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70화 (70/200)

70화 의혹

내가 방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문을 반쯤 연 상태에서 보우건을 쳐다보았다. 때마침 그도 시선을 돌렸다가 거울 너머로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난 표정 관리를 하며 묵례를 해 보였다.

“아, 그, 지금 PD님이 오셔서…… 예. 예. 연락 드리겠습니다. 예.”

무대 위에서는 그렇게 관객을 씹어 먹을 듯이 뛰어다니더니, 무대 아래에서는 저렇게 태도가 얌전해진다. 그는 끝까지 예의 바르게 전화를 끊더니, 나에게도 꾸벅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오시는 걸 몰랐습니다.”

“아뇨. 함부로 들어온 제 잘못입니다. 노크했는데 답이 없으시더라고요.”

“아, 통화 중이었던 터라…….”

그가 죄송하다는 듯 한 번 더 고개를 숙여서 얼른 말렸다.

“오늘 무대 수고하셨다고, 다음에도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순위도 올랐고, 오늘 무대도 무척 좋았습니다. 방송 나가면 시청자 반응도 기대할 만할 것 같아요.”

“그럴까요? 관객분들이 즐겨 주시는 것 같아서 저도 좋긴 했는데…….”

그가 말을 꺼내면서 힐끔 손에 든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는 행동을 해 보였다.

“실례가 안 된다면 혹시 방금 누구랑 통화하신 건지 여쭤도 될까요.”

조심스럽게 그렇게 묻자, 그는 태연한 어조로 답했다.

“말씀드렸던, 계약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회사입니다. 오늘 무대 좋았다고 연락을 주셔서요.”

“무대요? 아직 방송도 전인데.”

“아, 관객 중에 회사 분이 계셨다고, 연락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아하. 그래서 우승…… 이야기도 하신 거군요.”

보우건이 눈을 조금 크게 떴다. 난 서둘러 덧붙였다.

“문 열고 들어오다가 우연히 들었거든요. 죄송합니다, 엿들으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아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우승하게 해 주시겠다고 했는데, 다음 무대 꾸미는 걸 도와주신다는 이야기 같아요.”

비니를 슬쩍 고쳐 쓰면서 보우건은 해맑게 웃었다.

근데 왜 이리 찜찜하지.

하지만 그 태도를 드러낼 순 없어서 예의 바르게 웃어 보였다.

“도움을 마다할 필요는 없겠지요. 저희도 협조할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 주십시오. 오지환 PD에게 연락하시면 됩니다.”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인사를 끝내고서, 대기실 문을 탁 닫았다.

복도에 서서 AGD 앱을 열었다.

[100%]

3차 경연 무대가 마무리되면서 기록된 확률이었다.

현준영 팀장의 방해 때마다 흔들릴 뻔도 했지만, 처음의 기획대로 꾸준히 몰아붙여서 이루어 낸 성과였다.

기쁘기도 하고, 7부 능선을 넘은 느낌이라 어느 정도의 성취감도 있었다.

그렇지만…….

일단 제작진끼리 도와서 뒷정리를 하고, 출연진들을 배웅하고, 그러고 나서 팀 사무실로 돌아왔다.

“아이고, 죽겠다. 삭신이 다 쑤시네.”

“그래도 무대는 신나지 않았어요? 그동안 무대 중에 제일 좋았던 것 같은데.”

“관객 반응도 좋았고, 점수도 이전보다 훨씬 타이트해졌고. 가수들 아니라고 무대 때마다 다들 느는 것 같아.”

팀원들이 저마다 감상을 내뱉는 동안, 나는 화이트보드를 노려보았다.

[10%]

마지막까지 6%대의 시청률이 유지될 확률.

1% 올랐다. 그렇다고 좋아할 수가 없었다.

3차 경연 무대도 성공적이었고, 반응도 계속 좋은데. 도저히 안심이 안 되었다.

하지만 티를 낼 순 없으니 일단 표정 관리를 하고 돌아보았다.

“오늘 다들 고생했습니다. 얼른 퇴근하고 내일 봅시다.”

