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90화 (90/200)

90화 메인 작가

나와 박주영 선배, 민희와 구은경, 도채린 작가는 유수현 작가와 권민헌 PD가 만나고 있을 카페 근처의 감자탕집에 모여 있었다.

메뉴 선택은 민희가 했다. 거기서 다들 저녁 겸 반주를 먹으며 회의를 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권민헌이 올 때까지 사실상 회의는 회의가 아니었다.

“너는 그래서, 부정적으로 보는 거야?”

민희가 감자탕 국물은 뒤적이면서 물어서, 나는 착잡한 얼굴을 해 보였다.

“방 PD님이 없는 <당잠사>잖아. 의리를 생각해서라도 본인은 합류 안 하려고 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방 PD님이 없으니까 자기라도 있어야겠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잖아.”

도채린 작가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유수현 작가와 일해 본 경험이 있다.

방수정 PD에 비해 유수현 작가는 정에 이끌리는 사람이다.

방송에 대한 정이 있고, 그때의 제작진에 대한 정이 있을 테니 거기에 걸어 보자는 민희의 의견이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부정적인 건 나뿐이었다.

나도 AGD 앱이 아니었으면 긍정적으로 생각했겠지. 실제로 그랬으니까.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면 다행인 거지.”

어차피 결과를 가져올 권민헌 PD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자리. 그가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그냥 근황 토크만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잠시 후.

감자탕집 문을 열고 권민헌 PD가 들어섰다. 모두가 일어서려 하자 그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내가 연차가 좀 차이 난다고 해서 그러지 말자. 앞으로 함께 일할 거잖아. 편한 게 좋아, 난.”

그는 박주영 선배 옆의 빈자리에 앉았다.

“어떻게 되셨어요?”

구은경 작가가 조급하게 묻자, 재킷을 벗던 권민헌 PD가 핏 하고 웃었다.

“거절하시더라.”

“진짜요?”

권민헌 PD 앞에 고기 한 점을 들어 옮겨 주던 박주영 선배가 놀라서 나를 돌아보았다.

“너 인마, 강촉새. 네가 망친 거야. 말이 씨가 된다고, 인마.”

“진짜 거절하실 줄이야……! 맘 돌릴 구석이 없으셨어요?”

“딱 잘라 거절하시더라고. 뭐라고 더 꼬셔 볼 수도 없었어.”

그가 빈 잔을 잡자 박주영 선배가 잽싸게 잔을 채웠다.

“그렇지 않아도 대한이 말 듣고 거절할지도 모른다고 마음의 준비는 했었어. 여러 조언도 들었고. 참여하진 않아도 응원하고 있겠다고 하시더라.”

“응원보다는 직접 와서 일을 해 주시지…….”

가장 아쉬운 것은 민희이리라.

유수현 작가와 와서 메인으로서 무게를 잡아 줘야 방송이 원활하게 굴러갈 테니까.

권민헌 PD가 잔을 들자 모두가 반사적으로 잔을 들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지은 그가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래서 일단 이 멤버로 시작을 하기로 하자. 팀장님도, 국장님도 협조해 주시기로 하셨고, 작가님 말의 의미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것 같았으니까.”

“작가 쪽도 충원해 주시겠죠?”

“그럴 거야. 약속하셨으니까. 대신에…….”

잔을 든 채 권민헌 PD는 민희를 쳐다보았다.

“이민희 작가 위로 오진 않을 거야.”

“네?”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 때문이다.

한 박자 늦게 민희가 작게 소리를 질렀다.

“그…… 저더러 메인을 하라고요?!”

“유 작가님도 추천하시더라. 잘할 거라고. 나도 잘할 거라고 보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 않을까?”

“맞아요!”

“잘하실 거예요!”

구은경 작가, 도채린 작가가 이때다 싶은 타이밍에 동조하고 나섰다.

박주영 선배도 끄덕끄덕.

권민헌 선배는 마지막으로 나에게 눈길을 던졌다.

“대한이 넌 어떻게 생각해? 민희가 <당잠사>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럼요.”

나는 단언했다.

“유 작가님이 거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부터, 두 번째 후보는 바뀐 적이 없습니다. 민희 아니면 누가 하겠어요.”

민희의 얼굴이 소주 두 병은 마신 것처럼 벌게졌다.

저렇게 술 약한 애가 아닌 건 뻔히 아니까, 부끄러워하는 것이리라.

그게 그냥 칭찬을 부끄러워하는 거면 차라리 낫겠는데…….

사실 나도 아직 민희와는 단둘이 있진 못하겠다.

그래도 내 마음을 분명히 할 생각이긴 했다.

일단은 <당잠사>에 전력투구를 한 다음에.

“봐, 우리 팀 서브 PD도 저렇게 이야기하잖아. 민희 네가 적격이야. 해 줄 거지?”

권민헌 선배는 잔을 노골적으로 민희 앞으로 내밀었다. 벌게진 얼굴로 민희가 흠칫 놀라며 그 잔을 내려다보더니, 안절부절못하고 입술을 달싹였다.

