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113화 (113/200)

113화 또 다른 영화사

“아니, 류 배우. 우리가 하루 이틀 본 사이 아니잖아. 응? 이러기 있어, 정말?”

류준혁은 금완승 감독의 전화를 받으며 새삼스레 당황하고 있었다.

갑자기 연락이 와서 느닷없이 불만을 토로하길래 무슨 이야기인가 했더니. 류준혁은 이제야 좀 감을 잡을 것 같았다.

“금 감독님. 아시잖습니까. 이거 지금 저 혼자 하는 프로그램 아닙니다. 방송국 입장도 있고, 강 PD 입장도 있잖아요.”

“아니, 그거야 나도 알지. 제작사 입장이야 다 다른 거고. 그래도 여기저기 그렇게 이야기하고 다니면, 응? 내가 섭하잖아. 안 그래?”

영화사 쪽 인맥만 치자면 강대한보다야 류준혁 자신의 인맥이 훨씬 더 넓다.

금완승 감독이 부정적인 결론을 낸 이후, 아는 인맥, 모르는 인맥 할 것 없이 프로그램 진행 의사를 타진해 보았던 류준혁이다. 영화 업계도 그리 넓진 않아서, 돌고 돌아 금완승의 귀에도 들어간 모양이었다.

금완승 감독은 그게 불만인 것이고. 다만, 류준혁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감독님께서 섭섭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감독님께서 먼저 부정적인 대답을 주셨잖습니까. 영화와는 별개로 이 프로그램은 진행해야 하니 저도 별수 없었습니다.”

“아니 누가 부정적인 대답을 줬다고 그래. 응? 거 좀, 응, 뭐랄까, 나도 하고 싶다니까?”

“하고 싶으시단 말이야 하셨죠. 하지만, 전에 강대한 PD 동석한 자리에선 꼭 해야 하냐고 하셨잖습니까.”

“그건 또 그때 좀 사정이 있어서…….”

“어떤 사정이신데요?”

“음, 그건…… 그러니까…….”

금완승의 변죽 많은 성격이야 영화판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렇지만 한번 정해진 일에 대해서는 타협 없이 밀고 나가는 면도 알기에, 그 면을 기대하고 일을 추진했던 류준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전화상으로도 똑같은 이야기의 반복이라면.

“감독님. 영화사 수배는 하고 있지만 사실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는 않고 있어요. 그러니까 정말 마음이 정해지시면 그때 연락 주세요. 혹시나 타사와 조인이 되면 제가 따로 자리를 갖고 양해를 드리겠습니다.”

“이봐, 류 배우! 류 배…….”

당황해하면서 소리치는 금완승의 통화를 무참히 끊어놓고, 류준혁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번엔 유독 변죽이 심하시네…….”

실력은 믿을 수 있는데 성격이 이러니, 류준혁은 강대한에게 소개시켜 준 것이 오히려 미안할 지경이었다.

류준혁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한 번 더 푹 내쉬고는 가게로 돌아갔다.

“미안해. 이야기가 길어졌네.”

“아니에요. 무슨 일인가요?”

“별 이야기 아냐. 우리가 다른 영화사 알아보는 것을 들었나 봐. 섭섭하다고 하시는데, 어쩔 수 있나. 정말 맘 정해지면 연락 달라고 하셨어.”

류준혁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강대한도 같은 얼굴이 되었다. 그것을 보고 류준혁이 금세 표정을 바꾸었다.

“뭐, 그래도 한번 정해지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분이니까. 실력도 출중한 분이시고. 연락을 기다려 보자.”

“예…… 뭐, 저도 그분이면 가장 베스트라고 생각합니다.”

그쪽에서는 의견이 맞아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형님, ‘바람처럼’이라는 영화사 아십니까?”

“‘바람처럼’? 들어본 것 같은데. 왜?”

강대한이 자신의 폰을 보여주었다. ‘바람처럼’ 영화사에서 보낸 메시지에 미팅 요청이 있었다.

