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현준영의 과거
“아. 역시.”
박주영 선배와 민희.
두 사람의 반응은 아주 간단했다. ‘너도? 야, 나도’였다.
“사실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박주영 선배가 담배가 당기는지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여기저기 의견을 주는 거야 뭐 좀 귀찮다 해도 그럴 수도 있는데, 그 의견이 죄다 보우건한테만 집중되어 있단 말이지. 무대건, 편집이건.”
“대본 짤 때도 슬쩍 나타나서 언질하는 게 보우건일 경우가 많아. 다른 BJ들 이야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예의상인 느낌이고.”
내가 느꼈던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이 두 사람은 내가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 우리 셋이 생각하는 바가 같다면 심증이 더는 심증만으로 끝나지 않는 기분이었다.
“제 심증만이 아니었군요.”
“그래도 일단 증거랄 건 없잖아. 정황이 그럴 뿐이지.”
“이 정도면 증거가 필요한가 싶기도 하지만.”
선배의 말에 민희가 대꾸했다. 선배가 민희를 힐끔 보긴 했지만 달리 반론을 하진 않았다.
“요는, 왜 그런 짓을 하냐는 거야. 그래, 우승을 시킨다고 쳐. 편집 관여든 무대 관여든 뭐든 해서. 현준영 팀장이 그걸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지?”
“아무 대가 없이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란 말이지.”
민희가 나를 보았다.
“지난 <당잠사> 시즌3 때도, 대한이 네가 했던 일들을 전부 싹 입 닫고 자기가 한 것처럼 가져간 사람이야. 자기한테 이득이 되지 않는 걸로 이렇게 행동할 리가 없어.”
“……사실 거기에 대해서도 의심 가는 점이 하나 있어.”
어차피 의심을 내뱉은 이상 이 이야기도 해야 했다. 나에게는 두 사람이 모르는 또 다른 정황이 있었다.
“뭐? 보우건한테 그런 전화가 왔어?”
“우승을 시켜 준다고?”
“보우건은 그때 무대를 조언해 주겠다는 정도로 받아들인 것 같은데…… 계속 곱씹다 보니 아무래도 그게 아닌 것 같아서요.”
내가 만약 나타나지 않았고, 보우건이 통화를 더 이어 나갔다면 과연 무슨 말을 들었을까.
“……현준영 팀장이랑 거기 기획사 사이에 뭔가 연줄이 있다?”
“이전에 <당잠사>를 필리핀에서 찍었을 때, 거기 여행사에 관련해서 비슷한 이야기도 들었어요. 여행사를 선정하고 로케이션 장소를 선정하는 데에 있어 여행사의 영업이 있고…… 그게 다 관행으로서 포장된다고.”
말이 영업이지, 그게 뭔지는 확실히 알고 있다.
리베이트. 어느 정도의 관행으로 치부되는 그것. 방수정 PD가 알려 주었던 것이다.
“그런 일이 우리 방송에서 우리가 모르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그 중심이 현준영 팀장이 아닌지 의심이 됩니다.”
“보우건한테 제안한 기획사가 어디였지?”
“잠깐만.”
민희의 질문에 나는 대표 메일함을 열어 메일을 훑었다.
“High-G 엔터테인먼트…… 유명한 힙합 레이블이네. 유명한 아이돌도 몇 있고.”
힙합을 기반으로 한 아이돌 육성으로 성공한 기획사의 이름이라 나도 알고 있었다.
힙합 계열로는 좋은 회사로 알려져 있어서 보우건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겠다고 여겼는데, 이제 와선…… 그것조차 의심이 갔다.
“정리해 보자.”
박주영 선배가 라이터 매만지기를 그만두고 진지하게 말했다.
“보우건은 기획사 계약을 앞두고 있다, 기획사에서도 보우건을 우승시키려고 하고 있다, 현준영 팀장이 보우건을 우승시키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현준영 팀장과 하이지 사이에 연줄이 있고, 일종의 리베이트가 있는 것 같다. 이 말이지?”
“증거는 없습니다.”
“이런 일에 증거가 어디 있겠어. 그래도…… 알아보긴 해야겠네. 확실히.”
“알아볼 수 있을까요?”
“작은 인맥이라도 어떻게든 찾아봐야지. 대한이 너는 팀장님한테 가서 이야기나 드려 봐. 현준영 팀장이 갑자기 꽂힌 거에 대해서 미안해했다며. 도와주실 거야.”
나는 알았다고 일단 주억거렸다. 진짜 이야기하기까지는 혼자서 더 고민을 해 봐야겠지만.
그사이, 민희는 뭔가를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왜.”
“우리가 어떻게든 차단을 한다고 해도, 마지막 라이브 무대는 관객 투표에 시청자 투표까지 할 거잖아. 그것까지 염두에 두고 우승을 시키려 하는 거고.”
