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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성공할 확률 100%-78화 (78/200)

78화 만남

NBS에서 징계 대상으로 삼고 있는 현준영 팀장의 주요 의혹은 두 가지다.

투표 조작과 리베이트.

투표 조작은 물론 <언더커버 싱어> 건. 투표를 조작하여 ‘보우건’을 우승시키면, 그와 현재 계약을 이야기 중인 하이지 회사에서 대가를 받기로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둘째는 리베이트. <당잠사> 시절의 여행사 토마토투어를 비롯, 제작 시마다 계약한 외주 회사들에 일감을 주고 일정량의 금액을 리베이트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회사 내 다량의 서류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두 건 다 전에 일하던 타 방송사부터 이어진 일이다 보니 딱히 NBS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사실상 이 모든 것을 경찰에서 열을 올리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것이 내가 최종 무대를 준비하면서 지난주까지 들은 이야기.

“혐의 확정은 아직 안 난 것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하지만 위에서는 거의 확정적이라고 보고 있나 봐. 오히려 혐의가 확정된 다음에 처분하면 여론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모르니까 미리 선을 그어 두겠다는 거지.”

누구의 의견인지 알겠다.

“신 이사님 의견인가요?”

“그건 노코멘트.”

민희를 힐끔 본 정민우 팀장이 말을 아꼈다.

“아무튼, 이사진에서 좀 전에 처분을 결정했어.”

“잘렸어요?”

민희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는데, 정민우 팀장은 애매한 방향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렸다고 해야 할까……. 계열사로 이동당한 거지.”

“계열사?”

“‘임팩트스튜디오’ 말이에요?”

방송사들이 최근 회사 내이든 바깥이든 자회사로 계열사를 두는 경우가 많다.

우리 NBS도 M채널 개국과 함께 방영 프로그램이 늘어나면서 필요 방송기획도 그만큼 늘어나게 되었는데, 그 해결 방안으로 제작 스튜디오들을 사들이거나 만들기로 했다.

음반사도 있어서 <언더커버 싱어> 우승 특전으로 협력하기로 했는데, 최근 자회사가 된 곳이 바로 ‘임팩트스튜디오’.

주로 인터넷콘텐츠를 만들고 관리하는 회사였다.

민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좌천이군요.”

“맞아. 스카웃까지 해서 데려온 PD를 잘라 버리기에는 여러 부분으로 면이 안 서니까, 인터넷콘텐츠 개발을 맡긴다는 식의 명분을 세우려나 봐.”

“대표는 아니죠?”

“절대. 기획부장 정도 되겠지.”

나중에 그 회사에 대해서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민희가 재차 투덜거렸다.

“그냥 확 잘리고 쫓겨났으면 좋겠는데. 어차피 구속 아니에요? 우리야 그렇다 치고, <스타 프로듀스 K> 투표 조작은 진짜 큰 건인데.”

그때 데뷔했던 가수들이 지금도 활동을 하고 있다. 데뷔를 못 하고 사라진 인재도 있다.

그 결과를 조작했다는 것은, 당시 투표를 한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사기 사건이라고까지 보도가 났었다.

여론은 확실하지만.

“그건 뭐, 법이 결정할 문제지. 일단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처분을 한 거야.”

그 말에서 정민우 팀장이 일부러 언급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게 느껴졌다.

대강은 알 것 같았다.

꼬리 자르기가 있다는 것을.

엄연히 이 사건에는 신호현 이사가 끼어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행적은 수면 위로 드러나는 법이 없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사실로 지나가는 듯한 분위기.

현준영 팀장은 신호현 이사를 믿고 있었던 것 같지만, 결국 버려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그렇게들 알고 있고. 스페셜 편집은 잘되어 가?”

“안 그래도 주영 선배가 오늘 내로 끝낼 거라고 이를 갈고 있습니다. 저도 오후에 합류할 거고요.”

“박 PD가 투덜거리는 게 눈에 훤하네. 나중에 편집실 가기 전에 <뮤직스케치> 사무실에 들러. 알지?”

“예. 준비해 가겠습니다.”

최종 경연에서 라이브 무대를 꾸민 다음, 특별 무대에 대한 시청자들 요구가 늘어났다.

그래서 정민우 팀장과 이전부터 논의하고 있던 <뮤직스케치> 무대를 본격적으로 진행해 보자고 이야기가 되었다.

경연 뒷마무리도 어느 정도 되었으니 빨리 진행을 해야 하는 타이밍이었기에, 나도 준비를 갖추고 <뮤직스케치> 사무실로 향했다.

* * *

“일단 이 정도군. 이걸로 일단 가능한 BJ들 일정 잡아 봐. 블라하이는 된대?”

“협의는 하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애초에 최종 무대까지만 스케줄을 뺀 거라서, 더 이상 뺄 수는 없나 봅니다.”