“새, 생각 좀 하게 해 주세요. 내일까지 말씀드리면 안 될까요?”

“그래. 쉽게 오케이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천천히 빨리 생각해 봐.”

“어느 쪽이라는 겁니까, 선배.”

박주영 선배가 낄낄대면서 분위기를 풀었다. 그가 건배를 종용하자 결국 민희도 다시 잔을 들어 모두가 한마음으로 건배했다.

“잘 부탁해.”

“잘 부탁합니다!”

<당잠사> 시즌5 팀의 첫 회식은 그렇게 무르익어 갔다.

* * *

[‘<당신이 잠든 사이에> 시즌5 부활을 위한 최적의 기획안 작성’의 확률을 사용 중입니다.]

서브를 하게 된 이후로 권민헌 PD와 수시로 만나서 기획안을 꾸몄다. 가장 중요시한 것은 제작진의 구성.

그중 유수현 작가가 합류하지 않을 것을 알게 된 다음에는 1순위로 민희의 이름을 기획안에 적었다.

[74%]

나쁘지 않은 수치였다.

<당잠사>를 새로 만드는데, 민희 말고 메인에 어울리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다음 날. 모니터로 초안을 다듬던 중에 확률이 변동되었다.

[76%]

미미한 상승이었지만, 왜 뛰었는지 알 것 같았다.

잠시 후, 단톡방에 권민헌 PD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권민헌PD: 여러분 축하합시다.]

[권민헌PD: 이민희 작가가 메인 작가 자리를 수락하셨습니다]

[구은경작가: (박수)(축포)(박수)]

[도채린작가: 이 작가님! 축하드려요! (만세)]

[이민희작가: 부끄럽게들 왜 이러세요...]

[이민희작가: 열심히 하겠습니다. (빙글)]

내가 폰을 보면서 히죽 웃고 있으니 옆자리에서 박주영 선배가 뭐 하냐는 식으로 나를 봤다가, 재빨리 자기 스마트폰을 꺼내 보았다.

“오오, 민희가 오케이했네? 그럼 메인까지 드디어 정해진 거네.”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했군, 하면서 박주영 선배가 흐흐흥 하고 콧노래를 불러댔다.

그걸 보고 피식 웃고 있는데 한차례 더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권민헌PD: 대한아 초안 마무리됐냐?]

[지금 막 끝났습니다]

[권민헌PD: ㅇㅋ 뽑아놔. 국장실 들어가자]

나는 기획안에 적혀 있는 민희의 이름 옆에서 ‘(가)’ 자를 떼고, 출력했다.

출력이 끝났을 때쯤 권민헌 PD가 사무실에 얼굴을 보였다.

“뽑았어? 가자. 안에 계신대.”

“예.”

정민우 팀장 자리는 비어 있지만, 이 일은 한동안 직접 서인하 국장에게 보고하기로 되어 있어서, 괘념치 않고 국장실로 향했다.

국장실에서 서인하 국장은 기획안을 훑어본 뒤 오케이를 내렸다.

“잘 짰네. 여행지는 이 세 곳으로 압축한 거야?”

“네. 출연진들 일정도 같이 봐야 해서, 최대한 많은 출연진이 복귀할 수 있는 여행지로 선택하려고 합니다.”

<당잠사>는 남녀 각각 4명씩, 총 8명의 출연진을 기본으로 한다.

제작진은 최대한 열심히 복귀시켰으니, 이제는 출연진을 복귀시키는 게 중요했다.

여행지가 멀어지거나 스케줄이 맞지 않으면, 하고 싶다고 해도 못할 수 있으니 여행지 선택을 뒤로 미루고 출연진들과 교섭을 우선으로 하기로 했다.

“좋아…… 그럼 이제 뭐가 필요해?”

“촬영 들어가기 전까지 PD, 작가진 보충만 좀 더 해 주십시오.”

“그 이야기는 이미 해 놨으니까 1팀이나 5팀에서 정리될 거야. 여행사는 콘택트해 놨어?”

“네. <당잠사> 같이 한 곳에 이미 연락 넣어서 받은 여행지 리스트입니다.”

“토마토투어는 아니지?”

“거기 후보로 넣으면 가만 안 두실 거잖아요.”

피식 하고 웃으면서 농담하는 서인하 국장에게, 우리도 농담으로 받아쳐 줬다.

현준영과 커넥션을 가지고 있던 그 여행사는 결국 우리 NBS 전체와 계약이 파기되었다.

배상까지 받아 내려던 것을 그래도 거기까지는 심하다는 여론이 있어서 진행되진 않았는데, 뒤에 들으니 신호현 이사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참 신호현 이사도 대단한 사람이다. 어디까지 손이 뻗어 있는 건지 짐작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그래서 우리는 원래 시즌1부터 같이한 여행사를 다시 콘택트했고, 그들도 흔쾌하게 진행해 주었다.

“그럼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겠네.”

