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31가지 아이스크림 가게
나는 그 순간 현준영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여전히 용납을 못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그게 무슨 헛소리입니까, 국장님! 제가 잘못한 게 뭐가 있다고 그런 처분을……!”
“기사 다 봤을 거 아냐. 잘못한 게 없다고?”
“근거 없는 낭설입니다! 난 그런 적 없어요! 내 PD 경력에 걸고서!”
사무실 앞 복도에 모인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그는 그렇게 말했다.
누가 보더라도 지극히 그들은 의식하는 듯한 발언이었다. 좀 전까지 날뛰던 건 뭐란 말인가. 본인이 그렇게 떳떳하다면 그렇게 날뛸 필요도 없지 않은가?
내가 뭐라고 나서야 할까 고민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래, 아직 제대로 근거가 밝혀지지도 않았고, 확정도 되지 않았지. 그래서 일단 쉬라고 하는 거야. 그런 기사 정도로 자를 순 없잖아? 방송사 체면이 있지.”
거꾸로 말해, 사실로 밝혀진다면 자를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현준영 팀장의 낯빛이 새파랗게 질렸다.
“시, 신 이사님은요? 신 이사님 컨펌은 받은 겁니까?”
“신 이사님 개인이 아니라 대다수 이사진의 의견이 그래. 뭐, 신 이사님은 나보다 현 팀장이 더 친할 테니까 직접 물어보든지. 지금 들어와 계실걸?”
그 말에 현준영 팀장이 서인하 국장을 밀치고 허겁지겁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그 뒷모습이 처량하기까지 했다.
“자자, 무슨 구경들 났어? 연예인이라도 여기 있는 거야? 그만 어서 가서 일들 봐.”
서인하 국장이 복도에 모인 사람들에게 휙휙 손을 내저어 쫓아 보낸 뒤, 사무실 문을 닫았다.
“현준영이 궁지에 몰렸나 보네.”
“기사 하나 터진 것 가지고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 아닌가요.”
정민우 팀장이 의문을 표하자, 팀원들도 모두 끄덕였다.
그간 봐 온 현준영 팀장의 캐릭터라면 기사 난 것 정도로는 끄떡도 없이 뻔뻔해야 할 것 같은데, 오늘은 너무 절박해 보였다.
설마하니 나타나자마자 멱살을 잡을 줄이야.
“그건 내가 추측하기로…….”
서인하 국장이 뭐라고 이야기를 하려다가, 우리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니군. 어쨌든, 이 일은 일단 적당히 마무리될 것 같으니 더 신경 쓰지 말고 방송이나 잘 만들라고.”
서인하 국장이 모두에게 격려의 말을 남기고서 먼저 나가자, 바톤을 이어받은 정민우 팀장이 이것저것 지시를 남겼다.
스태프롤에서 현준영 팀장을 완전히 제하고 그 대신 추가로 지원 인원을 파견해 주기로 약속했다. 그 외에 필요한 부분은 외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방안까지 내려왔다.
우리 팀에는 매우 좋은 일이었다.
“오늘 방송에 다음 4차 경연까지 아직 할 일이 많을 거야. 그래도 이제 8부 능선은 넘은 셈이니까 마지막까지 잘들 부탁해.”
“예!”
팀원들에게 정민우 팀장도 격려를 남기고 사무실을 나섰다.
한순간에 긴장감이 쑤욱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어서, 나는 자리에 털썩 앉았다.
“뭔가…… 폭풍 같았는걸.”
“그러게 말이에요……. 아직도 뭔가 어안이 벙벙한데.”
박주영 선배와 민희가 주고받는 소리에 나도 뒤늦게 실감했다.
끝났구나. 복잡한 사태가.
화이트보드를 돌아보자, 눈치채지 못한 사이 확률이 다시금 성큼 뛰어올라 있었다.
[80%]
5% 상승하여, 마지막까지 시청률이 유지될 확률이 드디어 80%까지 올라갔다.
이 정도면, 사고가 생기지 않는 한 우리만 잘하면 충분히 유지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스마트폰을 꺼내 로그를 확인했다.
