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64화 (64/200)

64화 MC는 누구?

“감사합니다.”

아온이 무겁게 입을 뗐다.

“솔직히…… 몇 년이 지난 일인데, 거기다 책임자도 아니신데, 이렇게 직접 찾아와 주셔서 사과까지 해 주실 줄은 몰랐어요.”

하지만 그 표정은 결코 무겁지 않았다.

“사실 많이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하고는 싶은데, 기획안에서 정 팀장님 이름을 보자 또 망설여지고, 그때처럼 다시 틀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고. 그래서 만덕이 오빠한테 걱정도 끼쳤고요.”

“난 상관없어, 아온아.”

“내가 미안해서 그러지. 요 며칠 계속 짜증 냈었잖아.”

그랬나. 영상에서는 전혀 안 보였었는데.

내가 남만덕 매니저를 보자, 그는 머쓱해하며 뒷머리를 긁으면서 시선을 피했다.

“그만큼 저도 많이 고민했어요. 그래서 빨리 결정을 못 내리고, 연락도 그만큼 늦어져서, 그건 죄송하게 생각해요.”

“저희도 상관없습니다. 얼마든지 기다려야죠.”

“그래도 일이신데 그러면 안 되죠.”

내 말에 빙긋이 웃고서 아온은 정민우 팀장을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아온은 돌연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팀장님, 감사해요.”

정민우 팀장도 놀라서 함께 고개를 숙였다.

“아뇨, 제가 감사 인사를 받을 일은…….”

“덕분에 오래 묵은 나쁜 기억을 털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눈을 든 아온이 정민우 팀장을 향해서도 웃어 보였다.

“솔직히 이 회사 만난 이후에도 방송업계 쪽을 싫어하면서도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었는데, 이젠 그것들 다 털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몇 년 묵은 체증이 쑤욱 사라지는 것 같았다. 얹혀 있던 무언가가 시원한 사이다와 함께 쓸려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아온 님, 그럼…….”

“이렇게까지 저를 배려해 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더 거절하겠어요. 저도 <언더커버 싱어> 같이 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너무 티나게 행동한 탓에, 그 행동을 보고 아온이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고마워요, 아온 씨.”

“제가 더 고마워요.”

정민우 팀장과 아온 사이에 또 몇 번 인사가 오가고, 남만덕 매니저도 땀을 닦으며 인사에 끼어들면서, 경직되어 있던 회의실에 분위기가 풀려 나갔다.

거짓말처럼, 네 사람 사이에 화기애애한 기류가 감돌았다.

“자, 그럼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해도 되겠습니까.”

남만덕 매니저가 짐짓 그런 이야기를 펼치고, 정민우 팀장과 나도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출연료는 얼마나…….”

“얼마를 원하십니까…….”

약속이나 한 듯 같은 이야기가 나와 또 웃음을 터뜨린 뒤, 우리는 본격적으로 출연 협상에 들어갔다.

“그럼, 귀국하자마자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미팅 날은 일단 다시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팀장도 있어서, 출연 협상은 물처럼 흘러갔다.

디테일한 조건까지 맞춘 뒤, 계약서는 후에 나누기로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잘 부탁드려요!”

완전히 쾌활한 모습을 되찾은 아온이 손을 붕붕 휘두르면서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정민우 팀장의 차를 얻어 타 주차장을 빠져나오는데, 운전하던 그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저렇게 해맑은 사람을 그동안 괜한 고생을 하게 했으니. 참 죄가 많아, 이 바닥에서 일하는 사람도.”

그 말에 아예 수긍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부정하고 싶었다.

“그때 일을 계기로 결국 미투버로 크게 성공한 거잖습니까. 길이 달랐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

너무 책임감 느끼지 말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는데, 정민우 팀장도 그렇게 받아들여 줬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다시 웃으면서 짐짓 엄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도 출연진들 사이에 차별은 하면 안 돼. 그건 알지?”

“물론입니다.”

“그래. 이제 편성 받으러 가 보자.”

“예.”

대답하면서 나는 스마트폰을 슬쩍 확인했다.

[100%]

모처럼 기분 좋은 데다 속이 다 시원한 확률이었다.

* * *

아온의 캐스팅이 성사된 이후, 제작은 급물살을 탄 듯 쭉 빠르게 진행되었다.

블라하이의 회사로부터 입국일에 대한 통보가 오고, 그 날짜에 맞추어서 다른 출연진들과 협상하여 미팅 일을 정했다.

도저히 날짜가 되지 않는 출연진은 따로 만나거나 했지만, 다행히 모든 출연진이 하루에 모이는 날을 만들 수 있었다. 물론 아온도 함께.

그날은 정말이지, 시끌벅적했다.