류준혁은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고, 윤대명 매니저에게 연락한 후에야 아아, 하고 소리를 냈다.

“맞아. 몇 달 전 대본이 들어와서 한번 미팅했던 곳이야. 생긴 지 얼마 안 되어서 영화도 한두 개 정도밖에 안 돼. 그래도 꽤 투자도 많이 받고, 성장하는 곳이라고 들은 것 같아.”

“이 신동욱 실장이라는 분은요?”

“그 사람은 나도 본 적이 없네. 만나 보게?”

“네. 지금은 딱히 가릴 처지가 아닌 것 같습니다.”

류준혁도 배우 오디션 프로그램 기획에 있어서 딱히 뒤로 물러나 있을 생각이 없었다.

한 바퀴 돌아 금완승의 귀에까지 들어갔으니, 이제 딱히 숨길 이유도, 필요도 없다.

“그래…… 시간 되면 나랑 같이 가자.”

하지만 막상 미팅에 나가게 된 것은 강대한 혼자였다. ‘바람처럼’과의 약속시간이 류준혁의 스케줄하고 겹쳤던 것이다.

* * *

“안녕하세요. 제가 연락드린 신동욱입니다.”

“강대한입니다.”

영화사 ‘바람처럼’의 사무실은 충무로 한가운데에 있었다.

“충무로 하면 한국 영화의 총본산 같은 곳 아니겠습니까. 저희 사장님께서 첫 사무실을 반드시 충무로여야 한다고 해서 여기서 일하고 있습니다.”

건물 자체는 낡았지만, 3층 건물 전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우이독경’과는 스케일이 참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막상 허름해 보이는 외부와는 달리 내부는 깔끔했다. 리모델링한 지 얼마 안 된 듯 보였다.

나는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면서 신동욱 실장을 따라 안쪽 회의실에 들어섰다.

“마실 것 어떤 게 좋으십니까?”

“그냥 물 한잔이면 충분합니다.”

그렇게 대답했는데, 온 것은 냉수와 에너지드링크, 탄산음료였다.

“혹시 필요하실까 봐 있는 것 다 가져와 봤습니다. 마음껏 드십시오.”

신동욱 실장이 사람 좋게 웃어서 괜히 민망해졌다. 내 입장에서야 부담스러웠지만, 적극적으로 임하려는 의지가 느껴졌다.

“<언더커버 싱어>를 워낙 재밌게 봐서 강대한 PD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주로 시즌제 예능을 하시는 만큼 접점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새 프로그램 관련으로 영화사를 수배 중이라서 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예, 여러 영화사를 만나 보면서 의사를 조율하는 중입니다.”

“저도 아는 영화사에서 얼핏 들었습니다만, 어떤 프로그램인지 혹시 정확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요청하면서 신동욱 실장은 이렇게 들었다는 식으로 자신이 들은 정보를 말해 주었다.

나도 거기에 맞춰서 배우 오디션 프로그램 기획을 설명해 주었다. 물론 자세한 내용은 제외하고, 외부에 공개되어도 문제가 없을 정도만 전달했다.

“세부 안건은 내부 조율 중이라서 일단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은 이 정도입니다.”

“류준혁 배우님의 상대역을 맡을 새로운 얼굴의 배우를 오디션으로 발굴한다……. 간단히 정리하면 그런 식이겠군요.”

“예. 그렇게 정리할 수 있죠.”

설명을 모두 들은 신동욱 실장은 정말이지 활짝 웃어 보였다.

“그럼 저희 영화사가 딱이겠군요.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참으로 잘되었습니다.”

그는 문자 그대로 활짝 핀 웃음을 유지한 채, 옆자리에 둔 두툼한 대본 하나를 건넸다.

“다 읽으실 시간은 없으실 테니, 앞부분의 시놉시스와 캐릭터만 간단히 확인해 주십시오.”

나는 조심스레 대본을 받아 첫 장을 넘겼다.