[아이템 ‘오늘의 꿀팁’의 사용이 종료되었습니다.]
[현재 적립 포인트/사용 가능 포인트]
[11,614P/272P]
다시 세 자릿수로 떨어진 포인트를 보고서도 허전함을 느끼지는 못했다.
오히려 아이템 사용에 대한, AGD 앱에 대한 고마움만 절로 느껴졌다.
[아이템 ‘오늘의 꿀팁’은 이후 10회의 확률 보기 사용 후까지 사용할 수 없습니다.]
[사용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해금됩니다.]
메시지를 읽다 보니 이상했다. 사용 조건이 충족된다는 게 무슨 의미지?
AGD 앱을 터치해 ‘상점’을 찾아 들어갔다.
그런데 상점 탭에서 ‘오늘의 꿀팁’ 아이템이 완전히 없어져 있었다.
혹시…… 단순히 10회 동안 사용을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그게 최소 조건인 건가? 사용하기 위해선 또 다른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거고?
뭔지는 당장 알 수 없지만, 뭔가 의문이 가득한 아이템이었다.
하긴, ‘오늘의 꿀팁’ 자체가 그동안의 아이템과는 궤를 달리하는 아이템이었다.
사실상 이 아이템이 아니었더라면 ‘10%’의 확률을 ‘80%’까지 상승시킬 수 없었을 거다.
새삼 AGD 앱의 대단함이 느껴졌다.
설명이야 봤지만 대체 어떤 구조인지, 애초에 이 앱이 어떻게 나에게 온 것인지…… 새삼 궁금했다.
“강 PD? 대한아?”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보느라 박주영 선배가 말을 거는 것을 놓칠 뻔했다.
서둘러 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네, 선배.”
“지환이 왔다고.”
고개를 드니 무대 감독을 만나러 갔던 오지환이 선배 옆에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빠르게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나에게 넘겼다.
“수고했어. 이야기는 잘됐어?”
“네. 리스트대로 충분히 준비할 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됐네, 그럼.”
4차 경연 무대 동선이 다소 바뀔 일이 있어서, 이 부분을 무대 감독과 상의해야 했다.
혼자 보내도 될까 했는데, 다행히도 확언을 받고 온 모양이었다.
“그런데…… 오면서 들었는데, 사무실에 무슨 일 있었습니까?”
오지환이 자리에 앉으며 조심스레 물어왔다.
박주영 선배가 신나게 설명을 해 주자, 듣는 동안 오지환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변화했다.
“……헐, 대박. 진짜요? 잘리신 겁니까?”
“잘린 건 아니고, 우리랑 아예 손절된 거지. 아마 자택 근신이지 않을까? 일단은.”
그래, 일단은이지. 오늘이나 내일 추가 기사가 뜨면 정말 잘리는 걸로 끝날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우리한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나는 테이블을 탁탁 두들겨 모두의 시선을 모았다.
“현준영 팀장이 빠진 건 나도 솔직히 속 시원하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인력이 도로 없어진 거죠. 새로 지원이 오는 데까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어요. 그러니 그때까지 다시 우리끼리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다들 힘냅시다.”
“늘 하던 거 또 하는 건데 뭘. 그렇지 않냐, 지환아?”
“마, 맞습니다. 강 PD님.”
“밤 좀 더 새면 되지, 뭐. 아아, 당이나 많이 준비해 놔야겠다.”
“저 초콜릿 있어요!”
“저는 사탕!”
다들 의욕적이다. 모처럼 방수정 PD가 이끌던 <당잠사> 팀 느낌이 많이 나서, 괜히 뭉클했다.
“앞으로 5화 분량, 꼭 잘 만들자고요.”
PD들과 작가진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의욕을 불태웠다.
* * *
『‘언더커버 싱어’ 6화 시청률, 드디어 7% 돌파!』
『통합 시청률 7.3% ‘언더커버 싱어’의 기세가 무섭다!』
『케이블 음악 예능의 신화를 다시 쓰는 ‘언더커버 싱어’ 그 시청률의 비결은?』
6화 방영을 기점으로, 몇 화 동안 넘지 못했던 7%의 시청률을 돌파했다.