이미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 메인으로서 빨리 퇴근시켜 줄 의무가 있었다.

팀원들이 퇴근을 하고 민희와 박주영 선배도 퇴근 준비를 했다.

나는 한동안 화이트보드를 노려보고 있었다.

“야, 대한아. 무슨 일 있냐.”

내 표정을 읽은 박주영 선배가 내게 묻고, 민희도 가방을 든 채 나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에게 말이라도 꺼내 볼까.

하지만 아직은 의혹만 있을 뿐, 명확하게 전달할 이야기가 딱히 없었다.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일단 그렇게 속으로 삭이기로 했다.

* * *

3차 경연이 끝났으니 바야흐로 제작진이 고생할 시간이었다.

다음 날 새벽같이 출근해야 했다.

3차 경연 촬영본 점검도 있었고, 그동안 편집 작업을 진행한 5화의 가완성본을 시사회를 통해 최종 확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막 작업까지 전부 끝낸 버전을 사무실에서 돌려보려 할 때 현준영 팀장이 나타났다.

“나도 봐도 되죠?”

지원 나온 입장이라고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가 참여하여 편집회의가 이어졌다.

5화 편집본의 모니터링이 끝나고,

“괜찮은 것 같은데? 무대마다 잘 보이고.”

“지환 씨가 센스가 있네. 예전에 미튜브 편집 좀 많이 해 봤어요?”

민희의 평을 듣고 오지환이 눈에 띄게 부끄러워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첫 만남의 해프닝 이후 마음을 정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성실히 일은 잘하고 있었다. 이렇게 민희가 직접 말을 걸면 또 부끄러워하긴 해도, 예전처럼 굳어서 아무것도 못 하진 않았다.

“가, 감사합니다.”

“저런 센스는 나도 지환이한테 배운다니까. 강 PD야, 너도 배워야 해.”

박주영 선배의 지적에 나는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서로의 공로를 치하한 뒤 이 버전을 확정안으로 하자고 의견을 모으는데, 현준영 팀장이 손을 들었다.

“……예. 말씀하시죠.”

“다 괜찮은데, 후반에 조금 힘이 빠지는 것 같아요.”

“후반 말입니까?”

“그래요. 어디야…… 보우건 무대 부분에서 샷을 좀 더 추가하면 좋지 않을까 싶은데.”

그가 오지환 앞에 있던 노트북을 가져가서 보우건의 무대로 재생바를 이동했다.

“여기랑 여기. 그림이 좀 겹치기도 하니까 다른 컷을 좀 집어넣는 건 어때요? 4번 카메라 쪽 시야를 살리면 관객이랑 함께 잡히면서 훨씬 분위기가 살 것 같아요.”

그가 보여주는 장면을 살폈다. 나쁘진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100%]

나는 이미 이 편집본에 대한 100% 확률을 확인했다.

AGD 앱의 어플과 내 의견은 같았다.

현준영 팀장의 지적은 나쁘진 않았으나,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었다.

“의견은 감사합니다만, 그 수정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왜요?”

“그 부분이 없어도 관객 반응은 이미 충분히 들어갔고, 더 넣는다고 해도 결국 그림이 겹치는 것밖에 안 될 것 같아서요.”

“하지만, 어제 보우건의 무대가 관객 반응 좋았잖아요? 관객 점수도 좋았고. 2차 경연 무대지만 미리 좀 손봐 두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어제 무대는 물론 관객 반응이 좋았습니다만, 지난 2차 경연 때는 그만큼은 아니었습니다. 그걸 굳이 좋은 것처럼 만들 순 없습니다. 다른 BJ와의 공정성도 생각해야 하고요.”

제작진으로서, 편집하는 사람으로서 경연에 대한 공정성은 지키자.

그게 이 프로그램 기획 초기 때부터 절대 흔들리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해 온 것이었다.

“공정성이라. 하지만 경연 프로에 시청자들이 바라는 건 재미죠. 공정성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현준영 팀장이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기면서 말했다.