방송 특성상 우리는 BJ들에게 각자의 채널에서 영상을 만들어 올릴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물론 편집 완료된 이후의 영상을 우리가 검수한다는 조건이었는데, 그 덕분에 모든 이들이 카메라를 지참하여 나타났다.

“블라하이 님! 이렇게 콜라보를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존경합니다!”

아온이 블라하이를 만나자마자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웃고,

“콜라보는 아니지 않을까요? 정식 방송인데, 이거.”

아온보다 연상이자 좀 더 차분한 분위기의 블라하이도 마찬가지로 본인의 카메라로 녹화하면서 응수했다.

그들에 비해 아직 구독자 수가 낮은 BJ들도 이때가 홍보의 기회라 생각한 건지 거리낌 없이 카메라를 돌려 댔다.

거기에 우리 제작진의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으니…….

“이야…… 이 좁은 회의실에 대체 카메라가 몇 개야.”

박주영 선배가 그렇게 감탄을 하는 건 당연했다. 물론 나도, 민희도 마찬가지.

한동안 그렇게 인사를 나누게 한 다음에, 다시금 방송에 대해 고지하고, 드디어 처음으로 공개를 했다.

“저희 편성이 나왔습니다.”

화이트보드에 가서 날짜와 시간을 적었다.

“목요일 저녁 11시…… 어라, 그 시간에 무슨 여행 예능 하나 하지 않았어요? 제목이 뭐였지?”

“<더 투어리스트>였던가? 그랬던 것 같은데.”

아온의 말에 다른 BJ가 덧붙이고, 그 방송에 대해 별로 재미없더라 같은 시청평이 오가면서 회의실이 다시 시끄러워졌다.

“여기는 잘라야겠네…….”

민희가 옆자리에서 중얼대는 것을 지그시 끄덕여 주면서 나는 어조를 바꾸었다.

“네. 그 방송이 곧 끝나는 거에 맞춰서 그 시간대에 들어갈 거예요.”

“일찍 끝나네요? 시청률 별로 안 나온대요?”

“1%대였던 것 같은데. 그 정도면 되는 거 아니에요?”

이 사람들이. 우리 방송 나온다고 미리 공부라도 하고 왔나. 나는 큼큼 헛기침해서 다시 이야기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시즌1이 끝나는 거고, 아마 시즌2가 나올 겁니다.”

“우리는 그럼 몇 프로 나와야 해요?”

아온이 손을 번쩍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최대한 친절하게 웃어 보였다.

“그건 저희 제작진이 알아서 할 테니까, 여러분은 경연 무대만 잘 만들어 주시면 됩니다.”

“에이, 그래도 궁금하잖아요.”

계속해서 아온이 물으려 들었지만 난 슬쩍 못 본 척하고 시선을 돌렸다.

“아무튼 목요일 저녁 11시, 첫 촬영은 고지 드린 대로 다음 주 화요일에 있을 겁니다. 그때까지 여러분 각자의 브이로그를 찍어 주시길 부탁드리고…….”

회의에 앞서서 미리 확정 기획안을 나눠 주었다.

거기에 따른 방송 흐름은 다음과 같았다.

1. 선 촬영. 오늘의 단체 미팅.

2. 약 일주일간의 방송 준비 및 각 출연진의 소개용 브이로그 촬영.

3. 다음 주 화요일 첫 촬영. 라이브 무대. 경연곡 선정.

4. 2주간의 연습 후, 화요일에 첫 경연 무대.

5. 이후, 2주마다 총 5번의 경연.

6. 최종 경연 시 시청자 투표, 우승자 발표.

경연에는 시청자 투표와 심사위원 패널 투표, 관객 투표가 이루어진다.

시청자 투표만으로는, 아무래도 구독자 수가 많은 BJ가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에, 심사위원 패널들의 점수와 관객 투표도 꽤 높은 비율로 집계될 것이었다.

이 부분은 미팅을 통해 모두에게 이해를 시켰다.

“그럼 마지막 무대는 경연이 아닌 거예요?”

블라하이의 질문에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현재 작곡가들과 조율이 끝나 가는 중인데, 4차 경연까지 본 작곡가분들이 여러분들과 1대1로 오리지널 곡을 작곡하실 거고, 그 곡으로 특별 무대를 꾸미게 될 거예요.”

그리고 그 최종 무대의 음원들은 음원 사이트에서 서비스되어 수익이 기부되는 형식이다.

거기에 더해,

“이 부분도…… 어제 막 결정이 났습니다. 최종 우승자에게는…… 정식 음반 데뷔 기회가 주어질 겁니다.”

출연진들의 눈이 전부 커졌다. 서로가 서로를 쳐다보다가, 아온이 또 손을 번쩍 들었다.

“진짜 되는 거예요? 어찌 될지 모른다고 하셨잖아요!”

