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미투버
“어, 예. 메일로 기, 기획안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런 인사를 끝으로 오지환이 전화를 끊었다.
“뭐래?”
“거, 검토해 본다고…….”
“그건 당연한 거고. 뭐라면서 검토하겠냐고 한 거냐고.”
박주영 선배가 날카로운 눈으로 물어보았다. 오지환이 창백해진 얼굴로 눈동자를 빙글빙글 돌리다가 말했다.
“시간은 가능할 것 같다고……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그래. 보고는 그렇게 해야지.”
“아, 알겠습니다.”
오지환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고 일어선 박주영 선배가 나를 돌아보았다.
“들었지?”
“예. 다행이네요. 일단 이 3명은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오지환이 연락을 취한 BJ 3명의 소속사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보였다.
“오 PD. 그쪽에 빨리 메일 보내 주고, 좀 쉬다 와.”
“가, 감사합니다…….”
핏기가 가신 얼굴이 결코 과장이 아닌 듯, 오지환은 맹렬한 기세로 메일을 작성하고는 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는 걸 보면서 나는 선배에게 핀잔을 주었다.
“선배, 너무 굴리는 거 아닙니까.”
난 솔직히 걱정되어 말했다.
“뭐래. 네가 나 굴렸을 때보다 반의반도 안 굴렸어.”
엥……? 내가 선배를 굴렸다고?
“너 편집 생각 안 나냐. 나 들들 볶으면서 잠도 안 재운 거.”
“……죄송합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걸 들이미니, 당할 재간이 없었다.
나도 장난처럼 핀잔한 거여서, 진심을 전달했다.
“어쨌든, 옆에 붙어서 통화하는 것까지 봐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가 피식 웃었다.
“지환이 쟤는…… 저 소심함이 좀 어떻게 되기 전에는 체크해야지.”
막상 쑥스러운지 그렇게 얼버무리는 선배였다.
하긴…… 소심함은 PD 업무에는 최악이긴 하다.
“그래도 많이 괜찮아진 것 같습니다.”
“그건 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오지환에게 캐스팅을 일단 던진 판단이 괜찮은 걸까 걱정은 했지만, 회사를 알아보고 연락처를 알아내고 직접 그쪽 관리팀에 전화하여 기획 설명까지, 전부 혼자서 해냈다.
중간중간 확인한 것 말고는 나나 박주영 선배가 아주 크게 도와준 부분은 없었다.
“소극적인 편이라 그렇지 제 할 일은 곧장 하는 놈 같으니, 앞으로 가르칠 맛 나겠어.”
씨익 웃는 박주영 선배가 그렇게 사악해 보일 수가 없었다.
“후임 가르치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 줄은 몰랐는데요.”
“어, 나도 몰랐어. 이럴 줄 알았으면 널 제대로 굴렸어야 하는 건데.”
낄낄 웃은 그가 자기도 담배 한 대 피우고 오겠다며 사무실을 나갔다.
혼자 남은 사무실에서, 화이트보드를 체크했다.
총 10팀의 출연진.
그중 4번, 6번, 7번 이름 옆에 세모를 그렸다.
세 모는 다른 몇 개의 이름에도 그려져 있었다.
다만.
“이 둘이 문제네…….”
이번 <언더커버 싱어>에 가장 캐스팅하고 싶은 두 명.
바로 ‘아온’과 ‘블라하이’라는 BJ들이었다.
둘 다 최대 동영상 플랫폼이라 할 수 있는 미투브에서 활동하는 미투버들인데, 각자 구독자수 400만 명, 1,300만 명에 달하는 대인기 BJ들이다.
커버계 BJ들 중에서도 최상급인 이 둘 중, 나는 EDM페스에서 아온의 무대를 보았다.
그 무대를 본 것이 계기로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온은 꼭 캐스팅하고 싶었다.
그리고 블라하이는 천만이 넘는 구독자 수가 증명하듯,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투버였다. 자료를 찾으면서 본 기사에는 광고 수익만으로도 수억대라고 하니, 만약 캐스팅만 된다면 프로그램 화제성은 이미 먹고 시작하는 거였다.
