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104화 (104/200)

104화 사건사고 없이

[이민희작가: 오늘 작가실에서도 달리는도시인 이야기 나오더라]

[ㅇㅇ뭐라고?]

[이민희작가: 박 피디님 불쌍하다던데.. 억지로 떠밀려서 하는 거 아니냐고]

불쌍할 거 있나. 사정 설명 안 듣고 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도 정민우 팀장이나 서인하 국장은 잘 밀어 주려고 하고 있고.

다만, 시작하고 보니 생각보다 견제가 많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아직도 주영선배 동기들이 구시렁거리는 거 들리긴 하더라. 다 그거 때문에 나오는 소리겠지]

[이민희작가: 하긴 그게 다 질투지 질투. 그 연차에 아직 입봉 못한 피디들 많잖아]

박주영 선배의 기수는 아직 입봉 못한 PD가 많은 축인데, 그것에 대해서 아직 여기저기서 이야기가 있기도 하다.

기수가 전체적으로 실력이 달린다 어쩐다 하는.

그런 시점에 박주영 선배가 주말 레귤러 예능을 맡았으니,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올 만도 한 것이다.

하지만 박주영 선배는 어디까지나 떳떳한 경우다. 팀장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이고, 본인도 사정 다 알고 받아들였으니까.

그저 이런 이야기들을 본인이 모르지도 않을 테니 멘털 관리만 잘되길 바랄 뿐이었다.

[이민희작가: 박 피디님 잘 보좌해드려. 이제 보답할 때지.]

[그렇지 않아도 그러고 있습니다]

[너는? 잘되어가?]

민희는 현재 권민헌 선배의 <당잠사> 시즌6를 함께 기획하고 있다. 메인 작가로서 요새 매일같이 회의를 하고 있다는데, 사실 박주영 선배도 선배지만 민희도 걱정이었다.

[권 선배가 좀 많이 따지면서 보고 있다던데 괜찮아?]

[이민희작가: 뭐 솔직한 말로 좀 더 과감해져도 될 것 같은데 그건 좀 성격 같은 거니까]

[이민희작가: 그래도 진척이 안 되는 건 아니니까 걱정 마셔]

[이민희작가: 그러는 너야말로 왜 새 방송 기획중이라는 거 이야기 안 했어 죽을래? (주먹)]

크흠, 그 일에 있어서는 사실 딱히 할 말이 없다. 민희에게 이야기 안 한 것은 사실이니까.

[미안해 기획 정리된 게 아니니까 그랬지]

[어차피 당분간은 밀릴 거니까 다음기회에 이야기합시다]

지난번 파스타집에서 만난 이후로, 민희와 막상 대화를 하면 어색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기우였다.

민희는 예전처럼 편하게 날 대해 주고 있었고, 나도 부담 없이 이야기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날 내가 그녀에게 한 말. 특히 파스타집을 나오며 했던 말은 아직도 깊게 생각하고 있다.

잠시 더 잡담이 오간 다음에 민희가 작가실 회의를 들어간다고 해서 대화는 마무리됐다.

나도 박주영 선배와 팀 회의를 들어가기로 해서 자료를 챙겨 들고 일어났다.

회의실 앞에서 마주친 것은 권민헌 팀장이었다. 박주영 선배와 같이 가다가 동시에 그를 발견했고, 서둘러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셨어요, 권 팀장님. 국장실 가십니까?”

“어어, 오랜만. 요새 힘들다지?”

나도 나지만, 권민헌 선배 입장에서는 예정해 둔 서브 PD마저 애매한 상황이 되었다.

박주영 선배 체제의 <달리는 도시인>이 어떻게 자리 잡냐에 따라서, <당잠사> 시즌6 제작진이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망설임도 있었기에, 박주영 선배는 최종 오케이를 내기 전에 권민헌 팀장에게 먼저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권민헌 팀장은 흔쾌히 박주영 선배의 등을 떠밀어 주었다고 했다. 보란 듯이 성공하라고 응원도 해 줬다고.

