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아이돌의 삶
결론적으로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공연이 무척 좋았기 때문이다. 두 곡 정도 흘러가고 나서는 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 모두 흠뻑 콘서트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물론 나야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 공연에 크게 집중할 수는 없었다.
혹시나 효명이가 전처럼 짓궂게 굴까 싶어 내심 조마조마했는데, 그런 일도 없었다.
“스무 곡에다가 앵콜로 다섯 곡이라니. 해외 투어 때보다 더 많이 불렀네요. 오늘 완전 혜자.”
“그쵸! 완전 개이득!”
공연 도중에 김유미 팀장과 아온은 친자매처럼 친해져서는, 공연이 끝나자 깍깍대면서 출구를 빠져나왔다.
졸지에 민희랑 둘이서 그 뒤를 따랐다.
아, 왠지 좀 불편한데……. 약간 어색한 공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때 민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역시 공연은 생으로 봐야 한다니까? 엑시트 애들, 전보다 더 실력이 는 것 같지 않아?”
다행히 별거 아닌 화제였다. 나도 그나마 분위기가 나아지는 걸 느끼며 편하게 대꾸했다.
물론 의도적으로 화제를 다른 데 두려 애썼다.
“그러게. 지난 버스킹 때보다 훨씬 더 기술들이 좋아졌어. 시즌2 찍게 되면 새로운 걸 해도 될 듯.”
설득의 기술을 응용했달까.
“어휴, 일벌레 같으니.”
이야기 화제가 그쪽으로 집중되자 좀 더 편했다. 난 머쓱하게 웃으며 앞선 두 사람을 따라 관계자용 출구를 빠져나갔다.
“대기실로 안내해 드릴게요.”
우리 넷은 뒤풀이까지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객원용 작은 대기실에서 잠깐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지금 상황에 얼음과 불을 같은 공간에 두는 게 맞나 싶어 우려했지만, 이번에도 내 기우였다.
왠지…… 오늘 이 자리는 계속 내가 초조해하고 긴장을 탈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아온이 대기실 분위기를 방방 띄웠다.
“공연 감상 좀 부탁드릴게요!”
아온은 대기실로 오자마자 캠을 다시 꺼내 찍기 시작했고, 나랑 민희, 김유미 팀장은 얼떨결에 브이로그 촬영을 협조했다.
그렇게 한 5분 남짓 찍었을까. 복도 저편에서부터 쿵쿵쿵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대기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형! 끝났어요! 갑시다!”
효명이가 고개를 쑥 들이밀고 소리쳤다. 녀석도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럼 여러분! 전 그럼 뒤풀이 참가하러 갈게요! 다음에 또 봐요!”
서둘러 캠에 대고 인사를 하며 브이로그를 마무리한 아온이 벌떡 일어났고, 우리도 그 뒤를 따라 대기실을 나갔다.
효명이가 직접 차까지 안내해 줘서 그와 함께 큰 버스에 올랐다.
오랜만에 엑시트 다른 멤버들도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창호가 뒤늦게 케이 록페스 때의 불화를 사과하고, 괜찮다고 해 주고…….
그러는 와중에도 차는 한 치 앞도 움직이지 못했다. 버스를 알아본 팬들이 진로를 막고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자, 얼른 집에들 갑시다! 저도 밥 먹으러 갈게요!”
효명이가 고개를 내밀어 일일이 반응해 주고, 손을 잡아 주고, 안녕, 안녕 인사를 하고 나서도 한참 후에야 공연장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엑시트의 퇴근 버스를 같이 타고 가다니……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네요.”
김유미 팀장은 그동안의 이미지를 박살 내는 소리를 그렇게 중얼거려서 아온이 폭소하게 만들었다.
창문을 닫은 효명이도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그렇다고 죽진 마세요. 저희 덕질 계속 해 주셔야죠.”
“당연하죠. 말이 그렇다는 거지, 잘 살아서 덕질해야죠. 담엔 제가 기획하는 공연에도 출연해 주세요.”
