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97화 (97/200)

97화 의외의 얼굴

이게 무슨 소리야?

나는 몇 번이나 눈을 깜빡였다가 서둘러 휴게실로 가 전화를 걸었다.

“아, 저, 잠시만요.”

전화를 받은 김유미 팀장은 매우 바빠 보였다. 난 그제야 내가 양해도 구하지 않고 전화를 걸었음을 인지했다.

“죄송합니다. 다짜고짜 전화를 드렸네요.”

“에이, 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 예의를 차리고 그래요. 괜찮아요, 나도 좀 여유 있어서 메시지 보낸 거니까.”

그녀는 지금 굵직한 공연 기획 하나를 진행하고 있는데, 현재 그 음향 조율 중이라고 했다.

“것보다, 하루 종일 바빠서 나도 스캔들 기사 본 게 좀 늦었어요. 이름 숨겼다고 해도 너무 노골적이던데?”

“예, 그렇지 않아도 메시지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아온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뭐긴 뭐예요. 그 남자친구한테 들은 팩트지.”

통화를 해도 물음표만 늘어났다. 그 남자친구에게 들었다고?

그런데 놀랄 일은 그다음이었다.

“남자친구, 보우건이잖아요. 뭐야, 정말 몰랐어요?”

헐.

뭐라고?

보우건이 남자친구라고?

“지금 준비 중인 무대가 OMG 레이블 공연이에요. 보우건이 그쪽이랑 계약 완료한 건 알고 있죠?”

“예. 아온에게 들었…… 아, 설마 그때부터 이미 사귀고 있었던 겁니까?”

“들어보니 그런 것 같던데요? 나도 공연 준비 하면서 좀 친해져서 들은 건데, 대한 씨가 까마득히 모를 줄은 몰랐네요. 아온이랑 친한 것 같길래 들었겠거니 했죠.”

“전혀 몰랐습니다.”

“참…… 그쪽 관련으로는 자기 일 아닌 쪽으로도 둔하네.”

“네?”

“아니에요. 암튼 내가 정보 하나 준 거예요? 이것도 빚 하나 달아 둔 거죠?”

이 사람은 사채업자를 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속마음하고 달리 나는 감사를 표했다.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후후후. 알았어요. 아, 가야겠다. 아무튼, 스캔들 기사 수습하느라 고생할 텐데 수고해요. 바쁜 거 끝나면 한번 연락하고.”

그렇게 인사하고 전화를 끊고서,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다 잠깐 멈칫했다.

“대한 씨라고……?”

호칭이 원래 그렇게 친근했었나?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호칭 같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가 권민헌 선배에게 보고했다.

“선배! 아온에게 남자친구가 있답니다!”

“응? 뭐라고?”

“남자친구가 있었어?”

“진짜요?”

팀원들이 전부 놀라고, 나는 김유미 팀장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역시나, 아무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그나마 보우건과 지금도 연락하는 오지환조차.

“와, 배신자…….”

오지환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흘려 넘기면서 나는 다시 말했다.

“덕분에 좋은 수가 떠올랐습니다.”

“들어보자.”

“기사는 기사로 덮어야 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권민헌 선배의 콜을 받아낸 뒤 그가 서인하 국장을 만나는 와중에 나는 남만덕 매니저에게 연락했다.

남만덕 매니저조차 이 사실을 알지 못해서 놀랐고, 녹음 중이던 아온을 불러내 스피커 통화를 했다.

“……아놔, 이 인간이. 그렇게 비밀로 하라고 했는데! 그걸 또 그렇게 떠들고 다녔대요? 죽을 줄 알아, 아주!”

스피커가 쩌렁쩌렁하게 소리를 쳐 대는 아온을 말리는 남만덕 매니저의 소리가 이어졌다.

“그럼 일단 사실이라는 거군요.”

“예…… 맞아요. 최소한 서로 앨범 나올 때까지는 숨기자는 게 약속이었죠.”

앨범 데뷔를 한다지만 본업이 BJ인데, 그렇게까지 숨겨야 하나 싶었다.

내 궁금증을 읽기라도 했는지, 남만덕 매니저가 말을 덧붙였다.

“막상 BJ들끼리여도 팬덤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어요. 가뜩이나 그 바닥은 팬덤 연령대가 더 어리기도 해서, 유독 사귀는 거에 민감하거든요. 그러니 원래 연예인만큼 조심스럽죠.”

그쪽 업계도 쉬운 게 아니구나. 거기다 플러스해서 앨범 데뷔를 앞두고도 있으니 더 그럴 수도 있겠다.

암튼, 그렇게 사실임은 확인되었으니까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나는 내 계획을 말했다. 아온은 눈앞에 있는 것처럼 극적인 반응을 보였다가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지금은 더 나은 방법이 없겠죠? 그치, 오빠?”

“아무래도…… 강 PD님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알았어요. 그럼 그렇게 하죠 뭐. 예쁘게만 만들어 주세요.”

