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118화 (118/200)

118화 진행 OK

나는 확률을 볼 수 있다.

물론 금완승 감독의 각본에서 문제점을 찾아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눈에 뻔히 보이는 구멍이면 모를까. 각본을 쓴 장본인조차 모르는 약점까지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가뜩이나 확률은 내가 그 분야에 대해서 모를수록 떨어지니까.

[89%]

그렇지만, 확률을 쓸 방법 자체가 없는 건 아니었다.

지금 각본 위에 뜬 확률이 그랬다.

이 확률은 완성도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이 각본을 금완승 감독이 맘에 들어할 수치에 대한 확률이었다.

그것을 토대로, 나는 금완승 감독의 의견을 꼬치꼬치 물어 가며 각본을 읽었다.

“이 부분 전후로 설명이 잘 안 보일 것 같은데…….”

“아, 거긴 과거 부분이 끼어들어 갈 거야.”

“여기 두 줄짜리 액션신으로 이 컷이 다 가능합니까?”

“무술 감독이 일을 잘하거든. 대신 곳곳에 복선으로 배치될 게 여기 이렇게…….”

작가들 붙잡고 스크립트 뜯을 때 자주 하는 작업인데, 금완승 감독 같은 대감독을 붙잡고 할 줄은 몰랐다.

어차피 100%를 노리고 하는 작업이 아니다 보니 중간중간 금완승 감독의 머리 위로 확률을 확인하면서 회의를 이어나가길 근 두어 시간.

각본 군데군데 펜으로 기입된 요소들을 한차례 훑어서 확인한 금완승 감독의 눈빛이 매우 형형하게 변해 있었다.

“이거 참…… 이렇게 도움을 받게 되다니.”

[96%]

96%만큼 그는 이 각본을 맘에 들어 하고 있었다.

나머지 4%의 부족 확률이 있다는 건 아직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

참 징글징글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부족분을 채우기 위한 작업을 재개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더구나, 금완승 감독은 처음 봤을 때의 표정과는 명백히 달라져 있었다.

“이 각본으로 그럼, 최종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그럼. 오래 끌어서 미안해. 내 변덕에 어울려 줘서 또 고맙고.”

그가 손을 내밀어 왔다. 악수의 의미. 나는 기쁘게 그 손을 잡았다.

“방송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할 테니 말만 해.”

“감사합니다.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드디어 영화사 섭외가 일단락되는 순간이었다.

당장 기획안에 영화사 우이독경의 이름을 올리고 확률을 보고 싶었는데, 내 손을 세차게 흔든 금완승 감독이 벌떡 일어섰다.

“이럴 게 아니지. 조금 이르긴 하지만 저녁이라도 먹고 가시게. 반주도 좀 하고. 내가 살 테니.”

아주 잠깐 표정이 굳었다. 신동욱 실장의 전화가 생각나서였다. 거절할까 잠시 망설이는데,

“수육 기가 막히게 하는 데가 있거든. 순대국이랑 수육으로 가볍게 소주 한 잔, 어떻소? 정식으로 자리를 가지는 건 나중에 류 배우도 불러서 하기로 하고.”

성공한 감독의 입에서 나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서민적인 메뉴 선택이었다.

난 괜한 걱정과 의심을 한 듯해 미안함을 느끼면서 같이 일어났다.

“그러시죠. 수육 좋아합니다.”

“이거 입맛이 맞구만.”

그는 껄껄 웃으면서 앞장섰다.

금완승 감독이 말한 가게는, 회사 건물에서 길을 건너자 바로 있었다.

상당한 단골인 듯 사장이 그를 알아보고 안쪽으로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곧장 메뉴가 준비되고, 소주 한두 잔을 나누면서 우리는 조금 더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 만남은 잔뜩 꼬였고,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봉합하게 되었다.

우여곡절이라면 우여곡절인데, 그걸 겪어서인지 어쩐지 첫 술자리임에도 편했다.

준혁이 형님이 세련된 도시 형님 같은 스타일이라면, 금완승 감독은 동네 어수룩한 형 같은 친근감이 있었다.

