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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성공할 확률 100%-88화 (88/200)

88화 서브 시킵시다

<당잠사> 시즌5의 제작이 컨펌이 났다고 해서 곧장 제작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야 막 <언더커버 싱어>를 마쳤기 때문에 관련 판권 진행 등의 일만 처리하면 되었다.

하지만 권민헌 PD는 현재 지원 업무도 있고 팀 업무도 있어서, 그것들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다소 시간이 필요했다.

“일단 1팀 업무는 정 팀장님이 도와주신다고 했어. 지원 업무도 서 국장님이 곧 노선 정리해 주신다고 했으니까 금방 합류할 수 있을 거야.”

“그럼 그때까지 저는 가능한 인원은 전부 접촉해 보겠습니다.”

“알았어. 아, 그리고. 초안 보내놔.”

권민헌 PD에게는 더 이상 숨기려야 숨길 수가 없었다. 나는 그냥 포기하고 초안을 메신저로 보냈다.

“검토해 보고 연락 줄게.”

“예. 저도 중간 중간 연락하겠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헤어진 뒤,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박주영 선배였다.

일단 혼날 각오를 하고 그를 카페로 불러내서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당잠사>를 다시 만든다고? 좋은 소식이 그거였어?”

“네. 왕 이사님 지시 사항이라고 합니다.”

“이라고 합니다?”

“네……?”

어째 말투가 수상쩍은데.

“뭐, 됐고. 그래서, 메인이 권민헌 선배고?”

“예.”

이해는 아주 간단했다.

선배는 끄덕끄덕하고 뭔가 생각하는 얼굴이더니,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아니, 우리 강아싸가 또 주제넘는 짓 했구나 싶어서.”

“강…… 아싸요?”

“너 아까 복도에서 괴성을 질렀다던데? ‘아싸아아아아아!’ 하고. 사내 메신저에 다 퍼졌어.”

아니, 그냥 ‘아싸!’였는데.

하여간 뭘 갖다붙이는 데는 선수다, 선배는.

“아무튼…… 제가 저지른 일 아닙니다만?”

“웃기시네. 속일 사람을 속여야지.”

박주영 선배는 대놓고 비웃었다.

“국장실에 갔다가, 이사실에 갔다가, 그러고 나서 이런 소식이 날아왔는데, 네가 저지른 일이 아니라고? 네가 저지른 일도 아니어서 복도 한복판에서 ‘아싸아아아아아앗!’ 한 거고? 내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무조건 너야.”

“…….”

저기…… 아까보다 ‘아싸!’가 파이팅이 넘치는 것 같은데요.

어쨌든 선배가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최대한 항변을 했다.

“저는 불려 가서 그냥 이야기를 들었을 뿐입니다. 진짜예요.”

“아, 예예. 그러세요. 참으로 그러시겠습니다.”

박주영 선배는 귀를 후비적거리며 대꾸했다.

“권 선배가 <당잠사> 만들자고 먼저 나섰을 리가 없고, 내 주변에는 그럴 만한 놈이 너밖에 없거든. 너밖에 없다는 믿음이야, 이건.”

칭찬인지 비꼬는 건지, 비꼬는 게 더 비중이 큰 듯한 말투였지만 그는 그래도 웃고 있었다.

“잘났다, 이 녀석아. 그걸 숨기려고 아주 재밌었겠구만.”

나도 더는 감출 수가 없었다.

“재밌진 않았습니다. 기대는 되었습니다만.”

자백이었다.

“그래. 뭐, <당잠사>가 다시 만들어진다면 나도 좋지. 회식 때 오랜만에 다들 좋았잖냐.”

“그쵸. 저도 그때부터 생각했던 겁니다.”

“거봐, 네가 저지른 거 맞네.”

뭐야, 난 좀 전에 자백했는데? 이 정도도 못 알아채면서 섬나라 명탐정 대사는 무슨.

난 큼 하고 헛기침을 한 뒤 말을 바꿨다.

