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77화 (77/200)

77화 최종 무대

4차 경연 무대가 모두 끝났을 때.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출연진이 무대 위에 모여 앉은 후 MC 류준혁이 나타났다.

카메라가 따라 들어오고, 미리 배치된 카메라와 함께 각을 잡는 사이 준혁이 형님이 출연진 사이에 앉았다.

“오늘 무대들, 정말 하나같이 멋있었어요. 오죽하면 가수할걸 하고 인생을 돌아볼 정도였거든요.”

그의 칭찬에 출연진들이 하나같이 어색하게 웃고 떠들어 댔다.

나는 음향 체크를 하면서 모두 한마디씩 멘트를 하길 기다렸다가 준혁이 형님에게 사인을 보냈다. 준혁이 형님이 그 신호를 캐치하고 자연스레 다음 화제로 넘어갔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대망의 최종 무대뿐입니다.”

“아, 드디어…….”

“오지 말았으면 했는데……!”

BJ들이 하나같이 탄식을 터뜨렸다. 그중에 여유롭게 웃고 있는 것은 블라하이 정도였다.

“정말 오리지널 곡이에요? 작곡가분들이 직접 만든?”

아온의 물음에 준혁이 형님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미리 공지는 드렸죠? 10명의 작곡가가 여러분의 최종 무대를 위해서 곡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지금부터 그 곡을 듣고, 곡을 선정해 주시면 됩니다.”

큐카드를 확인하면서 자연스레 진행해 가는 흐름에 맞춰서, 출연진들 앞에 둔 모니터에 전원을 넣었다.

“어떤 분들이신가요? 설마 엄청 유명한 분들은 아니겠죠?”

“으아, 유명하신 분들이면 부담스러운데!”

오지환이 모니터를 확인해서 노트북 화면이 출력되는 것을 확인한 뒤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하하하, 지금부터 작곡가분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보시죠.”

멘트 타이밍에 맞춰 내가 옆으로 눈짓하자, 민희가 동영상을 띄웠다.

미리 제작해 둔 작곡가 소개 영상이었다.

“오오, 오오…….”

출연진들이 하나같이 앞으로 상체를 내밀며 모니터에 집중했다.

오늘을 위해 제작해 둔 영상 오프닝이 흐르면서 출연진들이 더욱 집중했다.

『“그럼, 첫 번째 작곡가!”』

몇 개의 임팩트가 모니터 화면을 수놓은 다음, 컷이 바뀌면서 낯익은 얼굴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엑시트의 명리더, 최효명입니다!”』

“헉! 최효명이다!”

“꺄아악!”

여성 BJ들, 특히 아온이 비명과 같은 환성을 내질렀다. 덕분에 그 소리에 모니터 속 소리가 묻혀서, 나는 서둘러 영상을 멈추게 했다.

엑시트의 팬이기라도 했는지 꺅꺅대는 BJ들을 준혁이 형님이 진정시킨 뒤에야 영상을 다시 재생했다.

『“에…… 여기는 프랑스 파리입니다. 좀 전에 대한이 형한테 연락을 받아서, 자기소개 영상 하나 찍어서 보내 달라고 하길래 이렇게 찍고 있습니다. ……그런데 뭐라고 해야 하지?”

“뭐해, 형?”

“아, <언더커버 싱어> 소개 영상, 찍고 있어.”』

돌연 옆에서 끼어 들어온 아론의 등장에, 다시 BJ들이 꺅꺅대는 것을 보고 혀를 찼다. 그냥 자를걸 그랬나. 본방에선 자를 거지만.

아론은 흐응, 하는 표정으로 그냥 지나가고, 효명이는 다시 카메라에 집중했다.

『“저희 곡 말고 다른 가수의 곡을 쓰는 건 저도 처음 해 보는 거라, 신인 때처럼 떨리고 그렇네요. 아무쪼록 제 곡이 여러분의 무대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매우 기쁠 것 같습니다.”』

대본을 짜 준 것도 아닌데 기특한 소리를 전한 효명이는, 본격적인 곡 소개를 들어갔다.

『“제목은…… ‘겨울비’입니다.”』

효명이가 전해 준 곡은, 서정적인 발라드 스타일로, 보컬의 능력과 음역대가 중요한 곡이었다.

