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두 마리의 토끼
귀국 후, 5팀 사무실에 잠깐 올라온 사이 정민우 팀장을 만났다.
만나자마자 서로 눈을 껌뻑이다가 흠칫 놀라서 인사를 했다.
“우리 한 달 만에 얼굴 보는 거 아니냐?”
놀라는 것은 정민우 팀장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1팀 지원 형식으로 <당잠사> 팀에 합류한 뒤로는 정말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당잠사> 컨트롤은 서인하 국장이 직접 하고 있는 데다, 정민우 팀장은 <뮤직스케치> 일로 바빠서, 얼굴을 마주한 게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이야기는 들었다. 촬영에서 별일 없었어?”
“예. 너무 별일 없어서 어색할 정도로 별일이 없었습니다.”
“그래? 그거 불안한데?”
방송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리라. 촬영 나갔는데, 그것도 7박 8일이라는 기간으로 해외로 나갔는데 사고 한번 생기지 않으면 오히려 더 불안하다.
“대체 무슨 큰일이 생기려고 그런다냐.”
“불안하게 왜 그러십니까, 팀장님까지.”
“나도 다 경험이 있어서 그러는 거지. 조심, 또 조심해. 체크 잘 하고.”
“예.”
그렇게 친근하게 조언을 해 주고 그는 떠났지만, 남겨진 나는 불안감만 더 도졌다.
그 불안감은 보고를 위해 서인하 국장을 만나면서 한층 더 커졌다.
“너무 조용한데. 그 흔한 배터리 사고도 없었다고?”
“예. 충실하게 잘 찍어 왔습니다. 그림도 잘 나올 것 같고, 출연진도 다들 의욕 있게 해 줬습니다.”
“그래…… 그럼 되긴 했는데, 불안하네.”
서인하 국장 위치니까, 아마 나보다 더 많은 사건 사고를 봤을 것이다.
예능국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컨트롤하는 위치에 있다 보니 케이스는 더 많이 알 것이고.
“일단 알았다. 진행 상황 알려주고, 편성부랑 자리 한번 만들자.”
이사진 보고는 서인하 국장이 할 것이고, 그렇게 촬영 보고는 마무리되었다.
“다들 불안하다고 하시네. 더 불안해지게.”
팀 사무실로 내려오는 중에 권민헌 선배가 툭 내뱉었다. 나도 담담히 동조했다.
“근데 저도 불안하긴 해요. 이게 참…… 아무 일도 안 일어나니까 더 불안한 건데, 이게 말이 되긴 하나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를 만큼 모순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대비한다고 해서 나쁠 건 없지 않나?
“이럴 때야말로 조심해야지. 팀원들 좀 다독이고, 한 번 더 확인하자.”
권 선배의 신중한 성격이 빛을 발할 때가 왔다. 내가 가장 배워야 하는 것이 이런 점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
믿고 따르겠습니다, 선배.
촬영본을 점검하고, 티저를 뽑아내고, 스크립트를 짜서 10화까지의 구성을 만들어 내는 사이 편성이 확정되었다.
5월 첫 주 금요일 9시.
봄의 기색이 완연한 때에 <당잠사> 시즌5가 나가는 것이다.
원래 약속은 6개월 내 방영.
2개월 준비 기간을 넘게 소비했지만 촬영이 끝난 시점에는 3개월을 조금 넘었을 뿐이라, 다행히 여유 있게 방영 시기를 맞출 수 있었다.
“아마 6개월 지났어도 이미 화제성은 충분해서 위에서도 자르진 않았을 거야.”
아니 그 얘기를 왜 이제 해 주십니까. 근데 한술 더 뜨셨다.
“그러니까 시청률은 깔끔하게 2배 뛰어 보자. 어때?”
시즌4의 2배라는 소리였다. 6%. 이게 말인가 하는 얼굴로 쳐다봐 주었지만, 서인하 국장은 어울리지 않게 상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진심이네.
“……예, 한번 해 보겠습니다.”
권민헌 선배가 단단히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나는 결심했다. 확률 보기를 열심히 사용해야겠다고.
“티저를 주영 선배와 같이 뽑아도 되겠습니까.”
편집회의를 할 때 일단 그렇게 나섰다.
“나야 너 있어 주면 편하지. 근데 그럴 시간이 있겠냐.”
박주영 선배가 답지 않게 걱정해 주면서 물었다.
촬영 이후에도 서브가 해야 할 일은 수두룩했다.
베트남 관광청과 여행사까지 이어진 일들이 많았고, 출연진들의 세세한 케어까지.
아찔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분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뭣보다 <당잠사>니까 꼭 하고 싶어요.”
“그렇다는데요, 선배.”
