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사용 중지
『……‘당잠사’는 원점으로 회귀하여 예전의 재미를 다시 되찾았다. 성공적인 부활을 마친 ‘당잠사’의 다음 시즌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
[권민헌PD]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쉬고 싶은 게 우선이고, 회사에서도 빨리 제작 들어가라고 보채는 건 아니라서요. 쉬면서 다음 시즌의 아이템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음 시즌을 만나 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출연진과 제작진을 다음 시즌에서도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 점에 대해서 물었을 때, 권민헌 PD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권민헌PD] “그건…… 다음 시즌의 기대감을 위해서 남겨 두도록 하지요.”
독이 든 성배를 늦은 입봉작으로 선택한 예능 PD는 다음 시즌에 대한 궁금증을 남겼다.
이것이 자신 있는 도전일지 아닐지는 시즌6에서 밝혀질 예정이다.』
민준기 기자가 괜찮다고 보증을 하더니, 기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깔끔했다.
그러나 나는 중간부터 이미 간을 잔뜩 졸여야 했다. 권민헌 선배 덕분이었다.
[권민헌 PD] “사실 ‘당잠사’를 다시 만들자고 한 것은 제가 아닙니다. 다른 이가 있었어요……. 바로 강대한 PD입니다.”
강대한 PD는 첫 예능 프로그램인 ‘언더커버 싱어’를 성공시키면서 방송계에 이름을 각인한 젊은 PD이다. 현재 NBS에서 가장 유명한 PD라면 바로 이 강대한 PD를 꼽으리라.
그런 강대한 PD가 ‘당잠사’ 부활을 주도했다?
[권민헌 PD] “말 그대로입니다. 서인하 예능국장님께 ‘당잠사’ 새 시즌 제작 허가를 받은 건 강 PD였습니다. 아마 강 PD가 아니었다면 ‘당잠사’가 만들어지지도, 제가 입봉을 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아니, 왜 본인 잔치에서 제 이름을 팔아요, 선배.
그나저나 인터뷰의 대략적인 내용은 상부에 보고를 받게 되어 있는데, 저걸 서인하 국장이 허락했다고?
―엑시트의 외삼촌이ㅠㅠㅠㅠ 이곳에도ㅠㅠㅠㅠ
―당잠사 부활시킨 장본인 크으b
―아이돌만 심폐소생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 프로그램도 심폐소생함?ㅋㅋㅋㅋ
―과연 협회장답닿ㅎㅎㅎㅎ
―전국심폐소생협회는 뭐하나 저분을 빨리 명예회장으로 초빙해라
댓글들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권민헌 PD에 대한 호의적인 글도 많지만, 그 양만큼 나에 대한 글도 많았다.
간간이 악플도 달렸으나, 양쪽 호의적인 의견에 두들겨 맞고 비추만 박히고 있었다.
[선배, 왜 그러셨어요]
권민헌 선배에게 개인톡을 걸자, 기다렸다는 듯 답이 날아왔다.
[권민헌선배: 틀린 말 한 거 아니잖아^^]
[권민헌선배: 너 아니었으면 당잠사 못했을 거야. 그건 방PD님도 뒤에 따로 이야기하셨어. 내가 너를 닮아야 한다고]
[권민헌선배: 나도 그게 맞다고 생각했고, 나만 주목받는 건 절대 해선 안 될 짓 같더라고]
[저는 그냥...... 서브로서 시키는 일만 했을 뿐인데요]
[권민헌선배: 그러기엔 너무 많은 일을 해줬지.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말고 그냥 받아]
사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미안함이 맞았다. 내가 화제의 절반을 가져간다는 것.
그럼에도 권민헌 선배는 매우 쿨하게, 태연하게 나를 인정해 주었다.
“후우…… 좋은 사람 같으니…….”
불평처럼 내뱉어도 기분은 좋아졌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옆에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네요]
[권민헌선배: ㅎㅎ 쉬어]
그저 폰을 받들고 머리를 조아리는 수밖에 없었다.
기사를 읽고, 권 선배와 대화를 하느라 확인하지 못한 메시지가 있었다.
[박주영선배: 예능 프로 심폐소생 하시느라 수고 많으십니다]
[박주영선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깔끔하게 무시해 주고.