“둘 다 여유 좀 나면 밥이나 한 끼 하자. 편하게.”

“예.”

우리가 다시 인사하는 사이 권민헌 팀장은 국장실로 향해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박주영 선배의 시선에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괜찮을 겁니다.”

내가 툭 말하자, 그가 나를 흘겨보고서는 돌아섰다.

“안 괜찮으면 어쩌겠어. 우린 우리 일이나 하러 가자.”

“옙.”

하긴 우리도 아직 이제 걸음을 떼었을 뿐. 할 일이 태산 같았다.

티끌 모아 태산이고,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정민우 팀장의 제안으로 시작된 주말 예능 <달리는 도시인> 기획은 제법 순풍이었다.

애초에 패널과 MC는 기존 멤버 그대로 가기로 했고, 그들도 최우선적으로 합류하겠다며 스케줄을 방송사 일정에 맞추겠다고 했다.

그 상태에서 문규락 팀장이 제작진 구성도 도와줘서, 사실상 <언더커버 싱어>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제작을 개시할 수 있었다.

제작진 짜는 데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고, 스케줄 협의하고 촬영 시작하는 데까지도 3주밖에 걸리지 않았다.

마치 선봉장만 뽑길 기다린 것처럼 제작은 순풍을 맞이한 배처럼 죽죽 나아갔다.

첫 촬영을 마친 날, 촬영 정리를 모두 끝마친 뒤 제작진 전체가 회식을 가졌다.

그곳에서 메인 PD로서 신고식을 치른 박주영 선배는 출연진들에게 본격적인 환영을 받았다.

<당잠사> 스타일이 섞였는지 오늘 촬영에는 PD의 개입이 꽤 많았는데, 그럼에도 출연진은 기쁘게 받아 주었다.

특히 출연진 중 메인 MC급이라 할 수 있는 개그맨 신동근이 소주 한 잔을 따라 주면서 의미 깊은 말을 했다.

“난 이 프로그램을 참 사랑해. 매주 촬영을 해도 정말 촬영장 올 때마다 기대가 된다니까. 박 PD, 박 PD도 앞으로 그랬음 좋겠어. 오늘 참 수고했고, 앞으로 같이 잘해 보자고.”

박주영 선배에게도 뭐랄까, 제 편이라 할 수 있는 예능인이 생기는 장면을 목격한 것 같았다.

* * *

『NBS 예능의 주말 왕좌 ‘달리는 도시인’ 재출발의 신호탄! 시청률 3.4% 호조의 출발!』

『돌아온 ‘달리는 도시인’의 바뀐 점 3가지, 전격 분석!』

『‘달리는 도시인’의 새로운 사령탑 박주영 PD는 누구인가』

첫 방영을 나가고, 여러 기사가 쏟아졌다.

제작 시작 때부터 이미 여러 개의 기사가 나간 상태였고, 그만큼 부담도 있었지만 스타트는 잘 끊은 편이었다.

<달리는 도시인>의 전성기 시절 시청률은 평균 6%. 아직 거기까지 도달한 것은 아니지만, 3%대의 출발이니 아주 쓸 만했다.

나는 시청률을 체크한 자료를 받아서 단톡방에 올린 다음, 박주영 선배에게 따로 메시지를 보냈다.

[선배 고생하셨습니다. 시청률 추이 보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일률적이네요]

[다음 주 방영분에서 조금 더 임팩트를 줘도 될 것 같아요]

[박주영선배: ㅇㅇㅇㅋ 내일 이야기해보자]

다음 주 방송분 편집은 이미 진행 중이고, 그 담당은 나였다. 박주영 선배가 메인으로서 뛰어다니니 편집은 서브인 내가 하겠다고 자처를 했다.

그간 박주영 선배와 권민헌 선배를 따르면서 노하우를 쏙쏙 본받은 게 도움이 되었는지, 내 편집 실력도 전보다 많이 늘었다는 걸 편집하면서 깨달았다.

박주영 선배가 가편집본을 보며 수정점을 제시하는 일도 드물었다.

