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94화 (94/200)

94화 별일 없어서 불안하다

서둘러 권민헌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되돌아가던 길에 내 전화를 받은 그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대번에 찬성을 해 주었다.

요즘 계속 이랬으니 난 한 번 더 징검다리를 두드리는 식으로 내일 팀원들에게 알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전날 구입해 둔 VOD를 노트북에 틀었다.

“<전지적 동반자 시점>입니다.”

“어…… 아온이 나온 거?”

“그래, 맞아.”

민희에 말에 긍정하면서, 아온이 스튜디오에서 인사하는 부분부터 재생했다.

아온의 분량은 꽤 길었다. 타사다 보니 <언더커버 싱어>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았지만, 경연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한 미투버로 소개되어, 남만덕 매니저와의 하루가 카메라에 담겼다.

<전지적 동반자 시점>이라는 프로그램 특성상 스튜디오 토크와 VTR 관찰이 번갈아 등장하는데, 스튜디오에서도 VTR에서도 아온이 시종일관 쾌활하게 떠들어댔다.

『“어떤 고민이 있어서 나오신 거죠?”

“……사람들이 저희를 보고 남매냐고 물어봐요.”

“사이가 좋으신가 봐요.”

“그 반대라서 그렇죠.”』

남만덕 매니저의 인터뷰, 직후 흘러나온 타이틀은 이랬다.

『매니저인가, 리얼 오빠인가?

친남매 같은 가수와 매니저』

내가 느꼈던 것처럼, <전지적 동반자 시점>의 제작진도 둘의 케미를 제대로 알아차린 구성이었다.

방송에서 둘은 정말 남매처럼 시종일관 투닥거렸다.

대부분은 아온이 왈가닥처럼 뛰어다니고 사고를 치면, 남만덕 매니저가 그것을 수습하고 다니는 식이었다.

분명 카메라를 찍고 있다는 것을 알 텐데도 아온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평소의 모습을 보였고, 관찰 예능임에도 남만덕 매니저가 머리를 쥐어짜는 장면이 몇 번이나 나왔다.

『“아니 저건 진짜 제가 잘못한 거 아니지 않아요?!”

“아온 씨, 아온 씨가 무조건 잘못했어 저건.”

“헐! 대박 사건! 지금 저 오빠 편들어 주시는 거예요?”』

미투브에서 투고하는 브이로그와도 별반 다를 것 없는 그 언행은, 정말 평소의 아온 모습 그대로였다.

밝고, 활기차며, 에너지 넘치는 캐릭터.

이런 가까운 곳에 인재를 두고서 어젯밤까지 생각지 못했다니.

“어떻습니까. 딱 좋은 캐릭터지 않습니까?”

“진짜네……. 정말 우리가 원하는 그대로인걸.”

민희의 말에, 권민헌 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잠사>는 시즌3까지 좋은 의미로 조용한 편이었지. 힐링 예능이 중점이었으니까. 하지만 시즌5에서 저런 캐릭터도 필요할 거야.”

“혼자 둬도 오디오가 비지 않는 캐릭터예요, 쟤는. 내가 당해 봐서 알지.”

<언더커버 싱어> 편집을 도맡아 했던 박주영 선배가 귀를 막고 어깨를 떨었다.

아온이 찍어 오는 브이로그는 정말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오디오가 빌 때가 없어서, 귀가 아프다고 몇 번이나 불평을 했던 때가 생각났다.

“아온한테 연락해 봐. 스케줄 괜찮다고 하면 바로 진행하자.”

“예.”

메인 PD의 허락이 떨어진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96%]

AGD 앱도 이미 최고의 확률을 보여 주고 있었다.

막혀 있던 둑이 터지듯 단숨에 일이 진행되었다.

* * *

일단 남만덕 매니저에게 연락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아온이 소리 지르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까지 흘러나왔다.

남만덕 매니저가 진정시키면서 미팅을 잡고, 그것을 권민헌 선배에게 알리는 사이 메시지가 날아왔다.

[엑시트최효명: 아온이 캐스팅했어요? (뜨악)]

소식도 빠르지. 아온이 바로 이야기를 했나 보다.

[ㅇㅇ뭐라디;]

[엑시트최효명: 갑자기 전화가 와서 떠들어대는 통에 대충 짐작만 했어요. 진짜였네요]

묘하게 꺼린다는 느낌이었는데, 다음에 도착한 메시지를 보고 웃음이 터졌다.

[엑시트최효명: 걔 방송보다 더 시끄럽더라고요.........]

