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루머
[민준기기자: 통화 되십니까?]
[회의 중이라 5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민준기기자: 당잠사 관련 스캔들 기사가 터질 것 같습니다]
저녁에 날아온 메시지.
스캔들이라니, 아찔한 기분이 되었다.
기사를 유출할 순 없다는 이야기에 일단 민준기 기자와 당장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다.
나는 잠시 어떻게 해야 하나 고심을 하다가 신경이 곤두선 채로 권민헌 선배를 찾아갔다.
그는 편집실에서 박주영 선배와 편집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선배, 잠깐 좀 드릴 말씀이…….”
권민헌 선배가 몇 가지 지시를 내린 다음에 편집실을 나왔다.
“왜, 바쁜 일이야?”
“이거 좀 보세요.”
나는 설명보다 민준기 기자가 보낸 메시지를 보여 주었다.
“스캔들? 우리 관련으로?”
“예. 기사 자체는 확보했다는데 보내 줄 순 없다고 해서, 가서 직접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습니다.”
“알았어. 얼른 갔다 와.”
허락이 떨어져서 빠르게 움직였다.
민준기 기자는 자신이 방송국 쪽으로 오겠다고 했었다.
괜히 기사에 대한 정보가 주변에 알려질 게 싫어서, 일전 정민우 팀장과 방문했던 인적 드문 카페를 알려 줬다.
나는 곧장 그 카페로 향했고, 민준기 기자는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일찍 얼굴을 뵙게 될지는 몰랐네요.”
“저도요. 연락을 드려도 좋은 연락으로 만날 줄 알았습니다.”
내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그가 태블릿을 꺼냈다.
“캡처본입니다. 유출되었다는 증거라도 남으면 제가 곤란해져서, 이렇게밖에 못 보여드립니다.”
“아닙니다. 외려 감사해야죠.”
그가 보여 준 캡처본을 서둘러 읽어 내렸다.
“…….”
긴장감을 잔뜩 갖고서 읽어 내렸는데, 첫 감상은 황당했다.
스캔들 기사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철렁하긴 했지만, 곱씹을수록 이게 무슨 헛소리일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막상 접하게 된 기사는 그야말로 망상에 가까웠다.
“효명이와 아온이 사귀고 있단 건가요?”
“네. 사귀는 둘 사이에 백종현이 끼어들어서, <당잠사> 촬영 동안 셋 사이에 불화가 있었다는 내용입니다.”
기사를 낸 후의 후폭풍을 예상해서인지 A씨, B양 같은 식으로 이름을 숨겨 놨지만, 누가 봐도 <당잠사>에 나온 세 명에 대한 이야기였다.
‘베트남에서 최근 촬영을 마친 예능’이라든지 ‘록 페스티벌을 통해 화려한 무대를 선보였던 데뷔 7년차 아이돌 그룹의 리더 A씨’라는 식으로 써 놨는데 몰라보는 게 바보일 정도다. 무슨 이따위 찌라시가 있나 싶어 답답해하는데, 민준기 기자가 말했다.
“이런 기사 중 대다수는 추측을 근거로 작성되기 마련입니다. 루머란 식으로 들추고 파헤쳤다가 아님 말고 하는 식으로 치고 빠지는 거죠. 혹시나 해서 묻는 거지만, 셋 사이에 이 비슷한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절대 없습니다. 아온과 백종현까지는 몰라도, 효명이는 누구보다 제가 잘 압니다. 촬영 중에 일체 그런 일도 없었고요.”
“그렇다면 정말 근거 없는 찌라시가 맞겠군요.”
그가 태블릿을 회수해 가면서 결론을 내렸다.
“누가 이런 짓을 하는 걸까요.”
“이유는 워낙 다양해서 짐작도 하기 힘듭니다. 단순히 클릭수가 나올 것 같아서 던진 걸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부탁을 받아서일 수도 있죠. 문제는, 일단 이 기사가 대중에 노출되는 걸 막기는 힘들다는 겁니다. 당장 내일 나갈 겁니다.”
“어느 언론사인지 알 수 없을까요?”
“저도 기자들끼리의 단톡방에 공유된 이미지만 본 거라 원 출처가 어딘지는 알 수 없습니다. 확인해 보려 했다가는 괜히 유출 문제로 배척될 수도 있구요. 그래도 강 PD님께는 알려 드리긴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사정은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더 이상 파고드는 건 불문율일 수도 있다 싶었다.
한숨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방송이 잘나가면서 잠시 잊었던 불안감의 원인이 바로 이것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두통이 느껴져서 차가운 커피를 들이붓듯 마신 다음 물었다.
“일단 출연진 측에는 미리 알려도 되겠습니까?”
“네. 아무쪼록 입단속만…….”
“네, 그 부분은 확실히 하겠습니다.”
고맙다고 인사하며 우린 헤어졌다.
방송국으로 가는 길에 일단 효명이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아서 다른 곳에 전화를 걸었다.
“……예, 송일현입니다. 강 PD님. 어쩐 일이십니까, 이 저녁에…… 효명이 찾으세요?”
효명이 일이긴 하지만 송일현 매니저, 아니 송일현 팀장도 알고 있어야 할 문제였다.