그렇지만.
리스트 최상단에 있는 두 이름 옆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
둘 다 아직 연락도 닿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 번이라도, 이야기라도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혼잣말하며 화이트보드 맨 위를 보았다.
『<언더커버 싱어(가제)>
평일 23시, 3% 목표!!』
기획안이 정식으로 통과되고, 제작 준비에 들어가면서 목표 시청률이 나왔다.
내가 원한 것도 아닌데, 팀 사무실이 생긴 다음 정민우 팀장이 서인하 국장의 특명을 받고 나에게 하달한 기준점이었다.
“이 정돈 되어야 너한테 입봉 맡긴 걸, 그것도 경연 기획을 맡긴 걸 아무도 뭐라고 못할 거야. 믿는다, 강 PD.”
그 믿음에 묻혀 침몰할 것 같은 부담감도 있었지만, 나는 다부지게 고개를 끄덕여 줬다.
그런데 출연진 세팅부터 이렇게 원하는 대로 가지는 못하니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지.”
아온의 소속사로 보낸 메일은 답신은 받았지만, 긍정적 검토의 일언반구도 없었다.
건조하게 ‘확인하겠습니다’의 한마디뿐.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번호를 알아내서 부딪쳐야겠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문을 열고 민희가 돌아왔다.
“강 PD, 큰일 났어.”
“왜 또. 소속사 못 알아냈어?”
“아니, 알아냈는데 큰일이야.”
민희가 알아보러 간 것은 블라하이의 소속사였다.
“그 회사, 미국에 있대.”
“뭐?”
내가 세상을 못 따라가는 건가.
미투버의 소속사가 미국에 있다고?
블라하이가 커버 영상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한국이었다.
미투브가 유행하기도 전부터 시작하여, 당시에는 그 영상으로 돈을 번다거나 하는 개념도 없이 그저 취미 생활과 연습 영상 모으기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팝송을 커버한 영상을 보고 원곡 가수의 소속사가 블라하이에게 컨택했고.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소속사를 가지고 활동하는 커버계 미투버가 되었다.
“그 회사 이름이 ‘리전 레코드’야.”
“거기…… 들어본 곳 같은데…….”
“‘마리아 켈리’가 있는 회사.”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민희가 보여주는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살폈다.
전 세계가 아는 가수를 나도 모를 리가 없다. 레전드라 할 팝 가수가 소속되어 있는 회사인 만큼 미국 팝 시장에서도 꽤 영향력이 큰 곳이라고 알고 있는데, 블라하이의 소속사가 무려 그 리전 레코드라는 것이다.
잠깐 찾아봐도 눈앞이 아찔해질 정도의 소속 가수 리스트가 나왔다.
그중, 블라하이의 사진도 당당히 실려 있었다.
블라하이 이외에도 전 세계의 커버계 BJ들과도 계약이 되어 있는지, BJ 분류로 되어 있는 카테고리 내에도 각종 국적과 인종들이 화려했다.
“…….”
난 잠깐 할 말을 잃었다. <언더커버 싱어>를 기획하면서 이렇게 스케일이 커질 줄은 몰랐다.
“어떡하지?”
민희가 물어와서,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어떡하긴. 일단 접촉해 봐야지. 영어 좀 하지?”
“오랜만에 영어로 메일 써 보겠네…….”
<당잠사> 때도 해외 로케이션 때문에 영어 메일을 쓰는 건 자주 있었다.
“믿어 보겠습니다, 메인 작가님.”
“보너스 더 챙겨 줘.”
“그럼요. 당연히 드려야죠.”
태연하게 권한도 없는 약속을 나눈 다음, 민희가 자리에 앉아 메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박주영 선배와 오지환이 돌아와 이 이야기를 전했다.
“리전 레코드? 그런 큰 회사에서 BJ도 계약해?”
