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비장의 한 수
<언더커버 싱어> 나름의 비장의 한 수였다.
유명 가수, 작곡가 등 음악 관련자들로 패널을 꾸리고, BJ들의 촬영을 정리하면서 마지막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이 MC였다.
유명한 사회자들을 사용한다면 얼마든지 콘택트할 수 있고, 정민우 팀장이나 서인하 국장도 힘을 실어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딘가 화제성이 부족해 보였다.
“효명이는 어때?”
“MC야 곧잘 보겠지만, 요즘 해외 일정까지 겹쳐서 힘들어.”
“유재성은?”
“톱 MC인데 출연료 감당이 될까?”
“음…… 정 팀장하고 이야기해서 추희열이라도……?”
의견을 낸 민희도 안 될 건 뻔히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냥 히죽 웃고만 말았다.
그렇게 제작진 사이에 몇 개의 의견이 지나간 다음, 결국 AGD 앱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기획안에 떠오르는 이름들을 썼다 지웠다 했지만, 만족스러운 확률이 보이진 않았다.
그러다 문득.
“……류준혁은 어떨까.”
내 혼잣말에 모니터 너머에서 박주영 선배가 고개를 들었다. 표정이 나랑 비슷했다.
“류 배우님? 스케줄 된대?”
“그 형님이면…… 최근에 무슨 드라마 들어갈 계획이라고만 들었습니다.”
정확한 크랭크인 날짜는 기억 안 나지만.
혹시 몰라 기획안에 MC 이름으로 류준혁을 올렸다.
[85%]
MC 선정 회의 이후 처음으로 80%대의 확률이 나왔다. 화제성과 신선함까지 잡을 수 있는 확률이었다.
“예능도 <당잠사>가 처음이었는데…… MC를 봐주실 수 있을까?”
“그 형님이 말을 못 하는 편은 아니니까. 마스크도 충분하고, 음악 듣는 귀도 있고…….”
문득 떠올린 캐스팅인데, 말할수록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해졌다.
“딱히 다른 캐스팅이 떠오르진 않으니까 한번 물어라도 보자.”
“그래, 대한아. 어차피 너랑 친하니까 이야기는 들어 주지 않겠냐.”
서브 PD와 메인 작가의 콜이 나왔으니, 나는 바로 움직여 보기로 했다.
“강 PD님이 류준혁 배우랑 친하세요?”
“<당잠사> 찍으면서 친해졌지, 효명이랑 같이.”
“아…… 기사 본 것 같아요. 최효명이랑 셋이서 커플링으로 엮이는 것도…….”
“거기까지.”
더한 이야기가 나올까 봐, 도채린 작가까지 끼어드는 대화를 멈추게 하고 나는 사무실을 나섰다.
[형님 혹시 잠깐 통화 가능하세요?]
<당잠사> 때 연이 된 후, 효명이와 함께 사적인 자리를 가지면서 친해진 배우.
이 중견 톱 배우랑 이렇게 친해질 줄은 정말 처음에는 몰랐다.
효명이 덕이라면 그 덕도 분명 있겠지.
아무튼 그 이후로도 꾸준히 연락은 하고 있는데, 플래티넘에 들어간 이후로는 본인 말대로 영화니, 드라마니 공사다망하게 일을 소화해 내고 있었다.
그래서 일단 메시지를 보낸 다음 한동안 커피를 마시면서 기다렸다.
전화가 온 것은 10분쯤 뒤였다.
“나 이번에는 많이 안 늦었지?”
“오늘은 정말 빠르시네요. 타이밍이 잘 맞았나 봅니다.”
평소엔 메시지를 보내도 답장을 받으려면 몇 시간이나 걸리는 사람이라, 그런 가벼운 농담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잠깐 지금 촬영 중인 영화 이야기를 나누고,
“그래, 왜. 무슨 일인데?”
그가 본론을 물었다.
“부탁을 하나 드릴까 하는데, 안 되신다면 거절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일단 들어 보고.”
“저 요새 입봉 준비한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그랬지. 무슨 오디션 프로그램 같은 거 한다며.”
“오디션은 아니고요, 경연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MC 해 주실 수 있으세요?”
일단 질러 보자는 마음으로, 두 눈 질끈 감고 이야기했다.
“MC?”
“네. 형님이 맡아 주시면 저희 프로그램이 확 살 것 같아서요.”
AGD 앱도 높은 확률로 추천해 줬고.
“MC라…… 그런 경험이 없는데, 난.”
“그건 알죠. 부담스러워하실 것도 알고요. 그래서 강하게 말씀드리지는 못하겠고, 거절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린 거예요.”
“음…….”
준혁이 형님은 예상외로 고민에 잠겼다.
예상대로라면 단박에 거절했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데…… 고민하는 소리가 스마트폰 너머에서 전해져 오고 있었다.
“일단 매니저하고 이야기 좀 해 볼게. 촬영 일자 알려 줘.”
응? 반응 좋은데.
“예. 기획안을 보내 드릴게요.”
곧 저쪽에서 감독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 그는 전화를 끊었다.
