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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성공할 확률 100%-91화 (91/200)

91화 프로필

섭외해야 할 출연진 2명의 회사가 동일하다는 건, 내 입장에선 참 좋은 일이었다.

물론 2명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상황이어서 그런 거지만.

해외 투어 중 잠시 입국한 효명이와, 지방 촬영 중에 서울로 온 준혁이 형님의 시간이 절묘하게 맞은 날이었다.

효명이와 준혁이 형님은 플래티넘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라도 어긋났으면 한 달 뒤에나 만났을 거예요.”

한쪽은 한국을 빛내고 있는 톱 아이돌, 한쪽은 굴지의 톱배우.

그런 대단한 두 사람이 내 앞에 나란히 앉아 있다니. 참 몇 번을 보아도 적응이 안 되는 그림이다.

효명이는 그렇게 너스레를 떨더니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렇게 회사에서 보니까 괜히 어색하네요.”

“그러게. 술집이어야 할 것 같은데.”

“전 괜찮으니, 두 사람만 좀 덜 바쁘면 됩니다.”

“이거 할 말이 없네.”

그런 농담을 잠깐 나눈 뒤, 나는 기획안을 내밀었다.

“오늘 용건은 이것 때문입니다.”

처음엔 밋밋한 반응이었던 두 사람은, 기획안 첫 장에 대문짝만하게 적힌 글자를 보고 각각 놀란 반응을 보였다.

효명이는 입을 떡 벌렸고, 준혁이 형님은 못 믿겠다는 듯이 눈을 깜빡였다.

“이건…… <당잠사>?”

“네. 시즌5 만들려고 합니다.”

두 사람이 눈이 커지더니 기획안을 재빨리 들추었다.

“방 PD님 복귀하셨어?”

“아뇨. 권민헌 PD님을 중심으로, 새로이 만들어 보고자 하고 있어요.”

“허어……. 혹시 전에 이야기하려다가 안 한 이야기가 이거였어요?”

“맞아.”

엑스트의 국내 특별 콘서트 날, 뒤풀이 2차에서 효명이에게 이 이야기를 하려고 망설였다가 결국 하지 못했다.

군대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에…… 이 용건을 말하기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효명이가 합류해 준다고 확정했더라면, 서인하 국장이나 왕이범 이사를 설득할 때 좋은 카드가 됐겠지만…… 고작 내 이득을 위해서 고민에 잠겨 있는 효명이를 이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두 사람이 기획안을 살피는 동안 이야기했다.

“누구보다 바쁘신 분들이라는 건 저도 잘 압니다. 그래도…… <당잠사>를 다시 만드는 것에 있어서 준혁이 형님이나, 효명이도, 둘 다 빠뜨리고 갈 수가 없어요. 효명이는 군대 일이 있긴 하지만…… 말 안 하면 서운해할 것 같아서.”

“안 하셨으면 진짜 형 안 봤을 것 같은데요? 저 군대 미루기로 했거든요.”

“뭐?”

“2년 공백이 타격이 크지 않을 거라고 형이 얘기해 주긴 했지만…… 그래도 같이 고생한 멤버들하고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요. 창호도 같이 미루기로 했고.”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일이 잘 풀리려나 보다.

그사이 마지막 장을 넘긴 준혁이 형님이 나를 다시 보았다.

“아직 촬영 일정이 안 정해졌네?”

“예. 출연진들의 의견을 모두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도 편성은 있을 텐데.”

“6개월 안이에요. 그 안에만 찍어서 내보내면 됩니다.”

기획안에는 거기에 대한 이야기는 나와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 두 사람에게 굳이 숨길 이야기는 아니었다.

“출연진 전부의 스케줄을 맞추기는 쉽지 않을 텐데…….”

“전 괜찮아요.”

효명이가 입을 열었다.

“무조건 할 거예요, 전.”

기뻤지만, 마냥 기쁘다고 표현할 순 없어서 짐짓 표정 관리를 했다.

“아니, 너도 바쁘잖아. 당장 너 일이 몇 갠데 그래.”