선배는 놀랐고,
“며, 몇 년 전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 올라오는 동영상의 퀄도 엄청 좋아졌고요.”
오지환은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는 민희를 슬쩍 살피면서 그렇게 이야기했다.
박주영 선배와 나는 지그시 오지환을 쳐다보았다.
“……?”
그가 땀을 삐질 흘리기 시작할 때까지 쳐다본 다음 말했다.
“그걸 알고 있었는데 왜 말 안 한 거야?”
“그러게. 윗사람들이 고생하는 걸 보고 싶었어?”
“예? 예?”
오지환이 눈에 띄게 당황하면서 손을 허우적댔다.
“그, 그게 아니라! 무, 물어보지 않으셔서! 아, 아시는 줄 알고……!”
“우리 중에서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너인데, 미리미리 이야기해 줬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메인 작가님이 소속사 알아보러 나간 걸 몰랐어?”
“그, 그게…… 어…….”
오지환은 결국 아무 말도 못하고 어버버거렸다. 그 모습에, 짐짓 얼굴을 구기고 있던 나와 박주영 선배가 서로 눈을 마주치며 낄낄 웃었다.
“에휴. 막내 PD 괴롭히는 거 보니까, 두 분 다 선배 PD가 다 되셨네요, 정말.”
오지환의 당황하는 모습을 즐기고 있던 우리의 행각에 한마디 한 민희가 모니터를 톡톡 두들겼다.
“보냈어.”
“고생했어. 대답이 돌아오길 기다려야겠네.”
다음 행동은, 대답이 돌아온 다음이었다.
* * *
캐스팅 과정의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가장 주요한 출연진 두 명 중 한 명인 아온.
허스키한 락 보이스가 매력인 여성 미투버는, EDM페스 때 만난 이후로 최근 내가 즐겨듣는 가수가 되었다.
물론 매번 미투브 채널을 찾아 들어가서 들어야 하긴 하지만, 어떤 음악이든 자신의 스타일로 변환해서 커버한 연상들은 하나같이 매력적이었다.
그 매력은 나만이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아온의 구독자수는 400만. 국내에서도 탑급의 규모였다.
그래도 아온의 회사는 국내라서 블라하이보다는 콘택트하기 쉽겠다 여기고 있었는데,
“거절 메일이네.”
내가 보낸 메일을 먼저 확인하게 된 박주영 선배가 알려 왔다.
“뭐라는데요?”
“뭐, 검토해 보겠다는 이야기도 없이, 그냥 거절 메일이야.”
난 폰으로 메일을 열어 확인했다.
팀 대표 메일로 날아온 내용은 간단하기 그지없었다.
『방송 기획 제안은 감사하나, 현재 아온은 모든 방송 활동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읽어놓고 며칠 동안 답이 없더니 정말 짤막한 내용이네요.”
“왜 거절하는지 이유도 없고 말이야. 구독자 수가 탑급이시니 그만큼 콧대가 높은 거 아냐?”
물론 메일상에서 조건을 명확히 제시하진 않았다. 그것은 미팅이라도 한 다음 이야기 나눌 사항이니까.
그렇다 해도 이렇게 칼같이 자를 일인가.
“왜 그래, 표정들이.”
작가진과 나갔다가 돌아온 민희가 우리의 얼굴을 보고는 갸웃거렸다.
방금 온 메일을 그녀에게 보여 주자, 그녀도 같은 표정이 되었다.
“이건 뭐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사연?”
“방송 쪽에서 한번 크게 데었다든가. 이런 칼 같은 거절은 그래서인 경우가 많지 않아?”
“하긴. 그럴 수도 있겠군.”
나보다 방송 경력이 기신 두 선배님이 그렇게 말하자, 가르침을 달라는 표정을 지어 주었다.
민희가 작가들 보는 중에도 거리낌 없이 나를 비웃으며 이야기했다.