[엑시트최효명: 벌써부터 내 귀가 걱정인데]

웃음을 숨길 수 없어서, 박주영 선배에게 메시지를 보여 주자 그 또한 폭소를 터뜨렸다.

[주영 선배가 자기랑 같이 이비인후과 갔다오자신다]

[엑시트최효명: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대화를 지난 후.

아온과 남만덕 매니저를 만나서 최종적인 스케줄을 조정했다.

여행 일정은 이미 대략 나와 있었다. 워낙 막판에 합류한 것이다 보니 아온을 위해서 조정할 수 있는 날짜가 여의치 않았는데,

“괜찮아요! 녹음 좀 다음으로 미루면 되죠!”

당차게 소리치는 아온의 입을 남만덕 매니저가 막았다.

“……이틀 정도 겹칠 것 같은데, 그것만 조정하면 되니까 괜찮습니다.”

“읍읍읍!”

“알았습니다, 그 부분은 잘 부탁드릴게요.”

나는 웃으면서 인사를 한 다음, 출연 계약서에 사인이 되는 순간 곧바로 회의실 밖에 대기하고 있던 감독님들을 불러들였다.

“그럼 곧장 사전 인터뷰 진행하겠습니다.”

“우와! 나 이거 TV에서 봤어! 우와! 우와!”

또 그녀가 텐션 업 되는 것을 간신히 말린 뒤, 제대로 된 인터뷰 영상을 따낼 수 있었다.

출연진이 확정될 시점에 본격적인 인원 보충이 있었다.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촬영이 진행될 것이기에 정민우 팀장이 서둘러 인원을 보충해 줬는데,

“여어, 지환아. 잘 왔다.”

그게 바로 오지환이었다.

박주영 선배가 길 가던 일진처럼 어깨동무를 하자, 오지환이 움찔 놀랐다.

“야, 웃어. 안 웃냐?”

“하, 하하, 하하…….”

오지환의 메마른 웃음을, 그가 편집실에서 박주영 선배에게 많이 시달린 것을 아는 이들은 다들 모른 척했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결국 <언더커버 싱어> 팀이 전부 합류한 꼴이 됐다. 그리고 작가진도 보충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며칠 후.

우리는 시즌5의 촬영지 베트남으로 떠났다.

* * *

『<당신이 잠든 사이에> 시즌5

금요일 밤 9시, 목표 시청률 4%!』

최종 기획안 맨 앞에 써 붙인 글자를 보며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이 분위기라면…… 4%는 무난하게 이루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였다.

<언더커버 싱어> 때처럼 자잘하게 확률 보기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4%를 정말 이룰 수 있을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촬영은 순조로웠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네요.”

“하기 전에 고생했잖아. 이런 촬영도 있어야지.”

다낭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멤버들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모니터를 확인하는 권민헌 선배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의 말대로, 그 고생을 하고 최적의 캐스팅을 갖춰놓은 보람이 있었다.

제작진이야 언제나 고생하는 입장이고, 베트남이다 보니 더위와 습기, 벌레와도 싸워야 했지만, 그만큼 촬영분들이 쑥쑥 잘 뽑히고 있었다.

현준영이 잠깐 흔들어 놓긴 했지만 <당잠사>는 원래 리얼한 여행 풍경을 그리는 것을 가장 중요시하던 프로그램이었다.

스크립트가 정해져 있긴 하지만, 상황 변수에 따라 흐르는 대로 놔둔다.

모난 행동을 하는 멤버들은 아니어서, 주어진 상황을 완전히 깨는 행동을 하진 않았지만, 소소하게 의외의 상황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 중심은 보통 아온이었다.

“매워! 맵다! 오빠 물 좀!”

굳이 먹지 말라는 매운 베트남 음식을 굳이 시켜 먹어서는 매운맛에 버티지 못하더니, 옆의 효명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모습에 모두의 웃음이 터졌다.

효명이가 질렸다는 듯 생수병을 건네줬지만 아온이 그걸 열지 못하자, 반대편의 백종현이 뚜껑을 열어서 그녀에게 전해 준다.

아온의 여동생 캐릭터, 효명이의 오빠 같은 모습, 백종현의 로맨틱함이 한 컷에 빠르게 담겼다.

“천천히 마셔요, 누나.”

백종현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보는 모습을, 권민헌 선배가 놓치지 않고 살짝 클로즈업을 지시해 잡아낸다.

“저거저거, 눈빛 봐. 저렇게 여자를 쳐다본다니까.”

“완전 여우네요, 정말.”

