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69화 (69/200)

69화 BJ 보우건

아침부터 3차 경연 준비가 시작되었다.

관객 입장이 6시부터지만, 제작진은 오전 일찍 입장해야 했다.

8시쯤부터 나와서 리허설 준비를 시작하고, 9시가 되자 출연진들도 속속 도착했다.

출연진이 모두 도착한 시점에는 이미 각 대기실에 카메라 설치도 끝냈고, 리허설을 위한 무대 세팅도 모두 마쳤다.

“여러분, 이분은 어제부터 저희 지원을 나와 주신 현준영 팀장님이십니다.”

출연진을 한차례 불러모아 현준영 팀장을 인사를 시켰다.

“아! 옛날에 그 오디션 프로 하셨던 분이죠? 잘 봤어요!”

아온이 가장 먼저 아는 체를 하고,

“잘 부탁드려요.”

블라하이의 경우 현준영 팀장을 잘 모르는 눈치라 매니저에게 슬쩍 물어본 다음 인사했다.

하듀오도, 다른 BJ들도 차례차례 인사를 한 다음, 마지막에 서 있던 보우건에게 현준영 팀장이 손을 내밀었다.

“영상 봤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힙합을 좋아해서.”

“아, 그러세요……?”

지금까지 그냥 잘 부탁한다는 말만 던졌던 현준영 팀장이 보우건에게는 아는 체를 했다.

“지난번에, 그, 뭐였지? <쇼 미 더 페이>에 나왔던 노래 커버했던 거 있죠?”

“아, 예. ‘겁 많은 소년’이라는 노래예요.”

“예, 그거. 그게 참 좋더라고요.”

현준영 팀장이 손을 내밀자 보우건이 얼떨결에 악수를 했다.

“타사이긴 하지만 <쇼 미 더 페이>에 나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그런 욕심 있어요?”

“아, 뭐…… 네, 기회만 된다면야…….”

“그렇게 된다면 좋겠네요. 잘 부탁해요.”

손등도 톡톡 두들겨 주고서, 그가 손을 놓고 출연진을 둘러보았다.

“아마 마지막 촬영까지 함께 할 것 같은데, 아무쪼록 잘 부탁드려요. 여러분이 잘 도와주신다면 저도 그만큼 열심히 해 볼게요.”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려요.”

현준영 팀장이 빙글 웃으면서 까딱 묵례를 해 보이더니 나를 돌아보았다.

“그럼 난 리허설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 출연진들 준비되는 대로 말하세요.”

“예.”

그가 대기실을 나간 다음에야 나는 아차 하는 기분이 들었다. 곱씹어 보니 묘하게도 메인 PD의 역할을 가져가 버린 느낌이다.

“강 PD님, 강 PD님.”

아온이 다른 출연진들 눈치를 보면서 나에게 왔다.

“방금 그분이죠? 옛날에 <스타 프로듀스 K> 만드신 분.”

“예, 맞습니다.”

“흐흥. 그렇군요.”

“왜요?”

“제가 연습생 시절 때도 이야기 몇 번 들으신 분이라, 맞나 하고요.”

아온의 연습생 시절이면…… <스타 프로듀스 K> 첫 시즌이 나온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어쩌면 그 오디션에 나가려고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말투로 봐서는 뭔가 더 깊은 사연이 있는 것 같았지만, 당장 박주영 선배가 진행 문제로 찾아와서 대화가 어영부영 끝났다.

다음에 물어봐야겠단 생각으로 나는 일단 리허설과 경연에 집중했다.

리허설에 들어가고, 차근차근 세팅을 해 나갔다.

오늘은 이전 경연들하고 달리 세팅에 보다 공을 들여야 했다.

2차 경연까지 마친 상태다 보니, BJ들 간 순위권이 보다 확실해졌다. 상위권과 하위권이 분명해진 가운데, 하위권 BJ들로서는 오늘 무대에 사활이 걸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늘이 지나면 4차 경연밖에 남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위권들이 빡세게 무대를 준비해 왔고, 덕분에 세팅에 애를 먹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리허설에 조금 더 시간이 걸려 관객 입장까지 매우 촉박해졌다.

“이런 음향에서는 힘들어요. 마이크가 이렇게 먹히는데.”

마지막 리허설 순서였던 보우건이 그렇게 항의를 해 왔다. 나는 음향팀장 쪽을 쳐다봤다. 음향팀장은 자재 리스트를 한 번 확인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마이크 음향을 최대한으로 조절해 보겠습니다. 그걸로 안 될까요?”

“리허설 한 번 더 돌릴 시간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저, 이번 무대 제대로 못 하면 정말 힘들어요.”

보우건의 순위는 현재 하위권.

처음만 해도 우승에 욕심은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던 BJ는 많았지만, 막상 경연이라는 게 승부욕을 발동시키는 모양이다.

더욱이 보우건의 경우는 최근 기획사 계약 이야기가 나온 참이라서, 더욱 조바심이 생기는 듯했다.