나는 당장 생각나는 몇 개의 편집점을 노트북에 기록해 뒀다가, 시계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아, 늦겠네.”

서둘러 재킷을 들고서 집을 빠져나왔다.

7시까지 홍대를 가야 하는데, 지하철을 내리니 6시 55분이었다. 할 수 없이 약속 상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죄송합니다. 5분 정도 늦을 것 같아요. 빨리 가겠습니다]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사이 답장이 날아왔다. 마찬가지로 늦는다는 이야기여서, 뛰던 걸음을 조금씩 늦추었다.

8월치고는 아주 덥진 않아도, 역시나 습기 찬 더위는 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일단 사람 많은 연남동 방향 출구를 빠져나와서 약속 장소인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레스토랑은 건물 2층에 있었다. 아직 7시라서 해가 덜 졌는데, 창을 통해 2층의 정경은 잘 보이지 않았다.

어떡할까 고민하다가 일단 2층으로 올라갔다.

“어서 오세요. 예약하셨나요?”

점원이 예의 바르게 맞아 주어서 일단 이름을 밝히자, 알겠다는 듯 아 하고 탄성을 내뱉고선 나를 유리창 쪽으로 안내해 주었다.

예약된 자리에 앉아서 물을 가져다주러 점원이 돌아간 사이 안을 둘러보았다.

몇 명의 손님들이 있긴 한데, 시야가 묘하게 어긋나는 좌석 배치라서 은근히 프라이버시가 잘 지켜지는 곳이었다.

약간 어두운 조명. 은은한 노래.

“……어, 음.”

갑자기 긴장이 되어 의미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오늘 여기에 나온 게 맞는 선택일까.

딸랑―

들려오는 문 열리는 종소리에 덜컥 정신을 차렸다.

“어머, 언니! 어서 와!”

나를 안내해 주었던 점원이 목소리를 높이며 하는 인사가 들려왔다. 고개를 내밀어 보았지만, 선반 하나가 방해되어 그쪽이 보이진 않았다.

“잘 있었어? 여기 선물!”

“뭘 이런 걸 다 사 왔어? 그냥 맨몸으로 와도 되는데.”

“개업했는데 꽃이라도 가져와야지. 아무튼 축하해.”

“고마워. 아, 일행분 와 계셔.”

“그래?”

점원, 아니 레스토랑 사장의 안내를 받아서, 선반을 돌아서 나타난 얼굴에 나는 벌떡 일어섰다.

“오랜만이에요, 대한 씨.”

“오랜만입니다. 김 팀장님.”

김유미 팀장이었다.

그녀가 생긋 웃는 모습에 나는 잠깐 할 말을 잃었다.

그동안 봐왔던 커리어우먼 같은 복장과 오늘은 완전히 달랐다. EDM페스에서 보았던 옷과도 달랐다.

몸의 굴곡이 확실히 보이는 미니 원피스에, 가벼워 보이는 린넨 재킷. 머리도 세팅되어 있어, 이 자리를 위해 준비해 왔다는 분위기가 확실했다.

내가 멍청히 보고 있자, 그녀의 미소가 한층 더 진해졌다.

“오늘 좀 꾸미고 나왔어요. 가게가 가게다 보니까. 괜찮아요?”

“어, 그, 물론입니다.”

“괜찮다니 다행이네요.”

김유미 팀장은 웃으면서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오늘의 자리는 그녀가 제안한 것이었다.

<달리는 도시인> 제작 발표 기사가 뜨고, 그러면서 내 이름을 봤다고 연락이 왔다.

자연스레 예전 스캔들 기사를 막는 데 도움을 받았던 이야기가 나오고, 그때의 빚은 언제 청산할 거냐는 이야기로 이어지고.

“내 후배가 가게를 하나 차렸어요. 가서 팔아줘야 하는데, 대한 씨가 한 턱 내면 어때요?”

그래서 오늘 약속이 잡힌 거였다.

“어휴, 많이 뛰어왔어요? 땀이 아직 한가득이네.”

