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67화 (67/200)

67화 바라지 않은 제작 지원

서인하는 늘 한결같은 사람이다.

전날 술자리가 있더라도 출근 시간 20분 전에 회사에 도착해 하루를 시작한다.

그게 습관처럼 굳은 이유가 비단 본인의 부지런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방송업계라는 것이 원체 밤낮없이 돌아가다 보니 PD들에겐 딱히 근무 시간이랄 게 없다.

방송업계의 폐해라면 폐해겠지만, 어쩌랴. 구조부터 뜯어고치기엔 아직도 요원한 일인 것을.

다만 서인하로서는 아침부터 찾아오는 PD들이 귀한 시간을 헛걸음하는 일이 없도록, 출근 시간을 조금 더 당긴 거였다.

오늘도 그랬다.

그의 출근을 귀신같이 알고 달려온 PD들의 면담을 받아 주고 나니 9시가 조금 지났다.

오늘도 여지없이 진이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정 팀장 불러서 커피나 한잔해야겠네.”

팀장 중에서 가장 맘이 잘 맞는 정민우 팀장을 부를 생각에 인터폰을 들려 했는데, 그러기도 전에 전화가 왔다.

이사회의에 올라오라는 전달이었다.

“웬 이사회의지?”

국장이라는 위치상 이사회의에 참여하는 일이 아예 없진 않았다. 그렇다고 이렇게 미리 연락받은 바도 없이 부르는 일은 처음이었다.

의아해하면서도 서인하는 위층으로 올라갔다가, 표정 관리도 못하는 사람을 만났다.

“어서 와, 서 국장.”

“……안녕하십니까, 신호현 이사님.”

불려간 곳은 소회의실. 어쩐지 늘 이사회의를 열던 장소가 아닌 소회의실로 호출한다 싶었더니 그곳에는 신 이사를 비롯한 이사 몇 명만 있을 뿐이었다.

서인하는 침을 삼키며 빈자리에 앉았다.

슬쩍 둘러보아도 핵심 이사들이 모여 있었다. 방송사 내 대부분의 일을 결정하는 이사들.

불온한 기분을 느끼는 중에, 그나마 서인하가 따르는 이사에게 슬쩍 눈인사만 건네고 신 이사를 돌아보았다.

“바쁜 사람 아침부터 오라고 해서 미안해. 요즘 많이 바쁘지?”

“바쁘지 않다고는 말씀 못 드리겠습니다. 지금도 10분 뒤에 미팅이 잡혀 있어서요.”

슬쩍 시계를 보는 흉내를 내보이자, 신호현 이사가 허허허 하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예능국 대들보께서 바쁘신 건 회사에도 좋은 일이지. 앞으로도 잘 부탁해.”

“걱정 마십시오.”

선선하게 대꾸하자니, 껄끄러움이 목 밑에서부터 간질간질 올라왔다.

단적으로 이야기해 신 이사는 지난 <당잠사> 시즌3 건의 주동자였다.

신호현 이사가 이사 취임 후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게 외부 PD의 영입이었는데, 그중 한 명이 현준영이었다. 원체 현준영을 아끼고 끌어안은 사람이 신 이사였다.

띄워 주겠답시고 공석이 된 <당잠사> 시즌3 팀의 팀장으로 밀어붙이기도 했고.

그 결과가 지금까지 잔재했다. 현준영이 지금도 방송사 안팎으로 잡음들을 만들고 있는데도 아직 어깨 빳빳하게 세우고 다니는 이유가 신 이사 덕분이었다.

그 이전에도 방수정을 비롯한 몇몇 후배를 감싸다 부딪힌 전적이 있는 서인하를, 신호현 이사가 이렇게 친절하게 격려해 줄 이유는 없었다.

‘뭔가 바라는 것이 있다는 건데.’

대체 그게 뭘까.

“그나저나 요새 내가 방송국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말이야, 그렇게 어깨가 으쓱으쓱거린단 말이야.”

신호현이 실제로 어깨를 으쓱거리는 시늉을 하자, 다른 이사들이 웃는 시늉을 했다. 서인하는 잠자코 지켜봤다.

“이게 다 서 국장 밑에, 그 누구야. 5팀장 덕이지.”

“정민우 팀장입니다.”

“그래, 그 친구. 그 정 팀장이 밑에 PD 하나는 잘 키운다고 다들 그러더라고. 이번에 <언더커버 싱어>를 보고, 다른 방송사에서 얼마나 부러워하던지. 서 국장도 알지?”

물론 알고 있다. 시기, 질투 섞인 전화도 몇 번 받았고.

하지만 왜 그 이야기가 여기서 나온단 말인가.

“시청률도 잘 올라가고 있고, 화제성도 이만하면 쓸 만하고. 방수정이었던가? 그 친구가 나간 다음에 내가 걱정을 좀 했는데, 우리 NBS 예능국은 걱정 없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 이 말이지. 서 국장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냥 열심히 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건 나도 알지.”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서론이 길단 말인가. 서인하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그 <언더커버 싱어>의 메인 PD가…… 몇 년차라고 했지?”

