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123화 (123/200)

123화 프로필 심사

배우 모집에 대해서는 사실상 제한을 크게 두진 않았다.

가장 중요시 생각할 부분은 배역 이미지에 부합되는지에 대한 것이겠지만, 배우의 능력에 따라 그런 이미지는 얼마든지 달라질 것이기에 외모 같은 외적인 것도 크게 따지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역시 다른 회사에 소속된 배우는 안 받는 게 좋지 않을까?”

준혁이 형님과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에 나는 잠깐 생각해 보았다가 고개를 저었다.

“플래티넘에서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방송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의 화제성도 필요하니까요. 누가 이력서를 넣을지는 모르겠지만, 신인급에서도 인지도 있는 사람이 좀 들어와 주면 방송 자체도 뜨고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회의 끝에 <더 라이벌>의 배우 모집 공고에는 일반인, 기획사 소속 배우까지 폭넓게 포함이 되었다.

다만 기성 배우의 경우에는 일말의 제한을 두기로 했는데, 이는 형평성의 문제 때문이었다. 가급적이면 데뷔 3년차까지의 신인급 배우만을 받기로 결정했다.

힙플 스튜디오의 사무실은 일산에 있었다.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상업 건물 주차장에 주차하고 있는데, 준혁이 형님의 차가 앞을 지나갔다.

“혼자 오셨어요?”

오늘 미팅은 촬영을 겸한다. 기획자와 제작진의 첫 만남인 만큼 스태프들도 동석할 줄 알았는데, 개인 승용차를 몰고 온 걸 보니 혼자만 온 모양이었다.

“뭐, 이 정도면 되지 않겠어?”

그렇게 말하면서 윤대명 매니저는 다른 업무를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계절감에 맞는 롱가디건에, 모델 체형의 죽죽 뻗은 스타일이 합쳐지니 그것만으로도 그림은 된다.

하긴, 저런 얼굴인데, 스타일리스트도 따로 필요 없겠지.

결국 둘이서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올라간다고 먼저 연락을 해 두어서 우철민 PD가 밖으로 나와 있었다.

복도가 떠나가라 소리치는 것을 보니, 텐션이 높은 게 아니라 원래 목청이 좋은 사람인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류준혁입니다.”

“아이고, 당연히 알지요! 오랜 팬이었습니다! 아, 사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어깨가 빠져라 악수를 하면서 부탁하는 우철민 PD의 태도에 준혁이 형님도 싱그럽게 웃어 보였다.

안쪽으로 안내되어, 나는 몇 번 온 적 있는 회의실로 들어가자 이미 스태프들의 촬영 준비가 한창이었다.

카메라 감독들이 위치를 잡고 있고, 테이블 위에도 거치 캠들이 놓여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음향팀에 붙잡혀 마이크를 차고 자리에 앉았다.

“어, 저쪽에 앉지 않으시고요?”

마찬가지로 우철민 PD도 마이크를 차면서 자리를 가리켰다. 테이블의 끝, 상석이었다.

“어휴, 저 자리는 싫습니다. 그냥 저희 이렇게 마주 보고 앉죠.”

내 맞은편에 우철민 PD, 그 옆에 메인 작가. 내 옆에는 준혁이 형님, 그 옆으로 PD들, 작가들.

상석에는 협의 하에 아예 의자를 빼 버리고, 대신에 스크린을 조금 더 가까이 끌어왔다.

PD들과 작가들까지 들어와 자리를 잡자, 타이밍에 맞춰 촬영 준비도 끝났다.

감독들의 신호를 받은 우철민 PD가 나에게 눈짓을 했다. 카메라는 이미 돌아가고 있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부터 나는 머릿속으로 편집점을 잡았다.

“이렇게 첫 미팅을 가지니까 감회가 새롭네요.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카메라에 찍히고 있는 것이 피차 어색한 사람들이다 보니, 그런 짧은 인사 후에 다시 정적이 감돌았다.

나라도 나서야 하나. 이런 진행에는 영 재능이 없는데…….

잠깐 그런 생각을 했지만 걱정할 건 없었다.

“자기소개부터 좀 해 볼까요, 우리?”

<언더커버 싱어> 진행도 매우 능숙하게 해낸 사람이 옆에 있었으니까.

준혁이 형님은 그렇게 말하고선, 가장 먼저 인사를 했다.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류준혁입니다.”

“강대한…… PD입니다.”

“우철민 PD입니다. 강 PD님을 잘 서포트하겠습니다.”

“배두언 조연출입니다.”

“조정아 작가입니다. 영광스럽게도 메인 작가를 맡게 되었습니다.”

“김지연 보조작가입니다.”

그 이후로도 분위기를 타고, 촬영 감독에 음향 감독까지 인사를 했다. 하다 보니 다시 한 번 얼굴을 익히게 되었다.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준혁이 형님은 톱배우답지 않게 일일이 눈을 맞추면서 인사를 했다.

그럴 때마다 뒤쪽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준혁이 형님에 대한 호들갑이나 칭찬일 테지.

나중에 음향 조절하면서 무슨 말 하는지 들어봐야겠다.