“그렇겠지.”
“제작에는 관여한다 치더라도, 시청자 투표는 어떻게 하려는 걸까?”
그 부분은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듣는 순간, 아주 나쁜 생각이 곧바로 들었다.
그 추측을 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투표 조작하려고 하는 거 아냐?”
민희의 말에 박주영 선배와 내가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
그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말로 직접 듣는 것과는 파괴력이 달랐다.
“투표 조작이…… 가능한가?”
“그걸 집계하는 건 외부 회사라서…….”
우리는 누구 하나 선뜻 부정하진 못했다.
“…….”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서로 눈빛만 교환했다.
그 정적을 깬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현준영 팀장이었다.
[현준영팀장: 사무실에 아무도 없네? 4차 경연 대도구 추가된 리스트 확인해 줘야 하는데.]
팀 단톡방에 그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그것을 읽고, 나는 정신을 차리듯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 여기까지만 하죠. 증거도 없는데 너무 깊이까지 넘겨짚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 내가 사무실 올라갈 테니까, 너는 일단 팀장님하고 상담 좀 하고 와.”`
“나도 일단 물어볼 수 있는 사람한테 물어볼게. 너무 기대는 하지 말고.”
민희까지 덧붙이면서, 우리는 일단 해산했다.
그들을 보내 놓고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정민우 팀장에게 이 얼토당토않은 추측을 상담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
그러나 결국 혼자 고민하는 것보단 확실히 나을 것 같았다.
정민우 팀장에게 메시지를 보내니 자리에 있다고 답변이 왔다.
[긴히 상담할 내용이 있습니다.]
[정민우팀장: ? 몰래 할 이야기야?]
[가능하다면요.]
정민우 팀장은 조금 시간이 걸려 답변을 주었다.
[정민우 팀장: 5분 뒤에 여기로 와.]
* * *
그가 알려준 카페는 이름만 알았지, 가 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서 으슥한 구석 자리를 찾았다.
잠시 후 정민우 팀장이 주변을 살피며 들어왔다.
“여기 좁아서 방송국 사람들이 잘 안 오는 곳이거든.”
그렇게 설명하면서, 그는 더 깊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몰래 할 이야기라고 대놓고 말하는 걸 보니 심상치 않아서 여기로 오라고 한 거야. 현 팀장 일이야?”
대뜸 현준영의 이름이 나와서 오히려 내가 놀랐다.
내 표정이 어떻게 알았냐는 듯 보인 걸까. 정민우 팀장이 말을 이었다.
“지원 나간 지 좀 됐으니 슬슬 불평할 때가 된 것 같아서 말이야.”
불평 정도가 아닌데.
나는 ‘사실은…….’ 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기 전에 설명이 끝났다. 심각한 얼굴이 된 정민우 팀장은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나온 것을 잠깐 보더니, 다시 아이스로 시켰다.
“그 말을 들으니 뜨거운 걸 못 먹겠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저희 생각이고, 증거는 없습니다.”
“투표 조작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는데, 증거가 없는 것도 문제긴 하지. 그런데.”
그는 놀랍게도 우리의 추측을 매우 귀담아들어 주었다.
박주영 선배가 상담하라고 하긴 했어도 사실 이야기해 봤자 헛소리 말라고 한소리 들을 것도 각오했었다.
그러나 그는 심각한 표정일지언정 화난 얼굴은 아니었다.
“이상하네. 왜 그 이야기가 매우 신빙성 있게 들리냐?”
“……팀장님도요?”
“현준영 팀장을 갑자기 지원 내보내라고 이야기 들은 건 나나 국장님도 마찬가지야. 막아 보려 했지만 막지도 못했지. 근데 이상하잖아. 그렇게 급하게 현 팀장을 지원 보내야 할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더란 말이지.”
내가 모르는 뒷이야기를 하면서 정민우 팀장은 인상을 찌푸렸다.
“현 팀장이라면…… 너희의 추측이 정말 맞을 수도 있어. 사실 그런 의혹이 처음이 아니니까.”
“예?”
“현 팀장이 만든 오디션 프로그램 있지? <스타 프로듀스 K>, 그 방송도 투표 조작 의혹이 있었어.”
이건 또 무슨 말이야.
내 표정을 본 정민우 팀장은 아주 진득하게 한숨을 쉬고선 설명했다.
“어디 가선 절대 못 할 이야긴데…….”
<스타 프로듀스 K> 초기 시절.
현준영 팀장이 메인 PD를 맡고 있을 때 몇 번이나 의외의 인물이 순위권에 들었던 건 나도 알고 있다.