[정민우팀장: 우리 뮤직스케치도 심폐소생 해줄래? ㅋ]
[ㅋㅋㅋ큐ㅠㅠㅠㅠ이러지 마십쇼ㅠㅠㅠㅠ]
정민우 팀장에겐 울어 주고.
[엑시트최효명: 치사해 저희는 언제 심폐소생해 주냐고요]
[안 돼 못해 줘 돌아가]
효명이에게도 낄낄대면서 답을 해 주었다.
한창 그렇게 대답을 해 주고 나서 다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심장이 두근두근대고 있었다.
맨 처음 <당잠사>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던 때.
예전처럼 그때의 팀이 모여 한 가지 결과를 낸다면, 그것이 좋든 말든 정말 기분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때.
그때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어쩌면 바랐던 일들이 이렇게 이루어졌다.
방수정 PD도 다시 만나고, 권민헌 선배, 박주영 선배, 민희, 모두가 아직도 서로를 끈끈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 시청률이 대수냐.”
방송을 만드는데 시청률에서 자유로울 순 없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 사실이 나를 계속해서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때였다.
[사용자님의 앱 사용 패턴의 변화를 감지하였습니다.]
<당잠사>의 마무리 즈음부터 아무런 메시지도 출력하지 않던 AGD 앱이 연속으로 메시지를 띄웠다.
[사용자님의 미래 예정 패턴에 변화가 생깁니다.]
[AGD 앱은 사용자 ‘강대한’ 님의 성공을 이끌고 보조하는 앱입니다.]
[사용자님의 변화한 미래 예정 패턴을 분석합니다.]
[분석 결과에 따라 AGD 앱은 필요한 업데이트를 할 수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분석과 업데이트가 이루어지는 동안, 앱은 작동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AGD 앱은 사용 중지인 양 작동되지 않았다.
* * *
“뭘 그렇게 봐?”
고개를 들자, 뚱한 얼굴의 민희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작동이 멈춰 버린 AGD 앱의 아이콘을 한번 내려다보고 서둘러 폰을 거꾸로 놓았다.
“하루 종일 기사 때문에 메시지가 와서 말이야. 적당히 보고 답해 주느라.”
“아아. 그래. 바쁘시구나.”
그녀가 묘하게 삐친 얼굴이라, 물을 한 잔 마시고 말해 주었다.
“내가 원해서 바빠진 건 아니지. 알면서 그래.”
“……그래, 뭐. 그러시겠지.”
AGD 앱을 다시 기동시켜 보려고 몇 번이나 시도해 보던 때 민희가 다시 메시지를 보내 왔다.
<당잠사> 마무리하면서 제대로 이야기도 못했는데 저녁이나 같이 하자는 제안이었다.
하긴, 나대로 바빠서 프로그램 중에 한번 이야기를 하자고 결심해 놓고서도 시간을 허비했다.
그래서 알았다고 대답하고, 이렇게 역 앞 파스타 집으로 나왔다.
파스타를 시키고 와인을 곁들이기로 했다.
파스타를 먹어 보는 게 정말 몇 년 만인지 모르겠네.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입밖으로 냈는데 민희가 앙칼지게 물었다.
“그래? 딴 사람이랑 안 먹었어?”
“파스타를? 누구랑? 주영 선배? 그 선배가 잘도 먹으러 가겠다.”
피식 하고 웃자, 민희가 살짝 고개를 옆으로 꼬았다.
“그 사람은?”
“누구?”
“김유미 팀장 말이야.”
아, 얜 진짜…….
나는 무시로 일관하다가 문득 궁금한 게 떠올랐다.
“그때, 유수현 작가님한테 무슨 말 들었어?”
“유 작가님? 아…… 회식 때?”
<당잠사> 전체 스태프 회식 때, 2차에 방수정 PD와 나타난 유수현 작가와 민희는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나도 방수정 PD와 이야기하느라 신경을 못 쓴 것도 있어서 지금 물었다.
“별 이야기는 아니고…… <당잠사> 잘했다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그 이야기셨어. 너도 방 PD님이랑 이야기하는 것 같던데, 무슨 이야기였어?”
그날 권민헌 선배가 울러 나간 것이 너무 화제가 되어, 내가 방수정 PD와 따로 대화를 나눈 것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민희는 그것을 보고 있던 모양이다.