마지막까지 굽신거리면서 전화를 마친 후, 메신저로 기획안을 쏴주고서 사무실로 돌아왔다.
“뭐라셔? 안 된다지?”
민희가 그렇게 먼저 물어왔다.
“고민해 보겠다는데?”
“뭐? 거절이 아니라?”
박주영 선배도 기묘한 표정을 짓고 나를 보았다.
“류 배우가 MC에 흥미가 있었던 거야?”
“아뇨, 부담스러워하시긴 하는데…….”
“근데 왜 고민을 하지?”
“글쎄요?”
나한테 물어도 말이야. 뭐라고 돌릴 말이 없어서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기획안도 일단 보냈고, 어쨌든 결정은 저쪽에서 하는 것이니 기다릴 수밖에.
그렇게 출연료 비싸겠다, 요물이가 드디어 류 배우까지 꼬셨다, 삼각관계냐 등등 헛소리가 오갔지만, 모두가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해 줄 리는 없을 것 같아.”
“다음은 그냥 유민석한테 연락해 보자.”
그리도 두 시간쯤 지나고, 준혁이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사무실을 나가 혼자서 전화를 받고 돌아왔다.
멍한 내 얼굴을 보고 박주영 선배가 피식 웃었다.
“역시 안 한대지?”
“……하신다는데요?”
“응?”
박주영 선배가 벌떡 일어나고, 다른 일을 하고 있던 팀원들이 죄다 나를 보았다.
나는 스마트폰과 팀원들을 멍하니 번갈아 보았다.
[100%]
믿을 수 없게도,
“출연 계약서 보내랍니다.”
* * *
『배우 류준혁, 새로운 도전! MC로서의 발돋움!』
『NBS―M BJ 경연 프로그램 <언더커버 싱어>, 의외의 MC는 류준혁!』
첫 녹화에 참가한 기자들, 그리고 우리가 미리 뿌려둔 보도자료를 받은 기자들이 일제히 기사를 쏟아내었다.
<당잠사>로 첫 예능 신고식을 치러서 훌륭히 프로그램을 견인한 류준혁이, 이번에는 MC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는 기사들이었다.
일부러 녹화일까지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한 보람이 있었다.
기사가 뜨자마자 각종 매체에서 문의가 쏟아져 들어왔다. 주로 준혁이 형님을 캐스팅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문의였다.
[배우류준혁: 매니저가 우는 소리를 하네. 전화기 배터리가 빨리 닳는다고]
[몸값 올라가시겠어요]
[배우류준혁: 시청률이 올라야지. 그래야 내 몫을 하는 거니까]
이 올바른 사람 같으니라고.
MC로서 첫 녹화를 너무나 잘 소화해 준 것도 고마운데, 이렇게 마음까지 써 주니 더할 나위 없었다.
[배우류준혁: 아직 더 남았으니 일단 당분간은 영화와 MC만 집중할게. 우리 이야기는 그다음에 하자.]
[예.]
사실 그의 출연 결정에는 다른 뒷이야기가 있었다. 일단은 위에도 보고하지 말라는 그의 말대로 나만 알고 있는 상태긴 한데.
그의 말처럼 일단 그건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서로 열심히 하자는 인사만 나누었다.
[엑시트최효명: 형 나도 다음에 MC 자리 하나만 (굽신굽신)]
관계자석에서 녹화를 보고 간 효명이는 그러한 메시지를 보내왔다.
[뭐야, 청탁이냐]
[엑시트최효명: 에이, 청탁이라뇨. 우리 사이에.]
[우리가 무슨 사인데]
[엑시트최효명: 외삼촌과 조카? 최강 커플?]
[(대충 다음에 만나면 죽여 버린다는 내용)]
[엑시트최효명: 이야... 삼촌 회귀했나 봐요. 옛날엔 폰으로 타자도 못 치는 줄 알았는데 (폭소)]
농담이 오가긴 했지만, 효명이로서도 그날 준혁이 형님의 모습이 신선했던 모양이다.
연예인으로서, 방송인으로서 새로운 욕심이 날 만큼.
하긴, 효명이도 분명 잘할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위한 방송 기획을 짜고 있을 틈은 없었다.
첫 화제성을 위해 류준혁을 배치하긴 했지만, 중요한 것은 BJ들의 무대였다.
시청자들에 대한 인지도는 분명 류준혁보다 떨어질지 몰라도, 블라하이나 아온 등은 탑급 BJ들.
인터넷의 반응은 류준혁보다 훨씬 뜨거웠다.
『1,400만 구독자수의 크리에이터 ‘블라하이’, 첫 국내 방송 출연에 조회수 폭발!』
『상큼락커 ‘아온’, 브이로그 시청회수 50만 돌파!』
블라하이와 아온을 중심으로, 연습 영상을 포함한 녹화일의 브이로그가 각 채널에 올라가면서, 우리는 굳이 티저를 띄우지 않아도 될 만큼의 화제성을 얻었다.
미튜브, 트위처 등과 철저히 연계한 티저 기획이 금세 효과를 거둔 것이다.
