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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성공할 확률 100%-114화 (114/200)

114화 호출

그 기사를 먼저 보지는 못했다.

최근 기사 쪽으로는 민준기 기자가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있었지만, 항상 먼저 알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타이밍에 준혁이 형님이랑 통화를 하던 중이기도 해서, 통화를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했을 때 마주친 박주영 선배가 알려주었다.

“야, 대한아. 현준영 기사 봤냐?”

“예? 무슨 기사요?”

“소식이 늦네. 인터넷 들어가 봐. 실검도 그렇고, 난리야.”

무슨 소리인가 하고 포털에 들어가 보았다.

과연, 실시간 검색어 순위도 그렇고, 인기 뉴스 순위에서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기사가 있었다.

『‘스프K’ 투표 조작 스캔들, 혐의 인정』

경찰에 넘어간 증거는, 그것만으로도 꽤 완벽한 증거였다곤 하지만, 그래서 주범이 누구인지 어디까지 관여했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경찰이 주력하고 있는 것은 제작진 중 누구까지 관여해 있는가, 투표 조작 이외의 범법 행위는 없없는가에 대해서였는데, 거기에 대한 상세한 수사 발표가 있었던 모양이다.

기사를 들어가 훑어보았다.

결론을 정리하자면, 증거에 대한 기능은 확실하고, 당시 <스프K> 제작진 전체에 대해 수사를 확대한다는 것이었다.

현준영의 혐의는 확실했지만, 아직 본인이 인정하지 않고 있기에, 앞으로 구속 수사로 전환하여 진행된다고 마지막에 적혀 있었다.

『……경찰은 이 사건이 사기극의 형태를 띠고 있음을 명확히 하고, 당시 제작진과 결정권자들 중 어느 선까지 닿아 있는지 향후 수사의 총력을 가할 계획이다.』

“구속되는군요, 현준영 PD.”

“그래, 되레 지금껏 잘 버틴 거지. 그렇게나 증거가 명확한데도 어떻게든 주범에서는 빠져나가고 있는 거니까.”

기사에서도 현준영이 주범이라는 이야기는 없었다. 정황은 분명하나 법리적 판단은 또 다른 문제라는 정민우 팀장의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그래도 뭐, 이렇게 된 이상 죄를 없애기에는 힘들어 보이니까. 권선징악이라고 봐야겠지.”

“뭐, 그렇겠네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일했던 동료라는 인식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안타깝다거나 불쌍하다거나. 그런 건 현준영에겐 사치였다.

현준영을 괴물로 만든 건, 어쩌면 그 혼자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괴물로서 살기를 택한 건 현준영 본인일 것이기에.

“그동안 회사 내에서도 알게 모르게 신경 쓰고 있었잖냐. 이젠 나도 좀 속 편히 지내도 될 것 같아.”

“그러게요. 선배, 수고하셨습니다.”

“나야 뭐. 네놈이 고생이지. 오디션 만들려면.”

박주영 선배도 내가 어떤 프로그램을 준비 중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현재 방송사 내에서 그리 긍정적인 평을 받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그런데도 솔직하게 응원해 주는 게 참 고마웠다.

“힘들 때 술 필요하면 불러라.”

“좋은 일로 부르겠습니다.”

“그럼 더 좋고.”

그렇게 인사하고 헤어졌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해서 방송사 내 여론이 좋지 못한 것 역시 현준영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 사건이 결착이 나려고 하니, 좀 괜찮아지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내심 기대하면서 퇴근했다.

하지만 일은 내가 생각한 정반대로 흘러갔다.

주말 동안 민희를 만나 데이트를 하고, <당잠사> 새 시즌에 대한 아이디어를 듣고 이야기해 주고, 나름 충실한 주말을 보냈다.

일요일 저녁을 먹고 민희와 헤어질 즈음에, 그녀가 카페에서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어, 대한아. 이거 봐.”

그녀가 내민 폰 화면을 보다가,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오디션 프로그램, 이대로 괜찮은가』

칼럼 기사였는데, 올라온 날짜가 딱 오늘이었다.

일요일에도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면서 기사를 들여다봤는데, 내게는 좋지 못한 내용이었다.

『‘스타 프로듀스 K’의 히트 이후 숱한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그 제작 배경에는 역시나 화제성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 이건 다 아는 말이고. ……‘공정성’이라는 말이, 과연 방송으로 제작되는 오디션에서 화제성과 양립할 수 있는 개념인가에 대해서는 필자도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단적인 예로 ‘스프K’의 투표 조작 사건이 이미 확정된 바, 공정성은 진즉에 깨졌다고 할 수 있으며…….』

그쯤까지 읽었을 때였다.

내 눈치를 보고 민희가 도로 스마트폰을 가져갔다.

“됐어. 시작한 거 그냥 다 읽을래.”

결국 민희는 다시 스마트폰을 나한테 넘겨주었다.

칼럼이기에 어디까지나 기자의 주관적 의견일 수 있으나, 다루는 내용은 뜨끔한 것들이 많았다.