“예전에 아이돌 방송 할 때, 출연 아이돌 하나가 갑자기 출연 못 하겠다고 한 적 있었거든. 그래서 왜 그러냐고 알아보니, 예전에 방송 출연이 바로 전날 캔슬되었다거나 하는 일이 너무 빈번했는데, 하필 그 PD가 방송에 관여해 있었던 거지. 그걸 알게 되자마자 출연 않겠다고 칼같이 자르더라고. 새로 아이돌 구하느라 고생했었는데.”
“나도 뭐, 퀴즈 예능 하면서도 몇 개 그렇게 거절당한 경우가 있긴 하고.”
이 바닥에서는 흔한 일인가.
하긴 다 사람 부딪히는 일들이니, 감정적이든 업무적이든 한번 틀어지면 회복되지 않는 경우가 아예 없진 않았다.
“저, 전화 끝났습니다!”
그때 캐스팅 관련 전화를 하러 나갔던 오지환이 폰을 휘두르며 뛰어 들어왔다.
우리만 있을 줄 알았는데 작가들까지 다 있으니 놀래서 흠칫했다가,
“미, 미팅 잡았습니다.”
“오, 다행이네. 반응은 어때?”
“괜찮……은 것 같습니다.”
박주영 선배가 물음에 움찔거리면서도 대답하는 것 보니, 통화 내용이 긍정적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3명은 확정 지을 수 있을 것 같네.”
“불행 중 다행이네요. 선배, 오 PD랑 같이 움직여 주세요.”
“오케이.”
막내가 이렇게 열심히 해 주고 있는데, 메인이 되어서 그냥 앉아 있을 순 없지.
“아무래도 한번 부탁해 봐야겠어.”
“누구한테?”
물어보는 민희에게 대답하지 않고, 일단 폰을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익숙한 한식주점에 와 있었다. 예전 서인하 국장과, 부장 시절에 한번 비밀 회동을 위해 왔던 곳이었다.
그 회동의 상대가 오늘 저녁에도 나와 있었다.
“여기로 정해서 별로인 건 아니죠? 제가 여기 막걸리를 좋아해요.”
싱긋 웃는 얼굴이 여전했다. 나는 고개를 숙여 보였다.
“오랜만에 뵙네요, 김 팀장님.”
“그러게요. 가끔 연락은 했어도 얼굴 보는 건 되게 오랜만이네요. 입봉하신다면서요?”
김유미 팀장.
케이 록페스 때 인연을 맺은 그녀가 내미는 막걸리를 받으면서 되물었다.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누구겠어요, 서 국장님이지. 국장 다시면서 한턱내겠다고 자랑 전화를 하셨는데, 아직 사진 않으셨어요.”
“아. 그건 저도 아직 못 얻어먹었습니다.”
공동화제가 있어서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다행히 대화가 어색하진 않았다.
도도해 보이는 첫인상과 달리, 김유미 팀장은 호탕하고 시원한 성격이었다. 일할 때는 명확한 선에서 움직여서 같이 일하기 참 편했었다.
“저도 그때 많은 도움 받았어요. 일적으로도, 사적으로도. 아참, 쇼케이스 초대권도 구해 주셔서 고마웠어요.”
유능한 섭외팀장인 그녀는 사적으로는 엑시트의 팬이다. 방영 이후, 엑시트의 컴백 쇼케이스 초대권을 구해서 준 적이 있었다.
“보답하고 싶었으니까요. 어떻게든 밀어붙여서 성공하긴 했지만, 폐를 끼친 것이기도 하고. 거듭 감사합니다.”
“에이. 서로 감사 인사는 이 정도만 하죠. 나도 좋은 사람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좋은 사람이라.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 즐겁게 잔을 부딪쳤다.
한동안 케이 록페스 때의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를 본 다음, 그녀가 좋아한다는 담백한 막걸리가 1병 비워진 시점이 되었다.
“그런데 어쩐 일이에요?”
언제나처럼 예고도 없이 푹 찌르고 들어오는 말에, 나는 시계를 보았다. 예정보다 조금 늦는 것 같으니 그냥 먼저 말을 꺼내야 할 것 같았다.
“미투버 아온이라고 혹시 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