―갓라하이 님이ㅠㅠㅠ TV에 나오시다니ㅠㅠㅠㅠ 첫 방 기다립니다 첫방 ㅠㅠㅠ
―아온 누님 직관 꼭 가겠습니다!
―하듀오 TV 방송 타는 거 개빠르네;;;; 이제 20만 아님?
―└실력이죠 실력
―└구독자수와 실력은 다른 문제다!
공식 채널에 업로드한 티저 또한 조회수가 폭증하자, 정민우 팀장이 나를 불러올렸다.
회의실을 열고 들어가니, 서인하 국장도 앉아 있었다.
“고생하고 있지?”
씨익 웃는 그를,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얼굴로 쳐다봐 주었다. 어제도 편집하느라 밤을 새웠으니까.
“편집실에 불 꺼질 날이 없다고 그러더라. 박 PD 너무 부려먹는 거 아냐?”
“괜찮습니다.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라서요.”
“음, 다른 의미는 없지?”
무슨 의미요……?
그때 정민우 팀장이 스윽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테이블을 내려다보자, 편성표였다.
“이걸 왜……?”
“첫 방, 30분 늘리자.”
“예?”
“정 팀장 말 들어 보니 인터넷판으로 풀 내용이 많다며. 그거 그냥 본방에 붙여.”
“……예?”
밤을 새웠더니 지금 뇌가 안 돌아가고 귀가 잘 안 들려서 잘못 들었나?
“1시간…… 30분 편성이란 말입니까?”
“그래. 광고도 더 붙을 거야. 강 PD 네 전략이 먹혔다는 거지.”
허어. 기쁘다. 기쁜데, 이걸 단순히 기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 30분을 늘리면…….”
“그럼 믿는다!”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서인하 국장은 어깨를 툭툭 치고, 도망치듯 회의실을 나가 버렸다.
휑하니 사라지는 그의 등을 보다가, 정민우 팀장을 돌아보았다.
그는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로 웃고 있었다.
“편집실 더 필요하지? 내가 잡아 줄게.”
“아아…….”
예, 예. 참으로 감사합니다. 아주, 매우요. 그런 눈빛을 담아 그를 쳐다봐 주었다.
어쨌든 이 기쁜 이야기를 어찌 팀원들과 나누지 않을쏘냐.
나는 곧장 사무실로 직행해 모두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달했다.
모두 열화와 같이 좋아했다.
“죽여라. 날 죽여라…….”
박주영 선배는 혼이 나갔고.
“어…… 어…….”
오지환은 나와 팀원들의 눈치를 보았다.
“좋은 거라고 해야 하나? 입봉작부터 재수가 옴붙었네?”
민희는 좋은 거란 소린지, 재수가 없단 소린지 분간이 안 되는 말을 했다.
“스크립트를 다시 짜야 하잖아……. 자막도 수정해야 하고. 편집은 어디까지 됐어?”
“78%.”
“구체적인 숫자네.”
그럴 수밖에. AGD 앱으로 확률을 띄어놓고 작업을 했으니.
어쩐지 80% 위로 안 올라가더라. 이게 다 편성 쪽과 서인하 국장이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그랬나 보다.
나는 1화 스크립트를 다시 보고,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냈다.
팀원을 둘러보았다.
“그래, 나쁜 건 아니니까. 어차피 분량 넘쳐서 덜어낸 이야기들 많잖아요? 그만큼 BJ들 소개를 더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치고, 다시 작업합시다.”
“오…… 대한이 너 지금 좀 메인 같았다. 진짜 죽이고 싶었거든.”
박주영 선배가 피로한 얼굴로 피식 웃더니, 깊게 한숨을 쉬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어쩌겠어. 위의 기대대로 대박 날 건가 보지. 일하러 가자, 가.”
“편집실 사용 시간은 더 늘려 주신답니다.”
“아이고, 강 메인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박주영 선배는 나가는 길에 오지환의 목을 잡고 같이 끌고 나갔다. 담배 한 대 태우고 편집실로 갈 모양이었다.
“우린 경연 1차 체크하고 있을게. 힘내.”
자막 포인트 잡기는 편집본을 다시 작업한 다음 하기로 하고, 우리는 서로의 파이팅을 빌어 주고 헤어졌다.
* * *
대망의 첫 방영일이 찾아왔다.
함께 고생해 준 카메라팀, 음향팀 등등의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주욱 돌린 다음, 우리 팀은 방송국 앞 호프집에 모여서 1화 방송을 함께 기다렸다.
“아온도 보고 있나 보네. 지금 라방 중이야.”
“하듀오도요.”
“블라하이는 미국이라서 볼 수 있나 모르겠네.”
스마트폰을 모아서 현재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는 BJ들의 채널을 틀어놓고, 다 함께 맥주 한 잔을 하면서 1화를 시청했다.
몇 달 동안 함께 고생하면서 만들어낸 <언더커버 싱어>의 첫 방송.
메인으로서 만들어낸 내 입봉 작품이 드디어 전파를 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