일단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방법을 만들어 볼게요.”

“부탁드려요.”

보우건을 대기실로 보낸 다음 음향팀장님과 다시 이야기를 하려는데,

“내가 좀 도와줄까요?”

현준영 팀장이 어디서 들었는지 나타났다.

“출연진들 하나라도 무대를 아쉽게 하면 안 되지.”

“하지만 기재가 부족해서 스피커를 더 놓을 여력이 없습니다.”

“그거야 뭐, 나도 방법이 있지.”

그는 음향팀장에게서 기재명을 듣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짧은 통화가 끝난 다음, 그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30분 내로 올 거예요.”

“구하신 겁니까?”

“아는 음향기기 하시는 분이 있어서 잠깐 빌린 거예요. 바로 반납해야 해요.”

“감사합니다.”

태연한 얼굴로 손을 슥 들어 보이더니 현준영은 쿨하게 사라졌다.

그가 향하는 쪽에는 보우건이 있었다. 그가 보우건에게 뭐라고 귀엣말을 하고, 보우건이 감사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그가 다시 어깨를 툭툭 두들겨 주고.

“확실히 이런 쪽으로는 이빨이 잘 통하는 사람이긴 한데…….”

내 등 뒤에서 박주영 선배가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찝찝하지? 괜히 간섭하는 것 같고.”

“…….”

대꾸하지는 않았지만 나도 같은 맘이었다.

불안한 이 기분은 대체 뭐지?

그 불안감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커졌다.

리허설이 완전히 정리된 이후, 모니터를 위해 촬영된 리허설 녹화본을 보면서 점점 현준영 팀장은 목소리를 크게 냈다.

“그게 아니라니까, 강 PD. 여기서 보면, 이 각도에서 묘하게 뒤쪽 무대가 걸려. 그러니까 카메라를 옮기는 게 나아요.”

“네 번째랑 여섯 번째랑 순서를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요?”

우리가 계획해서 몇 번이나 점검한 무대들과 카메라 위치, 타임테이블 등에 하나씩 태클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관객 입장 직전에 현준영 팀장이 수배해 준 기재가 도착했다.

그것을 확인한 스태프에게 오지환을 보내고 나서 확인 메시지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82%]

3차 경연 성공 확률은 그래도 순조롭게 올라 80%대를 넘어서 안심하고 있는 사이, 메시지가 아니라 전화가 왔다.

“지환 씨. 왜요?”

“저, 도착한 기재 있잖습니까. 현 팀장님이 갑자기 위치를 옮기자고 해서…….”

도착한 것은 보우건이 원했던 마이크와 앰프였다. 미리 협의된 위치에 설치하고 마이크는 음향 세팅을 해 두면 되었는데, 현준영 팀장이 갑자기 기재들 위치를 바꾸려 한다는 것이다.

“일단 내가 가겠습니다.”

서둘러 그를 찾아갔더니 음향팀장이라 옥신각신하는 중이었다.

그사이에 끼어들어 둘의 이야기를 듣고, 현준영 팀장에게 말했다.

“거기 두면 입장 동선이 꼬이게 될 겁니다.”

“그렇지만 소리는 확실히 더 살 거예요. 그게 더 낫지 않아요?”

음향팀장도 거기에는 동의하는 듯, 불편한 얼굴로도 입은 꾹 다물고 있었다.

나는 무대를 훑어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일단 그럼 저기 설치하고, 출연진과 제작진에게 전부 공지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현준영 팀장은 만족한 듯 손을 흔들고 사라졌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고는 무전기로 전체 공지를 돌렸다.

그 이후로도 그런 일이 계속 이어졌다.

어제 얌전히 있었던 것은 마치 오늘을 위해서라는 듯, 그는 우리가 계획해 둔 일에 하나둘 간섭을 해 댔다.

물론 그 의견 중에는 좋아 보이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무슨 목적으로 이러나 싶을 만큼 이유를 모를 것들이 더 많았다.

“무대 준비 경험이 많은 건지 아닌 건지 정말 모르겠단 말이야…….”

오늘 오랜만에 만난 민희가 그렇게 이야기했다. 들어보니 스크립트에도 몇 번 간섭을 했다가 민희가 거부하고 돌려보냈다고 한다.

“출연진 대기실에도 왔다 갔대요. 무대 세팅 이야기를 하고 갔다는데, 일단 계획대로 진행될 거라고 말해 놨어요.”

구은경 작가도, 도채린 작가도 그렇게 말해 왔다.

“그런 와중에도 참 카메라 찍히는 건 귀신같이 알아서 잘 피해 다니더라.”

박주영 선배는 다른 부분에서 감탄을 했다. <당잠사> 때도 그랬지만 여전히 카메라에 찍히는 것은 꺼리는 모양이었다.

그 외에도 카메라 감독, 음향 감독, 무대 감독까지. 누구 하나 가리지 않고 일일이 태클을 걸었다. 그들에게도 푸념 섞인 한마디를 일일이 듣고 나니 그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되었다.