“아무튼. 권민헌 선배님이 일이 정리되는 대로 제작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당연하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안 해도 알아. 같이 하자는 거잖아. 당연히 해야지. 나를 빼고 하면 이번에는 진짜 때릴 거다.”

박주영 선배는 매우 그다운 대답을 내놓았다. 그래, 이런 호쾌한 맛이 있어야 선배지.

“저번에도 진짜 맞았던 것 같은데.”

“그건 진심이 아니었어. 하지만 이번엔 진짜 진심으로 때렸을 거야. 너 전치 8주 각오했어야 하는 거야, 지금 건.”

그다지 무섭지 않은 협박을 하고 피식 웃은 뒤, 박주영 선배가 아련한 눈빛을 했다.

거기에 담긴 감정은 나도 알 것 같아서, 그냥 커피나 홀짝인 다음 말을 기다렸다.

“다 모이긴 힘들 텐데…….”

“그렇겠죠.”

“민희한테는 말했어?”

휴가 복귀 이후 민희 얼굴을 보진 못했다.

그러고 보니 나한텐 이 문제도 남아 있긴 하다.

그녀에 대한 감정, 그리고 그녀의 감정에 관한 문제.

하지만, 이 사실을 알리긴 해야겠지?

“지금 말해야죠.”

“이야, 강아싸 씨가 사람 다 됐네. 자기 애인 버리고 나한테 먼저 소식을 전하고.”

“애인 아니라고요.”

가뜩이나 그 문제로 골치가 아픈데 선배가 놀리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정색을 하고 말았다.

“야, 뭘 정색을 하고 그러냐.”

‘죄송해요. 그러니까 그만 놀리세요.’ 하고 대꾸한 뒤 민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선배가 옆에 있는 게 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메시지를 보내는데 괜히 한참을 망설였을 것이다.

답장은 금방 돌아왔다. 개인 톡으로 보냈는데, 선배랑 같이 있는 단톡방으로 답장이 왔다.

[이민희작가: (최고)(최고)(최고)]

[이민희작가: 이 좋은 일을 나만 알 수는 없지!! 구은경 작가에게도 이 영광을!]

민희가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고 얼마 안 있어 구은경 작가한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구은경작가: (덩실)(댄스)(덩실)]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가슴 한편이 따뜻해졌다.

[박주영선배: 권 선배를 앞세워서 우리 강촉새가 저지른 일임]

[이민희작가: 당연히 그럴 줄 ㅋㅋㅋ]

“아, 선배. 그러지 마요…….”

당사자 없는 데서 하든가! 옆에 세워 놓고 톡으로 뭐 하는 거야.

그렇게 두 사람의 비웃음을 당한 뒤에, 나는 민희의 합류 의사를 물었다.

[이민희작가: 당연히 해야지. 안 할 줄 알았어? 근데 임 작가님한테도 말씀드려야 해]

[왜? 벌써 프로그램 정해졌어?]

[이민희작가: 3팀이던가에서 새 예능 만들어지는데 거기서 내가 와 주길 바랐다고 하더라고.]

[박주영선배: 오호, 우리 이 작가. 인기 많아졌어! (엄지척)]

[이민희작가: ㅋㅋㅋ 원래 잘나갔거든요? 암튼 일단 그거 거절부터 해야 할 것 같은데.]

[이민희작가: 일단 전화하고 오겠음]

그렇게 메신저를 통한 대화가 끝났다.

박주영 선배가 나를 보며 물었다.

“근데, 유 작가님은 어떻게 하냐? 친구인 방 PD님의 유산 같은 건데, 방 PD님이 없는 <당잠사>를 받아들여 주려나.”

“그 부분은 권 선배도 걱정했었습니다만…….”

권민헌 선배에게도 해 준 말을 나는 다시 입에 담았다.

“친구의 프로그램인 만큼, 이번 일을 좋게 생각해 주시지 않을까요?”

“선 넘네. 그건 순전히 네 추측이잖아. 너의 감을 믿기는 한다만, 이번 일은 감만으론 안 될 것 같은데.”

