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AGD 업데이트
내 미래가 어떻게 예정되어 있고 무슨 패턴이 변화했다는 것인지 나로선 알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세상의 확률을 계산할 수 있는지, 그것은 AGD 앱을 만난 이후로 내가 줄곧 가지고 있는 의문이니까.
그렇지만 이 앱은 그 결과들로 나에게 도움을 주다가, 돌연 메시지만 남겨 놓고 작동을 멈추었다.
그사이 있었던 많은 선택들은 AGD 앱의 도움이 없이 이뤄 낸 것들.
틀렸다고 생각진 않지만, 매번 제대로 된 선택인가 나는 항상 가슴을 졸여야 했다.
그 긴장감이 이제는 사라지는 것일까?
[분석 결과에 따라 업데이트를 진행합니다.]
[이 과정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메시지는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분석 이후 필요할 수도 있다는 업데이트 단계였다.
먼지처럼 사라지는 메시지를 보면서 아주 잠깐 황망해졌다. 내 염원에 반응하여 등장한 메시지인 줄 알았는데, 다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일까.
그사이,
“최소한 플래티넘이라도 오케이한다면…….”
그런 정민우 팀장의 말에 준혁이 형님은 오히려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표님은 이미 오케이하셨습니다.”
“예?”
그 말에 나도 정신을 차렸다. 나한테도 아직 확인 중이라는 이야기만 해 줬었다.
나를 보고 다시 슬쩍 미소 지은 그가 정민우 팀장을 보았다.
“사실 설득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도 영화고, 배우 풀을 늘려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을 하시는 중이라서요. 그래서 오늘 아침에 진행해 보자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때 때마침 문을 두드리고 준혁이 형님의 매니저가 들어왔다.
이름은 윤대명. 위치로는 송일현 팀장의 밑이지만, 이십 대 초반부터 배우 전문으로 매니저 일을 해 왔다고 이전에 들었다.
그가 준혁이 형님 귀에 뭐라고 속삭이자, 형님은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섰다.
“사장님께서 한번 뵙자고 하시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같은 자리에서 이야길 나누면 협의가 좀 더 빨라질 것 같은데요.”
그래서 우리는 다 같이 사장실로 올라가게 되었다.
플래티넘 대표를 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마침 와 계시다고 해서, 그냥 같이 이야기하자 싶어서 모셨습니다.”
<드림 어게인> 이후 처음이었다. 그땐 서인하 국장…… 당시엔 부장이셨던 그와 함께 왔었는데, 오늘은 정민우 팀장과 함께였다.
소파에 둘러앉자 사장이 솔선해서 이야기했다.
“이야기는 대충 들으셨다 하니…… 류 배우한테 제안을 받은 다음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만, 일단 저희 플래티넘에서는 최대한 투자를 해 보려고 합니다.”
“투자요.”
“예. 방송 제작에 대해서 저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제작하려면 여러 의미로 투자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대표의 눈이 나를 향했다. 그 시선이 어쩐지 묘했다.
“<드림 어게인>이나 <당잠사>도…… 플래티넘은 NBS와 큰 연이 있고, 또 그동안 도움도 주고받은 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도 손발을 잘 맞출 수 있다면 서로 윈윈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안 그렇습니까?”
이전에 만났을 때는 사실 <드림 어게인>으로 엑시트의 컴백을 미뤄 달라는 부탁을 하러 왔었던지라, 그도 백프로 좋은 태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사이 사세가 확장되고, 또 여러모로 좋은 결과들이 돌아오니 태도와 말에 훨씬 여유가 감도는 것처럼 보였다.
소파에 느긋하게 기대앉은 모습에서 전과는 다른 느낌이 느껴졌다.
준혁이 형님의 말대로 방송을 진행할 가능성이, 확률이 높아 보이는 태도였다.
[업데이트가 진행 중입니다.]
메시지가 갑자기 자신을 잊지 말라는 듯이 눈앞에 떴다. 뜻밖의 알림이라 내가 움찔 놀라자, 사장의 눈이 다시 나를 향했다.
“강 PD께서 뭔가 할 말이라도……?”
“아, 아닙니다. 그저, 좋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하기도 하고, 의외이기도 하고 해서요.”
아무렇게나 둘러댄 말에 그가 허허 하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강 PD가 없었으면 우리 엑시트가 이만큼 잘됐겠습니까. 제가 염치가 없진 않아요.”
<드림 어게인>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다시 생각해도 자신이 내린 결정 중에 가장 잘한 결정이었다고 사장은 스스로 치하했다.
그가 자처해서 그렇게 웃음을 유발하자, 분위기는 훨씬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정민우 팀장의 표정은 아니었다.