『이미 많은 시청자들이 ‘오디션 프로그램’ 자체에 싫증을 느끼고 있다』

『본질은 경연인 만큼 그 경쟁 내에서 공정성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그 신뢰성이 바닥부터 무너진 지금…….』

『현재도 방송사에서는 화제성을 목적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지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기존의 방식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등등.

꼭 이번 일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칼럼으로 올릴 준비라도 한 듯, 기사는 끝까지 매우 일관된 논지를 펼치고 있었다.

“만들지 말라는 거네.”

민희의 담백한 결론에 끝내 내 표정은 침몰했다. 한참 미간을 찡그리고 있자, 그녀가 손을 뻗어 내 미간을 꾹꾹 눌렀다.

“얼굴 펴시죠. 아직 30대 초반인데 벌써 주름이 박히겠다.”

그 말에는 나도 뜨끔해서 얼른 얼굴 근육을 풀었다.

“이 시기에 굳이 만드는 게 맞는 걸까…….”

얼굴 근육을 느슨하게 하는 순간 마음도 느슨해졌는지, 그런 속마음이 스륵 입 밖으로 굴러 나왔다.

나가는 순간 아차 했지만, 주워 담기에는 이미 늦었다.

민희의 눈치를 보고 있는데,

“걱정 마.”

민희가 그렇게 말했다.

“이 기사는 이렇다 해도 네 프로그램 기대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더 많으니까. NBS의 라이징스타, 요물 PD 강대한 아냐. 네가 만드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제대로 안 굴러갈 리가 없어.”

아주 단단하게 응원해 주는 사람이 옆에 있으니 든든했다.

그래, 남들이 그렇게 판단하더라도 내가 제대로 만든다면 누가 뭐라고 하랴.

비록 여러 문제로 초반부터 쉽게 굴러가지는 않지만, 내가 이 프로그램에 가지는 애정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약해질 뻔한 마음을 다잡게 해 준 민희에게 말했다.

“고마워, 응원해 줘서.”

“음, 나도 뭐 <당잠사>로 도움 많이 받았는데, 뭐. 그리고 내가 응원 안 하면 누가 해?”

자기 가슴을 탕탕 치면서 웃어 보이는 민희에게, 나도 감사의 마음을 담아 웃어 주었다.

그렇게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지고, 월요일부터 다시 제작을 위해 움직였다.

일단 여러 영화사의 제안 메일을 확인하여 고른 뒤, 정민우 팀장과 준혁이 형님과 상의하여 몇 군데 더 미팅을 했다.

준혁이 형님도 가능한 한 함께 미팅에 참여했고, 필요할 때는 정민우 팀장도 같이 움직였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여론이 더 안 좋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한번 잘해 보자. 위기가 오히려 기회라잖아.”

같이 차를 타고 가면서 정민우 팀장이 그렇게 말해 주어서, 나는 새삼 다시 각오를 다졌다.

그렇지만.

역시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몇 번의 미팅을 진행하면서, 여론 자체가 더 나빠졌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아시잖습니까, 요새 무슨 이야기가 도는지. 오디션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그게 참…….”

“하지만 저희에게 제안 메일 주셨잖습니까.”

“그럼요, 그땐 저희가 소식을 듣고 보낸 거긴 한데…… 그새 또 여론이 더 바뀌어서 말입니다…….”

미팅을 가지긴 했어도 소극적인 태도로 변한 영화사가 더 많았다.

네 군데의 영화사를 돌고, 정민우 팀장이 먼저 회사로 돌아간 다음에 준혁이 형님과 카페에 마주 보고 앉았다.

“하아…….”

“후우…….”

앉자마자 동시에 터져 나오는 한숨에, 눈을 마주치고 허탈하게 웃었다.

“쉽지 않네요.”

“그러게 말이야.”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경찰 발표가 터져 가지고…….”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부정적인 분위기는 투표 조작 스캔들 이후로 계속 있어 왔다.

<언더커버 싱어>는 그것을 매우 잘 넘겼다고 할 수 있지만, 배우 오디션 프로그램은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기도 하고, 영화사의 협력도 받아야 하니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늘 그래도 이야기가 좀 된 곳은 한 곳뿐이네요. ‘스마일박스’.”

이곳도 준혁이 형님이 추천한 곳이다.

준혁이 형님의 영화 데뷔작을 함께한 곳이고, 영화업계 쪽에서 잔뼈도 굵고 오래된 곳이었다.

그만큼 최근의 여론에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논란이 된다면 그것 또한 제 것으로 만드는 게 마케팅 아니겠습니까’라는 말이 참 와 닿더라고요.”

“거기가 예전에 역사 왜곡 문제로 한차례 말 많이 들은 적 있거든. 예고편 띄우자마자 그런 논란이 붙었었는데, 오히려 좋다 하고 노이즈마케팅으로 활용했었지.”

“그랬는데 영화 개봉하니 완전 이야기가 바뀌었었죠. 그 영화, 저도 봤습니다.”

대학교 때 봤던 영화의 제작사랑 이렇게라도 연이 맺게 되는 걸 보니 참 신기한 인생이었다.