“설득해 봐야죠.”

“너 혼자?”

“아니요, 유 작가님한테는 권 선배랑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지금 촬영으로 해외에 가 계시다니까.”

유수현 작가는 특기를 살려서 여행 예능 팀에 들어가 있다.

<당잠사>처럼 시즌별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2주에 한 번은 국내나 해외로 로케를 떠나는데, 지금도 해외에서 촬영 중이라고 들었다.

돌아오는 것이 다음 주라고 하니, 그사이 준비해 둘 시간은 있었다.

“너는 그냥 안 끼는 게 좋을지도 몰라.”

“그럴까요?”

“그래. 선 넘는 거라니까? 어차피 권 선배가 메인이잖아. 유수현 작가님이 합류하신다면 유 작가님이 메인이 되는 거고. 메인과 메인끼리 만나게만 둬야지.”

하긴 그 말도 맞다. 내가 좀 들떠서, 주제 모르고 또 선을 넘을 뻔했다.

박주영 선배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아주 오랜만에.

오늘은 복권을 사야겠다.

“그럼 그건 권 선배한테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그래. 선배도 활약할 기회를 드려야지.”

그렇게 이야기가 정리될 쯤, 민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이민희작가: 당잠사 다시 한다니까 기뻐해 주시네. 자기는 안 필요하냐시던걸]

[이민희작가: 잘해 보래셔 응원한다고]

<드림 어게인> 때 본 임윤주 작가는 맺고 끊는 게 참 칼 같은 사람이었다. 공사가 정확하다 해야 하나.

그런 사람도 <당잠사>를 응원해 준다고 하니 괜히 더 힘이 나는 기분이었다.

“다시 재밌게 해 보자고.”

자기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확인한 박주영 선배가 그렇게 이야기해 줘서, 나는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강대한: 박주영 선배와 이민희 작가는 오케이했습니다.]

[강대한: 작가 쪽은 민희가 물어봐주기로 했고요]

[강대한: 카감님이나 음감님들은 주영선배가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권민헌은 지원을 끝내고 늦은 저녁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온종일 확인하지 못한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도착한 메시지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박주둥: 선배 다시 일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박주둥: 옛날처럼 재밌게 만들어보죠 우리]

[박주둥: 대신 서브는 강대한 저놈 시킵시다]

[박주둥: 서브로 막 굴리세요]

“훗. 이 녀석도 많이 쌓였었나 보네.”

<언더커버 싱어> 팀이 결성될 때의 이야기는 몇 다리 건너 대충 들었다.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후배의 입봉작에 서브를 선다는 건 선배로서 참 힘들었을 것이다.

입으로 다 하는 박주영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불 보듯 뻔하다.

그런데도 강대한에게 서브를 맡기자고 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사소하게 복수의 의미일 테고, 또 하나는 서브의 경험도 쌓게 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대한이 잘 챙기는구나.”

그렇게 감탄 아닌 감탄을 하면서 답신을 보냈다.

[나도 잘 부탁한다]

[서브 건은 일단 본인에게 물어보고 정하자]

[박주둥: 에에 뭘 물어봅니까 메인이신데 그냥 시키세요]

[박주둥: 메인이 구르라고 하면 굴러야지]

“대체 뭘 얼마나 당한 거야.”

권민헌은 웃으면서 메시지를 마무리한 다음, 다른 메시지들도 확인했다.

이민희나 구은경에게서도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마찬가지로 잘 부탁한다는 답변을 보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민희에게서 답신이 날아왔다.

[작가 이민희: 대한이만 빡세게 굴려주세요]

[작가 이민희: 믿어요 권PD님 (기도)]

“이 작가도 뭘 많이 당했나…….”

황당해하면서 메시지를 확인하는데, 서인하의 메시지도 보였다.

[서인하 국장님: 너한테 큰 짐을 지우는 것도 같은데, 그래도 잘할 거라고 생각해서 맡기는 거다. 알지?]

쉽게 답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몇 번 고민을 하다가, 권민헌은 답신을 써 넣었다.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보답하겠습니다.]