투어도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아온의 데뷔 앨범 작업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군대를 미루고 재계약하는 쪽으로 추가 기울었다고는 했는데, 그럼 또 내가 모르는 앨범 예정도 있을 거고. 저렇게 손쉽게 말할 상황은 아닐 텐데.

하지만 효명이는 다른 가정 따윈 듣지도 생각지도 않겠다는 듯 단호박처럼 말했다.

“괜찮아요. 조정하면 되죠. <당잠사>가 다시 만들어진다는데, 저희가 안 하면 누가 해요. 그렇죠, 형님? 하실 거죠?”

효명이는 준혁이 형님마저 붙들고 늘어졌다.

그래, 저렇게 나올 녀석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그때는 말조차 못 꺼냈던 것이다.

감사한 일이었다, 참으로.

나는 준혁이 형님을 보았다.

<당잠사>가 부활하는데, <당잠사>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배우 류준혁이 없으면 안 된다.

사실상 모든 출연진 중 가장 절실한 캐스팅이었다.

“너희 혹시 내가 거절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네?”

“이거 너무 그렇게 나오니까 기분 나쁘네.”

준혁이 형님이 짐짓 잘생긴 눈썹을 찡그리고 나를 보았다.

“대한이 너랑 내가 이제는 이렇게 내외할 사이는 아닌 줄 알았는데, 그건 내 착각인가?”

“그럴 리가요. 항상 좋은 형님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 나도 너를 좋은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방송계에서 친한 사람이 잘 없는데, 방수정 PD님 다음으로 믿을 수 있겠다 싶었고. 그런데 너무 효명이랑 대하는 태도가 다른 거 아니냐?”

“…….”

내가 말문이 막혀 어버버 하고 있자, 효명이가 급히 끼어들었다.

“형님, 그게 아니라…… 형님이 너무 분위기 잡으셨어요. 마치 거절할 것처럼.”

“내가 그랬다고? 그냥 업무 이야기니까 진지하게 듣고 있었을 뿐이야. 너희가 너무 넘겨짚은 거지.”

간단히 대꾸해 효명이의 입을 다물게 한 다음, 준혁이 형님이 나를 다시 보았다.

“나도 괜찮아. <당잠사>라면 꼭 하고 싶어. 효명이처럼 막무가내로 하겠다고는 못하겠지만, 어떻게든 여건은 조절하면 되고. 그러니까.”

그가 내 굳은 얼굴을 보더니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어렵게 부탁할 필요 없다는 거야. 좋은 형이라며. 공사 구분도 좋지만, 넌 좀 뻔뻔해질 필요가 있어.”

“……어, 그, 죄송합니다.”

효명이에 비해, 나도 모르게 심적으로 준혁이 형님을 멀게 느끼고 있었나 보다.

나도 몰랐는데, 그것이 행동으로 드러나 도리어 준혁이 형님이 신경 쓰게 만들어 버렸다.

난 더더욱 죄송스러운 마음이 되어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자 준혁이 형님은 다시 편하게 웃음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또 너무 그렇게 사과하진 말고. 대신 한 가지만 묻자. 우리 그때 했던 약속은 잊지 않았지?”

“그럼요. 언제든 말씀 주십시오.”

“그래. <당잠사> 하면서 사이사이 이야기 좀 해 보자.”

“예.”

두 사람의 캐스팅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자세한 출연 계약서는 추가로 회사랑 나누어야 하지만, 출연자들의 마음이 이렇게 확고하니 걱정할 이유는 없었다.

매니저들을 통해 빈 스케줄을 공유하기로 한 뒤, 나는 다시 둘과 헤어졌다.

“준혁이 형님이랑 마지막에 한 이야기가 뭐예요? 나 빼고 둘이서 무슨 약속을 했대요?”

헤어지는 길에 효명이가 그렇게 물었지만, 나는 고개를 젓고 말해 주었다.

“나중에 이야기해 줄게. 기대하고 있어 봐.”

“아놔, 복선을 뭘 그리 대놓고 깔아요. 사람 궁금하게. 외삼촌이 이렇게 조카를 버리나?”

투덜대는 효명이에게 나는 그냥 웃어 보이기만 했다.