대화가 편하게 이어지다 보니 그에게 그간 제작한 영화의 뒷이야기 같은 것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영화 좋아하나? 신기하군. 그게 좀 피칠갑이고 잔인해서 취향이 많이 갈리더라고.”

“그래도 500만이 넘지 않았습니까?”

“다 배우의 힘이지. 연기를 워낙 잘하지 않나.”

그런 식으로 내가 본 영화의 뒷이야기를 듣고, 나도 그가 궁금해하는 예능 제작의 뒷이야기를 해 주면서 한층 더 가까워지는 시간이 되었다.

원래는 소주 한 병이 약속이었지만, 먹다 보니 역시 그렇게 되진 않아서.

어느새 빈 소주병이 세 병이 되었다.

네 병째 소주를 따르는 데, 금완승 감독이 약간은 취기가 도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강 PD.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되나?”

“예, 말씀하시죠.”

“내가 보기엔 강 PD는 방송사에 있기엔 아까운 인재야.”

잔을 채우다가 눈을 마주쳤다.

“무슨 말씀이신지…….”

“좀 전에 내 대본을 같이 확인해 줬잖아. 나도 우리 작가들 붙잡고 그런 일들을 많이 하고, 다른 감독들이나 작가들 대본 봐주거나 하거든. 내가 좀 아는데, 당신 감각, 아무리 생각해도 예능 감독 나부랭이 수준이 아니우.”

그는 내 잔에도 소주를 따랐다. 그것을 감사히 받으면서 조용히 말을 기다렸다.

“내가 예능 쪽을 잘 모르긴 해도, 카메라웍이나 앵글도 전부 강 PD가 지시하고 정하는 거지?”

“네…… 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잘못 본 건 아니라는 말이지. 내가 그동안 강 PD 방송들에서 봐온 그 연출들. 가끔 예능에서는 못 보던 연출을 사용하던데.”

방송사 안에서도 듣지 못한 평가에 나는 눈만 껌뻑였다. 내 방송들이…… 단적으로 따지면 <언더커버 싱어>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뭐, 그래. 섣부른 내 판단일 수도 있지만, 좀 전의 모습도 있고 해서 하는 말이야. 예능 말고 여러모로 소질이 있을 것 같은데, 방송사 안에 있으면 결국 예능만 하게 될 테니까.”

나는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침을 삼키고 대답했다.

“저는 예능이 좋습니다.”

“누가 뭐라나. 방송 하나 만든다고 이렇게 노력하는 거 보니 그 마음은 나도 잘 알겠어. 단순히 회사 지시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거. 그래서 그 진심을 의심하는 게 아니네. 다만.”

소주를 꿀꺽 마신 다음, 그가 여상스러운 어조로 이어 말했다.

“방송사 밖으로 나가면 더 잘할 것 같다, 이 말이지.”

그와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첫 만남 자리에서 내 방송 잘 봤다고, 대뜸 자기 회사에서 일할 생각 없냐고 물어봤었지.

설마…….

“아, 같이 일하자거나 하는 이야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 안 그래도 그 말 했다고 류 배우한테 혼났는데 말이야.”

아, 그렇습니까. 괜한 오해를 또 할 뻔했다.

낄낄 웃던 그가 문득 주머니를 뒤지는 시늉을 해 보였다.

“전화가 왔는데? 이야, 호랑이도 아니고, 자기 이야기 할 줄 어떻게 알고 전화가 왔대?”

그가 보여준 스마트폰 화면에는 ‘배우 류준혁’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는 내가 지켜보는 중에 전화를 받았다.

“어어, 류 배우. 크랭크업 막바지라고 바쁘다더니 전화를 다 주셨구만? 나? 저녁 먹고 있지. 응. 그래. 응? 미팅? 아아, 강 PD랑 말인가?”

