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특별 공연
“민희도 온다고?”
엑시트의 이번 공연은 해외 투어의 일환이다.
한국 공연이 있을 때까지는 아무래도 시간 텀이 있다 보니, 중간 휴식 기간을 조금 희생해서라도 엑시트는 특별 공연을 잡았다.
내가 연락을 받은 것도 지난 주였고, 초대를 하겠다는 것도 지난 주였고, 김유미 팀장 건을 들은 것도 지난 주였다.
그 와중에 민희가 언급된 적은 없었다.
“민희 누나가 오늘 연락이 왔더라고요. 혹시 자리 남냐고. 관계자석은 자리 남으니까 괜찮다고 했죠 뭐.”
“직접 연락을 했다고?”
“연락이야 그동안도 계속 하고 있었는걸요. 몰랐어요?”
하긴, 민희도 <당잠사> 이후로 효명이와 말을 텄다. 연락이야 직접 할 수 있긴 한데.
나한테 부탁했어도 충분히 챙겨 줬을 텐데.
그 말을 듣자마자 괜히 소외된 것 같고, 배제된 것 같아서 순간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같이 오는 거죠?”
“어어, 뭐. 응, 그러지 않을까.”
“뒤풀이 자리도 잡아 놓을게요. 뒤풀이 끝나고 따로 한잔해도 되고. 괜찮죠?”
“그래. 나도 뭐 오랜만에 술 한잔 괜찮지.”
효명이처럼 편한 사이끼리 갖는 술자리는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슬쩍 민희 생각이 났다.
아마 휴가 기간 동안 여행을 갈 거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게 오늘이었나?
마침 생각난 김에 메시지를 보내 보았다.
[여행 재밌었음?]
[이민희작가: ㅇㅇ 집에 막 와서 정리 중이었는데 어떻게 알았대.]
[걍 우연이지ㅎㅎ]
[내일 효명이 공연에 온다던데?]
아무렇지 않게 물어봤는데, 답은 조금 시간이 걸려서야 돌아왔다.
[이민희작가: 그랬지 물어보니까 자리 남는다고 하더라고]
[가고 싶었으면 나한테 말하지 그랬어]
[이민희작가: 나도 효명이한테 직접 부탁할 수 있거든]
[이민희작가: 그리고 너는]
하지만 그 부분에서 답신이 끊겼다.
그리고 너는, 그다음엔 뭐지?
그다음 메시지는 한참 후에야 돌아왔다.
[이민희작가: 암튼 내일 봐]
[이민희작가: (어깨춤)]
뭐지, 이 찝찝함은.
평소에는 의미도 생각하지 않을 이모티콘인데, 오늘따라 왠지 대충 넘기려는 의미처럼 느껴졌다.
“뭐지…….”
한참 고민을 하다가 나도 그냥 내일 공연장에서 보자는 이야기나 남기고 메시지를 마무리했다.
잘 때까지 묘한 기분은 계속되었다.
* * *
대망의 휴가 셋째 날.
왠지 이틀을 날려 버린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일어났다.
이틀 동안은 대충 차려입고서 보냈지만, 오늘만은 왠지 그래선 안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가뜩이나 얼굴도 팔렸는데 그 대단한 엑시트의 공연장에 가는 거라서 캐주얼한 셔츠에 재킷까지 걸쳤다.
효명이 만나러 가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자괴감이 들었지만, 결국엔 전전긍긍하다 머리도 세팅을 했다.
“특별 공연인 데다 15,000석이란 말이지…….”
2주 전인가 급히 티켓 예매가 오픈됐는데 3분 만에 전석 매진됐다는 기사를 봤었다.
엑시트의 현재 인기를 알려주는 단적인 예였다.
어쨌거나 사람도 몰릴 테고, 기자도 당연히 몰리겠지.
머리까지 만진 건 그런 이유였다.
하아…… 이런 게 신경 쓰여서 연예인들은 어떻게 사나?
업계 선배 중에 이미 얼굴이 팔릴 대로 팔린 분들의 고충이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지하철로 이동해 공연장이 있는 역에서 내리고, 공연장 앞까지 걸어왔다가 길게 줄을 서 있는 엑시트 팬들을 지나서 관계자 부스로 향했다.