* * *

[이민희작가: 차지효 씨 합류하시겠대요]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민희가 그렇게 알려왔다. 부담을 느끼면서 갔지만 그래도 훌륭히 업무를 수행한 모양이었다.

[최효명, 류준혁 합류 확정했습니다. 근데 스케줄 조정은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민희작가: 역시 최강 커플은 여전하구나. 류 배우님까지 삼각관계인 건 아니지?]

이럴 때 보면 평소 같은데, 참…….

어쨌든 민희와도 확실하게 이야기할 건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회사로 복귀하는데, 그때까지 권민헌 PD의 답신은 돌아오지 않았다.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권민헌 PD: 불발됐다. 힘드시다네]

권민헌 PD가 맡은 출연진은 50대의 여가수였다. 9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분이었는데, <당잠사>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요전까지의 일로, <당잠사> 시즌3가 끝난 이후에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기사가 떴다.

원인은 다름 아님 후두암.

이후로 방송 활동은 쉬고 치료에만 전념하고 있다고 하던데, 그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회사로 돌아온 권민헌 PD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아직 회복되려면 멀었대. 다행히 수술은 잘되었다는데, 1년 정도는 요양하셔야 하는 것 같아.”

“안타깝네요……. 가수에게 후두암이라니, 회복이 잘되셔야 할 텐데.”

“<당잠사> 꼭 잘 만들라고 해 주시더라. 요양 중에 챙겨 보시겠다고.”

출연이 가능할지 확인하러 갔다가, 오히려 잘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만 받아서 오는 격이 되어버렸다.

그 이후로도 캐스팅 과정이 무작정 순탄하지는 않았다.

곧바로 답이 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닌 경우가 더 잦았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6개월인데, 캐스팅 작업만으로도 한 달이 훌쩍 넘어갔다.

그사이 제작진을 꾸미고 여행 계획을 짜면서, 나는 서브 일을 하나씩 배워 나갔다.

따지고 보면 같은 PD의 영역인데도 메인과 서브는 달랐다. 서브는 뭐랄까, 막내 위치에 있었던 때와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서브는 군대로 치면 분대장 같은 역할이었다. 중대장, 소대장이 잡아 둔 길을 따라 분대원들을 잘 이끌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거나 다름없었다.

가령 지원부 일정이 꼬이면 메인의 지시를 받아 가장 먼저 뛰어가서 조율해야 하고, 여행사와 일정이 꼬이면 한밤이라도 달려가야 했다.

<언더커버 싱어> 때 내가 박주영 선배에게 부탁했던 일들이 괴로운 일이었다는 걸 그제야 실감했다.

실제로 부딪치는 게 얼마나 번거롭고 힘든 일인지 새삼 확실히 깨달을 수 있는 과정이었다.

사실…… 서브한테 이렇게 권한을 주어도 되는 거였으면, 좀 더 떠넘길걸 하는 아쉬움이 장난처럼 들긴 했다.

한편으로는 서브로서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가르쳐 주고 있는 권민헌 PD가 정말 좋은 선배라는 것도 깨달았다.

차츰차츰 내 역할에 익숙해지고 있을 즈음, 확정 캐스팅 리스트가 드디어 나왔다.

최효명, 류준혁, 차지효를 비롯하여 왕년의 출연진 중 6명이 확정되었다.

“이 정도면 그래도 구색은 충분히 갖췄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리스트를 적어둔 화이트보드를 보면서 민희가 뿌듯해했다. 그 심정이 우리 <당잠사> 팀 전체의 것과 같았다.

8명 중 6명이면, 그래, 한 달 동안 뛰어다닌 보람이 있었다.

“이 정도면 제작비도 좀 더 뽑을 수 있겠죠.”

“협찬팀에 다녀오겠습니다.”

한 달 동안 생긴 새로운 걱정이라면, <당잠사> 팀에 예전 같은 협찬이 붙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협찬이 붙어야 광고가 붙고, 광고가 붙어야 제작비가 생기는데, 시즌4에서 말아먹은 전적이 너무 커서 협찬팀에서도 쉬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아직 외부에 <당잠사> 부활 건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탓도 있었는데, 그 와중에 일단 이 리스트는 힘이 될 것이다.

