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62화 (62/200)

62화 트라우마

이틀이 지났으나 확률은 변동이 없었다.

오르지 않는다고 아쉬워할 때는 아니었다. 떨어지지 않는다는 자체만으로도 긍정적인 일이었다.

“……그럼 일단, 협찬은 이 정도로 하자고.”

“예, 알겠습니다.”

정민우 팀장과 협찬팀 담당이 대동한 회의였다. 둘 사이의 이야기가 끝난 시점에 나도 다시금 두 사람을 보았다.

“강 PD도 이상 없지?”

“예. 광고 더 받아 올 수 있게 열심히 하겠습니다.”

“든든하네요.”

40대의 협찬팀 담당이 빙긋이 웃고서 정민우 팀장을 보았다.

“정 팀장님은 든든하시겠어요. 우리 방송사에서 가장 핫한 에이스가 이렇게 잘해 주고 있으니.”

“하하하. 그러게 말이야. 더 열심히 해서 광고 좀 더 받아 주면 좋겠는데.”

“그건 저도 바라는 바네요. 강 PD님, PPL 욕심나는 거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해요.”

정민우 팀장이 방송국 내 인사들과 두루두루 친하다 보니, 나도 그렇고 우리 팀은 그 수혜를 꽤 잘 받는 편이었다.

협찬 담당이 나가고, 정민우 팀장이 수첩을 접으면서 나를 보았다.

“캐스팅 어떻게 되고 있어?”

……사실상 본회의로구나.

“블라하이에게선 오케이를 받았습니다. 다만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어서, 귀국 시기랑 미팅 일정을 조율하고 있습니다.”

민희의 영어 메일 덕분이라고 봐야 할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큰 산처럼 보였던 블라하이는 생각보다 쉽게 응해 줬다.

“오, 다행이네. 어려울 줄 알았더니. 우리 딸도 그 BJ 영상 좀 챙겨 보더라고. 나도 따라서 몇 번 봤는데, 노래 잘 부르던걸.”

“저희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라인업이라, 저희도 많이 공들였습니다. 특히 이민희 작가가요.”

“자기 작가 챙길 줄도 알게 됐네, 강 PD가.”

빙긋이 웃고서, 그가 어조를 바꾸었다.

“그리고?”

이게 본론이다. 절로 넘어가는 침을 꿀꺽 삼키고, 대답했다.

“아온은…… 아직입니다.”

“간 보는 거 같아?”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TV 방송을 꺼리는 편이어서, 아직 결정을 못 내리는 것 같습니다.”

“그건 강 PD 생각이잖아.”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감입니다.”

“그래, 어디까지나 감이지. 강 PD가 감 좋다는 건 나도 인정해.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돼. 모르진 않겠지만.”

“예, 알고 있습니다.”

“출연 결정을 질질 끌 때는, 무언가 바라는 게 있다고 봐야지. 그게 뭔지 파악하는 것도 메인 PD가 할 일이야.”

MC나 패널도 정해야 하는데 출연진 확정에 너무 시간 끌면 안 된다고, 정민우 팀장은 내 귀에 못이 박이도록 이야기하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애정에서 나오는 말임을 알고 있기에, 꿋꿋이 새겨들었다.

“바라는 바라…….”

팀 사무실로 가자 팀원들이 바쁘게 통화를 하고 있었다. 때마침 박주영 선배가 전화를 끊고서, 나에게 눈짓하며 화이트보드로 향했다.

“‘하듀오’, 확정했어. 바로 미팅 갔다 올게.”

남녀 혼성 커버계 BJ인 ‘하듀오’의 출연 성사 소식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로써 목표까지 1명 남았네요.”

“그래, 제일 힘든 1명이 남았지.”

이로써 예정했던 10명 중, 확정되지 않은 건 아온뿐이었다.

박주영 선배는 보드마커로 그 이름을 톡톡 두들겼다.

“2차도 생각해 둬야 할 것 같아. 아직 접촉할 만한 BJ는 많으니까.”

“네. 생각해 두겠습니다.”

“그래, 그럼 난 다녀올게. 지환아! 가자!”

“예, 예!”

짐을 챙겨나가는 박주영 선배의 뒤를 오지환이 쪼르르 쫓아나갔다.

두 사람은 제법 케미가 있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박주영 선배가 해 주고 있는 것 같아서 감사하기 그지없었다.

“나도 다녀올게.”

“다녀오겠습니다.”

민희를 비롯한 작가진도 연달아 업체 미팅을 갔다.

엉겁결에 사무실에는 나만 덜렁 남았다.

어쩐지 나 혼자만 일을 안 하는 것 같은데…… 하지만, 그럴 수야 없지.

나도 내 일을 위해 스마트폰의 AGD앱을 구동했다.

[‘미투버 아온의 <언더커버 싱어> 출연진 캐스팅 성사 확률’을 사용 중입니다.]

[77%]

정민우 팀장은 말했다. 출연자가 캐스팅을 망설일 때는 바라는 바가 있는 거라고.

