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56화 (56/200)

56화 새로운 얼굴

[‘성공적인 예능 프로그램 입봉을 위한 초안 선택’의 확률 보기 사용을 종료하였습니다.]

[100% 확률을 달성하지 못하였습니다.]

[포인트가 적립되지 않습니다.]

박주영 선배의 5팀 합류가 결정되고 인사 재공지가 뜬 날, AGD 앱에서 푸시가 왔다.

왜 확률 보기가 종료됐지?

난 사무실에 앉아서 눈을 끔뻑대다가 뒤늦게 깨달았다.

“초안 선택까지가 확률 보기 조건이었지…….”

그 말인즉슨.

서인하 부장 선을 지나 내 초안이 정식으로 컨펌이 났다는 뜻이었다.

AGD 앱을 켜서 사용 내역을 뒤져 보았다.

[85%]

최종 확률은 ‘85%’로 ‘100%’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100%’를 달성해 포인트 보상을 받았다면 향후로도 도움이 됐겠지만, 크게 아쉽진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베스트 제작진은 이미 갖추었으니까.

그리고 어차피 한동안은 포인트 생각을 해선 안 된다.

내 입봉작이다. 난이도를 높게, 포인트 적립이 크게 되는 방향으로 확률 보기 조건을 설정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일이 생길지 나도 예상을 못하는 상황에서 바로바로 확률을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두는 것이 나아 보였다.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이용해서 입봉작을 성공시키자는 게 내 목표였다.

그런 마음을 더욱 단단히 먹고, 적극적으로 확률 보기를 사용하면서 정식 부서 개편일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서인하 부장이 정식으로 국장 발령되고, 정민우 PD가 5팀장이 된 날.

“좋은 아침.”

옆자리에 박주영 선배가 짐을 가지고 나타났다.

퀴즈 예능 사무실에서 짐을 전부 챙겨, 비어 있는 내 옆자리에서 오늘부터 함께 일하게 되었다.

제작부 사무실이었던 공간 곳곳에 파티션이 새로 배치되어, 각 팀별로 공간이 분리되었다.

익숙해지려면 아마 한동안은 적응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이 작가는?”

“좀 전에 작가실 쪽으로 자리 옮겼대요. 정신없다고 합니다.”

“정신이야 다 없지. 한동안은 골치 아프겠다.”

사무실이 아직 어수선했다. 그렇지만 이 분위기도 사라질 거고, 새로운 체계가 머지않아 자리 잡을 것이다.

그 시발점으로서 서인하 국장이 나타났다.

“다들 좋은 아침이야.”

“안녕하세요!”

국장실 앞에서 인사하는 그를 향해, PD들이 전부 일어나 인사했다.

그가 손을 들어 몇 마디 아침 인사를 보탠 뒤, 말했다.

“오늘부터 새로운 체계니까 아마 적응하느라 시간이 걸릴 거야. 그렇지만 서로서로 도와가면서 잘해 보자고. 다들 알았지?”

“예!”

“잘 부탁합니다!”

새로운 시기이다 보니 예능국 전체에서 의욕이 느껴졌다. 그게 뿌듯한 듯 서인하 국장이 박수를 몇 번 치고는 팀장들을 불러 모았다.

국장실 안에서 팀장들이 한 차례씩 인사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다시 밖으로 나온 팀장들이 각자의 팀으로 돌아왔다.

“자, 우리 5팀. 첫 회의 하러 갑시다.”

아침 회의는 이미 공지되어 있었다.

5팀원들이 각자 노트, 펜 등을 챙겨서 부리나케 일어났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보니, 회의실마다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부서 개편은 우리 예능국만이 아니라 회사 전체의 문제라서, 모두가 대처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어째 간만에 회사 나온 것 같네.”

“시끌시끌하네요.”

“좋은 의미로 살아 있는 것 같지 않냐?”

박주영 선배와 그렇게 수군대면서, 미리 잡아 놓은 회의실에 자리를 잡았다.

“크흠. 어색하네.”

상석에 앉은 정민우 팀장이 헛기침을 터뜨렸다. 바로 옆에 앉은, 우리 팀 최고 연차인 배은진 PD가 싹싹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첫 회의이신데 인사 한번 하시죠, 팀장님.”