난 스캔들 기사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송일현 팀장도 점점 어조가 심각해졌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기사가……. 저희 쪽에는 아직 아무런 이야기도 없었습니다.”
“저도 방금 들은 겁니다. 상황을 봐서는 저도 루머성 찌라시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지만, 말씀은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때마침 잘됐네요. 지금 아온 씨도 저희 녹음실에 와 있거든요. 그쪽 매니저에게도 알리겠습니다.”
데뷔 앨범에 아직 녹음할 것이 남은 모양이었다. 곧 발매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말 막판에 막판까지 심혈을 기울이고 있구나.
잠깐 시간이 지나고, 귀에 가져다 대고 있던 스마트폰에서 송일현 팀장이 아닌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 PD님, 남만덕입니다.”
“아, 남 매니저님. 안녕하십니까.”
“진짜입니까? 방금 전달받았습니다만 믿기진 않아서…….”
“사실입니다. 믿을 수 있는 기자의 정보였고, 직접 확인했습니다.”
“막을 순 없나요?”
나는 막는 건 힘들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저쪽에서도 짙은 한숨이 새어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일단 효명 씨와 아온이가 녹음 중이라, 끝나면 알리겠습니다. 방송에 폐를 끼치게 되었네요.”
“폐라뇨. 일단 각자 최대한 대응 방법을 모색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보고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사무실로 뛰어 올라갔다. 마침 권민헌 선배도 올라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 민준기 기자를 미팅하며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이윽고 권민헌 선배가 팀원 모두에게 이 사실을 전달했다. 단톡방을 통해 일을 확인한 팀원들도 모두 헐레벌떡 복귀했다.
“아니, 잠깐만. 진짜? 진짜야?”
“맞아. 기사는 실제로 봤어.”
내 확답에 민희가 할 말을 잃고, 박주영 선배는 권민헌 선배를 쳐다보았다.
“선배, 일단 기자들한테 연락을 돌리는 게 어떨까요. 하다못해 대응 기사라도 내보내려면요.”
“국장님한테 보고부터 하고 올게. 일단 수소문할 수 있는 사람들한테 물어서 어느 언론의 누구인지 최대한 알아봐. 백종현에게도 알리고.”
권민헌 선배가 뛰어나가고, 나는 백종현 매니저에게 연락해서 이 사실을 알렸다.
그쪽도 신인 배우이기에 스캔들 하나하나에 민감할 때라서, 서둘러 회사 차원에서 대응하겠다고 했다.
백종현의 매니지먼트는 큰 회사라서 아마 대응이 빠를 것이다.
그즈음 권민헌 선배도 보고를 끝내고 돌아왔다.
“국장님도 알아보시겠다곤 했는데, 일이 워낙 촉박해서 자체를 막는 건 어려울 것 같아. 후속 조치를 잘해야 할 듯싶어.”
책상에 둘러앉아 있지만 서둘러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기사를 막을 수 있다면 베스트겠지만, 그건 이미 물 건너갔다고 봐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방송에 여파가 없진 않겠죠?”
“그렇겠지. 시청률이 떨어질 것도 감안해야지.”
“기사 때문에 노이즈마케팅으로 시청률이 오히려 뛰거나 하진 않을까요?”
오지환이 그답지 않게 먼저 입을 열었는데, 박주영 선배가 눈을 부라렸다.
“중심 멤버 셋이서 스캔들이 났어. 그것도 더러운 스캔들이. 아온의 이미지가 박살 날 텐데, 시청률이 뛸까?”
3화까지는 결과가 아주 좋았다. 그동안 <당잠사>를 기다린 시청자들과, 새로운 시청자들까지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점차 좋은 흐름을 타기 시작한 이때, 이런 스캔들을 결코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었다.
“일단 최대한 기사 출처를 알아보고, 반박 기사를 준비해 두자. 촬영 동안 결코 그런 일이 없다고 후속 기사 바로 뜰 수 있게 보도자료 돌려 두자고.”
권민헌 선배도 이런 상황은 처음 겪는 걸 텐데, 그럼에도 진두지휘를 무리없이 해 냈다.
저런 걸 보면…… 상황 앞에서 단순히 막연해하는 내 자신이 부끄럽다.
어쨌든 기사가 뜨는 것은 하루 뒤.
우리는 최대한 할 수 있는 대응을 다 하기로 결심했다.
* * *
효명이와 아온의 녹음은 새벽이 가까워져서야 끝났다.
[엑시트최효명: 이게 무슨 소리예요;; 무슨 스캔들 기사요?]
다행이랄까, 나도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메시지 옆 1이라는 숫자가 사라진 걸로 내가 깨어 있는 것을 알았는지 효명이가 대번에 전화를 걸어왔다.
효명이는 많이 흥분해 있었다.
하기야, 아이돌한테도 치명적인 루머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해명이 된다고 하더라도, 대중은 악플을 양산할 것이다.
거짓이 진실을 매도하는 일은 빈번하니까.
“들은 그대로야. 스캔들 기사가 나갈 거야. 우리도 대응 기사를 낼 거고, 너희 회사에서도 반박 대응을 할 거고.”