“NBS를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사실 이 건은 예능국 팀장 자리라고 해도 쉬이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면이 좀 있습니다.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그 투자가 어떤 유형의 것인지를, 좀 더 정확히 여쭤봐도 될까요?”
그는 비즈니스적인 입장에서 이 기획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야 준혁이 형님에 대한 연도 있고, 또 내 기획에 대한 욕심도 있어서 밀어붙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현실적인 시선으로 평가받는 것 같아서, 안도했다.
아마 나 혼자 왔다면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판단하진 못했을 테니까.
사장이 흐음 하고 턱을 쓰다듬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정확한 수치를 말하기는 힘들 거고…… 제작비에 대한 투자, 그리고 프로그램으로 발굴된 배우들과 계약을 체결할 시, NBS 제작 프로그램과의 우선 협상권……. 생각나는 건 일단 이 정도인데, 어떠십니까?”
정민우 팀장의 눈이 조금 커졌다. 의외의 제안인 모양이었다. 나는 숨을 죽여 둘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NBS의 우선권이요.”
“예. 어떤 드라마든 예능이든, NBS에서 원하신다면 우선권을 드리겠다는 의미입니다.”
“디테일한 협의가 필요할 것 같군요.”
“얼마든지요. 회사 대 회사의 일이란 것이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정민우 팀장과 사장, 둘은 매우 비즈니스적인 입장에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몇 번 더 대화가 오간 뒤, 정민우 팀장은 여전히 굳어 있지만 좀 전과는 달라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 부분까지 포함해서, 상부에 보고를 올려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렇지, 류 배우?”
“그렇습니다.”
은은한 미소를 지으면 대답하는 준혁이 형님의 반응을 보니, 이미 충분히 이야기된 사항들인 모양이었다.
나는 이 일들을 빠짐없이 기록하기 위해서 세차게 머릿속으로 외우면서 사장실에서 나왔다.
“어떻게, 일이 잘 진행될 것 같으신가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준혁이 형님의 물음에 정민우 팀장은 잠깐 생각하는 얼굴이 되었다.
“일단 좀 전의 이야기를 정리해서 국장님 보고를 올린 다음에, 그러고 나면 아마 이사진 보고까지 올라갈 겁니다. 거기서 컨펌이 떨어질 텐데, 그 기간 동안 혹시 영화 제작사의 동의를 구할 수 있을까요? 구두여도 괜찮습니다.”
“예. 그건 제가 타진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잘 아는 영화 제작사라고 했으니 그 부분은 준혁이 형님에게 맡기기로 했다.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기에, 좀 더 성사시킬 확률이 높은 본인이 나서서 해결하려 하는 것이다.
[업데이트가 진행 중입니다.]
……왜 계속 뜨는 거지?
또 한 번 알림이 눈앞에 떠서 나는 눈을 깜박였다.
“그럼 보고 결과 나오는 대로 강 PD 통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기다리겠습니다.”
준혁이 형님과 윤대명 매니저의 배웅을 받으면서 우리는 차에 올라탔다.
지하 주차장을 벗어나 도로를 빠져나오면서 정민우 팀장이 말했다.
“아까 플래티넘 대표가 한 이야기는 일단 넌 잊고 있어. 내가 국장님한테 직접 보고할 테니까.”
“예. 정리해 뒀는데 보내 드릴까요?”
내 스마트폰을 가리키면서 그렇게 묻자, 나를 힐끔 쳐다본 정민우 팀장이 피식 웃었다.
“어느새 그걸 또 기록해 뒀어? 톡으로 보내놔. 그리고, 류 배우가 영화 제작사 만나거나 하면 거기 따라갈 준비해 둬.”
그 말은 나도 의외였다.
“방송 제작이 확정된 것도 아닌데 제가 같이 찾아가도 될까요?”
“이 프로그램, 만들고 싶지?”
“물론입니다.”
“그래, 그럼 직접 움직여야지. 류 배우랑 같이 시작한 기획이라도 하더라도,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면 메인 PD는 너야. 성공하든 말아먹든 모든 장면에 네가 있어야지. 안 된다고 해도 억지로라도 따라가.”
묵직한 말이었다. 모든 장면에는 메인 PD인 내가 있어야 한다.
입봉작인 <언더커버 싱어>와는 다르게, 이 배우 오디션 프로그램은 준혁이 형님이랑 함께 시작했다.
PD지만 내가 어디까지 나서야 맞는 것인지 사실 갈피가 잡히지 않기도 했는데, 그 부분을 정민우 팀장은 정확하게 보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관여하는 것이 방송 제작 확률이 떨어지는 일일 수도 있지만…….