인생 파탄 직전의 형사와, 그의 과거를 알고 있는 연쇄 살인마 간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었는데, ‘우이독경’의 대본과는 다르지만, 투톱 주인공을 기본으로 한 시놉시스였다.

“이 작품의 형사를 류준혁 배우님이 맡고, 연쇄 살인마 역을 프로그램에서 뽑으면 어떨까요?”

다른 데 쓰려던 대본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내 생각엔 준혁이 형님하고 배역이 어울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결정하기에는 선을 넘는 일이었다.

“확실히 그렇네요……. 한데 일단 대본 선택은 류준혁 배우님이 하기로 되어 있어서, 의사는 타진해 보겠습니다.”

내가 대본을 다시 내밀자 그는 손을 저으며 가져가라는 듯 손짓했다.

“저는 관계자가 아닌데 이렇게 대본을 받아도 될까요?”

“에이, 곧 관계자가 되실 거잖습니까? 유출 안 되게끔만 신경 써 주십시오.”

본인들이 파트너가 될 거라고 자신하는 듯한 너스레였다.

일단 감사하다고 하며 대본을 가방에 챙기면서도 시원시원한 모습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그 후로도 미팅은 이어졌다.

현재 생각하고 있는 방향, 정민우 팀장에게 지시받은 제작 시의 투자 등의 유의점 등등.

그 모든 것을 매우 호쾌한 자세로 대답하는 신동욱 실장의 태도는 시종 자신감이 있었다.

결코 표정 한번 고치지 않고, 우리가 내세우는 협의점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다는 식이었다.

“요는, 기획이 진행될 시 제작 환경이나 영화 크랭크업 같은 것들이 중요하겠군요.”

“가장 챙겨 주셔야 할 부분이 그런 부분이긴 합니다.”

“걱정 없습니다. 현재 진행되는 작품도 있고, 이 기획을 위해서 이미 비워 둔 스케줄도 있고요. 아, 감독 리스트도 있는데 보여 드릴까요?”

도리어 내가 손을 내저어야 했다.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닌데, 너무 본인들의 정보를 까려고 하니 부담스러웠다.

“돌아가서 보고를 올리고,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예,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저희는 아직 신생이지만, 언제든 합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맡겨만 주시면 완벽하게 해낼 테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지막 헤어질 때까지 그렇게 자신감 있는 태도로 일관했다. 이게 중간까지는 시원하고 호쾌해 보였는데, 시종일관 자신감을 내세우니 요상하게도 기분이 이상했다.

“나오지 않으셔도 되는데…….”

“돌아가시는 모습을 봐야 제가 마음이 편합니다.”

그렇게 마중까지 나와서 내가 차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신동욱 실장의 태도에 도리어 미안할 지경이었다.

운전석에 엉덩이를 붙일 때까지 고갯짓으로 인사를 하는데, 그가 슬쩍 다가와 목소리를 낮추었다.

“다음에 뵈면 술 한 잔이라도 하시죠. 제가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뒤로 물러선 그가 여전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보며, 나는 운전석 문을 닫았다.

차창 너머로 눈이 마주치자 또 깍듯하게 인사를 해 보이는데, 결국 참을 수 없어 그의 머리 위로 확률을 띄웠다.

[89%]

그가 본심을 감추고 있을 확률이었다.

* * *

“‘바람처럼’이라……. 이런 영화들을 제작했다 이거지?”

회사로 복귀해, 신동욱 실장이 준 회사 소개서를 정민우 팀장에게 건넸다.

나의 보고를 들은 그가 컴퓨터로 ‘바람처럼’을 검색해 보고서 다시 나를 보았다.

“정말 이제 1년밖에 안 됐는데, 그새 만든 영화가 벌써 3개야?”

“예. 처음부터 적극적인 투자 유치를 해서, 영화 제작도 빠르게 진행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강점이라고 이야기하더군요.”

“류 배우는 뭐래?”