“인사는 무슨. 아침에 국장님이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했잖아. 그거면 됐지.”

“에이, 그래도 팀장님이 하신 건 아니잖아요.”

계속된 재촉에 정민우 팀장도 헛기침하고선 입을 열었다.

“5팀 팀원 전부가 팀이 꾸려지기까지 아마 각자의 사연이 많았을 거야. 각자 준비도 많이 했을 거고. 옆 팀과 비교할 건 아니지만, 우리 5팀은 5팀만의 능력을 앞으로 보여 주도록 하자고. 다들 잘 부탁해.”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해요!”

회의실에 모인 팀원들이 힘차게 인사를 하면서,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했다.

부서 개편 직후의 첫 회의인 만큼, 상세한 내용이 오가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팀 주축 프로그램인 <뮤직스케치>의 코너 구성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다른 PD들이 준비해 온 확정 기획안들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 PD, 기획안 가져왔지?”

“예.”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기획안은 이미 전부 나눈 상태라서, 정민우 PD의 물음은 확인일 뿐이었다.

다들 저마다 노트북과 출력물로 나의 기획안을 확인했다.

“제목 정했네?”

“네, 박주영 PD랑 이민희 작가랑 같이 이야기해서 정했습니다.”

내 입봉작의 제목.

<언더커버 싱어(가제)>

커버계 BJ들은 언더에서 활동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 점에서 착안해, 숨어 있는 실력자들이라는 의미도 결합해서 정한 제목이었다.

“뒤에 붙은 글자처럼 일단 가제입니다. 좋은 의견 있으시면 새겨듣겠습니다.”

“뜻이 조금 명확하진 않은 것 같은데…….”

“어떤 뜻인지 호기심은 확실히 들 것 같긴 해.”

저마다 의견을 보태는 PD들의 말을 하나씩 기록했다. 전부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었다.

그 이후에는 기획안에 대한 점검이 있었다.

기획 확정은 받았지만 그래도 부족한 점이 많았으니까.

팀원들이 몇 가지 의견을 주는 것을 착실히 받아 쓴 다음에,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정민우 팀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박 PD랑 이민희 작가만 있지? 인력 더 필요하지 않겠어?”

“물론 필요합니다.”

“작가는 내가 작가실에 이야기해서 편성해 달라고 하면 되고…… 우리 팀원 중에 지금 프로그램 확정 안 난 PD가 누가 있지?”

정민우 팀장이 돌아보자 한두 명이 손을 들었다.

그중 한 명을 그가 가리켰다.

“오지환, 오늘부터 여기로 들어가. 지금 다른 거 하는 거 없지?”

2년차인, 나보다 후배인 오지환 PD였다.

얼굴이야 물론 알고 있었지만, 직접 일해 본 것은 아니라서 우리는 눈을 마주치고 일단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좋아. 그럼 각자 기획안 정리해 오기로 하고, <뮤직스케치> 연출만 남겨 놓고 모두 해산!”

“고생하셨습니다!”

정민우 팀장의 말과 함께, 우린 즉각 일어났다.

* * *

박주영 선배와 함께, 오지환과 간단한 면담을 가지기로 했다.

“점심 뭐 먹을래요?”

“전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오지환은 인상만큼이나 조용했다.

조금 마른 체형에 표정도 다소 어두워서, 어디 가도 딱히 눈에 잘 띄지 않을 것 같은 존재감이었다.

“괜찮겠냐, 쟤.”

조용히 우리 둘을 따라오는 오지환을 돌아보고 박주영 선배가 슬그머니 귓속말해 왔다.

“일단 같이 해 봐야죠. 정 팀장님도 생각이 있으시니 우리하고 같이 해 보라고 하신 거 아니겠습니까.”

“그럼 좋겠다만, 영 친해지기 쉬워 보이진 않네.”

2년차인데 어떤 사람인지 잘 들어보지 못한 것을 보면…… 그럴 만도 할 것 같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는 건 거꾸로 보면 사고를 친 일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니, 좋은 쪽으로 생각해야겠지.