“앗, 그런 이야기는 저희 매니저 형과…….”
팬과 그 스타가 나누는 대화치고는 참 무시무시한 업계 사정이 나왔지만, 둘은 해맑기만 했다. 아이돌 팬질과 본직이 만나면 저런 일이 일어나는 건가.
그렇게 우리는 고깃집으로 이동해 뒤풀이를 시작했다.
우리는 처음 올려진 고기가 익어 갈 때까진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았다. 플래티넘 직원이나 공연 스태프들을 잘 아는 건 아니어서.
그래도 한두 번 얼굴을 본 사람들이 많다 보니 시간이 흐르며 그 분위기에 쉽게 녹아들었다.
그 와중에 반가운 소식도 들었다.
“아, 강 PD님. 그러고 보니 새로 인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송일현 매니저가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이번에 팀장으로 승진했습니다.”
“이야, 축하드립니다. 사실 진즉 승진하셨어도 이상할 게 없었죠.”
“부끄럽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그럼요, 송 팀장님.”
그는 나뿐만 아니라 민희와 김유미 팀장과도 인사를 나눴다.
엑시트의 성공 이면에는 분명 송일현 매니저의 공도 지대했다. 내 일처럼 기뻤다.
기쁜 소식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참, 보우건이요, OMG랑 계약했대요.”
아온의 말에 김유미 팀장과 내가 눈을 마주쳤다. 아온은 출연진 중에서도 보우건과 친했었다.
“그거 축하할 일이네요.”
“아직 정식 보도는 안 나갔는데 어제 만나서 도장 찍었다더라고요. 소개를 강 PD님이 해 주셨다면서요?”
“아닙니다. 김유미 팀장님이 한 거죠. 저는 전달만 했을 뿐입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민희가 아온에게 물었다.
“아온 님은 아직 보우건 님과 연락하고 지내시나 봐요?”
“그럼요, 잘하면 보우건이 제 앨범에 피처링해 줄 것 같아요. 그쪽 회사에서도 오케이했다던데.”
“어라, 너무 앨범이 화려해지는 거 아냐? 내 곡 묻힐 텐데?”
듣고 있던 효명이가 끼어들고, 아온이 또 쾌활하게 웃으면서 대꾸했다.
“에이, 그래도 오빠 곡은 타이틀 후보 0순위라니까요! 녹음 언제 할 거예요?”
“어어, 다음번 귀국 때 하면 되지 않을까?”
인기가 수직 상승한 그룹답게, 엑시트는 이틀 뒤면 또다시 출국을 한댔다. 내가 해외 나간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더라. 아, <당잠사> 시즌3였구나.
한편으론 해외를 저렇게 밥 먹듯이 나가는 게 부러우면서도, 그게 다 일하러 나가는 거구나 싶어서 왠지 안쓰러웠다. 아이돌도 참 보통 체력으로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 챙겨 가면서 해.”
“지금은 아파도 아프지 않은 시기인데요 뭐.”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히죽 웃는 효명이가 그렇게 대단해 보일 수가 없었다.
회식은 두어 시간 정도 이어지고 나서야 끝이 났다.
공연이 워낙 열렬했던 터라 다들 흥분도가 장난 아니어서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지만, 내일 스케줄도 있고 하니 적당히 마무리하자는 송일현 매니저의 말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전 들어가 볼게요! 브이로그 다음 주에 올라올 거니까 기다려 주시고요!”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PD님.”
“조심히 들어가세요. 오늘 즐거웠습니다.”
아온과 얼굴을 익힌 스태프들과도 인사를 나눈 뒤에, 나는 효명이와 눈을 맞추었다.
‘한잔 더?’
‘콜.’
그러한 사인이 오가는 찰나에, 김유미 팀장이 다가왔다.
“어떡하실 거예요? 바로 돌아가실 건가요?”
“아, 그게…….”
“내일까지 휴가라고 들었는데, 한잔 더 하지 않으실래요? 전 애매하게 마셨더니 살짝 부족한 느낌인데.”