현준영 팀장의 이탈과 더불어서 시청률도 뭔가 걸림돌이 사라진 듯 쾌속하게 진격했다.
7화, 8화 때도 그 상승은 멈추지 않았다.
사실 그 시청률 상승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3차 경연 무대의 퀄리티.
블라하이, 아온은 말할 것도 없었고, 다른 BJ들도 그동안의 퀄리티를 뛰어넘는 무대를 만들어 주었다.
아무리 편집의 신이 내려도 메울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BJ들이 하나같이 자신들의 실력 그 이상을 발휘해 준 무대였으니 절로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보우건은 3차 경연을 기점으로 재능을 꽃피운 느낌이었다.
관객 반응이 좋았던 만큼, 인터넷상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우와 보우건이 저렇게 딜리버리가 쩔었었냐
―귀에 꽂아주긴커녕 후려쳐박네
―원곡 어디 갔냐ㅋㅋㅋㅋㅋ
―동네사람들! 여기 원곡 스틸러가 있어요!ㅎㅎㅎㅎ』
분명 기존 곡을 어레인지한 건데, 마치 자신의 노래처럼 소화해 냈다 보니 화제가 쏟아졌다.
6화의 마지막 무대로 보우건을 세운 게 정확히 들어먹혔다. 그 화제는 7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졌고, 단숨에 우승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가만히 뒀어도 정말 우승할지도 모르겠어요.”
“현준영은 정말 뻘짓한 거지.”
현준영이 조작 없이도 이렇게 우승 후보가 될 줄 알긴 했을까?
이제 와선 의미가 없다.
공교롭게도 3차 경연이 방송을 타는 동안 현준영의 새 소식도 뉴스를 탔다.
익명의 제보자가 보낸 <스프K> 투표 조작의 증거가 언론에 전송되었고, 언론은 일제히 조준 사격했다.
연예 면을 떠나 공중파 뉴스에서도 심도 있게 다뤄졌다고 했다.
무대 세팅에 대한 기발함이나 편집에 대한 감각. 무엇보다 임기응변을 할 수 있을 만한 능력.
잠깐의 협업을 통해 나는 현준영이 그러한 재능을 가지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런 탤런트에도 불구하고 커미션에 모든 것을 저버린 거다.
사실 이제 와서는 보우건이 정말 우승할 거라는 감이나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아무튼, 보우건을 비롯하여 BJ들의 무대가 각각 스포트라이트를 받자, 최종 라이브 경연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치가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최종 10화는 10시 편성으로, 120분 방송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것은 처음 기획 때부터 확정받은 것이었는데, 시청률이 7%를 찍은 데다 3차 경연이 워낙 화제가 된 터라 변경점이 생기고 말았다.
4차 경연이 끝난 직후 정민우 팀장이 호출해서 올라갔다가 그 사실을 들었다.
“찍어 둔 분량 많지?”
“예? 뭐, 예. 클립이나 인터넷 공개로 쓰고 있습니다.”
“그래도 남지?”
“아직 많이 남습니다.”
분량이 넘쳐서 넣지 못한 연습 장면이라거나 브이로그라거나 참 많다.
정민우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11화 추가 편성이야. 스페셜 하나 잘 짜 봐.”
“허, 정말입니까?”
“물론 정말이지. 잘하면 시즌2까지도 갈 것 같으니까, 그 부분도 잘 만져 두고. 알았지?”
시즌제 확정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는 팀원끼리도 농담처럼 했었는데, 이사진에서도 이야기가 나오는 모양이었다.
나는 어깨춤을 추면서 팀 사무실로 내려와 이 소식을 전했고, 팀원들도 모두 함께 어깨춤을 추었다.
우리 팀이 그렇게 승승장구의 노선을 그려 가는 동안, 현준영 팀장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주말에 정민우 팀장과 술 한잔 하면서 듣게 되었다.