뒤쪽에서 민희를 비롯한 작가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마이크에 잡히지 않을 만큼만 들려온다.

민희는 그 와중에도 수첩에 무슨 말을 슥슥 적어서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최효명-아온-백종현 트라이앵글 러브 라인?』

작가로서의 감이 온 모양이었다. 권민헌 선배는 그 수첩에다가 ‘검토’라고 적어서 돌려준 다음에, 다시 모니터에 집중했다.

그 이후에도 아온이 사고를 치고, 효명이가 수습을 하고, 백종현이 돕고, 준혁이 형님을 비롯한 다른 멤버들이 웃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스크립트에도 없는, 리얼한 신들이었다.

그렇게 넷째 날의 촬영을 마치고, 숙소에서의 거치 캠들까지 전부 꺼지고 난 다음.

효명이, 준혁이 형님과 자기 전에 한 잔을 하는 기회를 가졌다.

베트남 현지 맥주를 낮에 사다 두었기에, 숙소에 비치된 스낵을 들고 나와 로비에 모였다.

“이제 절반 지난 거죠?”

효명이가 묘하게 달관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피곤해 보이는구나.”

“아온이 쟤가…… 남은 기간 동안 또 얼마나 사고를 칠지 모르겠어요.”

머리를 쥐어짜는 모습에 준혁이 형님이 웃음을 터뜨렸다.

“왜, 난 재밌기만 하던데.”

“형님은 재밌으시겠죠. 수습은 전부 내가 하잖아요.”

“종현이도 도와주잖아.”

“아, 하긴. 종현이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긴 해요.”

내가 내미는 맥주병을 받아 든 효명이가 미간을 주무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뭐…… 사실 그래도, 걱정이 한결 덜어진 건 맞아요.”

“걱정?”

“<당잠사>를 다시 만든다고 했을 때부터 걱정은 했거든요. 원래 하던 사람들끼리 모이면 결국 같은 그림이 나올 텐데, 그걸로 괜찮을까 하고.”

무슨 그런 제작진 같은 걱정을.

그런데 준혁이 형님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기우였더라고요. 아온이도, 종현이도. 새 멤버들이 들어오니까 확실히 예전과 같으면서도 다른 느낌이라서. 아, 이게 제작진들의 능력이라는 거구나 하고 느꼈어요.”

어쩐지 우리 팀 전체를 칭찬해 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아온을 합류시킨 것이,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고 이루어낸 결과라는 것이 새삼 뿌듯할 정도로.

“앗, 형님들. 안 주무셨어요?”

그렇게 맥주병을 부딪치고 있는데, 백종현이 나타났다.

“너는 왜 나왔어?”

“목이 말라서 뭐라도 마시려고 했죠. 저도 껴도 될까요?”

백종현은 부딪쳐 보니, 효명이와는 다른 의미로 친화력이 있는 스타일이었다.

뭐랄까, 해맑다고 해야 할까.

효명이가 그래도 사회생활을 많이 해서 싹싹하다는 이미지라면, 백종현은 그런 개념조차 없이 그저 성격이 좋은 거라는 이미지였다.

그래서 아온과 부딪쳤을 때, 도리어 연하남 같은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중이었다.

그에게도 맥주를 건네주자 ‘감사합니다’ 하고 또박또박 인사를 하고는, 시원하게 맥주를 꿀꺽 삼켰다.

“촬영 힘들지 않아요?”

촬영이 시작된 이후 이렇게 마주 앉게 된 것은 처음이라 그렇게 물었다.

“전혀요. 하루하루 정말 재밌어요.”

사전 인터뷰에서도 기대가 된다는 말밖에 하지 않았는데, 그 표정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TV에서만 보던 <당잠사>를 이렇게 제가 찍고 있으니까, 사실 아직 어안이 벙벙해요. 그래도 열심히 해 보려고요.”

백종현이 만들어 주는 그림도, 아온만큼이나 신선한 느낌이 많았다.

본인도 이렇게 의욕적이니 새삼 옳은 캐스팅이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남은 촬영도 잘 부탁할게요.”

“예, 저도요.”

“너희끼리 건배하지 말고 같이해.”

“앗, 저도.”

효명이와 준혁이 형님도 끼어서 남자 넷이서 건배를 했다.

그렇게 평화로운 넷째 날의 밤도 지나갔다.

다섯째도, 여섯째 날도 마찬가지였다.

총 8일간의 촬영이, 정말로 무서울 정도로 별일이 없이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무서워졌다. 항상 이럴 때,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이 생기곤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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