영상은 편집한 대로 초반 30초의 샘플 곡을 흘려보냈다. 노트북을 확인하면서 출연진의 반응을 살피자, 처음 듣는 곡에 모두 집중하고 있었다.

『“……저도 마지막 무대는 직관하러 가려고 합니다. 부디 좋은 분에게 이 곡이 간다면 좋겠네요!”』

효명이의 마무리 멘트가 끝난 직후, 번쩍 손을 드는 이가 있었다.

“내 거! 이 곡 내 거! 반박 안 받음!”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공정하게 제비뽑기 합시다, 제비뽑기!”

“나한테 딱 잘 어울리잖아요! 명리더도 나한테 주려고 만든 곡일 거예요!”

아온이 억지에 가까운 말을 던지면서 앙탈을 부려서 웃음을 유발했다.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해외 공연을 간 효명이에게 곡 부탁을 위해서 전화를 했을 때, 효명이는 이런 말을 했었다.

“딱 주고 싶은 사람이 있던데요……. 같이 밴드 음악 한번 하고 싶은…….”

밴드 음악까지 논한다면, 역시 아온밖에 없다.

공급과 수요가 딱 맞는 케이스라고 할 수 있지만,

“자자, 일단은 소개 영상을 전부 보고, 선정 방식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준혁이 형님은 MC답게 흔들림 없이 분위기를 잠재웠다.

아온이 구시렁대면서도 입을 다물고, 나는 다시 영상을 재생했다.

그 뒤로 작곡가 소개는 계속되었다. 다들 하나같이 힘주어서 짜낸 작곡가진이었기에 출연진의 반응도 좋았다.

“방태성 프로듀서님이라고요?! BST 외에는 곡 안 주시는 분인데!”

“<쇼 미 더 페이>에 나왔던 프로듀서님이시네!”

“캐스팅 쩐다!”

작곡가진 짜느라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시청자들 이전에 첫 평가자들에게 이런 반응이니, 방송 이후의 평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 이상이 10팀의 작곡가분들이었습니다. 이게 남은 건 곡 선정이겠죠?”

“‘겨울비’는 내 거!”

아온이 다시 벌떡 일어나 소리쳐서 웃음이 일어나고, 준혁이 형님이 웃음을 지은 후에 말했다.

“곡 선정은…… 오늘 순위에 따라서 제비뽑기로 이루어지겠습니다.”

“우와! 정말 제비뽑기였어!?”

“완전 운빨이잖아요!”

내가 눈짓을 하자, 오지환이 뒤에 준비해 둔 상자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오늘 무대의 1위는 블라하이. 그녀가 여유롭게 일어나서, 간 보는 것도 없이 상자의 구멍에 손을 쑤욱 집어넣었다.

“언니! 왜 이리 담이 커!”

아온이 비명을 지르는 사이 준혁이 형님이 물었다.

“블라하이 님은 어떤 곡을 원하시죠?”

“전 뭐, 어느 곡이든 자신 있어요.”

“오오, 역시 종합 1위의 품격…….”

“크으,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아…….”

현재 종합 점수 1위를 달리고 있는 블라하이는, 그만큼 여유롭게 상자에서 종이를 뽑았다.

“제발, 제발…… ‘겨울비’만 뽑히지 마라……!”

아온이 기도가 통했는지, 블라하이는 힙합곡을 뽑아냈다.

반대편에 앉은 보우건이 머리를 쥐어짜는 사이,

“재미있겠네요?”

블라하이는 여유롭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다음은 저죠?!”

아온이 벌떡 일어나 상자 앞에 섰다.

“제발!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 천지신명이시여! 저에게 힘을!”

“너무 오바야, 누나.”

“시끄러웟!”

친해진 보우건이 태클을 거는 것도 무시하고, 그녀가 상자 속에서 날카롭게 종이 한 장을 뽑아냈다.

* * *

“……지금 계절에 딱 맞는, 그렇지만 매우 힘 있는 락발라드로 ‘겨울비’를 소화해 준 아온이었습니다. 여러분 박수 한번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MC 류준혁의 신호와 함께 관객들에게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그동안의 무대를 통틀어서, 오늘의 라이브 무대가 가장 훌륭한 아온이었다.