근신 처분을 받은 그날, 이사실로 뛰어 올라갔던 현준영 팀장은 결국 신호현 이사를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대로 경비원에게 쫓겨난 것 같다고.
한편, 언론에 전송된 증거 데이터는 매우 신빙성 있는 자료였기에 곧장 관할 경찰서로 넘겨졌고, 기사가 나간 첫날부터 워낙 여론이 시끄러웠던 탓에 경찰도 급격히 수사를 시작했다
정민우 팀장도 아마 무혐의로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다만.
“그걸 누가 주도했느냐를 밝히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 그 부분이 관건이겠지.”
“현준영 팀장이 당시 메인이었잖습니까?”
“강 PD, 왜 그래? 메인 혼자 주도했느냐가 관건은 아니잖아? 더구나 주범이었습니다, 하고 결정이 나는 건 법리적 해석이 필요한 문제니까.”
이 부분은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정민우 팀장의 말이었다.
하기야, 이번 일에 신 이사가 개입되어 있듯 무언가 숨겨진 게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민우 팀장은 그러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현준영도 처음부터 괴물이었던 건 아닐 거라고. 아마도 성장하고, 성장할수록 주목받게 되고, 주목받는 만큼 압박감에 시달리게 되면서 점점 결과를 보장받을 수 있는 방향을 추구하게 되었을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강 PD도 미래를 잘 생각해 봐. 지금 이 방송계 새내기들 중에서 너만큼 주목을 받으며 성장가도를 달리는 사람은 없으니까. 노른자위 땅에는 항상 사람이 우글우글 꼬이기 마련이잖아?”
그 말에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내 능력이 내가 인정받는 만큼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AGD 앱의 힘 덕분임을 잊지도 않았다. 이대로 AGD 앱의 힘만으로 고속 성장을 하게 된다면…… 나는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만약 그 상황에서 불쑥 튀어나왔던 것처럼 AGD 앱이 사라지기라도 한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지금 상황에서 확실한 건 하나였다. 적어도 현준영이 걸어간 발자국을 따르고 싶지 않다는 것.
어쨌거나 그와는 상관없이 우리 방송은 순조롭게 나아갔다. 8화가 방영되고, 시청률이 다시 7.8%까지 치솟고, 예능 트렌드 순위에서 3위를 기록하고, 실시간 검색 순위를 BJ들의 이름이 수놓았다.
그러면서 경찰의 수사도 진행되었다. 당시 연출진에 대한 소환이 이루어지고, 현준영 팀장도 소환당했다는 소리가 들리고, 신호현 이사도 불려 나갔다는 소식들이 바람처럼 떠돌았다.
그중 우리 팀과 관련된 소식이라면, 보우건을 우승시키는 조건으로 하이지 엔터테인먼트로부터 현준영 팀장이 거액의 돈을 받기로 하였다는 사실이었다.
명확하게 드러난 사실은 아니지만, 우린 누구나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지.”
한편으로는 여행사 리베이트 건도 불거지고, 기타 외주 제작에 관해 갑질한 것까지 회사 내에서 속속 튀어나왔다.
박주영 선배는 단평했다.
“현준영 팀장…… 끝났네.”
“투표 조작 건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제 복귀는 못하지 않을까?”
선배와 민희가 여상스럽게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나도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주제넘음의 아이콘 강촉새께서 제대로 한 건 하셨구나.”
“제가 뭘 말입니까.”
“촉 좋은…… 알았어. 욕은 생략.”
이 두 사람은 나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울 요량인 모양이었다.
“왜 이러세요들, 난 흐르는 대로 내버려 뒀을 뿐입니다.”
“흐르는 대로는 개뿔. 댐 터뜨려서 흘러가게 만든 장본인께서.”
“아, 역시 강범람.”
아니, 무슨 놈의 별명을 여러 개 지어 놓고 부르고 싶은 걸 골라 부르냐고.
이게 31가지 아이스크림 가게라도 되나?
“모르겠습니다. 맘대로 부르십쇼.”
나는 피식 웃으면서 커피를 나눠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