“그럼 저도 같이 가요.”
뭐라고 대꾸하려는데 민희가 끼어들었다.
“저도 술이 좀 부족해서요. 안 그래도 같은 팀에서 같이 일하는 사이라서 저도 내일까지 휴가거든요. 어때, 대한아?”
얘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대체 친구랑 여행 갔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사람이 달라졌을까.
나는 한숨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억누르면서 효명이를 쳐다보았다.
‘장난 사절. 나 좀 구해 줘.’
“아이고, 죄송해요. 저희 외삼촌은 제가 좀 선점해 놨는데. 괜찮을까요?”
효명이가 능숙하게 우리 사이를 끼어들었다.
김유미 팀장이 눈을 떴다. 민희도 비슷한 표정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최강 커플이신데, 그럼 어쩔 수 없지.”
내 반응에 민희는 히죽 웃더니 김유미 팀장을 쳐다보았다.
“저희끼리 한잔 어때요?”
“……우리 둘이요?”
“네. 여자 술친구는 제가 별로 없어서요. 술 잘 드신다고 들었는데, 괜찮죠?”
김유미 팀장이 민희를 쳐다보다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럴까요. 할 이야기도 많으니까.”
“그러게요.”
두 사람은 의미심장한 대사를 나누며 먼저 자리를 떴다.
그들이 완전히 골목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나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내가 외삼촌이고 형이 조카였으면 때려 가면서 가르쳤을 텐데.”
얘도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다 나한테 훈육당하는 수가 있다.”
앗, 죄송! 하고 손을 합장하듯 모으고 과장스레 사과를 한 효명이는, 잠깐 기다리라면서 송일현 매니저 쪽으로 뛰어갔다.
그러더니 허락을 받은 듯 다시 내 앞에서 와서 말했다.
“자, 가죠, 형. 근처에 잘 가는 곳 있어요.”
* * *
효명이가 앞장서 찾아간 술집, 개인 룸에 들어간 다음에야 나는 완전히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아, 오늘 너무 끔찍했어.”
“공연이 그렇게 별로였어요?”
뭔 말인지 뻔히 알면서 또 농담을 친다.
“공연은 재미있었는데, 힘들었다고. 민희랑 김유미 팀장 덕에.”
“어라, 김유미 팀장님도요……?”
한껏 갸우뚱하던 효명이가 ‘뭐, 그런가’ 하고 혼잣말을 중얼대더니 나를 보며 낄낄대고 웃었다.
“어휴, 이 죄 많은 남자 같으니.”
“나 놀리려고 한잔 더 하자고 한 거였냐?”
“그것도 있죠.”
“내년 오늘엔 내가 술 사 들고 절하마.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두 번.”
“아, 아재 냄새…….”
안주로 시킨 따끈한 탕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그렇게 티격태격했다.
민희 이야기는 내가 영 불편해해서인지, 자연스레 화제는 서로의 근황으로 이어졌다.
효명이가 톱 아이돌이 되고 해외 로케이션이 많아진 데다 나도 덜컥 메인 PD가 되는 바람에, 이렇게 만나서 술 한잔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
술잔을 나누면서 우리는 참 오랜만에 많은 이야기를 했다.
“준혁이 형님도 있었으면 좋을 뻔했네요.”
“그러게. 셋이 술 마신 지도 한참 됐고. 엄청 바쁘셔서 <언더커버> 뒤풀이도 제대로 못했는데.”
“드라마다 영화다, 촬영이 많이 몰렸나 보더라고요. 하필이면 드라마가 해외 로케이션이 많고 사전 제작이다 보니 국내에 없을 때가 많죠.”
준혁이 형님은 올해 말 방영을 목표로 한 첩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굵직한 감독에다 유명한 작가가 뭉친 초호화 대작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시는 거 보면 참 대단해요, 그 형님도.”
“열정이 대단하시니까. 아직도 그 스케줄 중에 MC 받아 준 게 대단해.”