서인하 국장의 눈빛이 진중해졌다.

“알겠지만, 이 건은 윗분들에게도 꽤 모험에 가까워. 왕 이사님을 힘을 써 줘서 통과는 시켰지만, 망한 프로그램을 다시 만든다는 건 그만큼 부담이 되는 일이야.”

“알고 있습니다.”

“<당잠사>를 부활시킨다는 의의만으로 끝날 문제가 아냐. 기왕 뽑은 칼, 계속 써야 할 거 아냐?”

“맞습니다.”

“요는, 시청률과 편성이지.”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면서 빠질 수 없는 것이, 편성과 목표 시청률.

다행이면 다행인 것은, <당잠사> 시즌4가 3%대에서 막이 내렸다는 사실이었다.

“일단 금요일 9시, 원래 시간대에 들어갈 거야. 목표는 최대 반년 안. 할 수 있겠어?”

권민헌 PD와 나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맞추었다.

어차피 거부할 권한 같은 것은 없지만, 마음을 다잡을 시간이 필요했다.

“예, 물론입니다.”

권민헌 PD가 대답하고,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서인하 국장은 우리 둘을 번갈아 보고는 기획서를 다시 되돌려 주었다.

“그래, 해 보자. 우리.”

* * *

<당잠사> 시즌5 팀 사무실이 배정되고, 예전처럼 연출진과 작가진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첫 회의를 마쳤다.

“가장 중요한 네 명, 이분들은 나랑 강대한, 그리고 이민희 작가가 맡을게.”

효명이와 준혁이 형님, 이 둘은 내가 책임지고 데려오기로 했다.

자신은 있었다. 문제는 효명이의 군 문제, 그리고 준혁이 형님의 스케줄이었다.

하지만 걱정되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이봐, 강 서브님.”

“예, 이 메인님.”

각자 출연진들에게 연락을 돌리러 가는 사이, 민희가 나를 불러냈다. 얼떨결에 휴게실로 따라갔다가, 눈을 부라리는 그녀의 반응에 나는 살짝 얼어붙었다.

“제가 뭘 잘못했나요.”

“왜 너는 말이 없어.”

“응?”

그녀가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한참 화면을 조작한 다음 내 앞에 들이밀었다.

“딴 사람들은 다 열심히 하라고 이렇게 응원해 주는데, 왜 너는 한마디 말도 없냐 이 말이야. 내가 고작 너한테는 그것밖에 안 돼?”

“…….”

끄응.

나로서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당잠사>를 만드는 거라서, 사적인 감정은 최대한 미뤄 두고 싶은 건데.

“내가 말을 안 했던가.”

“안 했거든요.”

스마트폰을 집어넣으며 고개를 휙 돌리는 걸 보니, 확실히 삐쳐 있다.

난 헛기침을 하고서 말했다.

“메인 작가 된 거 축하해. 나도 열심히 서포트할게. 너만큼 좋은 사람도 없잖아.”

그녀가 슬쩍 눈을 돌려 나를 노려보았다.

“진심 맞아?”

“당연하지.”

“알았어. 그리고, 미안해. 괜히 불러내서 이런 소리 해 대서.”

“음. 차지효 때문에 그래?”

차지효는 여성 출연진 중 대장이라고 할 수 있는 베테랑 중견 여배우다.

예능에도 다수 출연하여 예능감도 좋고 인지도도 좋은데, 민희의 교섭 담당이 바로 차지효였다.

“쉽지 않은 분이시지.”

“응. 그분은 아무래도 유 작가님 라인이니까…….”

민희가 느끼는 불안함의 이유는 그것이다. 차지효가 애초에 <당잠사>에 합류한 것이 바로 유수현 작가 때문이었다.

지금은 유수현 작가가 없고, 그 자리를 민희가 채우고 있는 상태. 사람이 바뀐 터라, 그녀가 합류 요청을 받아 줄지에 대해 불안한 모양이었다.

“유 작가님이 없다고 해도 너는 그 자리를 충분히 메울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일단 부딪혀 보는 게 네 장점이잖아.”

“그건 네 장점이지. 단점이기도 하고.”

받아치는 거 보니 그래도 기분이 좀 풀린 것 같았다.

민희는 흠흠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말했다.

“그래도, 고마워. 덕분에 좀 기운이 나네. 갔다 올게.”

“잘 다녀오세요, 메인 작가님.”

민희가 휴게실을 나가는 모습을 나도 부드럽게 웃으며 배웅했다.

<언더커버 싱어> 때 메인으로서 뛰어다닐 때는, 민희가 처음부터 메인 작가를 희망했기에 이런 일이 없었다.

하지만 다시 같은 팀이 되고 이런 모습도 보게 되니, 새삼 내 위치에 대한 실감이 났다.

“이런 것도 서브의 일인가.”

어느 쪽이든 좋은 경험이 쌓인 듯한 기분을 느끼며, 나도 일을 시작했다.

“어, 효명아. 시간 좀 내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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