그리고 부스로 향하다가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뭔가를 잔뜩 들고 있는 김유미 팀장이었다.
“김 팀장님. 안녕하세요.”
먼저 아는 체하며 인사를 건네자, 그쪽도 나를 발견하더니 활짝 웃으며 돌아섰다.
이 사람이 이렇게나 활짝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나.
웃고 있는데 왜 이렇게 무섭게 느껴지는 거지.
“안녕하세요! 지금 왔어요?”
“예, 그런데…… 팀장님은 오신 지 꽤 되었나 보네요.”
“그럼요. 아침부터 왔죠, 당연히!”
김유미 팀장은 공연을 즐기기 편한 복장이었다. 청바지에 캐주얼한 블라우스, 그 위에 재킷.
그런 차림으로 양손 가득 굿즈를 들고 있다. 관계자석에 초대를 받은 몸인데도, 아침부터 나와서 줄을 서서 굿즈를 산 모양이었다.
이게 팬심인가.
“아침부터…… 대단하시군요.”
“그래도 몇 개 못 샀어요. 굿즈 매진이 너무 빠르다니까.”
아니, 그 정도면 충분한 것 같은데.
그녀는 가볍게 투덜댄 후에 다시 표정이 바뀌었다.
“잘됐다. 바로 들어갈 건 아니죠?”
“어, 그게…….”
“그럼 가방 좀 잠깐 맡아 주실래요? 나 이거 차에 좀 넣고 올게요.”
나에게 에코백을 맡기더니, 잔뜩 굿즈를 이고 주차장으로 뛰어갔다. 얼떨결에 가방을 맡은 나는 저쪽으로 뛰어가는 그녀와 에코백을 번갈아 보다가, 얌전히 관계자 부스 맞은편의 벽에 섰다.
나는 아무것도 없이 자방과 폰만 간단히 챙겨왔는데, 에코백에도 뭔가 많이 들었는지 묵직했다.
시간이야 어차피 여유 있게 남았으니 기다리고 있는데,
[이민희작가: 어디야?]
민희가 도착한 듯 메시지가 왔다. 관계자 부스 옆에 있다고 답변하자, 5분 정도 뒤에 그녀가 나타났다.
“…….”
그녀는 내가 들고 있는 에코백을 보고서, 눈으로 뭔가를 물어왔다.
“이거 내 거 아니야.”
“그건 알아. 누구 건데. 그, 김유미 팀장?”
민희도 김유미 팀장이 이 콘서트에 초대 받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난 끄덕거렸다.
“굿즈를 잔뜩 사셨다더라고. 차에 두고 오신다고 가방 맡겨 놓고 가셨어.”
“너한테 가방을 맡기고 말이지.”
아니, 얘 반응이 왜 이래?
에코백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민희의 눈빛이 아주 뜨거웠다. 그 묘한 압력에 나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어, 으, 음. 그렇지.”
“아.”
그때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자, 주차장에서 돌아온 김유미 팀장이 서 있었다.
“이 작가님도 오셨네요?”
그 물음은 나에게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답한 것은 민희였다.
“안녕하세요. 엑시트와는 저도 좀 아는 사이라. 효명이가 초대해 주더라고요.”
“어머, 명리더랑 그렇게 편하게 부르는 사이셨다니.”
“뭐, 이 바닥 작가가 다 그렇죠. <당잠사>를 찍으면서 그냥 다 같이 형 누나 동생 하자고 했어요.”
“이야, 예능 작가한테 그런 혜택이 있었다니. 저도 차라리 그쪽 일을 해 볼걸 그랬네요.”
“근데 뭐, 아시다시피 다 그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아니, 방금 한 말을 단숨에 뒤집네?
두 사람이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분명 얼핏 보면 화기애애한 것 같은데…… 내 본능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가방.”
“응?”
“가방, 안 돌려드려?”
둘이서 한참 대화를 나누던 중에, 민희가 문득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왠지 싸늘한데……. 나는 아차 하고 얼른 에코백을 김유미 팀장에게 돌려주었다.