환호성을 지르는 관객 중에는 효명이도 있었다.

“3번 카메라, 최효명 얼굴 잡아 주세요.”

무전으로 연락하자 관객석을 훑던 카메라 감독이 잽싸게 효명이에게 컷을 옮겼다.

3초 정도, 효명이의 얼굴을 비춘 다음,

“다시 MC.”

모니터 화면이 전환되고 MC석의 준혁이 형님이 화면에 드러났다.

그 신호에 맞춰서 아래쪽에서 지시용 프롬프터를 띄우자, 그것을 확인한 준혁이 형님이 다음 멘트를 시작했다.

“드디어 마지막 순서가 되었습니다. 이 무대를 마지막으로 아름답게 꾸며 줄 가수가 누구인지, 여러분 다들 아시죠?”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자 다시금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 박수를 배경음 삼아 준혁이 형님이 준비된 멘트를 외친다.

“여러분, 블라하이입니다!”

쿠웅―

효과음과 함께 스튜디오 전체가 암전.

그사이에 내가 주는 신호에 따라 전면 대형 스크린에 촬영해 온 영상이 띄워졌다.

곡 선정 장면, 연습 브이로그 등의 영상이 흘러가는 동안, 어두운 무대 위에서는 빠르게 미술팀이 움직여 무대를 세팅했다.

“오른쪽으로 좀 치우쳤어요. 왼쪽으로 조금 이동…… 네, 거기.”

“여기 테이프 표시 없어. 빨리 발라.”

미술팀이 뛰어다니는 소리, 미술 감독이 지시하는 소리, 무대 감독이 작게 외치는 소리 등등이 무전기로 쏟아졌다.

마지막 무대인 만큼 모두가 기합이 들어가 있었다.

그 기합의 끝에, 조명이 다시 켜진 자리에 블라하이가 힙합풍의 의상을 걸친 채 등장했다.

“같이, 놉시다!”

블라하이의 신호와 함께 스피커가 찢어져라 곡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블라하이는 이번 무대에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게 된다.

그녀가 뽑은 곡이 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마치 힙합신의 오래 묵은 래퍼처럼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적극적인 래핑에 이어 자유자재의 애드리브를 구사하는 보컬까지.

그동안 R&B 전문의 보컬이라는 이미지가 무색할 만큼, 무대를 지배하고 있었다.

“와아, 좋다. 진짜 좋아.”

무전기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연출자 석에서 민희가 몸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대한아, 이 작가 좀 말려봐. 저러다 카메라에 잡히겠다.”

모니터실에 있던 박주영 선배의 무전이 들려오자, 민희가 휙 고개를 그쪽으로 돌려 브이를 그려 보인다.

춤추는 것을 보고 있자니, 한동안 꾹꾹 눌러 두었던 인싸의 기운이 들고 일어나는 모양이었다.

“에이, 마지막인데 좀 즐기면 어떻습니까.”

“프로그램 끝날 때 다 되니까 이미지 메이킹하네. 그간 부려먹은 건 잊고 천사로 기억해 달라. 뭐 이런 거냐, 강가식?”

와, 고새 별명이 하나 더 생겼네.

무전기로 오가는 잡담 속에서도 우리의 방송은 계속 진행되었다.

<뮤직스케치> 지원을 나가 도우면서 얻었던 경험들이, 오늘 무대에 모두 녹아 있었다.

생방송 무대를 하나부터 전부 만든다는 것에 부담도 느꼈지만, 제작진들마저 곳곳에서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니 옳은 선택이었던 것 같았다.

[100%]

블라하이의 무대가 끝나는 순간, AGD 앱은 ‘최종 경연 무대 성공’ 확률을 일찌감치 띄워 주었다.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런 확률을 확인할 새도 없이, 나는 무대의 마지막까지 제작진의 역할에 충실히 임했다.

“<언더커버 싱어> 시즌2로 찾아뵙게 되길 저희도 기대하겠습니다! 잊지 마세요!”