옆에 있던 이사가 귓속말을 소곤거린다.

“3년차? 아직 햇병아리네. 그런 친구한테 메인을 맡길 생각을 하다니, 서 국장이 가끔 그렇게 과감한 면이 있어서 난 참 존경해.”

“과찬이십니다.”

불편한 감각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3년차면 아직 좀 불안하지 않나? 스타트는 잘 끊긴 했는데, 마지막까지 밀어붙일 힘이 있을지 좀 걱정이 된단 말이지.”

서인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이거구나.

그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강대한 PD는…… 3년차이긴 하지만, 지금도 잘하고 있고, 끝까지 잘할 친구입니다. 그런 믿음이 있기에 입봉을 제안한 겁니다.”

“그래, 알아. 우리 서 국장이 사람 보는 눈이 있다는 건 나도 잘 알지. 하지만 역시 경험이란 게 무시 못 할 일 아니겠어? 내 경험상 그런 낮은 연차에 큰일을 맡기면 꼭 원치 않는 사고가 일어나더라고.”

“……무슨 뜻이십니까.”

본론이 대체 뭐냐, 그렇게 묻는 눈으로 보자, 신호현이 낮은 어조로 말했다.

“그 팀에 지원 필요하지 않아, 서 국장?”

* * *

“무대 연출 협의됐습니까?”

“방금 미술 감독님하고 상의하고 오는 길인데,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일단 오케이는 받았어.”

“다행이네요. 음향 감독님은?”

“그것도 괜찮은데, 문제는 카감님이…….”

4화 편집을 진행하면서, 다음 주에 있을 3차 경연 무대가 준비되고 있었다.

경연은 2주에 한 번 한다지만, 매 경연마다 곡 콘셉트와 무대 콘셉트가 달라지기 때문에 BJ들의 기획에 맞게 매번 협의가 이뤄져야 했다.

다행인 것은.

[100%]

AGD 앱이 있다는 거였다.

자잘하게 확률 보기를 사용해 나가자는 내 첫 판단은 잘 들어맞은 것 같았다.

“보자, 그럼…… 이제 남은 건 의상인가.”

의상의 경우, 방송사 의상팀에 협조를 받긴 하는데 대부분은 BJ들이 준비해 왔다.

“아직 보우건한테 스타일링 확정이 안 왔습니다.”

오지환이 연락을 담당하고 있는 BJ 보우건은, 얼마 전에 기획사에서 제안이 왔다고 알려온 BJ 중 1명이었다.

출연진 중 힙합 장르를 담당해 주고 있는데, <언더커버 싱어> 이후로 <쇼 미 더 페이> 다음 시즌에 출장해 보라는 시청자 글이 꾸준히 올라올 정도로 주가가 상승 중이었다.

다만,

“어째 기획사 이야기 나온 시점부터 대답 돌아오는 게 영 느려졌다?”

“제, 제가 좀 더 자주 연락하겠습니다.”

박주영 선배의 말에 오지환이 찔끔했지만, 내가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오 PD 지적하는 게 아니니까 걱정 마. 아마 그 기획사 문제일 테니까. 아직 계약은 안 했지?”

“예…… 계약은 방송 끝난 이후로 미뤘다고 들었습니다만, 현재 어느 정도 매니지먼트는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듣자 하니 꽤 큰 힙합 레이블이라고 했는데, BJ 보우건에게 공을 들이고 있는 듯했다.

BJ들에게 그런 기회가 생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로 인해 협의가 더뎌지는 일이 생겨서는 곤란한데.

“연락만 빨리 달라고 해.”

“예, 알겠습니다.”

오지환이 폰을 들고 나가는 것을 보고, 화이트보드로 돌아섰다.

말은 그렇게 해도 어쨌든 3차 경연 준비도, 4화 편집도 순조로웠다.

경연 준비를 위한 확률은 이제 마무리 지었으니 4화 편집본에 대한 확률 보기를 사용할 때가 되었는데…….

화이트보드에 붙여진 최종화까지의 타임테이블 옆에는 시청률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목표 시청률 3%가 무색하게, 시청률 6.3%가 당당히 적혀 있다.

내가 그걸 보고 있자니, 촬영팀장 감독과 통화를 하고 온 박주영 선배가 와서 옆에 섰다.

“카감님도 일단 오케이 했어. 근데 뭘 보고 있어?”

“여기 시청률이요. 목표 시청률의 두 배를 올린 게 괜히 뿌듯해서 말입니다.”

“에이, 한두 번 찍어 본 시청률도 아니지 않나? 그런 사람이 왜 그래.”

“메인으로서는 처음이잖습니까.”

“그래그래, 이게 다 강 메인 PD님 덕분입니다.”

박주영 선배가 명백히 놀리는 표정으로 말해서, 나는 인상을 구겨 주었다.

푸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린 뒤 선배가 다시 말했다.