“고마워요. 안 무거웠어요?”
“아뇨, 괜찮았습니다.”
그렇게 짧은 대화를 하는 중에도 민희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거 설마…… 그건가?
에이, 아니겠지?
“들어가실까요?”
“그럴까요.”
“어…… 예.”
두 여성분이 먼저 관계자 부스로 향했고, 나는 어정쩡하게 두 사람을 따라갔다.
“강대한 PD님이시죠?”
공연 스태프가 나를 먼저 알아보았다. 덕분에 <언더커버 싱어> 잘 봤다면서 출입증이 달린 목걸이를 나에게 주었다.
『관계자: 강대한 PD님』
“안내 잘 부탁한다고 송 매니저님이 아까 일러 주고 가셨어요. 이쪽 스태프 따라가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도요.”
“예, 감사합니다.”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는 길에, 민희가 옆구리를 푹 찔렀다.
“아주아주, 우리 강 PD님. 유명인이라고 이젠 어딜 가나 다 알아보네? 이러다 조만간 사인도 하고 다니겠어요?”
“부끄럽습니다, 이 작가님.”
우리 둘이 그렇게 대화를 하는 모습을, 옆에서 김유미 팀장이 뜨뜻미지근하게 보고 있었다.
“두 분, 전에도 생각했지만 많이 친하신가 보네요.”
“예?”
“전에 EDM 페스도 같이 오셨고, 오늘도 이렇게 같이 공연을 보는 거면…… 보통 친한 게 아닌 거 같은데요?”
“어…… 오늘은 딱히 그런 게 아니고…….”
“그럼요. 벌써 몇 년이나 머리를 맞대고 일했는데요.”
민희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그녀는 ‘왜, 틀렸어?’ 하는 눈으로 나를 보기까지 했다.
이거…… 진짜 그건가.
AGD 앱을 켜서 확률이라도 봐 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어, 형! 왔어요?”
익숙한 목소리가 둘 사이에 끼인 나를 구원했다.
돌아보자, 효명이가 보여서 나는 왠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어! 그래! 야! 오랜만이다!”
부리나케 달려가려는데, 그 옆에 서 있는 금발의 여성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안녕하세요, 강 PD님! 오신다고 들었어요!”
“아온 님?”
“예! 아, 카메라에 인사 좀!”
한 손에 캠을 들고 있는 아온이 손을 붕붕 흔들면서 뛰어왔다.
갑자기 렌즈가 나를 향하는 통에 움찔했다가 어색하게 렌즈를 향해 고갯짓했다.
“여러분! 장안의 화제이신, 엑시트의 외삼촌! 강대한 PD님이십니다! PD님, 인사 한 말씀 해 주시죠!”
“아, 안녕하세요. 강대한입니다. 어…… 이건 브이로그인가요?”
“오, 아시네요?”
나는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이냐고 묻는 눈으로 효명이를 보았다.
“어차피 저희 태그업 한다는 거 기사도 다 났으니까, 오늘 브이로그 올리면 홍보에도 도움될 것 같아서요.”
“앨범 대박 내야죠!”
아온은 쾌활하게 웃었다가, 내 뒤의 두 여성을 발견했다.
“앗! 이민희 작가님도 오셨네요? 여러분, 이분이 바로 <언더커버 싱어>의 메인 작가, 이민희 작가님이십니다! 미인이시죠?”
“안녕하세요, 이민희입니다~ 아온 님의 브이로그에 출연하게 되다니! 영광이에요!”
민희는 브이로그 촬영에 매우 익숙하게 대응했다. <당잠사>나 <언더커버 싱어> 때도 얼굴을 비춘 적이 없었는데, 아주 익숙한 인사말이었다.
대단한데…… 생기발랄한 미소 하며, 조금도 떨리지 않는 목소리 하며, PD 입장에서 보기엔 합격점을 줄 만했다.
“어때요, 온둥이 여러분! 민희 작가님 엄청 미인 맞죠? 오늘 착장도 잘 어울리시고!”
“과찬이세요, 아온 님. 아온 님이 훨씬 예쁘신데.”