떡밥을 던져 두라는 지시에 맞게 배치된 멘트를 끝으로, <언더커버 싱어>의 공식 무대 촬영이 종료되었다.

* * *

『‘언더커버 싱어’ 최종 경연 무대 시청률 8% 돌파!』

『순간 최고시청률 10.4%를 기록한 ‘언더커버 싱어’ 최고의 무대는?』

『커버계 미투버 아온, 걸그룹 연습생에서 ‘언더커버 싱어’ 우승까지!』

10화 방송이 새벽 1시가 넘어가는 시간에 끝났지만, 주말까지 그 화제성은 전혀 죽지 않았다.

새벽까지 이어진 무대 뒷정리의 여파로 제작진 전체가 금요일은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지만, 들려오는 각종 호평들을 듣고 있자니 절로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이 와중에 나는 절망하고 있다, 대한아.”

“왜요, 이 좋을 때에.”

“으, 이놈의 강가식! 스페셜 편집해야 하잖아! 왜 추가 편성 오케이를 해 가지고!”

박주영 선배가 목을 조르려고 해서 나는 잽싸게 도망쳤다. 와, 방금 전에 머리 위로 연기가 나오던데…… 착각이겠지?

아무튼 폭주한 선배는, 때마침 사무실로 들어온 오지환의 멱살을 대신 잡고 끌고 나갔다.

“지환아! 오늘 안에 끝내자! 알겠냐!”

“어, 네, 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 어깨가 축 늘어지는 오지환이었다.

나는 힘껏 다독여 주며 둘을 배웅했다. 멀어져 가면서도 “넌 저렇게 가식 덩어리는 되지 마라!”하고 의도적으로 다 들리게 말하는 선배였다.

“기운이 좋은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다니까.”

민희가 가까이 다가오면서 하는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그동안 틈틈이 스페셜 편집을 하고 있었어. 그걸 아니까 저러시는 거지.”

“하긴. 자막 포인트도 다 잡았으니까 금방 끝나긴 하겠다.”

박주영 선배와 오지환은 편집 쪽으로는 특히 죽이 잘 맞아서, 마지막까지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정말 저 두 사람이 없었으면 어떻게 <언더커버 싱어>를 만들었을지 눈앞이 아찔했다.

“그럼 편집본 올라오는 걸 기다리면서, 메인 PD께서는 영수증 정리 좀 해 주시죠.”

민희가 그동안 모아온 영수증 더미를 내 자리에 올려놨다.

“……이 일은 원래 막내들이 하는 거 아니었나?”

“방금 그 막내를 편집실에 보내셨잖아, 너님이.”

“메인 잡았을 때 제일 행복했던 게 영수증 처리 탈출이었는데…….”

최종 무대까지 끝났다고 해서 제작진의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세상 모든 일은 예산의 지배를 받고, 사용한 예산은 투명하게 정산되어야 하는 법.

그 집계를 보통은 팀의 막내 PD가 하는데, 이번엔 메인인 내가 해야 했다.

“집에 가고 싶다…….”

편집이나 기획은 얼마든지 하겠는데 영수증 처리만은 정말로 싫다…….

“힘내. 맛나는 거 사 줄게.”

“감사합니다, 민희 님…….”

메인 작가의 응원을 받으면서 자리에 앉아 영수증 정리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강 PD 있어? 아, 있네.”

벌컥 문이 열리며 정민우 팀장이 나타났다.

“다들 일 나갔나 보네. 메인들만 남아서 뭐 해?”

뭔가 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 같아서 미리 싹을 잘랐다.

“아닙니다, 그런 거.”

“뭐가?”

“주영 선배한테 무슨 말을 들으셨는지 몰라도, 그거 아닙니다.”

정민우 팀장이 쳇 하고 혀를 찼다. 역시 나랑 민희의 근거 없는 연애설을 떠올렸었나 보다.

“야, 강 PD. PD는 말야…….”

이상한 이야길 할 것 같다. 안 봐도 확률 100%다 싶어서 끊어 버렸다.

“안 그래도 영수증 가지고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어쩐 일이십니까.”

“궁금해할 것 같아서, 알려 주러 왔지.”

“뭘 말입니까?”

“현준영 팀장 처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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