“영화사 몇 군데 돌아보니까…… 정말 회사마다 분위기가 다 다르더라고요. 딱딱한 데도 있고, IT기업처럼 엄청 자유로워 보이는 데도 있고.”

“방송사도 그렇잖아. 아닌가?”

“전 NBS밖에 안 다녀봐서…….”

아, 그렇지? 하면서 웃는 준혁이 형님의 말에 나도 따라 웃었다.

말하고 보니 확실히, 내가 참 경험이 없구나, 우물 안 개구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 업계 짬도 낮고, 다른 방송사 환경은 알지도 못하고.

예능 관련 외주 제작사들 사정이야 어느 정도 들어 알지만, 영화사 쪽은 또 전혀 모르고.

새로운 시야를 얻는다는 점에서는 참 좋은 기회가 되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이제 슬슬 결정을 내리긴 해야 할 것 같아.”

“예, 맞습니다.”

내 경험과는 무관하게, 방송 제작은 서둘러야 했다.

난 몰라도 준혁이 형님의 스케줄은 한없이 비워 둘 수 없었다.

지금도 관련 영화, CF 등의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제작 진행을 같이하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이 확정되지 않으면 그의 스케줄도 계속 비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회사에서 사실 슬슬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아무래도 그렇겠죠. 지금 플래티넘을 계속 기다리게 하고 있으니까요.”

주문한 커피가 나오는 것을 계기로 우린 분위기를 바꾸었다.

“세 군데 정도로 축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람처럼, 스마일박스, 그리고…… 우이독경.”

우이독경은 사실 불안하지만, 준혁이 형님에게는 아직도 계속 연락이 온다고 하니까 일단 넣었다.

“이 세 군데 중에서 고르자면…… 저는 스마일박스를 하겠습니다.”

“음, 거기가 안정적이긴 하지. 그래도 불안한 건…….”

“네. 대본이 현재 없다는 거죠.”

스마일박스의 가장 큰 난점은, 우리 방송 콘셉트에 맞는 대본이 없는 상태라는 것이었다.

미팅 나온 팀장은 대본 중에 쓸 만한 것을 골라보겠다고 했는데, 우이독경이나 바람처럼에 비해 약점인 것은 확실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바람처럼이 좋아 보이긴 합니다. 여기가 가장 의욕이 많기도 하고, 대본도 괜찮고요. 아, 읽어 보셨어요?”

나는 바람처럼에서 받아 온 대본을 저번에 준혁이 형님에게 건넸던 게 생각나서 물었다.

“봤어. 괜찮더라. 다만…….”

“다만?”

“시놉시스에 나온 것과 달리, 라이벌 캐릭터의 비중이 크지 않아. 영화 내내 등장하긴 하는데, 후반부 되기 전까지는 거의 얼굴만 비추는 정도야.”

주인공인 형사 캐릭터의 원맨쇼에 가깝다는 말이었다.

“그럼 저희 방송 콘셉트에 가장 맞는 대본은 역시…….”

“우이독경 거겠지.”

돌고 돌아 우이독경인가.

불안하다, 역시.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자 해도.

나는 폰을 열어서 세 가지 영화사의 이름을 차례대로 기획안에 써 넣었다.

바람처럼은 전과 동일하게 88%. 스마일박스는 72%.

우이독경은…….

[86%]

어라, 왜 이렇게 높아.

바람처럼만큼 의욕 있고, 대본도 어느 정도 있는 것도 아닌데, 금완승 감독의 변죽이 있는데도 이거 왜 이리 높지?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폰이 지잉 울리면서 알림이 떴다.

[정민우팀장: 아직 카페지?]

정민우 팀장이었다. 나는 양해를 구하고 메시지를 쳤다.

[네 아직 준혁 형님이랑 이야기중입니다.]

[영화사 최종결정 하자고 하고 있습니다.]

[우이독경 바람처럼 스마일박스 중에 어디가 젤 괜찮을까요?]

답신은 금방 돌아오지 않았다. 한참 이야기가 없어서, 나는 일단 폰을 내려놓고 다시 준혁이 형님을 보았다.

“혹시 금 감독님 의향에 좀 변화가 있습니까?”

“변화? 으음…… 전보다 좀 더 적극적이긴 해. 이 기획이 딴 데에 갈 것 같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더 하고 싶다고 하고.”

“그럼 한 번 더 만나 보는 게 어떨까요.”

“괜찮겠어?”

“가장 처음 본 분이기도 하고, 대본을 무시할 순 없으니까요. 한 번 더 만나 뵙고, 최종 결정도 그때 내려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AGD 앱이 이렇게 높은 수치를 보여주는 것에는 뭔가 이유가 있겠지. 금완승 감독의 마음에 변화가 있든,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든.

준혁이 형님은 잔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약속 잡을게.”

“예. 시간 알려 주시면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이야기가 정리되고, 정민우 팀장에게 그것을 보고하려 폰을 들었을 때였다.

내 행동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폰이 진동하면서 메시지를 표시했다.

[정민우팀장: 너 빨리 들어와야겠다]

[정민우팀장: 왕 이사님이 찾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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