두 여성이 서로 옷차림을 한동안 칭찬하는 사이, 뒤쪽에 있던 김유미 팀장이 슬그머니 렌즈 시야 밖으로 벗어났다.
아온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아니! 이 미녀분은 또 누구실까요! 어라? 저희 혹시 뵌 적 있지 않나요?”
아온의 캠이 그쪽으로 향하자, 김유미 팀장이 서둘러 에코백으로 얼굴을 가렸다.
“카메라는 좀…….”
“앗, 그러세요? 죄송합니다!”
아온이 서둘러 캠을 내리고 사과했다. 렌즈가 다른 쪽으로 향한 것을 보고 나서야 김유미 팀장이 웃으면서 에코백을 내렸다.
“얼굴 노출되는 건 달갑지 않아서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제가 실례했죠. 죄송해요. 미리 여쭈고 찍었어야 하는데. 찍힌 부분도 편집으로 다 자를 테니 부디 용서해 주세요.”
“용서는요. 괜찮아요. 아, 그리고 저희 지난번 EDM 페스 때 뵌 적 있어요.”
“아! 김유미 팀장님! 맞죠?”
아온은 EDM 페스 이야기에 다시 쾌활하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 페스에 참가했었던 민희도 얼떨결에 끼어들고, 금방 여성 셋이서 화기애애해졌다.
난 두어 걸음 물러나서 효명이 옆에 섰다.
“효명아, 고맙다. 나중에 밥 사 줄게.”
타이밍 좋게 얘가 와 준 덕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여태까지도 김유미 팀장과 민희는 만나면 서로 은연중에 으르렁댔다지만, 오늘따라…… 아니지, 정확히는 어젯밤부터 민희의 분위기가 묘하게 달랐다. 그렇다 보니 오늘은 그 사이에 끼어 있기가 힘들었다.
그 이유가 혹시나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의 이유라면…….
하지만, 설마. 아닐 거다.
민희가 왜…….
“예?”
“그런 게 있어.”
거기까지만 이야기했는데, 고개를 갸웃대던 효명이가 뭔가를 깨달은 듯 여성진을 봤다가 다시 나를 보았다.
“아하…… 그래서 민희 누나가 갑자기 공연 초대 좀 해 달라고 한 거였군요?”
뭐지, 이 반응은.
“어? 뭐가?”
“뭐가라니. 응? 형 진짜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아님 뭐예요?”
그 말에 얘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나 싶었다. 나는 일부러 효명이에게 손짓을 까딱까딱 해 보이며 귀엣말을 했다.
“야, 네가 보기에도 그거다…… 싶은 거지?”
“백퍼죠.”
돌아온 대답이 간단하면서도 칼 같았다.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지는 느낌이다.
그때, 효명이가 히죽이죽 웃으며 말했다.
“공연 잘 보세요! 뭣하면 오늘 분위기 좀 잡아 드려요?”
그 얼굴이 어쩐지 매우 꼴 보기 싫었다.
“……아무 말 말고, 빨리 무대로 가 버려.”
끝까지 낄낄대던 효명이는 우리를 안내해 주던 스태프에게 뭐라고 둘이서만 이야기를 잔뜩 하더니 사라졌다.
세 여성은 한동안 더 떠들다가, 결국 아온의 브이로그에 참여했다가 돌아왔다. 그렇게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우리 넷은 관계자석에 자리했다.
그런데 자리가 문제였다.
“꼭 이렇게 좌석을 안내하라고, 최효명 씨가 말씀하셨거든요.”
그녀가 안내해 준 내 자리는 김유미 팀장과 민희의 사이였다.
“…….”
아마…… 오늘 최효명을 죽이고 신문 기사 1면을 장식할 수 있을 것 같다.
효명이는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서 이렇게 자리를 배치한 모양이다.
우리 둘이 눈치챈 사실은, 민희가 내게 관심이 있는 듯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효명이가 간과한 게 있었다.
내 자리를 김유미 팀장하고 민희 사이에 배치했다는 거였다.
한 치 앞도 모를 상황에서, 엑시트의 콘서트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