.

뭐랄까, 백종현 때와 대척점에 있는 기분이랄까. 백종현과는 정반대로, 그 감정이 그대로 내게 전달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인지 서로 수군거리는 광경을, 박지운은 다소 긴장한 얼굴로 지켜보았다.

“……그래요, 그렇게 말해 줘서 영광입니다. 내 얘기 말고, 지운 씨 이야기를 해 보죠. 배우가 되고자 한 계기는 그런데, 아이돌로 데뷔하지 않았습니까?”

“네……. 연기 공부를 하던 중에 그런 제안을 받아서, 아이돌로 데뷔를 했습니다.”

“하지만 잘 풀리진 않았고요.”

“안타깝게도……. 하지만 도리어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건 왜죠?”

“아이돌은…… 배우라는 꿈을 이루기 위한 징검다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사건이 터졌을 땐, 그런 제 생각이 안일했다는 것을 하늘이 알려 준 것이 아닐까 생각했고요. 제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말하는 중간 잠깐 어두워졌던 어조가, 끝에 가서는 다시 단단해졌다.

이렇게 앞에 두고 말을 하는 중에도 다양한 감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시종 여우 같았던 백종현과는 확실히 다르다.

같은 얼굴인데도 슬픈, 기쁜, 여타 감정들이 손에 잡힐 듯이 보였다.

저것이 만약 연기라고 하더라도 설득이 될 만큼.

그 뒤로 2차 면접의 사전 준비 대상인 짤막한 연기를 보고, 이어서 면접관들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나도 그들과 함께 질문을 던지면서, 박지운의 머리 위를 주목했다.

얼마나 이 방송에 열의를 가졌는가에 대한 확률은 면접을 하는 중에도 실시간으로 솟구치고 있었다.

[93%]

이 수치는 그동안 확인한 이들 중에서도 상위권이었다. 아, 백종현 때는 다른 확률을 보느라 이 확률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박지운 씨, 마지막 한마디 부탁드려요.”

준혁이 형님의 질문에, 잠깐 목을 다듬은 박지운이 그를 똑바로 보며 대답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배우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 배우에게 조금이라도 더 성장할 기회를 주신다면, 반드시 그 이상의 보답을 돌려드리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일어나 깊숙이 허리를 숙이는 박지운의 태도는, 문을 나가는 순간까지 변하지 않았다.

“제일 정중하네요. 열의도 있고.”

“아이돌 출신이라고 해서 사실 좀 걱정했는데…….”

“아이돌이지만 고생할 건 다 한 친구라서 그렇지 않을까요.”

PD와 작가들이 이야기를 나눈 뒤에 우리를 보았다. 나는 준혁이 형님을 보았다.

“어때 보이세요? 이전부터 마음 좀 쓰시는 것 같던데.”

“마음 쓰긴 내가 뭐. 태도가 좋은 친구로 보이긴 하네.”

이력서를 내려다보는 준혁이 형님의 눈빛이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선수 치듯 말했다.

“저는 찬성입니다. 3차 연기 심사에서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되네요.”

“그럼 통과시키는 걸로……?”

우철민 PD가 조심스러운 물음을 준혁이 형님에게 던지고, 그는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죠.”

“알겠습니다.”

우철민 PD가 이력서에 OK 표시를 하는 것으로, 박지운의 2차 통과가 결정되었다.

그 이후로도 다시 10여 명.

그리고 최종적으로, 5일간의 결과를 가지고 회의를 거쳐 3차 연기 심사 진출자 30명이 정해졌다.

준혁이 형님이 돌아간 뒤 나는 팀원들에게 정리를 지시했다.

“그럼 내일부터 각 면접자들한테 연락을 돌리고…….”

그렇게 지시를 내리면서 주변을 보다가, 묘한 기분이 들어 말이 막혔다.

“강 PD님?”

내 신호를 받아 카메라를 끄고 있는 감독들을 살피다가, 우철민 PD가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벽의 시계를 확인했다.

12시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물론 정오가 아니라 자정이었다.

“촬영은 종료되었지만, 여러분은 바로 퇴근을 못 하시겠군요.”