<뮤직스케치> 특별 무대 같은 경우에는 미리 구두로 이야기는 해 놨지만 명확하게 스케줄 요청은 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스케줄을 따야 하는데, 블라하이의 경우 이미 미국으로 돌아간 상태라서 섭외하기가 어려웠다.

“좋은 추억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앨범 나오면 연락드릴 테니까 기다려 주세요.”

귀국하는 날 그렇게 연락해 준 사람을 다시 불러들이기가 난처했다. 애초에 앨범 준비 스케줄도 미루고 온 것이기도 하고.

“아온이나 보우건은 가능하니까, 협의하면서 최대한 그 둘을 중심으로 짜 보겠습니다.”

“알았어. 사이사이 연락 줘.”

“옙.”

<뮤직스케치> 팀 회의에 잠시 그렇게 끼었던 나는, 노트북을 챙겨 들고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언더커버 싱어> 사무실로 돌아오자 구은경 작가와 도채린 작가가 있었다.

그들은 민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들어 보니 현준영 이야기였다.

“잘린 게 아니라 좌천이라고요?”

“계속 마주쳐야 할 수도 있는 거예요?”

“진정합시다, 진정.”

내가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 반응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둘 다 여러 번 당한 게 있어서, 특히 구은경 작가는 <당잠사> 시즌4 때부터 쌓인 게 있어서인지 격렬해 보였다.

“다른 회사로 간 거니까 방송국 내에서 마주칠 일은 없을 거예요.”

흥분했던 구은경, 도채린 작가가 어느 정도 진정하고 나서야 민희가 말을 걸었다.

“편집하러 내려갈 거지?”

“<뮤직스케치> 팀이랑 회의한 거 정리해서 올리고 나서. 왜?”

“너 내려간 사이에 보우건이 연락을 해 왔다더라고.”

단톡방에 올려놨다고 해서, 회의하느라 확인하지 못한 창을 열어 보았다.

보우건과의 연락을 담당하고 있던 오지환이 편집실에서 전화를 받고 메시지를 올려놨다.

[오지환PD: 보우건님에게서 연락왔습니다. 하이지 측에서 계약제안을 철회했다고 합니다.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뭐라고 답할까요?]

나는 지체없이 답을 썼다.

[내가 연락할 거라고 이야기해 줘. 뮤직스케치 건으로 연락해야 하니까 그 논의삼아 할게요.]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 놓고, 서둘러 미팅 결과를 정리해서 서버에 올려놓았다.

각자 확인하라고 일러 놓고 편집실로 내려가자, 한참 뭐라고 메시지를 보내려고 하고 있던 오지환이 벌떡 일어났다.

“누가 보면 회장님이라도 온 줄 알겠네. 연락은 했어?”

“예. 언제든 연락 달라고 대답 왔습니다.”

“대한아, 어쩌려고?”

사실상 보우건과는 딱히 길게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보니, 내가 나선다고 말이 박주영 선배도 의아한 모양이었다.

계약이 불발되려는 상황에서 PD가 무얼 하냐는 뜻도 있으리라.

“일단 전화하고 오겠습니다.”

나는 편집 상황을 확인한 다음에 대기실로 갔다.

연락처는 이미 등록되어 있어서, 전화를 걸자 금방 받았다.

“안녕하세요, 강대한 PD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걱정했던 것보다는 그래도 활기찬 목소리였다. 힘 빠져 있을 줄 알았는데.

“오늘 저녁에 혹시 시간 되십니까? 퇴근하고 나서 한번 뵈었으면 해서요.”

“예……?”

만나자는 말에 보우건은 놀란 듯 보였지만, 거부하진 않았다.

어찌어찌 약속은 잡았다.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긴 한데, 얼굴 보고 해야 할 이야기인 것 같아서 고집을 피운 결과였다.

스페셜화 편집 상황을 체크해서 나머지는 맡긴 다음, 연남동 카페에서 보우건과 만났다.

“아, 안녕하세요. 이렇게 뵙는 건 처음이라 어째 어색하네요.”

“그러게요. 식사는 하셨나요?”

“아, 예. PD님은…….”

“저는 대충 때웠습니다. 아무튼 제가 촬영 내내 신경을 못 쓴 것 같아서 죄송하네요.”

“아니에요. 오 PD님이 참 많이 챙겨 주셨어요.”

보우건은 20대 초반. 그래도 나이에 비해선 성숙해 보였다.

반면 커버 영상부터 느낀 바로는 자유자재로 애드리브를 찔러 넣는 래핑에 그 나이대의 날카로움이 묻어나기도 했다.

내가 힙합을 잘 듣는 건 아니지만, 댓글 반응을 봐도 보통 수준은 확실히 넘는다는 평이었다.

그러니 계약 제의도 받은 걸 테지만.

“죄송하다는 인사를 직접 해야 할 것 같아서 만나자고 부탁드렸습니다.”

“예? 죄송하다니요……?”