“명심하겠습니다.”
대답하는 순간,
[업데이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새로운 버전의 AGD 앱이 사용자님의 스마트폰에 설치되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앱에서 확인해 주세요]
AGD 앱의 기나긴 업데이트가 완료되었다.
* * *
정민우 팀장은 나를 집 건물 앞에 내려 주었다.
“잘 들어가고, 혹시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내일까지 초안 다듬어서 준비하고 있어.”
“예.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떠나는 그의 차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얼른 집으로 향했다.
원룸에 도착해 짐을 내려두고 AGD 앱부터 확인했다.
아이콘은 전혀 변한 게 없었다. 아이콘을 터치하자, 몇 번이나 봐 익숙한 로고가 뜬 뒤 첫 화면이 나타났다.
[AGD 앱이 사용자님의 미래 예정 패턴에 따라 업데이트되었습니다!]
[자세한 사항을 확인하려면 화면을 터치하세요.]
안내되는 대로 팝업창을 클릭하자, AGD 앱을 처음 만났을 때도 확인하였던 소개란으로 연결되었다.
[Analysis in Galaxy Data 앱 소개]
[안녕하세요! AGD를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AGD 개발팀은 전 차원의 빅데이터를 공유하며, 아카식 레코드 접속 모듈을 기반으로 최적의 확률을 찾아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하루하루 새로워지는 AGD와 함께 100% 성공하는 삶을 쟁취하세요!]
오랜만에 보는 앱 소개문에 이어서, 아래쪽으로 새로운 문장들이 추가되어 있었다.
[사용자 ‘강대한’ 님의 그동안 사용 패턴을 분석, AGD 앱이 새로운 모습으로 업데이트되었습니다.
해당 업데이트로 변화된 부분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확률 보기 가능 범위의 확대. 이제 ‘인물’에 대한 확률 보기가 가능해집니다.
원하시는 인물을 직접 바라보는 경우, 확률 보기 사용이 가능해집니다.]
눈이 크게 떠졌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실물을 만들어 내야만, 그 사항에 해당하는 확률을 확인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는 눈앞에 사람만 있어도, 그 사람에 대한 확률 보기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개꿀인데?”
하지만 업데이트가 전부 좋은 쪽으로 작용하진 않았다.
[두 번째, 아이템 사용 제한.
‘Lv.2’ 이상의 아이템이 앱상에서 모두 삭제되었습니다. 이제 기본 아이템 사용만이 가능합니다.
이 업데이트는 그동안의 사용자님의 아이템 사용 패턴을 분석한 결과입니다.]
‘Lv.2’가 붙은 아이템들의 사용이 불가능해졌다. 혹시나 싶어서 ‘상점’으로 들어가 확인했더니, 정말로 기본으로 해금된 아이템들만 남아 있었다.
“이건 좀 뼈아프네…….”
짚이는 점은 있었다. <당잠사> 시즌5를 진행하면서, 아이템이 필요해 보이는 시점에도 어떻게든 아이템 없이 진행해 나갔다.
예전이었다면 아이템을 썼겠지만, <당잠사>가 내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결과적으로 그 경험이 도움은 되었지만, 이러한 형태로 내게 돌아온 것이었다.
실망하려 하는데, 그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안내 문구에는 이러한 글귀가 덧붙여져 있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동안의 분석으로, 사용자님께 많은 아이템이 필요하지 않다는 결과가 도출되었습니다.
AGD는 사용자님이 바라는 성공의 형태를 서포트하기 위한 앱입니다.
새로 주어진 ‘인물 확률 보기’ 기능과 더불어, 100% 성공하는 삶을 쟁취하세요!]
몇 가지 더 상세한 내용들을 확인한 뒤, 나는 AGD 앱을 닫았다.
AGD 앱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바라는 ‘성공’에 대한 개념이 달라졌다는 의미인가?”
예능 PD로서 무작정 이름을 알리고, 시청률을 높이고, 화제성을 독식하고.
언젠가부터 그것만이 내가 가야 할 길이 아님을 깨닫고 있었다.
연속되는 고시청률. 높은 화제성.
그에 비해 이름을 알린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 내 것이 아닌 공로를 가져간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그 모든 것이 나에게 영향을 주고, 내 삶에 영향을 주어, 내 미래 패턴을 바꿨다는 것이다.
AGD 앱은 그것을 감지해 내가 정말로 필요한 순간에 업데이트를 마치고 다시 돌아왔다.
마치 운명처럼, 정확히 필요한 시점에.
“……좋아. 주어졌다면 이용해야지.”
새로운 기획에 들어가기 직전. 나는 다시 든든한 조력자를 되돌려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