인사가 끝난 뒤 준혁이 형님이 나를 슬쩍 보았다. 나는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오늘 미팅은 앞으로의 계획과, 그리고 들어온 프로필 중에서 면접자를 뽑기 위한 미팅입니다. 관련 자료들을 일전에 보내 드렸는데, 다들 확인해 보셨죠?”

이번 촬영분은 어디까지나 방송 진행을 위한 연출이었다.

제작 일정표를 포함한 최종 기획안은 이미 모두 공유된 상태이고, 스튜디오 일정에 맞춘 조정도 이루어졌다.

그래서 간단히 기획안을 넘겨 가면서 최종 확인을 하는 척만 하고, 바로 다음으로 넘어갔다.

“중요한 건 배우들이겠죠. 프로필이 상당히 많이 들어왔다던데요?”

그 말대로였다. 프로그램 참여 배우 모집에 대한 보도자료를 돌리면서 개설해 둔 공식 이메일을 기입해 두었는데, 얼마 전 민준기 기자가 깔끔한 기사를 뿌려 준 덕분인지 수백 통에 메일이 쌓여 있었다.

스크린에 노트북 화면이 나타났다.

“저거 언제 다 확인하죠…….”

보조작가 하나가 진심을 가득 담아 이야기해서, 테이블 위에는 한차례 웃음꽃이 피었다.

“그래도 들어올 때마다 확인해서 걸러 두었습니다.”

우철민 PD가 노트북을 조작해서 클라우드 서버의 폴더를 열었다.

그곳에 그동안 정리해 둔 이력서들이 있었다.

각자가 노트북을 꺼내 들고 클라우드를 열었다. 준혁이 형님은 본인의 태블릿을 가지고 왔는데, 클라우드 연결이 되어 있지 않아서 한차례 기술팀이 왔다 갔다.

“시대를 따라갈 수가 없다니까…….”

준혁이 형님이 투덜대는 소리에 다시 한 번 웃음소리가 흐른 뒤, 우리는 각자의 기기로써 이력서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막내 작가가 메일함에서 폴더로 정리해서 넣어주면, PD와 작가들이 다 달라붙어서 파일을 열람하고 분류했다.

“좀 걱정했는데, 그래도 이력서가 많이 들어왔네요?”

“오디션 프로에 대해서 반감이 있지만, 그래도 본인 이름을 알릴 기회는 언제든 소중하니까요. 특히 배우들은 더 그렇지 않겠습니까.”

우철민 PD의 혼잣말 같은 말에 준혁이 형님이 대꾸한 것처럼, 꼭 배우가 아니라도 신인들은 한 번이라도 더 노출되길 원한다.

그것이 지면이든 웹이든, 드라마든 예능이든.

그 한 번의 기회에 평생이 갈리기도 하는데, 조금이라도 찬스가 있다면 잡지 않을 수 없다.

나쁘게 말하자면 우리는 그 간절함을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형태로 이용해 먹는 것일 수도 있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쁜 마음만 먹지 않고 방송을 만든다면, 서로 윈윈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번 방송만은 어쩐지 더더욱 솔직하고 진솔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진심은 통하는 법. 그 케케묵은 말을 믿고 밀어붙인다면, 부정적 여론도 어떻게든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다짐으로.

간절함을 담아 우리는 이력서를 검토하고, 폴더에 분류했다.

1차 정리가 끝난 뒤에, 각자가 각자의 기준대로 맘에 드는 이력서를 분류했다.

그러고 나서는 담당 폴더를 바꿔서 크로스 체크를 하며, 또 수십 명의 이력서를 분류해 냈다.

그 작업 동안 대화를 나누기는 했지만 분위기를 풀기 위한 농담은 전혀 하지 않았다.

작업이 어느 정도 일단락된 이후, 우리는 모니터를 노려보느라 뻑뻑한 눈도 쉬어 줄 겸 잠시간의 브레이크타임을 가졌다.

카메라와 캠들의 배터리를 체크하고, 마이크 감도도 다시 확인하면서 우철민 PD가 한마디 꺼냈다.

“너무 대화가 없어서, 이거 방송으로 쓸 수 있는 게 있을지 모르겠네요.”

“하하하, 뭐 오늘 촬영이 굳이 재미있을 필요까진 없죠.”

오늘 촬영은 어디까지나 시청자들에게 이렇게 투명한 과정을 거쳐 선발했다는 신뢰성을 주기 위한 촬영이다.

이 촬영을 하는 편이 낫다고, AGD 앱이 알려 주었다.

[89%]

지금도 기획안 위에 띄워 놓은 확률 보기가 차근차근 오르고 있었다.

워낙 여론이 안 좋은 와중에 ‘신뢰성을 되찾기 위한 확률’이 이 정도까지 오른 것은, 정말이지 땀과 눈물 섞인 노력의 성과였다. 울진 않았지만.

“자, 그럼 이제…… 본격적인 심사를 해 보도록 할까요.”

다시 촬영 대형으로 앉은 뒤, 나의 신호와 함께 회의실에 불이 내려갔다.

나도 거기에 맞춰, AGD 앱의 확률 보기를 취소했다. 89% 확률이면 그래도 어느 정도 먹힌다는 확신이 들었으니까.