“그건 뭐, 거래가 좀 있었다면서요?”
“그건 그렇지.”
MC를 맡아 주겠다고 허락한 당시, 준혁이 형님이 내건 조건이 하나 있었다.
잊고 있진 않았지만, 실현 가능성이 있으려나 싶었다.
그 조건을 이행하려면 아마도 나나 그 형님이나 둘 다 여유가 있을 때여야 할 텐데……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효명이가 묘한 얼굴로 잔을 빙빙 돌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너 뭔가 할 말 있지? 한잔 더 하자고 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음…… 뭐, 그렇죠.”
“뭔데?”
효명이는 힘없이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우리 곧 재계약 시즌이에요.”
“아, 안 그래도 기사 돌더라.”
아이돌마다 다르지만, 보통 첫 계약은 7년~10년 사이로 진행되는 걸로 알고 있다.
엑시트는 7년짜리 계약이었고, 그에 관련한 기사가 연예 탭 상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재계약 안 하게?”
“아니요, 재계약은 할 거예요. 멤버들이랑도 이야기는 끝내놨고, 일현이 형한테도 전해 놨고.”
“그럼 왜. 조건 때문이야?”
“음, 그것도 회사에서 최대한 맞춰 주겠다고 했으니까.”
“그럼 뭔데.”
효명이는 한껏 침울해진 얼굴로 물었다.
“저, 아직 미필이라서요.”
그거였구나. 군대.
효명이는 스무 살부터 엑시트 활동을 시작한 터라, 군대에 다녀올 기회가 없었다. 원래는 <당잠사> 시즌2 제작 즈음해서 팀 해체 이야기도 나왔던 터라, 군대에 다녀올 생각이었다고 하는데,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영장은 나왔고?”
“네. 딱 재계약 시즌에 겹쳐서. 그래서 말인데요, 외삼촌. 조카가 이 시기에 군대를 그냥 다녀오는 게 나을까요?”
아니, 잠깐.
“이거 내가 함부로 조언할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요.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맞을지, 형의 감을 들어보고 싶어서요. 형 촉 좋잖아요.”
잘나가는 아이돌에게 있어 군대 문제는 쉽게 결정할 만한 게 아닐 것이다.
물론 나야 AGD 앱을 통해 확률을 봐 줄 수는 있지만, 이런 일마저 확률 보기를 해 줘야 하나 싶었다.
군대는 의무지만, 그 시기는 확률에 의존할 게 아니라 본인의 선택이어야 한다.
내가 확률을 보고 떠밀어 준다고 해서, 막상 효명이가 거기 의존하는 건 영 아닌 듯했다.
“…….”
나는 갈증을 느끼며 맥주를 원샷했다. 뒤풀이에서도 술을 좀 마신 탓에, 어쩐지 술이 오르는 것 같았다.
그래, 차라리 이런 기분이면 더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입장과, 네 입장을 따로 이야기해도 되냐.”
“네.”
“일단 네 입장만 생각하면, 군대를 빨리 다녀오는 게 맞아.”
나는 최대한의 솔직함과 냉정함을 담아 이야기했다.
“물론 시기가 애매하고, 2년 가까이 공백이 생기는 것도 치명적이긴 하지. 하지만 그 공백이 있다 한들, 이미 성공한 아이돌이 이후 활동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외려 군필돌로 인정받을 수도 있고. 막말로 엑시트가 아니라도 솔로 활동으로도 성공할 가능성도 충분하잖아. 그러니까 군대 2년이 너한테 큰 디메리트는 아닐 것 같다.”
확률에 의존하지 않은, 그냥 내 순수한 평가가 이거였다.
“그리고 내 입장은…….”
이번에 꺼낼 말은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나는 입을 몇 번 열었다가, 추가로 온 맥주를 한 입 입에 담고, 다시 말을 골랐다.
그리고 내가 생각해도 너무 뜸을 들였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나야 뭐, 놀 사람 한 명이라도 더 있는 게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