허락이 떨어지고,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잘 포장해 주실 기자분이 있거든요.”

* * *

[<단독> 풋풋한 유명BJ 커플 탄생? 아온―보우건 데이트 현장!

―민준기 기자』

몇 시간 뒤.

늦은 저녁에 그러한 기사가 일제히 포털 사이트에 떴다.

카페에서의 알콩달콩한 모습이 찍힌 파파라치 샷과 함께, 두 사람의 얼굴도 확실하게 노출되었다.

『……아무래도 서로에게 힘들었을 오늘을 위로하는 듯한 그 모습은, 이제 갓 사랑을 시작한 커플다운 애틋함이 있었다.

<사진12―(설명:보우건이 아온의 손을 감싸 쥐고 위로를 건네고 있다)>

<사진13―(설명:아온이 보우건의 뺨을 톡톡 두들기며 애정을 표시하고 있다)>』

사진 구성까지 아주 깔끔한 기사였다.

“일단 던졌고…… 반응이 괜찮을까.”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 줘야 하는데.”

박주영 선배와 민희가 불안함을 표시했다. 권민헌 선배를 비롯한 다른 팀원들도 말은 안 해도 비슷한 감정인 듯했다.

“괜찮을 겁니다.”

오직 나만이 확신에 차 있었다. 왜냐.

이 기사가 통할 확률을 AGD 앱이 높은 확률로 알려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96%]

기사가 뜬 직후, 실시간 검색어에 두 사람의 이름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기다렸다는 듯, 실제로 기다리고 있던 양쪽 소속사에서 연애를 인정하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97%]

역시 이건 묵직한 한 방이었다.

즉시 여론이 바뀌기 시작했다.

오후까지와는 정반대의 글들이 올라왔다.

『이래서 연예인 스캔들에 일희일비 하면 안 된다니까』

『아온―보우건 연애 증거짤들(스압주의)』

『우리 명리더가 배신할 리가 없잖아』

『보우건 OMG랑 계약한 거 보니 실력 괜찮나 봄?』

참 우습게도, 단숨에 여론이 아온과 관련인들에게 호의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온을 욕하던 여론은 금세 기사를 터트린 기자를 욕하며, 아온을 보호하는 척 애썼다.

익명 뒤에 숨은 치졸함이었지만, 어쨌든 우리 입장에선 나쁘지 않았다.

방송 게시판에 응원한다는 글이 이어지기 시작했고, 아온과 보우건의 채널에 커플 탄생을 축하하는 댓글이 이어졌다.

세기의 커플 탄생까지의 느낌은 아니더라도, 이제 막 대중적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가수 커플에 대한 따뜻한 응원이 이어졌다.

간혹 여전히 부정적인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시청률 올리려고 다 수 쓰는 거지, 거기에 놀아나냐』

그러면 대번에 반박 댓글이 달렸다.

―거기에 놀아나서 글 올리는 멍청이도 있고 말이야 그치?

―쿨병환자 납셨네

자정이 되기 전에, 실시간 급상승에 다시 한 번 <당잠사> 베트남 편이 올라오고, 클립 영상들의 조회수도 뛰기 시작했다.

[98%]

“어, 삭제됐어요.”

아무도 퇴근하지 못하고 있던 그 상황에서 도채린 작가가 한마디를 던졌다.

“그 기사, 사라졌어요. 삭제된 페이지라고 아예 안 나오는데요?”

“튀었네.”

“분위기 안 좋아지니까 꼬리 말고 사라졌나 보네. 그래 봤자 이미 늦었지. 안 그래요, 선배?”

메인 자리에서 권민헌 선배가 끄덕거리며 웃었다.

“이미 캡처 다 떴고, 회사 법무팀에서 따로 대응할 거야. 다른 회사들에도 다 돌렸지?”

믿음직한 팀원들이 끄덕거리는 것을 둘러보고, 권민헌 선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하루 종일 다들 고생했어. 방송 만들다 보면 이런 일도 있는 법이니까, 다들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 줘.”

“옙.”

“잘 풀렸으니까 됐죠.”

“무엇보다 대한아. 고생했다, 오늘. 너 아니었으면 많이 힘들었을 거야.”

“아닙니다. 다들 고생한 거죠.”

“그래. 하지만 특히 네가 고생했으니까 하는 말이야.”

참 쑥스럽게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다니.

나는 그냥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여 보이는 수밖에 없었다.

“자, 이제 퇴근하자. 내일…… 이미 오늘이네. 오늘은 다들 적당히 눈치 봐서 늦게 나와도 돼.”

“아싸! 감사합니다!”

그렇게 인사하고, 권민헌 선배가 가장 먼저 나갔다. 메인이 퇴근하지 않으면 다른 팀원들도 눈치를 봐야 하니 우리를 배려한 것이다.

짐을 챙겨 드는 중에 박주영 선배가 슬쩍 목소리를 낮춰 물어왔다.