“내가 몇 번 경연 프로를 만들면서 느낀 건데, 공정성을 토대로 만들어도 결국 시청자들은 자극적인 걸 좋아하더라고요. 시청자들이 원한다면,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 게 우리 PD고.”

꼰대들 특유의 ‘라떼는 말이야’ 하는 투였다. 그래서, 악마의 편집 어쩌고 하는 별명이 붙은 게 자랑스럽다는 건가?

“……자극적인 것을 목표로 만든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기획 의도는 보셨을 텐데요.”

“에이, 그거야 외부에 보여 주려고 만드는 거잖아요. 그렇게 적어야 위에서 컨펌도 잘 나오고.”

그는 끝까지 능글맞은 웃음으로 때우려고 했다.

“내 의견대로 한번 해 봐요. 분명 좋은 반응 올 테니까.”

“아니요.”

나는 현준영 팀장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메인 PD는 접니다. 경험에서 비롯된 팀장님의 의견은 감사하나, 듣기만 하겠습니다.”

철저하게 잘라야 한다. 그것이 나의 판단이었다.

AGD 앱도, 그리고 내 감도 같은 것을 알려 주었다.

저 길을 가지 마라.

현준영 팀장이 제시하는 길을 걷지 마라.

<당잠사> 시즌3 때와는 입장이 다르다. 그땐 현준영 팀장이 메인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메인이다. 내가 흔들리면 안 되었다.

“……그래요.”

가만히 나를 보던 현준영 팀장이 웃지 않는 눈으로 입을 열었다.

“메인 PD님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죠. 좋아요, 그럼 난 4차 경연 준비하러 갈 테니 필요한 거 있음 연락하세요.”

“저기, 잠깐.”

일어서려는 그를 불러 세웠다.

“그것뿐이십니까?”

“뭐가요?”

“딱 보우건 무대만 아쉬우셨냐는 말입니다.”

서 있는 현준영 팀장과 앉아 있는 나. 눈빛이 마주쳤다.

그가 얇은 눈매의 눈을 살짝 크게 떴다.

“무슨 의미예요?”

“말 그대로입니다. 다른 무대는 괜찮으신가 하고요.”

“뭐, 괜찮은 것 같아요.”

그는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고는 사무실을 나갔다.

그가 사라지자, 사무실에 흘렀던 묘한 긴장감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이야, 대한아. 대단한데.”

박주영 선배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대견한 일을 했다는 듯이.

민희도 가슴을 쓸어내리는 시늉을 했다.

“싸우는 줄 알았네. 아무리 지원 나온 사람이라지만 그래도 전에 모신 사람이고 팀장인데, 그런 배짱이 어디서 나왔어?”

“원래 주제넘음의 아이콘인 강범람 PD이시잖아. 요즘은 강촉새라지만, 오랜만에 옛 모습을 찾으신 거지.”

선배가 낄낄대고, 그 별명을 알고 있는 구은경 작가나 도채린 작가, 심지어 오지환마저 숨을 죽이고 웃었다.

“어, 근데 강촉새는 또 뭐예요?”

“아, 그거? 강대한 촉 좋은 새…….”

“선배!”

더 이상 놔두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강하게 나가는 건 현준영으로 족할 줄 알았는데, 내부에 적이 또 있었다.

“예이, 예이.”

“크흠. 암튼, 선배. 편집본 최종 정리해서 올려 주시면 편성 보내겠습니다.”

“오케이. 지환아, 가자.”

선배와 오지환이 먼저 자리를 뜬 뒤, 작가진들도 4차 경연 준비를 위해서 일어섰다.

밑의 작가들을 먼저 내보낸 민희가 자기 짐을 챙겨 들고서 나를 보았다.

“멋있었어.”

“응?”

“정말 메인이구나 싶어서.”

민희는 씨익 웃더니 사무실을 나갔다. 나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머쓱하게 뒷머리만 긁었다.

잠시 후, 선배와 오지환이 작업한 최종 버전이 서버에 올라왔다.

그것을 사무실에서 확인하고, 편성부로 보내 편성을 확정했다.