“영화사 자체는 잘 모른다고 하셔서, 일단 오늘 미팅 건 전하면서 물어보려 합니다.”

“그래. 일단 소개서는 내가 받아 둘게. 국장님 의견도 여쭤봐야지. 류 배우 이야기 들으면 알려줘.”

“예.”

이야기는 일단 끝났지만 나는 정민우 팀장 앞에서 떠나지 못했다.

“왜, 뭐 더 할 말 있어?”

“제 편견일 수도 있습니다만…….”

“왜 또. 강촉새가 발동하신 건가?”

그 별명마저 퍼졌는가.

“신동욱 실장과의 미팅 자체의 이미지는 괜찮았습니다만, 영 찜찜해서요.”

“뭐가?”

“다음에 좋은 데서 술 한잔 하자고 하는데, 으레 하는 인사치레는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단순한 인사말인지 접대인지.

AGD 확률까지 보고 났으니 그 말이 더욱 찝찝했다.

내 표정을 보고 정민우 팀장도 덩달아 인상을 구겼다.

“로비라도 할 것 같다고?”

“확신은 못하겠습니다만.”

“아니, 강 PD가 그렇게 말하면 그럴 확률이 높겠지.”

내 감이라는 것에 믿음이 두터운 정민우 팀장이다 보니, 역시나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조심스럽게 접근해 보자. 일단 여기가 가장 적극적인 거잖아?”

“그건 맞습니다.”

“나도 알아볼 수 있는 데까진 알아볼 테니까, 우선은…… 그래, 그쪽이랑은 조심해서 이야기해.”

그가 조심스레 덧붙였다.

“요즘 안 그래도 분위기 안 좋은 거 알지?”

“……예.”

그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다.

배우 오디션 프로그램 기획으로 출발하긴 했어도, 사실상 제작하기 좋은 요건은 아니었다.

사회 분위기 자체가 오디션 프로그램을 좋게 보지 않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시발점은 당연히 현준영의 투표 조작 건이다.

몇 년이 지난 다음에 밝혀지기도 했고, 아직도 수사가 진행 중이라서 유죄가 결판난 것도 아니지만, 사회적으로는 이미 확정적인 일로 퍼져 있다.

현준영이 어느 선까지 관여했고, 누가 피해를 입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될 만큼.

그렇다 보니 사실상 회사 내부도 그렇고, 외부도 그렇고, 우리 프로그램의 제작 진행을 좋게 보지 않고 있다.

파트너가 될 영화사가 제대로 구해지지 않는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이 와중에 ‘바람처럼’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와 주니, 찜찜하면서도 고마운 부분이 있었다.

“계속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래, 변동 사항 생기면 알려주고.”

퇴근 시간 즈음 되어서 스케줄이 끝난 준혁이 형님에게 전화해서 ‘바람처럼’과의 미팅을 전했다.

“나도 이리저리 알아보니까, 확실히 일처리는 빠른 데라고 하더라고. 영화사 자체의 자본도 많다고 하고, 신생이지만 탄탄하다는 평이 많아.”

“일단 그럼 긍정적으로 진행해 봐도 되겠네요.”

“그래, 일단 우선순위로 두자.”

다음 스케줄 때문에 그렇게 통화가 끊어지고, 나는 기획안을 고쳐서 ‘바람처럼’ 영화사의 이름을 올렸다.

[88%]

‘배우 오디션 프로그램 기획이 성사될 확률’이 단숨에 상승했다.

“……이게 좋은 거야, 나쁜 거야.”

그럴수록 찜찜함은 더욱 커졌다. 신동욱 실장에게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이 나에게 도움이 될 확률도 크다는 말일까.

궁금증을 풀 길이 없으니 답답했는데, 그것을 고민할 틈이 없었다.

다음 날.

주말을 앞둔 금요일 퇴근 전에, 폭탄이 터졌다.

『‘스프K’ 투표 조작 스캔들, 혐의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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