박주영 선배가 그렇게 거들자, 권민헌 선배도 순순히 허락해 주었다.
“너희 둘이라면 믿을 만하지. 그래도 딸리면 편집 감독 요청해.”
“네.”
그렇게 나는 틈날 때마다 박주영 선배와 티저를 뽑아냈다.
[100%]
[100%]
[100%]
.
.
1차, 2차, 3차, 그 후로도 이제 티저에서 100%를 만들어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방송 3주를 남겨 놓고 차근차근 예고 편성과 인터넷 공개를 시작하자, 곧장 반응이 돌아왔다.
『레전드가 돌아온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 베트남 편 티저 공개!』
『‘당잠사’의 대표 커플 류준혁과 최효명, 다시 한번 신화를 쓸까?』
『‘당잠사’의 새 얼굴, 아온×백종현의 케미 기대감 폭발』
1차 티저에 담은 것은, 새 멤버인 아온과 백종현의 인터뷰였다. 2차부터는 현지에서 있었던 장면들의 클립.
그것만으로도 반응은 충분히 돌아왔기에, 나는 1화 시청률이 6%를 기록할 수 있을지의 확률을 보았다.
[78%]
“음, 애매하네.”
하지만 그래도 크게 비관하진 않았다.
<당잠사>가 부활하여 1화이기도 하고, 티저로도 아직 움직이지 않은 시청자층이 있었다.
그들을 계속해서 잡아 나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 중요했다.
어차피 우리의 목표는 <당잠사> 시즌5의 대박이 아니다. 우리 팀이 다시 모여 하나의 결과물을 훌륭하게 만들어 내는 것이 더 중요했다.
회사에는 미안하지만, 시청률은 우리의 최우선 목표가 아니었다.
“반응 괜찮은데 티저 하나 더 뽑을까요, 선배.”
“주영이 너 괜찮겠냐. 1화 마무리 아직 덜 됐잖아.”
“어차피 CG 작업 기다리고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알았어. 그럼 서 국장님 만나고 올게.”
지금도 이렇게 쉬지 않고 한 팀으로서 뛰고 있는 일체감이 있는데, 뭐가 더 중요할까.
시청률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을 깨달아가는 기분이었다.
이렇게만 한다면, 6%대의 시청률도 당연히 따라오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하면서, 드디어 5월.
우리의 <당신이 잠든 사이에> 베트남편이 첫 방영을 시작했다.
그때쯤엔 촬영이 끝나고 느낀 불안감은 어느새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 * *
『<이번 주 예능> ‘당잠사’ 베트남 편 기대의 시작, 그 총평은...?
―민준기 기자』
우리가 돌린 보도자료가 아닌, 민준기 기자가 뜰 거라고 알려준 칼럼 기사가 토요일 오전에 포털 사이즈에 달렸다.
1화 방송이 끝난 지 12시간도 안 지났는데 칼럼 기사라니. 잠도 없나, 이 사람은.
팀원들에게 공유해서 모두가 돌려보았다.
『……결론적으로 말해, ‘당잠사5’는 두 마리의 토끼를 전부 잡았다.
시즌4의 그림자를 지우고 그 이전의 ‘당잠사’로 회귀함은 물론, 그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캐릭터를 발굴하여 재미를 주는 것에도 성공했다.
이것은 향후 세 마리, 네 마리째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포석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1화 최종편집본을 모니터링하고, 내부에서도 자신감을 가졌다. 그 자신감에 대한 결과물이 그 기사에 쓰여 있었다.
『1화 시청률은 3.6%. 시즌4의 최종화보다는 조금 올라간 수치다.
수치만으로는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시청률로는 설명할 수 없는 완성도가 그 안에 숨어 있다. 돌아온 ‘당잠사’가 어디까지 날개를 펴고 날아갈 수 있을지, 그 부활의 날갯짓을 응원해 본다.』
“이분은 확실히 우리 편인 것 같네.”
기사를 읽은 민희의 총평이었다.
“하나하나 신경 써서 봐 준 티가 매우 나는 것 같아요.”
구은경 작가의 평까지 붙으니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편인 기자가 있으면 그것만큼 힘이 되는 게 없지. 대한아, 잘 관리해라.”
“제가요?”
“그럼 누가 해. 네 인맥이잖아.”
권민헌 선배의 말에 나는 괜히 뜨끔했다. 나도 서인하 국장 덕분에 연결된 거나 마찬가지인데 내 인맥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하지만 어쩌랴.
“……예, 잘 관리하겠습니다.”
서둘러 민준기 기자에게 감사 메시지를 보냈다.