서인하 국장의 컨펌까지 받은 리스트를 가지고 협찬 담당을 만나 열심히 협상을 하고, 10분쯤 뒤에 돌아왔다.

“일단 PPL 리스트 좀 더 추려서 보여 주겠다고 합니다.”

“다행이네. 여행사에도 보내서 현지 관광청이랑 교섭해 달라고 해 줘.”

권민헌 선배의 지시를 받아 또 움직이려고 하는데, 박주영 선배가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돌아왔다.

선배는 새로 시즌5에 합류시킬 캐스팅 후보군과 직접 조율을 하고 있었다.

“못 하겠답니다. <당잠사>라고도 밝혔는데, 시즌4처럼 되는 거 아니냐고 그러네요.”

생각보다 <당잠사> 시즌4가 남긴 여파가 큰 것 같았다. 더욱이 이렇게 된 마당에 방수정 PD가 없는 <당잠사>가 의미가 있느냐는 의견도 지배적이었다.

후보군을 추린지는 꽤 되었지만, 계속 불발, 불발, 불발이었다.

“캐스팅 새로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할 수 없지. 프로필 들어온 것 좀 더 보고 뒤져보자.”

“저는 작가들이랑 인터넷 좀 뒤져볼게요.”

팀원들이 다시 컴퓨터에 들러붙는 것을 보고, 나는 다녀오겠다는 말도 못 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여행사에 연락해서 확정 출연진 리스트를 보내고, 현지 관광청과 연계를 부탁한다고 말한 뒤에, 곧장 사무실로 돌아가진 않았다.

휴게실에 캔커피를 하나 들고 앉아서 핸드폰을 꺼냈다.

[89%]

‘<당신이 잠든 사이에> 시즌5 부활을 위한 최적의 기획안 작성’의 확률이었다.

한 달 동안 유지하고 있었지만, 90% 위로 올리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외부 문제이기도 할 거고, 캐스팅 문제이기도 할 것이고, 이 부족 확률에 여러 변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 확률을 100%로 만드는 것에 집착할 때는 이미 지난 것 같았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 시즌5 부활을 위한 최적의 기획안 작성’의 확률 보기 사용을 종료하였습니다.]

[100% 확률을 달성하지 못하였습니다.]

[포인트가 적립되지 않습니다.]

이어서, 현재 적립된 포인트가 떴지만 신경 쓰지 않고 일어섰다.

“커피 드시고 하세요.”

휴게실에서 뽑아온 캔커피를, 일하고 있는 팀원들에게 돌린 다음 화이트보드를 쳐다보았다.

여섯 명의 출연진.

저기에 두 명을 추가해서 최적의 출연진을 구성해야 한다.

[88%]

12%가 부족하다.

높은 수치이긴 하지만, 100%에 가까워질수록 1% 올리기도 까다로운 것을 생각하면 결코 만만한 숫자도 아니었다.

<당잠사> 부활에 걸맞은, 전 시즌 출연진과도 계보를 이어갈 수 있는 출연진으로 누가 있을까.

“……영 마땅한 사람이 안 보이네.”

“인터넷에서 뒤지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 같아요.”

“눈 빠지겠네. 어휴.”

권민헌 선배와 프로필을 뒤지고 있던 박주영 선배가 투덜거렸다.

“애초에 프로필 받은 게 너무 적어. <당잠사>가 이렇게까지 망했나.”

“그중에서 효명이를 찾아냈던 강대한 서브님. 혹시 이번엔 눈에 띄는 애 없어?”

민희가 내게로 화살을 돌렸지만,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기획사 쪽에서 들어온 프로필이 적으니 선택할 수 있는 폭 자체가…….

“아.”

내가 무심결에 낸 소리에 모두가 나를 쳐다보았다.

“뭐야, 좋은 사람 떠올랐어?”

“그건 아닌데……. 권 선배, 이런 것도 가능할까요?”

“무슨?”

“프로필 숫자가 절대적으로 적으니까…… 많이 들어오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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