셋이서 다시 미팅을 갖자는 그 약속을 잡기 위한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나는 입 모양으로 나에게 바꿔 주면 내가 설명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금완승 감독은 알아들었다는 듯 엄지랑 검지를 둥글게 구부려 붙여서 OK 사인을 보내더니,

“그렇지 않아도 말이야, 그 일 때문에 그런데…… 혹시 오늘 술 한잔 하지 않겠나? 응? 회사 앞이지. 그래, 그 수육 집. 한 시간? 괜찮아, 기다리지 뭐. 그래, 알았어. 기다릴게.”

영 엉뚱한 말을 꺼내 준혁이 형님과 협의를 한 그가 전화를 경쾌하게 끊었다.

“오게 하셨습니까?”

“류 배우를 놀려먹을 기회가 그렇게 많이 없잖아. 심각한 일인 줄 알고 달려올 테니까, 같이 놀려 주자고. 어때?”

장난기 넘치는 표정이었다. 나는 준혁이 형님이 들어올 문을 잠깐 일별하고서, 그의 빈 소주잔을 채운 뒤 내 잔을 들었다.

“좋죠.”

“뜻이 맞구만.”

우린 낄낄대면서 잔을 부딪쳤다.

그리고 잠시 후.

한 시간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나고 가게로 들어온 준혁이 형님은 금완승 감독과 내가 마주 앉아 있는 모습에 놀랐고,

“OK 하셨다고요?”

“다 강 PD 덕이야. 그러니 축하주 하자고 부른 거야.”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둘을 번갈아 보는 그 모습에,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서 준혁이 형님에게 일련의 과정을 간단하게 말해 주고, 형님이 놀라고, 금완승 감독이 껄껄 웃고.

그날의 미팅은 결국 심야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강 PD…… 우리 한붠 잘해봅쉬다…….”

한껏 발음이 꼬인 금완승 감독이 한없이 내 손을 악수하고 질척였다. 나는 그가 흔드는 대로 같이 흔들리면서 웃었다.

“으허하하하. 잘 부탁드림다…….”

그런 우리를 옆에서 뜨뜻미지근한 눈으로 보는 준혁이 형님.

나중에 합류한 그만이 꼿꼿하게 멀쩡한 모습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택시에 먼저 오른 금완승 감독이 떠나기 전 창문을 내리고 고개를 내밀었다.

“아까 내가 술기운에 말햇쥐만…… 강 PD 소질에 대해서는 진심이니까…… 잘 생가캐 봐…….”

더 뭐라고 이야기한 것 같지만 나도 제정신은 아니라서 그렇게 택시를 보냈다.

“방금 그건 무슨 이야기…… 아니다, 다음에 이야기하자.”

뭐라고 이야기하려다가 내 얼굴을 보고 피식 웃더니, 준혁이 형님은 금방 도착한 콜택시에 나를 밀어 넣었다.

“내일 회사에 보고하고 나서 연락 줘. 나도 스케줄 정리해서 알려 줄게.”

“옙. 살펴 가십셔…….”

사실상 내 필름은 거기서 끊겼다.

* * *

아침에 겨우 몸을 일으켜서 집에 제대로 들어왔다는 것에 안도한 뒤, 지각하기 전에 뛰어서 회사로 갔다.

보고하러 정민우 팀장석 앞에 서자, 그가 나를 올려다보고 노골적으로 눈을 찌푸렸다.

“뭐야, 앞으로 술통으로 살기로 했어? 대체 언제까지 마신 거야.”

“어…… 아뇨, 12시 전에 헤어졌습니다.”

“근데 몰골이 왜 그래.”

“일찍부터 마셨던 탓에…….”

내가 면목 없이 턱을 긁자, 그는 피식 웃고선 카드를 내밀었다.

“밥 안 먹었지? 가서 해장이나 하고 와라.”

“괜찮습니다.”

“괜찮긴. 너 지금 사무실에 뒀다가는 딴 애들 다 음주로 잡혀 가겠다. 시끄럽고 아침밥 챙겨 먹고 와. 사우나도 좀 다녀오든가.”

나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그 카드를 받아 들었다.

그러고 나서 짤막하게 어제의 결론을 그에게 보고했다. 술에 진탕 취하기 전에 이미 어느 정도 메시지로 이야기해 놨기 때문에 보고는 빨랐다.