[아침부터 좋은 기사 읽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민준기기자: 저야말로, 다음에도 좋은 소스 있으시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민준기기자: 아 그리고. 이 기사는 기획 시리즈라서 아마 매주 나갈 거 같습니다]
“헐. 기획 기사라도 매주 나갈 거라는데요?”
“그래? 수고하신다고 커피 상품권이라도 보내 드리자, 그럼.”
그거 뇌물 수수 아닌가요……?
권민헌 선배가 법카를 가지고 와서 상품권을 구매해 나에게 보내 주었다.
나는 그것을 메시지로 보낸 뒤
[이거 드시고 힘내세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민준기기자: (감동) 이런 걸 다... 감사합니다^^]
하기야 고작해야 만 천 원짜리이니 김영란법에 걸릴 걱정도 없을 것 같다. 앞으로도 좋은 기사를 써 줄 분을 위해서 딱 적당한 인사가 될 듯했다.
이런 기사 하나하나가 중요했다.
왜냐하면, 기사가 좋다고 해도 막상 댓글이 영 나쁜 경우도 많기 때문이었다.
―1화 완전 재밌었다ㅠ 예전 느낌 딱 좋으뮤
―류준혁은 이제 딱 베테랑 느낌이 나더라 시즌4만에 예능에 완전 적응
―최효명도 그렇고 이번에 들어온 아온이랑 백종현도 그렇고 ㅈㄴ 캐스팅 맛집
―└맛집 받고 더블로 케미 맛집ㄲㄲ
아니나 다를까. 그런 호평도 있는 반면,
―어휴 또 당잠사냐 안 지겹냐
―지난 시즌 망해서 보지도 않음 ㅅㄱ
―아온이 걔 누구냐 겁나 시끄럽더라
―최효명 너무 띄워주는 것 같던데 피디 권력 의심해 봄
―└메인이 다른 사람인데 권력 의심은 무슨
―└연출진에 외삼촌 이름 있던데 뭐 킹리적 갓심 ㅇㅈ?
그런 비판과 악플도 달렸다.
3.6%라는 시청률은, 아직 저런 시청자층을 제대로 잡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그런 만큼 호의적인 기사 하나하나가 우리에게는 매우 소중했다.
이런 하나하나가 <당잠사> 시즌5를 잘 마무리할 수 있는, 나아가 다음 시즌까지 성사될 수 있는 토대가 될 테니까.
2화, 3화가 죽죽 방영되면서, 드디어 우리가 촬영에 가장 공을 들인 4화가 방영될 지점이 왔다.
미리 나간 선공개 티저를 통해서 힌트가 나갔지만, 다낭 비치에서의 촬영 때 석양이 너무나 아름답게 하늘을 물들였다.
그 아래에서 무엇을 찍더라도 그림이 될 것 같아서, 대본을 수정해서 비치에서의 체류를 더 늘렸다.
멤버들이 거기서 갑자기 노래를 시작하고 춤까지 추면서, 가만히 담기만 해도 매우 아름다운 장면이 잡혔다.
4화에는 딱 그 장면을 초반부터 배치했다.
멤버 8명이 모두 빠짐없이 잘 잡힌 장면이기도 해서, 내부에서의 평은 당연히 좋았다.
“티저 반응도 좋으니까 이번 화는 정말 5% 가까이 나오지 않을까?”
민희의 기대가 헛소리가 아닌 것이, 3화까지 시청률은 수직 상승 했다.
2화에 4%대로 올랐고, 3화에는 곧장 4.8%까지 올랐다.
5%를 목전에 둔 상황에 모두가 기대감이 부풀었다.
목표 시청률 6%를 최종화 전에 이룰 수도 있는 시기였기에, 이번 4화는 정말로 중요했다.
최종 편집본이 나온 시점에 모두가 회의실에 모여서 모니터링을 했다.
마지막까지 체크에 체크를 한 다음, 권민헌 선배가 결론을 내렸다.
“좋아, 이렇게 가자. 내가 보기엔 도저히 고칠 곳이 없는 것 같은데. 대한아, 너는 어때.”
“저도요. 100% 좋은 것 같습니다.”
AGD 앱의 확률도 그렇게 알려 주고 있기에 내 대답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완성도는 100%, 그렇다면 5% 시청률 달성도 할 수 있을까?
나는 기대하며 확률 보기를 다시 띄웠다.
[85%]
어……? 시청률 추이도 좋고 완성도도 좋은데, 5%를 넘지 못한다고?
“대한아, 왜. 뭔가 걸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차마 뭐라고 할 이야기가 없어 얼버무린 그때, 오래 억눌러 놓은 불안감이 고개를 드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방송을 털 때까지 이틀.
그사이 무슨 일이 생기는 건가?
그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