“……뭐, 나도 비슷해. 앞으로도 잘해 보라고.”
더 깊은 이야기였지만 그렇게 간단히만 정리했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한다면 술이 더 들어갈 것 같기도 하고.
“흐응.”
민희도 별달리 깊이 묻진 않는 듯해, 냉큼 화제를 바꾸었다.
“말 나온 김에 묻자. 너, 다음 시즌 할 거야?”
“<당잠사>? 당연히 하고 싶지. 내년 초에 일단 예정이니까 그사이에 <언더커버 싱어> 한번 하고.”
“<언더커버 싱어>?”
“왜, 안 할 거야? 시즌2는 기획만 올리면 바로 통과되는 것 아니었어?”
그건 맞다. 기획이 없는 것도 아니고, 머릿속에는 몇 가지 아이디어도 있었다.
다만.
“<언더커버 싱어> 시즌2 만들면서 <당잠사> 시즌6 기획을 같이 해야 할 텐데, 되겠어?”
“음…… 겹치긴 하겠지만, 어떻게든 해 봐야지. 둘 다 내 커리어인데 포기할 순 없잖아.”
프로페셔널한 자세였다. 유수현 작가에게 이미 열심히 해 보라는 말도 들었겠다, 시즌6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
“힘들 것 같으면 그냥 <언더커버 싱어> 시즌2를 미뤄도 되고. 둘 다 쉬운 프로그램도 아닌데 둘 다 메인 작가를 섰다간 몸이 더 힘들 거야.”
“어머. 걱정해 주는 거야?”
“나야 네 걱정은 늘 하고 있지.”
툭 하고 내뱉은 말에 민희의 표정이 뚝 굳었다.
“……내 걱정을 늘 하고 있다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말인데, 민희 입장에선 가볍게 들리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돌아온 대답이 묵직했다.
“강대한,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해?”
아마 앞으로도 민희와는 같이 일을 하게 될 가능성이 컸다.
이렇게 갖은 생각이 많고 어정쩡한 관계여서는 결코 도움 될 일이 없다고 봐야 했다.
나는 직감했다.
이제 정말로 끝의 끝까지 왔다는 것을.
그래서 어렵사리 용기를 냈다.
“민희야.”
“응……?”
티내려고 한 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분위기가 달라진 걸 민희도 느꼈는지 묘한 표정이 됐다.
“우리 따로 한번 술 한잔 하자.”
아마 내 생각에 이렇게 진지하게 민희더러 술을 마시자고 청한 건 지금이 처음인 것 같은데.
“왜, 오늘은 안 돼……?”
한참 뒤에 민희는 그렇게 대꾸했다.
나는 숨길 것도 없고 피할 것도 없어서 솔직하게 말했다.
“나 네 마음 모르지 않아. 물론 잘못 생각하는 걸 수도 있지만.”
민희는 내 말에 당황한 듯 보였지만, 굳이 부정하지는 않았다.
“근데 나도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어. 그래서 내 감정을 좀 더 확실하게 생각하고 싶어.”
그러니 오늘 일방적인 감정으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오늘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대신 오래 걸리진 않을게.
그렇게 내 말을 마쳤다.
사실이 그랬다. 미루고 미루던 중, 촬영이 시작된 후로도 약속을 따로 잡지 못한 건 내 감정이 불확실했기 때문이다.
나도 민희가 좋다. 하지만 아직 이 감정에 동료애가 섞여 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그런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나는 업무적으로도 민희에게 의존하는 바가 크니까.
솔직하게 털어놓으니 좀 후련했다.
그 이후, 민희는 조용히 자기 몫의 파스타만 먹었다.
그렇게 식사를 끝낸 뒤 가게를 나왔다.
무거운 공기가 답답하게 숨을 옥죄는 걸 느끼며, 나는 뭐라고 인사말을 꺼낼까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민희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 다음에 꼭 술 한잔해. 기다리고 있을게.”
기다리고 있는다…… 라.
그렇게 말하는 민희는 애써 웃는 표정을 지었다.
얘는 지금 용기를 내고 있는 거구나. 그런 감정이 느껴졌다.
전에도 늘 느꼈던 거지만, 오늘따라 그 웃는 모습이 더없이 예쁘게 보였다.
그러면서 또 하나를 느꼈다.
이제는 온전히 내 선택만이 남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