“그래…… 그럼 영화사까지 오케이 났구나.”

“예. 혹시 어제 말씀해 주신 광고는…….”

“그래. 두어 개 정도는 확정 날 것 같은데 아직도 좀 부족하긴 해. 그 부분은 내가 힘써 볼 테니까, 이제 다음 단계로 가야지?”

“예.”

“기획안 확정 내 오고…… 그래, 국장님이 자리 한번 만들라고 하시더라.”

“자리요?”

“플래티넘이랑 우이독경이랑 전부. 한자리에 모여서 협상하자고 말이야.”

이번 배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가장 큰 주축이 될 집단은 세 곳이다.

NBS의 예능국.

플래티넘의 신사업기획부.

우이독경의 제작기획부.

플래티넘에서도 이번 방송을 계기 삼아 배우 매니지먼트를 발족할 예정인데, 그 과정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신사업기획부’였다.

내가 현재 주로 소통하는 쪽은 바로 이 ‘신사업기획부’의 팀장이었다.

하지만 서인하 국장이 이야기하는 자리는, 그런 실무적인 자리가 아닐 것이다.

세 군데의 회사가 협력하여 만드는 방송의 이면으로는, 여러 가지 금전적 관계들이 얽혀 있다.

나도 사이사이 듣긴 했지만 플래티넘의 배우 파트에 대한 투자, NBS의 프로그램에 대한 투자, 우이독경의 영화에 대한 투자 등등.

내가 단순한 예능 PD로서는 짐작하지 못할 숱한 금전적 연결이 그 뒤에는 자리하고 있었다.

그 연결의 주체들이 이제 결정되었으니, 결정권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의논할 만한 자리가 필요하다는 게 서인하 국장의 뜻이었다.

나는 괜한 긴장에 침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기획 컨펌 받은 후 곧장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말고. 어차피 한 번은 거쳐야 할 과정이니까, 잘 준비해 와.”

그의 응원을 받고 물러났다.

그가 시키는 대로 아침 해장을 든든히 하고, 기획안을 정리하여 정민우 팀장의 데스크에 올렸다.

<뮤직스케치> 팀 업무를 보고 돌아온 정민우 팀장이 눈빛으로 통과 사인을 준 뒤 그것을 가지고 국장실로 들어갔다.

10여 분 뒤에, 국장실에서 서인하 국장이 나와서 곧장 복도를 지나 사라졌다.

그 일련의 과정을 눈으로 좇고 있었더니, 어느새 내 뒤로 온 정민우 팀장이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잘될 거니까 걱정 마.”

“음, 네.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또 30분 후.

준혁이 형님과 확인 통화를 나눈 뒤 자리에 돌아오자, 내 자리에 내가 올렸던 기획안이 올라 있었다.

정민우 팀장을 급히 찾았지만, 사무실에 있는 팀원도 별로 없었다.

기획안 파일 위에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진행 OK.』

책상 밑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기뻐했다.

몇 달 동안 준비한 보람이 이제야 조금 느껴졌다.

준혁이 형님에게 메시지로 이 기쁜 소식을 알린 뒤, 민희나 박주영 선배에게도 알렸다.

[이민희: 드디어 함께 개고생하겠네! (팡파레)]

[이민희: 너무 무리하지 말고^^]

[박주영선배: 다시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후배놈아 ㄲㄲㄲㄲ]

[박주영선배: 야 근데 너 강술통이라메? 몸에 피랑 물 대신 알콜로 가득 찼다고. 나 버리고 누구랑 먹었냐ㅑㅑㅑㅑㅑㅑㅑㅑ]

극명하게 대변되는 응원 메시지를 받고서 웃음이 안 터질 수가 없다.

그리고, 내 기획 통과를 축하하는 또 다른 알림이 있었다.

[‘배우 오디션 프로그램 기획 통과’의 확률의 100%를 달성하였습니다.]

[업데이트 이후 첫 100% 달성을 축하드립니다.]

[축하 특전으로 포인트를 2배 지급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사용자님의 성공가도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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