이제부턴 무엇보다 중요한 출연진 선정이었다.

스크린에 이력서들이 떴다. 각자가 각자의 기준으로 뽑은 이력서들이 수놓아지면서,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난상토론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의견을 밝히는 데 주저함 없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저 극단에서 문제아라고 불린다던데요.”

“나이가 너무 많은 것 같은데, 결격사유까진 아니겠죠?”

“데뷔 5년차 아니에요, 저 배우?”

“뭐야, 얘는. 열여덟 살? 아니 그래도 미성년자에게 이 배역을 줄 순 없을 것 같은데.”

그런 식으로 이력서들이 걸러져 나갔다.

모두가 스크린을 보고 있을 때, 나는 스크린 속 내용과 함께 그 위의 허공을 보고 있었다.

[74%]

[85%]

[45%]

[61%]

이력서가 흘러갈 때마다 확률이 속속들이 바뀐다.

‘방송에 영향을 미칠 트러블이 있을’ 확률이었다.

<더 라이벌>은 시청률이나 화제성도 중요하지만, 마지막까지 아무 문제 없이 완성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출연진 중에 누구 하나 트러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면 캐스팅할 수 없다는 게 내 입장이었다.

[45%]

[72%]

트러블 가능성이 ‘0%’인 이력서는 있을 수 없었다. 하여 내 나름의 기준으로 70% 이상일 경우에는 무조건 잘라내고자 했다.

“잠시만요. 방금 전 사람, 통과시키지 않았으면 하는데요.”

“네? 혹시 문제 있습니까?”

“안 좋은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서요. 걸러내고 싶습니다.”

[95%]

이름이 뭐야, 안주환? 대체 과거에 무슨 짓을 했길래 95% 확률로 트러블을 저지를 확률을 갖고 있지?

“음, 메인 PD님이 그러시다면야.”

다행히 이 제작진에게 내 말발이 먹혔다.

외부 스튜디오지만 내 의견을 메인 PD로서 존중해 주었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력서를 뽑아냈다.

최종적으로 나타낸 골라낸 사람은 40여 명.

“……10명의 출연진을 결정해야 하는데, 너무 적은 거 아닐까요.”

메인 작가인 조정아 작가가 그렇게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난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아직 모집이 끝난 건 아니에요. 일단 오늘 뽑은 사람들에게 미팅 약속을 잡고, 모집 끝날 때까지 몇 번 더 이런 작업을 하기로 하죠.”

“예, 알겠습니다.”

모두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메일함을 살피고 있던 막내 작가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 강 PD님. 그사이 이력서가 더 들어왔는데요, 그중에 강 PD님이…… 류 배우님도 아시는 이름이 있어서요.”

“그래요? 띄워 보세요.”

막내 작가가 노트북을 만져 이력서를 스크린에 비추었다.

사진과 이름을 보자마자 나와 준혁이 형님이 절로 눈을 마주쳤다.

“쟤가 왜……?”

『백종현』

<당잠사> 시즌5에 합류하여 좋은 평을 얻었던 배우 백종현이었다.

촬영 말미에는 어느 정도 친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가 이력서를 넣은 것이다.

“형님은 뭐 들으신 거 있습니까?”

“아니. 연락한 지도 좀 됐고, 기사 나간 이후로도 인사 메시지 이외에는 딱히 없었는데.”

간간이 영화나 드라마 관련 안부 메시지를 나누는 정도라고 했다.

“딱히 결격사유는 없어 보이니까 통과시킬까요?”

우철민 PD가 말했다. 나는 준혁이 형님과 다시 눈빛으로 이야기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화제성을 잡아 줄 출연진이 하나 정도는 필요하니까 일단 2차 심사에 올리죠. 어차피 면접은 보고 결정될 테니까.”

그렇게 이날의 미팅이자 촬영은 종료되었다.

“종현이한테는 내가 한번 연락해 볼게.”

마이크가 전부 꺼진 뒤에 준혁이 형님이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다른 희망자들과 똑같이 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민감한 시기니까.”

“하긴, 조심해야지. 그래, 그럼 면접장에서만 보는 걸로 하자.”

그렇게 합의는 했지만, 나도 사실 궁금하긴 했다.

우리 방송에 이력서를 보낼 거였다면, 그전에 나나 준혁이 형님에게 한번 연락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럼 조금이라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유혹을 이겨 낸 건지, 어떤 마음인 건지 물어보고 싶긴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공정성은 유지해야 했기에, 제작진에게 면접 일정을 잡으라는 지시만 넘겼다.

“그럼 다음 미팅 촬영까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오늘 감사했습니다.”

별다른 트러블 없이 <더 라이벌>의 첫 촬영은 그렇게 전부 마무리되었다.

다음 날에는 곧장 확정된 2차 진출자들에게 안내가 나갔다는 연락을 받았고, 면접 일정에 관한 의논도 오갔다.

느려도 차근차근, 매끄러운 흐름을 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민준기기자: 심상찮은 보도자료를 하나 받았습니다』

민준기 기자에게서 그런 메시지를 받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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