“역시 어제가 폭풍전야였던 모양입니다.”

“그래, 제 버릇 남 못 주는 법이지.”

“막촬까지 이러면 진짜 골치 아픈데.”

이번 경연은 그나마 우리가 사전에 계획해 둔 거니까 이 정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4차 경연, 최종 무대나 여타 촬영 등은 사전 계획부터 전부 관여하려 할 텐데, 그걸 다 쳐낼 수 있을까.

“힘내, 메인 PD.”

“메인만 믿고 있어.”

민희와 선배가 놀리는 건지 응원하는 건지 모를 말로 격려했지만, 그다지 힘은 나지 않았다.

[85%]

다행히 스크립트 위에 보이는 확률은 상황이 나아진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 * *

3차 경연 무대도, 결론적으로는 매우 뜨겁게 막을 내렸다.

드라마 스케줄 때문에 리허설을 제대로 하지 못한 MC 류준혁도, 프로다운 자세로 매우 훌륭하게 촬영을 이끌었다.

현준영 팀장을 만났을 때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웃으면서 인사하는 프로다움을 보여 주더니, 무대 위의 모습도 완벽했다.

“역시 류 프로. 저러니까 A급 배우인 거겠지.”

“그러게요. 아슬아슬하게 도착해서 멘트만 몇 번 맞추고 올랐는데도 실수가 없네요.”

순위 발표와 다음 경연곡 추첨 등, 모든 촬영이 끝나고 모두가 뒷정리를 위해 투입된 사이, 나는 준혁이 형님을 만나기 위해 대기실로 향했다.

그런데, 복도에서부터 보이는 열린 문 사이로 나보다 먼저 도착한 이가 보였다.

“이야, 정말 잘하셔서 감탄했어요. 방송으로 보는 것보다 더 완벽하시네요.”

“과찬입니다.”

“과찬이라니요. 매우 정당한 평가죠. 이럴 게 아니라, 혹시 오늘 이후에 스케줄이…….”

현준영 팀장이었다. 촬영이 끝날 즈음에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그새 여기로 온 모양이었다.

나는 일부러 대기실 문에 노크하는 소리를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형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대한아.”

내가 나타나자 준혁이 형님의 얼굴이 확 펴졌다. 대신 현준영 팀장이 눈빛이 슬쩍 굳은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오늘 정말 잘해 주셨어요. 앞으로도 쭉 리허설 안 해도 될 것 같던데요?”

“하하하, 그럴 리가. 오늘은 미안했어. 다음 촬영부턴 제대로 시간 맞춰서 올 수 있을 거야.”

드라마 촬영을 병행하다 보니 스케줄이 유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리 매니저와도 상의했던 터라 크게 문제는 없었다.

“괜찮습니다, 오늘처럼 본방만 잘해 주시면 되는 거죠.”

그렇게 웃으면서 대꾸한 뒤 현준영 팀장을 보았다.

“팀장님, 뒤처리 부탁드렸는데 좀 더 시간이 걸리실까요?”

“……크흠, 아니에요. 안 그래도 지금 가려던 참이었으니까. 준혁 씨, 그럼 다음에 또 뵙죠.”

현준영 팀장은 도망치듯이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진짜, 여러모로 방심할 수 없는 사람이라니까.

“네가 와서 다행이다.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고민했는데.”

“스케줄 있다고 하시면 되죠. 드라마 촬영 중인 건 뻔히 아니까요.”

“거짓말하는 건 왠지 걸려서 말이야.”

올바른 사람 같으니라고.

뭐, 그게 지금까지 연예계에서 인덕을 쌓아온 방법이리라.

“아무튼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맘 같으면 한잔 하자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뒷정리할 게 넘쳐나네요.”

“됐어. 촬영 다 끝나면, 그때 저녁이나 하자. 효명이도 불러서.”

“예, 그래요.”

뒤늦게 나타난 매니저와도 인사를 나누고서 대기실을 나왔다.

그 후, BJ들 대기실을 하나하나 찾아가 인사를 하고, 위로를 할 사람은 하고, 축하를 할 사람은 했다.

“탈락이 없는 경연이긴 하지만 한 주 한 주 정말 쫄리네요.”

아온이 과장되게 몸을 떨어 보여서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나머지 무대도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잘 부탁드립니다.”

남만덕 매니저에게도 인사를 하고서 방을 나오자, 마지막은 보우건의 대기실이었다.

노크를 일단 했다.

똑똑―

하지만 기다려도 안에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혹시 옷을 갈아입고 있나. 어쩌지. 잠깐 고민했다가, 할 수 없이 슬쩍 문을 열었다.

“보우건 님, 저 강…….”

“어? 네? 그게 가능한가요?”

대기실 안.

보우건이 서성이면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그는 내게서 여전히 등을 돌린 채 있었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 다시금 인사를 하려고 했다.

“보우건 님…….”

“우승하게 해 주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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