“아니, 대체 무슨 그런 헛소리가 다 있어요?”
효명이는 좀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온이랑 내가 사귄다고요? 그런 시끄러운 애, 내 취향 아니거든요!”
“……아, 화가 나는 게 그쪽이냐.”
걱정했던 맘이 갑자기 팍 식었다.
내 반응을 보고, 효명이가 수화기 너머에서 한숨을 쉬었다.
“아까 통화가 꽤 심각했다고 일현이 형이 그러더라고요.”
“심각하지, 안 심각하겠냐. 방송도 방송이고, 너희 이미지에도 타격이 있고. 특히…… 그래, 아온이는 어때?”
“길길이 날뛰던데요. 나든 종현이든 자기 스타일 아닌데 왜 엮냐고.”
“지극히 아온스럽네.”
내 말에 효명이가 풋 하고 웃었다. 의외의 구석에서 기분이 좀 풀렸나 보다.
“형한테 짜증을 부릴 게 아니었는데. 미안해요, 형.”
“미안하긴 뭘.”
“사실 뭐, 연애 관련은 처음이지만 그동안 찌라시 받은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근거 없는 찌라시는 정말 빨리 사라지더라고요. 아온이도, 종현이도 제가 좀 챙길 테니까 형은 방송부터 신경 쓰세요. 4화, 다들 기대하고 있어요.”
“그래, 고맙다.”
든든한 말을 해 주고 그렇게 효명이는 전화를 끊었다.
하긴, <당잠사> 시즌2 시절에는 파리에서 욕설을 했다는 찌라시를 겪기도 했었지.
그때도 자기보다 남을 먼저 챙겼던 효명이다.
마음이 참 깊은 놈이다. 그래서, 그 바람대로 방송에 아무런 일도 없었으면 했는데…….
일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목요일 오전부터 결국 예정했던 스캔들 기사가 떴다.
그리고 단숨에 온갖 커뮤니티로 퍼져 나갔다.
―미쳤네 이거 진짜임? 아무리 봐도 ㄷㅈㅅ인데?
―그거 맞는 거 같음ㅇㅇ 거기 세 명이면 각 딱 나오지
―그 나이대가 세 명밖에 없지 않나 본격 노인화방송
―익명 의미가 있냐 이겤ㅋㅋㅋ
문제는 엑시트의 팬 커뮤니티였다. 아이돌 팬덤답게 더욱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온이 누구야? 어디 허접임?
―있어 남의 노래 가지고 먹고사는 애
―걔 이번에 명리더가 곡 준 애 아냐?
―ㅂㄹㅅㅋㅇ 그 노래? 미친ㅋㅋㅋㅋㅋㅋ 그래서 곡 써줬나?
―당잠사 내일 하지? 내가 보나 봐라 당잠사 폐지 기원 1일차
인터넷 이곳저곳에서 효명이 팬덤, 아온의 팬들, 그리고 백종현의 팬까지 합세해서 <당잠사> 폐지 여론이 불붙기 시작했다.
아이돌 팬덤을 무시한 것은 아니지만, 그 여파는 하루가 지나기 전에도 무시무시하게 퍼져 나갔다.
우리도, 출연진의 매니지먼트에서도 대응을 시작했다.
보도자료, 기사, 공식 SNS 등을 통해서 공지가 나갔다.
『안녕하세요, 플래티넘입니다.
플래티넘은 소속 아티스트의 보호를 위해, 근거 없는 루머의 확대 재생산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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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플래티넘은 법적 대응 등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통해 아티스트를 보호할 것임을 밝힙니다.
감사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빛난 건 플래티넘의 대응이었다. 이렇게 강성으로 작성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 내용에 문제점은 없었다. 루머든 악플이든, 사람을 병들게 하는 것이다.
연예인도, 그리고 악플과 루머를 접하는 팬들도 사람이다.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선동 문화는 없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쨌든 제작진, 3명의 소속사까지 공지를 내보낸 결과, 효과는 나쁘지 않았다.
어제 저녁부터 준비한 효과가 좋았다.
빠른 대응을 칭찬하는 글도 커뮤니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어차피 기레기가 기레기한 거지 뭐
―클릭수가 그렇게 고팠냐 기레기야
―저런 기레기는 싹을 없애야 해
―또또 개돼지들 납시죠? 결국 뒤에서 사귀고 있을 거임 그렇게 속고 또 속냐
―응 안 봐 조작 방송 선동 방송 ㅅㄱ
하지만, 스캔들의 진위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미 등을 돌린 시청자층이 분명히 존재했다.
“좀 더 확실한 한 방이 필요할 것 같은데…….”
여론을 확인한 박주영 선배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기사는 다른 기사로 덮어야 하는 법인데, 뭐 없을까요.”
“오늘 내로 그런 큰 건이 나올까?”
팀원들이 머리를 맞댔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여론이 잠잠해지길 바라기에는 당장 내일이 4화 방영일이었다.
법적 대응을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어떡하죠?”
구은경 작가가 답답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런데, 돌파구는 의외의 곳에서 나타났다.
[김유미팀장: 뭐예요? 아온 씨 남자친구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