그럴 때마다 항상 나오던 이야기가 바로 악마의 편집으로 특정 인물에게 분량 몰아주기를 했다는 의혹이었다.
편집으로서 사실을 교묘히 바꾼 영상을 내보내고, 그것으로 인해 화제 혹은 논란을 만들고. 그렇게 최종적으로 순위가 바뀌면서 의외의 인물이 순위권에 들고.
하지만 정민우 팀장은 그게 다가 아니라고 했다.
“시청자 투표수를 조작해서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의혹이 있었어.”
정민우 팀장은 편집으로 안 됐을 때 마지막에 가서 쓰는 수법이었다고 덧붙였다.
아니…… 그건, 방송 만드는 사람으로서 절대 해선 안 되는 범죄잖아.
그런데 그 이전에 궁금한 게 생겼다.
“……가능한 건가요?”
“가능하지. 업체에서 받는 데이터 자체를 손질하면 되는 거니까. 그래선 안 되지만…… 아.”
이야기하다가 그가 나를 새로이 보았다.
“이번 투표 업체 어디였지?”
나는 기획안을 스마트폰으로 열어서 뒤적거리다가 업체명을 그에게 보여 주었다.
그의 미간 주름이 한층 더 진해졌다. 그러더니 자신의 스마트폰을 한참 들여다본 끝에야 표정이 조금 풀렸다.
“아니군, 설마 같은 업체인가 했는데 다른 데네. 아무튼 그 데이터를 조작해서 투표 결과를 바꾸었다는 의혹이 있었는데, 결론이 나진 않았어. 그냥 흐지부지 끝났지.”
“그렇군요…….”
하지만, 그때 현준영 팀장과 같이 의혹을 받은 업체가 아니라고 해서 안심을 할 순 없었다.
현준영이 이직을 했듯 그 의혹 업체에서 이직하지 않았으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정민우 팀장도 안심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이걸 지금 아는 사람은 누구야? 너희 세 명?”
“예.”
“일단 국장님한테는 내가 보고할게. 국장님 선에서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을 테니까.”
나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고생시켜 드리는 것 같습니다.”
“왜 네 탓이야, 이게. 엉뚱한 사람을 지원 보낸 걸 못 막은 내 탓이기도 하니까, 그런 생각 하지 마. 힘들겠지만 프로그램 잘 만드는 것만 생각하고.”
“알겠습니다.”
그는 곧 나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원샷 하더니 지체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잠깐 생각나는 게 있어서 얼른 그를 따라 일어섰다.
“팀장님, 그 투표 조작 의혹에 관한 건 기사화되거나 했습니까?”
“몇 개 나오다 말았던 걸로 알아. 찾아보면 나올걸?”
그렇게 말하고 카페를 떠난 그에게 인사를 하고,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스마트폰을 터치하며 기사를 검색했다.
몇 년 전 기사라서 쉽게 나오진 않았다.
포털 몇 개를 털고, 검색 사이트를 털고, 그런 작업을 10분 넘게 이어간 다음에야 나는 목적으로 하던 기사를 찾아냈다.
『‘스타 프로듀스 K’ 최종 데뷔 순위는 타당한가
―선우정 기자』
들어가 읽어 보니, 방송에 관한 칼럼 격의 기사였다.
마지막까지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하며 데뷔 확정을 받았지만, 화제성과 실력도 밀리는 인물이 있어서 아쉽다는 기사.
그리고 그 마지막에,
『……거기에 덧붙여 <스프K>의 의혹은 명확하게 해결이 나지 못했다. 투표에 관한 의혹이 다음 시즌에는 말끔히 해결되길 기대해 본다.』
그런 식의 결말이 있는 것을 보니, 의혹이 있던 것은 분명해 보였다.
증거가 없어 화제가 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방송계에서 쉬쉬하여 기사화되지 못한 것인지. 어느 쪽이든 확인할 길이 없는 게 정상이다.
그렇지만 나한텐 방법이 있다.
이 기사의 의혹이 사실인지, 현준영 팀장이 <스타 프로듀스 K> 제작 시절 정말로 투표 조작을 했었는지에 대해서, 확률을 보면 되니까.
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지금 진행 중인 확률 보기를 취소했다.
[‘<언더커버 싱어> 4차 경연 무대 제작의 성공’의 확률 보기 사용을 종료하였습니다.]
[100% 확률을 달성하지 못하였습니다.]
100% 확률 달성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 기사가 정말인가 아닌가, 그것이 더 중요하다.
이어서 폰을 노려보자, 기사 위로 홀로그램처럼 숫자가 나타났다.
“……젠장. 실화냐.”
나밖에 볼 수 없는 숫자지만, 결코 잘못 볼 수 없는 숫자가 그곳에 떠 있었다.
[100%]
현준영 팀장의 투표 조작은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