다른 할 말은 없었다. 그저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뿐.

답은 조금 있다가 돌아왔다.

[서인하 국장님: 그래. 일 있으면 언제든 말해.]

[서인하 국장님: 아 그리고. 대한이는 열심히 굴려라]

[서인하 국장님: 굴리면 굴리는 대로 잘하는 녀석이야]

“국장님까지…….”

이쯤 되자 권민헌은 의심을 해 봐야 했다.

<당잠사> 부활을 제안하고 결국 제작하게 만든 당사자가 강대한이라지만, 과연 팀에 합류시키는 것이 맞을지.

하지만, 장난스러운 생각이었다.

메시지에서 느껴지는 어조들은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믿으니까, 믿는 만큼 굴려서 실력을 늘려 주고자 하는 마음들로 보였다.

“참…… 대체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휘어잡은 거지.”

권민헌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강대한을 한번 겪은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감화되듯 모이게 된다.

서인하도 그를 인정하고, 바로 옆에 일한 박주영이나 이민희도 마찬가지.

<당잠사> 시즌2, 3을 함께한 강대한은 신기한 후배였다. 어느 순간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서브였던 권민헌의 일을 가져가기도 했고, 가져간 만큼의 성과를 보란 듯이 가져오기도 했다.

능력도 그 정도인데, 주변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까지 가졌다니. 솔직한 마음으로는 질투심도 느껴졌다.

“배울 데가 많네…….”

권민헌은 단순히 질투만을 느끼지 않았다.

후배라고 해도 배울 점이 있다면 배워야 한다. 권민헌은 후배의 능력을 애써 부정하고 이용해 먹으려는 생각 같은 건 일절 해 본 적이 없었다.

“서브라……. 확실히, 입봉은 했지만 서브 경험은 없으니까.”

서인하가 국장실에서 <당잠사> 부활을 이야기하면서 굳이 강대한을 같이 앉혀 둔 것부터가 포석이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본인에게 의향을 물어보긴 해야겠지?”

그런가 하면 확실히 밀어붙이지는 못하는 것이 권민헌이라는 사람이다.

5팀 사무실을 한번 확인하고, 아무도 자리에 없는 것을 본 다음에야 권민헌은 1팀으로 돌아가면서 중얼거렸다.

“일단 내가 할 일은 해야지.”

오늘 지원 업무에 대해서 정리하여 보고서를 올려 두고서, 권민헌은 미리 동기 PD에게 받아 둔 스케줄표를 다시 확인했다.

그 스케줄표는 유수현 작가의 촬영 스케줄이었다.

해외로 촬영을 나갔으니 현지 사정에 따라 변화무쌍하겠지만, 그래도 로케이션 촬영을 하는 제작진 중에 동기가 있어서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유수현이 메시지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을 확인한 뒤, 심호흡을 한번 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유수현 작가님 해외 촬영 중이신데 메시지로 실례를 드립니다]

[당잠사 건에 대해서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귀국하시면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 * *

권민헌 PD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유수현 작가와 귀국 후 약속을 잡았다는 것이었다.

[권민헌PD: 당잠사 건이라고 하니까 무슨 이야기냐고 묻길래 일단 간단히 설명해 드렸어]

[권민헌PD: 귀국할 때까지 생각해 보신다니까, 결정은 그때나 될 듯]

[잘됐으면 좋겠네요.]

[권민헌PD: 그래, 나도]

유수현 작가는 권민헌 PD 혼자 만나는 것으로 정해졌다.

나로서는 괜히 불안함이 느껴졌다.

건방진 불안함일 수도 있으나…… 연락을 기다리기만 해야 한다는 건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확률이나 보자.”

확률을 본다고 해서 내가 어떻게 수를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유수현 작가가 <당잠사> 시즌5에 합류해 줄지 신에게 비는 심정으로 AGD 앱으로 확률 보기를 사용했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집어 던질 뻔했다.

[0%]

……야, 이건 좀 아니지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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