빠른 진행은 아니라서 몇 번 허리를 숙이고 전화를 끝낸 뒤.

“……포인트가 다 모였단 말이지.”

AGD 앱을 열어 포인트를 확인했다.

[‘<언더커버 싱어> 5화 편집본 완성 확률’의 100%를 달성하였습니다.]

[변수 적용이 평가됩니다.]

[387P가 적립됩니다]

5화 편집본의 100% 달성과 함께 포인트가 적립되면서, 목표로 하고 있던 ‘2,000P’를 드디어 달성했다.

[현재 적립 포인트/사용 가능 포인트]

[11,614P/2,272P]

아슬아슬하게 ‘1,900P’ 대에 도달한 채였어서 괜한 조바심이 들었었다.

하지만 이제 2,000P를 달성했고, 묘한 든든함이 느껴졌다.

[오늘의 꿀팁 : 확률 상승에 필요한 정확한 팁을 제공한다]

새로이 해금된 아이템.

비록 사용한 뒤의 제한 사항을 생각하면 문제가 크지만, ‘10%’라는 어이없는 확률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아이템을 사용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았다.

그때를 위해서, 지금은 철저하게 현준영 팀장을 마크하는 수밖에 없었다.

* * *

5화 방영도 성공적이었다.

『<시청률it> ‘언더커버 싱어’ 5화 연이은 최고 시청률 갱신! 통합 시청률 6.9%!』

아슬아슬하게 7%를 넘지 못했지만, 이미 충분히 고무적인 성적이었다.

함께 고생한 제작진 모두가 보람을 느꼈다. 단 한 명, 현준영 팀장만이 그냥 묘한 웃음만 지었을 뿐이었다.

최종본에 대한 대립 이후로도 현준영 팀장의 태도는 별달리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예 본색을 숨길 필요가 없다는 듯 경연 준비 단계마다, 티저 편집마다, 방송본 편집마다 사사건건 의견 제시를 빙자한 태클을 걸었다.

메인 PD가 아님을 분명히 못 박았음에도, 처음만 물러났을 뿐 그다지 귀담아듣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 진짜. 가만히 있기만 해도 재수 없는 사람이 꼭 더 저러더라.”

박주영 선배가 담배 필터를 씹으면서 욕을 해 대려고 해서 내가 말렸다.

그사이, 내 마음속에 피어오르던 심증은 점점 더 늘어났다.

무대 세팅에 대해서는 일단 현준영 팀장이 담당해 주고 있었는데, 덕분에 내가 신경을 쓸 부분이 준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다른 부분이 신경을 쓰게 만들었다.

“마이크 하나 더 추가해도 되죠? 전에 썼던 그건데.”

“폭죽 몇 개 더 터뜨립시다. 빵빵! 폼나게.”

그렇게 의견을 제시하는 건 거의 다 보우건의 무대에서만이었다.

대체 이유가 뭐냐고 물어봤더니, 돌아오는 말이 가관이었다.

“내가 좀 팬이어야 말이지. 잘해 주고 싶어서 그래요.”

그건 좋다. 좋은데, 티는 내지 말아야지.

공정성 같은 건 정말로 생각지 않는지, 내가 보기에 그는 자신의 권한 내에서는 마음껏 편파를 저지르려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철저하게 그것을 잘라내긴 했지만 그럴수록 괜히 보우건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생겼다.

“안 되겠습니다. 선배.”

결국 난 내 심증을 두 사람에게 털어놓고자, 저녁 시간에 박주영 선배와 민희를 불러냈다.

“상담 좀 들어 주십시오. 제가 너무 나쁘게만 보는 건지, 얼토당토않은 의심인 건 아닌지 판단을 부탁합니다.”

“뭔데. 왜?”

“무슨 일이야?”

아무도 바쁜 와중에 왜 불러낸 거냐고 원망하지 않았다. 내가 현준영 팀장을 열심히 마크하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난 몇 주 동안 관찰한 것을 토대로 내린 내 의견을 이야기했다.

“현준영 팀장이 BJ 보우건이 우승하게끔 수를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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