자신과 대비되는 내 몰골에도 웃지 않고, 그녀는 후배를 불러 차가운 물수건을 주문했다. 그것을 내게 내밀며,

“내가 닦아 줄까요?”

싱긋 웃어 보여서, 나는 서둘러 빼앗듯 물수건을 받았다.

보는 앞에서 땀을 닦고 있는데도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메뉴를 주문을 했다.

“샐러드는 그냥 서비스로 줄게, 언니.”

“괜찮아. 오늘은 이분이 사는 거니까 제 값 받아. 그래도 되죠?”

“아, 물론입니다. 당연히 정가 드려야죠.”

내 반응에 후배라는 사장이 호호 하고 웃으면서 김유미 팀장에게 눈짓을 보냈다. 내가 누구냐고 묻는 투였다.

“아, 이분? 너도 알걸? 요새 유명하신 예능 PD님이신데.”

“응? 예능 PD? ……아! 설마! 강대한 PD님이셔?”

직후, 사장은 기억과 내 얼굴을 일치시키고서 어머 어머 소리를 쳤다.

“이렇게 유명하신 분을 제가 몰라 뵀네요! 죄송해요.”

“아닙니다.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PD인데요.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유명하지 않나요. 요새 제일 유명하신 PD님이시면서. <언더커버 싱어>는 저도 잘 봤어요. <당잠사>도 만드셨다고요?”

“<당잠사> 제가 아니라 권민헌 PD님이라고…….”

뻘뻘 땀을 다시 흘리면서 대답을 해 주는 사이에, 김유미 팀장이 고고한 미소를 사장에게 보냈다. 한참 뭐라고 이야기를 하던 사장은 뒤늦게 그 시선을 눈치채고는 다시 호호호 웃으며 몸을 돌렸다.

“에피타이저부터 내올게요. 말씀들 나누세요.”

“썩 가.”

김유미 팀장이 손으로 내쫓는 시늉까지 해 보였다. 그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정말 친한 사이신가 봐요.”

“제가 동생이 따로 없어서요. 대학 후배인데, 그때부터 정말 동생처럼 지내고 있어요. 건방진 동생이지만요.”

싱긋 웃으면서 물을 한 모금 하는 모습에 나도 괜히 따라서 물을 마셨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하고 필사적으로 머릿속으로 화제를 떠올리는데,

“그런데 말이에요.”

“예.”

“언제까지 김 팀장이라고 부를 거예요?”

“예?”

김유미 팀장이 턱에 손을 괴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이미 대한 씨라고 부르고 있는데, 계속 김 팀장이라고 불리니까 좀 거리감이 느껴져서요. 팀장이라고 하면 일적인 관계여야 할 것 같은데, 우리가 정작 같이 일을 한 건 <드림 어게인> 이후로 없지 않나요?”

그건 그렇다. 그건 그런데…….

“그…… 제가 호칭 바꾸는 것을 잘 못해서.”

“그런 건 맘 먹기 달린 거죠. 어때요, 오늘부터 바꿔 보는 거. 말 놓자는 건 아니고. 뭐, 유미 씨 정도?”

이분은 또 왜 이러시나.

나는 적당히 선을 그었다.

“너무 부담 주시진 말고,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

그녀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더니 ‘그래요.’ 하고 새초롬하게 말했다.

이제야 알겠다.

하지만 나는 굳이 그녀의 생각을 마음에 두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한 발 뒤로 뺐지만, 자리는 무겁지 않았다.

대화는 쉽게 이어졌고, 그 사이 메인 디시가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스테이크 맛있네요.”

“그쵸? 이 정도면 제 동생, 대박 나겠죠?”

“조만간 줄서서 먹겠네요.”

“그전에 데려와 준 거니까 감사하게 생각하세요.”

“……데려와 준 거면 계산도 하시죠.”

그런 식이었다.

그렇게 오늘은 사건사고 없이 지나가는 줄 알았는데.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와 함께 나올 커피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 강 PD님? 유미 언니?”

방금 막 선반 너머에 자리를 잡은 손님이 매우 익숙한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렸을 때 눈을 마주친 것은,

“아온 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