“감회가 새로운 건 알겠는데 아직 그럴 때 아니야. 이제 겨우 3화잖아.”

“알고 있습니다. 갈 길이 더 멀다는 거. 마지막까지 이 시청률만 유지하면 좋겠습니다.”

“꿈이 작으시네, 우리 메인께서. 10%는 찍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을 안 해 보진 않았다. 최종 시청률이 10%를 넘길 수 있을까에 대한 확률 보기도 해 봤는데, ‘25%’라는 어이없는 숫자만 나왔다.

NBS-M이라는 신생 채널에 케이블이라는, 아마도 여러 조건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깔끔하게 포기하고 현실적인 시청률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6%도 충분히 높은 숫자지만…… 그래, 이 숫자로도 충분하지.

마지막 화까지 이 시청률이 유지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며 AGD 앱의 확률 보기를 일깨웠다.

[10%]

“뭐?”

타임테이블 위에 떠오른 숫자를 보고, 나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왜 그래? 야?”

박주영 선배가 옆에서 어깨를 흔들어서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 봐도 그 확률은 변하지 않았다.

[10%]

AGD 앱을 만나고, 확률 보기 능력을 얻고 나서, 난생처음 보는 확률이었다.

10%라니. 이런 수치가 가능한 건가?

3차 경연도, 4화 편집도 순조롭다.

BJ들이나 패널도 어떠한 사고를 치지 않았는데. 왜?

순식간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동안 이런 경우는 왕왕 있었다. AGD 앱이 파악하는 확률이란 게, 내가 모르는 곳에서도 일어나는 일까지 포함해서 결정되는 것이니까.

그렇지만 그 변수가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작용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화이트보드를 뚫어지게 보고 있다가 선배를 돌아보았다.

“선배, 죄송하지만 지금 진행 중인 것들 전부 한 번씩 다시 점검 좀 부탁드립니다.”

“뭐? 왜?”

“그냥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내 반응이 이상하자 박주영 선배의 얼굴도 심각해졌다.

“무슨 일 있어?”

“아직은 아닌데……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AGD 앱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박주영 선배는 나를 믿는 사람이었다.

“알았어. 촉새가 그렇다면 일단 확인해 봐야지.”

“촉새요?”

“촉 좋은 새…… 아무튼 그렇다고.”

……여전하다니까.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무튼, 민희한테도 말해 주세요.”

“넌 어디 가게.”

“정 팀장님 뵙고 오겠습니다.”

5팀 사무실로 뛰어 올라갔다.

정민우 팀장은 자리에 없었다. <뮤직스케치> 팀에 있겠거니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오는데, 마침 그 팀 소속의 PD와 마주쳤다.

“팀장님 사무실에 계십니까?”

“아까 국장실 들어갔을 거야. 국장님이 급히 불렀다던데.”

어쩐지 예감이 너무 좋지 않은데.

나는 실례를 무릅쓰고 국장실 문을 두드렸다.

“누구야.”

“국장님, 강대한 PD입니다.”

안에서 들리던 대화 소리가 뚝 끊겼다. 벌컥 문을 연 것은 정민우 팀장이었다.

“야, 강 PD. 너 어떻게 알고……. 아니다, 일단 들어와.”

정민우 팀장이 서둘러 나를 안으로 들여보내고 문을 닫았다.

서인하 국장이 굳은 얼굴로 반대편 소파를 턱짓했다.

지정석처럼 그곳에 앉자 두 사람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왜, 무슨 일인데.”

“……여쭤볼 게 있어서 실례했는데, 어쩐지 두 분 표정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들은 굳이 표정을 바꿀 생각은 없는 듯했다. 내가 쳐다보자 한숨을 길게 내쉰다.

“혹시 제가 관련된 일입니까?”

“…….”

눈이 흔들리는 걸 보니, 역시나.

‘10%’라는 어이없는 확률에 대한 신빙성이 더더욱 짙어졌다.

“제가 관련된 일이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주십시오.”

각오를 다지고 그렇게 말하자, 서인하 국장이 정민우 팀장을 슬쩍 보고는 입을 열었다.

“강 PD, 지원 필요하다고 했지?”

“네. 말씀은 드렸습니다만, 인력이 부족하다고도 하셔서 외주 쪽으로 다시 이야기드릴까 하고 있었습니다.”

경연이 이어지고 편집도 이어지고, 그러면서 지금의 연출진만으로는 일이 버거워졌다.

어떻게든 하고 있긴 한데 슬슬 연출진 보강이 되었으면 한다는 건 우리 팀 전원의 의견이었다.

그래서 정민우 팀장에게 보고도 올린 건데, 그 이야기를 서인하 국장도 들은 모양이었다.

“지원은 줄 수 있을 것 같아. 그럴 것 같은데…….”

“예, 말씀하십시오.”

너무나 내뱉기 힘들다는 듯, 몇 번이나 한숨을 쉰 뒤에야 서인하 국장은 말했다.

“현준영 팀장이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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