“하이지와의 계약 건에, 현준영 팀장이 엮여 있다는 이야기는 들으셨을 겁니다.”

“아…….”

누구든 쉬쉬하고 있는 일이지만, 카더라로 흘러나가긴 했다. 남들은 낭설로 여긴들 당사자로서는 확신이 있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보우건의 표정으로 봐서는 충분히 알고 있는 듯했다.

“NBS의 잘못이기도 하고, 메인 PD인 제 잘못이기도 합니다. 결국 하이지와의 계약이 불발되는 것에도 일조했으니, 마땅히 사과를 드려야 할 것 같았습니다.”

“아, 아니에요. 그게 강 PD님이 사과하실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착잡한 표정이었지만 보우건은 고개를 저었다.

“<언더커버 싱어>라는 방송이 없었으면 이렇게 계약 문턱까지 갈 수도 없었을 거예요. 그런 기회를 만들어 주셨잖아요. 그럼 됐죠.”

한참 그렇게 서로 인사하고 또 인사하는 과정이 지난 다음에야, 우린 웃으면서 마주 보았다.

분위기가 조금 풀린 뒤, 나는 오늘 만나자고 한 용건을 꺼냈다.

“혹시 계약에 대해 아직 생각이 있으시다면, 제가 참견 좀 해도 될까요?”

“예?”

“사실은 저한테 보우건 님의 의사를 물어봐 달라고 한 회사가 있어서요.”

보우건이 눈을 크게 떴다.

청탁을 넣은 건 김유미 팀장이었다.

연락을 받은 것은 주말.

겨우 집으로 와서 샤워를 마치고 나온 타이밍에 벨소리가 울렸다. 업무 연락이겠거니 하고 확인했는데, 김유미 팀장이었다.

“어, 여보세요. 강대한입니다.”

“김유미예요. 통화 오랜만이네요?”

“그렇네요. 안녕하셨습니까.”

전화라곤 해도 맨몸으로 받는 것이 어쩐지 부끄러워, 통화하면서 서둘러 바지를 끼어 입었다.

“<언더커버 싱어> 잘 봤어요. 아온이 그런 서정적인 발라드도 잘 부를 줄은 몰랐어요. 다음 페스에 꼭 섭외하자고 우리 회사에서도 난리예요.”

“가수와 곡이 잘 만난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맞아. 그 곡 명리더가 작곡한 거죠? 역시 국보라니까.”

효명이에 대한 팬심은 전혀 사라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무대를 직관했어야 했는데 말이죠.”

“오셨으면 효명이 옆자리를 드렸을 텐데. 아쉽습니다.”

“크으, 내가 회사를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에이, 아무도 안 믿을 소릴 저렇게.

그렇게 한동안 근황을 나눈 뒤에, 김유미 팀장은 본론을 꺼냈다.

“그때, 아온 매니저 연락처 알려 준 게 나라는 건 기억하고 있죠?”

“물론입니다.”

“빚 하나 진 것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나요?”

“언제 갚아야 할지 기회만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 빚, 갚을 기회를 좀 주려고 하는데.”

전화 너머로도 도도함이 전해지는 말투로 그녀가 말했다.

“빚 갚을 기회요?”

“BJ 중에 보우건 있잖아요, 하이지랑 계약될 것 같아요?”

이 소식은 또 어디서 들었을까. 이 정도면 온갖 곳을 도청하고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진심 놀라면서 대답했다.

“어렵지 않을까요. 요즘 분위기를 봐서는.”

“그렇죠. 현준영 씨가 여기저기 똥을 던져 놔서.”

그녀답지 않은 단어 선택에 웃을 뻔했다가 참았다.

“그런데 그건 왜요?”

“보우건과 계약을 맺고 싶다는 곳이 있어서요. 그런데 거기가 아직 작은 인디 레이블이다 보니까, 나한테 부탁을 하더라고요.”

김유미 팀장은 여러 콘서트를 기획하면서 인디 쪽으로도 발이 넓다.

“괜찮은 회사입니까?”

“예. 좀 도와주고 싶을 만큼. 내 빚 하나 없애 줄 테니까, 자리 한번 만들어 주지 않을래요?”

“그러죠.”

간단히 대답하자 도리어 그녀가 놀라워했다.

“뭐가 그리 간단해요?”

“김 팀장님의 안목이라면 믿을 수 있겠다 싶어서요. 괜찮은 회사라고 하셨으니 믿겠습니다.”

“어머나, 이 남자 봐. 그런 말도 할 줄 알았어요?”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회사 이름을 물어서 검색해 보았다.

“제 메일로 제안서 보내 달라고 해 주세요. 보우건과 만나서 전달하겠습니다.”

“잘 부탁해요.”

그리고 메일이 날아오기까지, 나는 해당 회사를 검색해서 확률을 확인했다.

보우건이 계약하고 좋은 매니지먼트를 통해 성공한 가수로 만들어 줄 가능성에 대한 확률이었다.

[93%]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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