“하하하, 뭐, 하루 이틀 일인가요. 저희 일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가벼운 웃음을 짓는 우철민 PD의 목소리에도 피로함은 가득했다.

나는 도리어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좋은 방송을 만들고자 하는 열의는 누구나 똑같지만, 그러기 위해서 이들이 이렇게 고생하는 것을 누가 알까.

그렇게 고생해서 제대로 된 보답을 받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이들을 이끄는 팀장이라는 것이 새삼 무겁게 다가왔다.

“사실 오늘은 회식이라도 하자고 하려고 했어요.”

“하시죠. 다들 배도 고플 거고. 그치?”

우철민 PD가 팀원들을 돌아보자, 모두 힘없이 손을 들어 ‘예에~’라고 함성을 질러 주었다.

나는 씁쓸하게 웃고 고개를 저었다.

“아뇨, 회식은 다음에 하루 촬영 접고 하도록 하죠. 주말까지 모두 반납했는데, 더 잡아두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 오오……. 좋으신 분이야……. 저희 스튜디오로 와 주세요.”

작가진 중 한 명이 너무 솔직하게 맘을 내뱉어서 다른 PD의 눈총을 받았다.

나는 피식 웃고서 말했다.

“빨리 정리하고 집에 들어갑시다. 내일은 최대한 빨리 마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 *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지난 5일간의 면접 마라톤이 역시나 만만치는 않아서, 아침에 겨우 몸을 일으켰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도 잠이 깨지 않아서, 냉장고에서 쿨식스를 아침부터 꺼내 마시고 나서야 그 시원함에 조금 정신이 차려지는 기분이었다.

[배우류준혁: 어제 못 도와주고 가서 미안해]

그런 메시지가 와 있어서 나는 피식 웃으며 답신했다.

[뒷정리는 원래 제작진이 하는 겁니다ㅎㅎ]

[어제까지 면접 보느라 고생하셨어요]

[결과 오늘 보고하고 힙플로 출발할 때 연락드릴게요]

[배우류준혁: ㅇㅇ 나도 오전스케줄 하고 바로 갈 거야]

5일 동안 면접 때문에 스케줄을 비운다고, 이번 주는 또 스케줄이 많은 준혁이 형님이었다.

“조정하려면 또 골치 아프겠네.”

윤대명 매니저와 통화를 나눌 일이 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랜만에 NBS로 출근을 했다.

며칠 만에 보는 동료 PD들과 인사를 하면서 예능5팀 사무실로 올라가자 정민우 팀장이 웬일로 자리에 있었다.

“어, 오늘은 나왔네?”

“2차 면접 끝나서 보고드리러 왔습니다.”

나는 어제 작성한 30명의 리스트를 정민우 팀장에게 건넸다.

“그래…… 고생했어. 백종현도 들어가 있네?”

“예. 다들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당잠사> 때처럼 모두를 제대로 홀렸습니다.”

“권 팀장도 여우 같다고 했었는데 정말 그런가 보네.”

리스트를 그렇게 살핀 뒤에 그는 다시 나에게 돌려주었다.

“국장님 뵙고 갈 거야? 금방 돌아오실 텐데.”

“아뇨, 업무 정리만 좀 해 놓고 바로 나가 보겠습니다.”

“그래. 너 열심히 하고 있다고 전해 주마.”

“잘 부탁드립죠.”

나는 장난스레 웃어 보이고서 오랜만에 내 자리에 앉았다.

밀려 있던 일을 처리하면서, 나가기 전에 민희와 박주영 선배 얼굴이나 좀 보고 가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야, 강 PD. 들어와 봐.”

자리를 비웠던 정민우 팀장이 갑자기 국장실로 나를 끌고 갔다.

어느새 국장실로 돌아온 서인하 국장이 심각한 얼굴로 있다가, 내가 들어오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태블릿을 보여 주었다.

그가 띄워둔 것은 포털의 연예 카테고리 기사였다.

『영화 제작 리얼리티 ‘무비 메이커’, 촬영 크랭크인! 오디션 프로그램과는 다른 리얼함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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