“계열사 중에 음반사가 있어서…… 어른의 사정과 함께 성사됐습니다.”

그 부분은 내 아이디어를 들은 정민우 팀장과 서인하 국장이 힘을 써 주었다.

일단 질러라도 본 건데, 성사된 덕에 출연진들에게 더욱 큰 기회를 줄 수 있게 되었다.

잘됐든 아니든, 여기 있는 BJ들은 모두 정식 데뷔 가수의 꿈을 꿔봤거나 지금도 꾸고 있는 이들.

그렇기에 모두가 기획안을 뚫어져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아, 물론 한 명은 예외.

블라하이는 검은 흑단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면서 여유롭게 기획안을 넘겨보고 있었다.

이미 이전 미팅에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이미 미국에서 정식 데뷔가 결정된 상태랬다. 벌써부터 준비에 들어가고 있다던가?

사실 그렇다 보니 그녀에겐 우리가 제공하는 데뷔 기회가 필요 없었다. 다만 그러한 최종 특권을 거는 것에는 본인도 이의가 없다고, 마지막 방송까지 비밀로 해 달라고만 당부했다.

소속사가 미국이라고 겁부터 주워 먹은 거에 비해 캐스팅 성사도 빨랐고, 사람도 좋은 사람이었다. 참 다행이었다.

“아무튼 여러분께선 그렇게 알아주시고…… 앞으로 함께 잘 만들어 가 봅시다.”

“열심히 할게요!”

“노래 연습 빡시게 할게요!”

“여러분, 저한테 한 표! 아시죠?!”

나에 대한 대답, 각자의 카메라에 대고 한마디. 그러한 소리들이 시끄럽게 흩날렸다.

“혼란하다, 혼란해.”

“다들 신나 보여서 다행이네요.”

박주영 선배와 민희가 조용히 중얼거리는 것을 들으며 나는 피식 웃었다.

“아, 질문 하나 더!”

어째 지난번 만남 이후로 부쩍 더 나를 편해하는 아온이 어느새 출연진을 대표하고 있었다.

“예. 말씀하세요.”

“MC는 정해졌어요? 아직 비어 있네요?”

그 말대로였다.

일정대로, 다음 주에는 당장 첫 무대가 진행되어야 한다.

관객 모집도 들어가 있고, 별관 스튜디오도 확보해 두어서 미룰 수도 없다.

이런 시기에 아직 MC가 정해지지 않았으니 출연진도 의아해할 만했다.

하지만 나는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MC는…… 녹화 당일의 서프라이즈로 두겠습니다.”

출연진들이 항의하는 소리를 무시하고서 나는 슬그머니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 * *

[엑시트최효명: 형 나도 첫 녹화 보러 가도 돼요?]

첫 녹화를 준비하면서 티저를 편집하고 있는데, 효명이가 대뜸 그렇게 물어왔다.

[너 요새 바쁘다고 하지 않았냐. 해외 공연 준비 중이라며.]

엑시트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더니 기어코 해외에서도 러브콜이 쏟아진다고, 기사에서 봤다.

지난번 밴드 음악을 성공시켰더니 해외 록페스에서도 섭외 요청이 있었던 거다.

[엑시트최효명: 연습이야 하고 있죠. 근데 너무 연습만 해서 좀. 바람을 쐬고 시퍼요ㅠㅠ]

[엑시트최효명: (눈물)(도망)]

하긴 연습실에만 박혀 살고 있다고 했으니 심심할 만도 하다.

[바람을 쐬고 싶으면 드라이브나 가. 차도 샀다며.]

[엑시트최효명: 사면 뭐해요 운전할 시간도 없는데 (통곡)]

[엑시트최효명: 거기다 그날이 또 중요한 날이잖아요.]

[엑시트최효명: 우리 사장님도, 일현이 형도 두근두근 하고 있다고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아직 철저히 보안을 유지하고 있는 데다, 생각보다 그 작업이 잘된 덕에 우리 팀 말고는 누구도 모르고 있지만, 효명이만은 외부인임에도 알고 있다.

<언더커버 싱어>의 MC가 누구인지.

[알았어. 관계자석 좀 비워 둘게. 너 혼자면 돼?]

[엑시트최효명: (만세)]

[엑시트최효명: 멤버들한테도 물어볼게요 아론도 가고 싶어 했었어요]

그렇게 효명이와의 이야기는 끝내고, 티저 편집도 마무리해 공개 시기를 조율했다.

드디어 대망의 첫 녹화 날.

라이브 무대의 시작과 함께 무대에 올라선 MC를 보고, 출연진도, 관객들도,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도 모두 놀랐다.

제작발표회 때도 밝히지 않은, 늘씬한 키와 빛나는 외모의 배우가 그곳에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언더커버 싱어>의 MC를 맡은 배우 류준혁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