새겨듣긴 했지만, 이 경우에도 과연 그것 때문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아온이나 그에 관련된 사람을 접촉한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내 판단으로는 그것 때문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유미 팀장에게도, 남만덕 매니저에게도 전해 듣지 않았던가.

아온의 과거에 있었던, 방송계와 얽힌 이야기를.

디테일한 것은 몰라도 그때의 경험이 결정을 미루게 하는 것이리라.

그녀가 기획안에 대한 설명을 듣고 단숨에 확률이 ‘77%’까지 확률이 올라간 것을 보면 명확했다.

하지만, 결정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걸 기다리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나는 [상점]으로 들어갔다.

부족 확률인 23%. 아온이 망설이고 있는 이유가 그 부족 확률의 이유라면, 아이템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으니 거기에 걸 수밖에 없다.

[아이템 ‘너 자신을 알라’를 사용하였습니다.]

[사용 포인트: 1,000P]

[현재 사용 중인 ‘미투버 아온의 <언더커버 싱어> 출연진 캐스팅 성사 확률’의 부족 확률의 원인 변수를 표시합니다.]

[확률 구성 중 가장 비중이 큰 중요 변수만을 표시합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자마자 새로운 메시지가 보였다.

[중요 변수: 과거의 트라우마의 재등장]

이게 무슨 소리지?

패널을 내려다보면서 한동안 할 말을 잃었다.

그야말로 상상 이상이었다.

트라우마라는 것은 그동안 내가 파악한 아온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매니저도 언급했듯 방송 출연에 관련된 일들.

상처 받은 일이 많았다고 했다. 그러니 트라우마로 남았을 수야 있지만, 재등장이라니.

이 방송에서 그 트라우마가 다시 등장할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잠깐 생각을 굴리는 사이, 아이템 사용 종료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이템 ‘너 자신을 알라’의 사용이 종료되었습니다.]

[현재 적립 포인트/사용 가능 포인트]

[9,385P/43P]

포인트가 바닥으로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서, 잠들어 있던 컴퓨터를 재가동했다.

인터넷에서 일단 정보를 찾을 생각이었다.

나는 일단 커뮤니티를 뒤졌다. 그러나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트리위키에 들어가서 아온 항목을 클릭했다.

이미 충분히 살펴봤던 내용이지만, 혹시 몰라 꼼꼼히 살폈다. 하지만, 딱히 과거 방송 트라우마 관련으로는 나오는 게 없었다.

그래서 아예 포털 사이트로 옮겨서 검색어로 입력했다.

그렇게 눈에 띄는 기사, 블로그 글 등을 뒤지다가 겨우 단서가 될 법한 글을 찾아냈다.

『아온이 옛날에 아이돌 연습생 하다가 잘렸다는 거 맞음?』

소규모 카페의 글이었다. 귀찮은 가입 절차까지 밟았더니 등업을 하란다. 다행히 출석일 관련이 아니라 댓글, 게시물 유도여서, 미션 클리어 후에 내용을 확인했다.

『걸그룹 준비했다가 뭐 포기하고 연습도 안 나와서 잘렸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아는 사람?

―잘린 거 아님 그만둔 거 본인피셜ㅇㅇ

―웬만한 사고를 치지 않는 한 연습생을 막 자르진 않지. 기획사도 연습생 하나라도 더 있으면 재산인데

―그래? 왜 그만둔 거래?

―└그때 데뷔조에도 들어가서 데뷔 프로젝트 프로그램도 하려고 했다가 직전에 거기 PD가 스톱 걸어서 캔슬되어서 그만둔 걸로 앎

―└겨우 그걸로?

―└뭐 본인도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때라서 그만둔 거라고, 지금도 아쉽긴 하다고 설명하는 영상 있었는데 지금은 지운 듯』

작성일은 작년 초 정도.

하지만 지금껏 찾은 단서 중 가장 영양가 있는 것이었다.

그 카페에서 좀 더 검색을 해 보니, 그 일이 7, 8년 전 일이라는 것과 대략 어느 방송사였는지까지도 알 수 있었다.

“UBC……?”

UBC는 지상파다.

7, 8년 전이라면 지상파가 잘나가던 시절이었고…… 그 시절 그 UBC에 있었던 일이라면 물어볼 만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정민우 팀장이다.

예능5팀 사무실로 올라가자 다행히 정민우 팀장은 자리에 있었다.

“팀장님.”

“뭐야, 좀 전에 내려갔잖아. 아직 할 말 남았어?”

그는 <뮤직스케치>의 후임 PD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뭐라고 지시를 내리고 그 PD를 보낸 그가 나를 쳐다보았다.

“왜, 무슨 일인데?”

“아온 일로 여쭤볼 게 있습니다.”

“아, 연락 왔어? 뭐래? 출연료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팀장님, 원래 UBC에 계셨었죠?”

“그랬지.”

“그럼 혹시 이 일 아십니까?”

나는 폰으로 내가 발견한 카페의 글을 보여 주었다.

그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작은 화면에 집중했다.