“요물아. 내일 방송 잘 풀리겠지?”

나는 아직 아온―보우건 열애설 기사가 떠 있는 모니터를 흘끔하고는, 대답해 주었다.

“그럼요, 반드시 잘 풀릴 겁니다.”

[100%]

* * *

『해프닝으로 끝난 스캔들을 딛고, ‘당잠사5’ 4화 최고 시청률 5.2% 기록!』

『순간 최고시청률 장면 ‘미케비치의 석양’』

4화 방영이 끝난 후, 우리는 더 이상의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다.

스캔들로 흔들린 것도 잠시, 미케비치의 석양을 뒤로 두고 아온과 효명이가 ‘겨울비’를 함께 부르고, 준혁이 형님과 백종현, 차지효가 이미지를 깨고 막춤을 추는 장면까지 나가자 반응이 대단했다.

우리가 편집과 음악에 힘을 들였던 그 노력이 고스란히 대중의 반응이 되어 돌아왔다.

그 후로 방송은 완전히 순항이었다.

5화, 6화, 7화.

줄줄이 시청률이 올랐다.

다만, 안타깝게도 5%대에서 아주 찔끔찔끔 상승했다.

6%대를 단숨에 넘길 모두가 희망했지만, AGD 앱을 동원해서 편집을 만들어 내도 그 이상을 넘는 것은 아주 어려웠다.

“역시 사건사고가 너무 없었나 봐.”

“장면은 전부 좋은데, 의외성이 없는 거지.”

두 선배의 평가를 나도 전면 동의했다.

촬영이 순조로운 건 물론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좋은 일이지만, 사실 <당잠사>처럼 리얼함을 표방한 예능의 경우,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도 좋았다.

그런 부분에서 의외성과 리얼함이 살아나는 것이기에.

하지만 이번 베트남 촬영은 너무도 예정대로만 진행되었다. 거기서 오는 문제점이 촬영본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언젠가 편집본을 같이 본 정민우 팀장이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권 PD는 너무 얌전해. 너처럼 지를 땐 지를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런 면이 부족한 거지. 그러니까 편집도 다소 심심하고 그런 거야.”

같이 들은 서인하 국장도 그것을 인정하듯 끄덕거리기만 했다.

“뭐…… 본인의 숙제지, 그건. 나중에 정 팀장이 좀 알려 줘.”

“술 한잔 할 사람이 늘었네요.”

두 사람은 권민헌 선배와 나를 비교했지만, 나는 역으로 권민헌 선배에게 배워야 할 점을 느끼고 있었다.

9화 방영을 남겨 둔 주에, 우리는 출연진까지 포함한 전체 스태프 회식을 가졌다.

그 자리에는 놀랍게도 왕이범 이사까지 나타나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눈치 없이 회식에 낄 생각 없고, 이걸 전해 주러 왔습니다. 권 PD 어디 있지?”

그의 부름을 받은 권민헌 선배가 우물쭈물 일어나서 그에게 가자, 그가 호탕하게 웃으며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주었다.

“내 카드야. 내일 잘 돌려주기만 해.”

“……예!”

“사랑합니다, 이사님!”

“이사님 최고!”

왕이범 이사는 모범적인 상사의 모습을 보여 주고, 소주 한 잔만 간단히 받은 다음 쿨하게 떠나갔다.

그 이후 전체 회식은 시간을 두고 매우 뜨거워졌다.

얼마 전 데뷔 앨범이 발매된 아온이 제작진에게 사인 CD를 돌리고, 효명이한테 너는 왜 안 돌리냐고 감독들이 핀잔을 주는 바람에 그가 분연히 무대로 나가 솔로곡을 불렀다.

그 흐름은 아온까지 끼어서 둘의 합작곡인 ‘블루스카이’를 부르게 만들었고, 석양씬을 들먹이면서 감독들이 보채자 준혁이 형님과 백종현이 마지못해 나가서 또 막춤을 췄다.

술도 들어가고 분위기도 무르익다 보니, 그 장면들이 지금 전부 촬영되고 있다는 것조차 다들 잊은 모습이었다.

“이거…… 스페셜 하나 더 편성해야겠는데.”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던 서인하 국장이 그렇게 말해서 박주영 선배가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이 지나간 뒤, 몇 시간 만에 1차 자리가 끝나고, 워낙에 일정이 많은 출연진들을 모두 배웅하고서 일부 제작진만 모여 2차를 하기로 했다.

평소 같았으면 팀의 막내가 2차 자리를 잡았겠지만, 오늘은 서인하 국장이 자기가 2차 장소를 잡아 뒀다면서 그리 가자고 했다.

다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호프집에 들어선 순간.

지극히 대수로운 일이 되고 말았다.

“……?”

전세 낸 듯 비어 있는 호프집 안에, 익숙한 얼굴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다들.”

그 사람은 방수정 PD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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