“이런 일이 한두 번 있었어야지. 그때 아이돌 그룹 전성기다 뭐다 하면서 관련된 프로그램 많이 만들었거든. 그러면서 출연 취소된 것도 많고. 이게 왜?”

“아온이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가 이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서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래?”

정민우 팀장은 가만히 내용을 한 번 더 훑다가 나에게 폰을 돌려주었다.

“어느 소속사에서 연습생이었다고?”

“RPM이었다고 합니다.”

“RPM…… 7, 8년 전이면 막 신생이었을 때겠네……. 알았어. 알아봐 줄게.”

“감사합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순간,

[81%]

확률이 상승했다.

홀로그램처럼 변화하는 그 확률에 심장이 멎을 뻔했다.

내가 제대로 길을 잡았다는 증명인 것 같았다.

나는 흥분을 일단 가라앉히고 팀 사무실로 돌아갔다.

마냥 대기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당장 아온은 섭외가 불투명하다고 해도 다른 출연진은 섭외를 확정한 상황. 첫 촬영 기일이 어느 정도는 구색이 잡혀야 MC든 뭐든 섭외할 수 있을 거였다.

그래서 첫 촬영 기일을 두고 제작부 쪽과 연락하면서 스케줄을 맞추었다.

그러는 사이 정민우 팀장의 연락이 왔다.

“강 PD, 회의실로 좀 와라.”

그가 부르는 대로 회의실로 올라가자, 정민우 팀장은 좀 전과 다르게 무거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난 침을 삼키며 자리에 앉았다.

“혹시 확인 안 되셨습니까?”

“아니, 확인은 했어. 했는데 말이야.”

그는 선뜻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나는 괜히 회의실 밖을 살피고는 다시 말했다.

“말씀해 주십시오. 아시다시피 저희 방송에 중요한 일입니다.”

“알아. 아는데…… 에휴, 모르겠다.”

정민우 팀장이 마른세수를 하더니 나를 보았다.

“일단, 그 일은 진짜야. 그때 RPM 쪽으로 걸그룹 데뷔 프로젝트 방송 같은 걸로, 비슷한 콘셉트의 방송 출연 제의가 몇 번이나 나갔는데 번번이 엎어졌어. 아마 몇 번이나 같은 일이 반복되었으니 아온도 상처를 받았겠지.”

“트라우마가 될 정도였습니까?”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엎어진 것도 두어 번 되었으니, RPM 입장에서는 데뷔 직전에서 무산된 경험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아온만이 아니라 RPM이라는 회사에게도 트라우마가 될 법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 상처를 입힌 방송업계이니 아온이 지금도 트라우마로 느낄 법도 했다.

기획안을 보고 좋아했지만, 결국 정식 방송이라는 말에 표정이 굳었으니.

차라리 인터넷 채널의 방송이었다가 출연해 줬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찾아낸 방향은 옳았는데, 이 일을 내가 해결할 수 있을까?

“……그래도 일단, 한 번 더 접촉해 보겠습니다. 저희는 그 방송처럼 엎어지지 않을 거고, 반드시 제작해서 방송에 낼 거라고 설득해 보겠습니다.”

“아니, 그전에 말이야.”

나름 단단한 어조로 이야기했다고 생각했는데, 정민우 팀장이 어두운 얼굴로 말을 잘랐다.

“아온이라는 그 BJ, 본명이 뭐야?”

“본명이요? 잠시만요…….”

아온이라고만 호칭했더니 본명은 잠깐 헷갈려서, 폰으로 자료를 열어 확인했다.

“민하은입니다.”

“그럼 맞네.”

정민우 팀장의 얼굴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걔 트라우마의 원인이 아마 나일 거야.”

“예?”

뭐라…… 고……?

“엎어진 몇 개의 방송 중에, 마지막 방송이 내가 연출진에 있었던 방송이야. RPM에 엎어졌다는 연락을 한 것도 바로 나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UBC 출신이었다지만, 설마 관련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렇다면, 애초에 낮은 확률이 나온 것이……?

“아.”

무심결에 소리를 내었다가 입을 닫았다.

트라우마의 재등장.

기획안에는 연출진을 비롯해 국장의 이름, 그리고 예능5팀장으로서의 정민우의 이름도 실려 있었다.

아온은 그 이름을 보았을 것이다.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이 나온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말이었다.

덜컥 하는 기분이었다.

아온은 애초에 포섭할 수 없었던 걸까.

아니, 잠깐만.

나는 문득 깨달았다.

이 시점에 왜 확률이 상승한 거지?

정민우 팀장을 다시 보았다. 때마침 그도 나를 보고 있었다.

“강 PD, 아니 대한아. <언더커버 싱어> 하고 싶지?”

그렇게 말하면 나로선 달리 대꾸할 말이 없다.

“……물론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네 팀장으로서 할 일을 해야겠지.”

어두웠지만, 그는 뭔가를 결심한 눈빛을 했다.

“슈프림 엔터라고 했나? 거기 매니저랑 자리 한번 만들어 줘. 이왕이면 아온도 같이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이렇게 이야기해 줘.”

“예?”

“그때 일에 대해 관련자로서 사과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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