일단 오지환을 이끌고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도 선배에게 합류 이야길 꺼냈던 순대국집이었다. 마침 자리가 비어 있어서, 거기서 식사를 같이했다.

오지환은 역시 조용했다.

밥을 먹으면서도 뭔가를 물어보지 않는 한, 먼저 입을 여는 법이 없었다. 긴장하기라도 했나.

“이거, 1년차부터 주제 넘는 짓거릴 했던 누구 씨랑은 너무 다른데?”

선배가 나 들으라는 듯 노골적으로 놀려 댔다.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어쨌든 오지환은 묻는 말에는 곧잘 대답을 해서, 이것저것 그에 대한 사항들은 알 수 있었다.

“응? 민희랑 일했었다고?”

“그 토크 프로그램 같이 했었어?”

“예.”

단답이 돌아와서 좀 더 물었더니,

“한 달 정도 지원을 나갔습니다.”

그러고는 민희와 같이 제작진 구성이 바뀌면서 5팀으로 왔다는 말이었다.

민희와 인연이 있는 줄은 몰랐던 터라, 박주영 선배와 나는 눈을 마주쳤다.

“민희도 부를까요?”

“뭐, 인사는 시키면 되겠지. 시간 된대?”

“연락해 보겠습니다.”

작가실은 작가실 나름대로 아마 회의가 있거나 식사 중일 수도 있어서 메시지로 확인해야겠다……고 폰을 꺼내는데, 오지환이 숟가락을 들고 굳어 있는 게 보였다.

“왜요?”

“아,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매우 어색하게, 숟가락이 끊어질 듯한 움직임으로 순대국밥을 떠먹는다. 뭐지, 이 반응은?

[점심 중?]

[이민희작가: ㅇㅇ 임 작가님이랑. 왜?]

[우리 PD 한 명 충원되어서 인사시키려고. 밥 먹고 커피 한잔 가능?]

[이민희작가: ㅇㅋ 다 먹으면 연락할게]

“민희 괜찮답니다. 밥 먹고 연락한대요.”

“그래. 그럼 카페에나 먼저 가 있으면 되겠네.”

오지환은 고개를 숙이고 밥만 퍼먹고 있었지만, 좀 전과는 명백하게 행동이 이상했다.

박주영이 눈빛으로 물어왔다.

‘얘 왜 이래?’

‘글쎄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을 뿐이었다.

* * *

순대국밥의 장점은 금방 나오고, 또 빠르게 먹을 수 있다는 것.

가게를 나와 카페에 가서 자리를 잡아도 시간이 꽤 널널했다.

민희에게 카페를 알려주고 나자 박주영 선배가 다시 일어섰다.

“한 대 피우고 올게. 지환아, 너도 가자.”

박주영 선배가 담배 피울 사람이 늘었다고 희희낙락하면서 그를 데리고 나갔다.

조용히 뒤따라 나가는 오지환을 슬쩍 봤다가 폰을 꺼냈다.

개인 클라우드로 들어가서 기획안을 열어보았다.

『언더커버 싱어(가제) 기획안』

책임자인 서인하 국장과 정민우 팀장의 이름이 적힌 페이지가 지나가고, 제작진을 정리해 둔 페이지가 나왔다.

그곳에 오지환의 이름을 추가했다.

작가를 비롯해서 제작진이 앞으로 추가될 텐데, 일단 연출진에 대한 확률부터 보자.

[87%]

꽤 높다.

나, 박주영, 오지환, 세 명으로 이루어진 연출진으로도 어느 정도의 방송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는 확률이었다.

난 잠깐 고민하다가, 확률 보기를 취소하고 조건을 다시 설정했다.

이번에는 연출진과 작가진의 조합이 적절한지였다.

어차피 작가진이라고 해 봐야 아직 이민희 한 명뿐이었다.

[74%]

확률이 뚝 떨어졌다.

좋지도, 그렇다고 아주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애매한 확률이었다. 네 명의 조합이 별로 좋지 않다는 걸까?

다시 고민하다가, 뭔가 생각이 들어 제작진에서 오지환의 이름을 지웠다.

그러자,

[88%]

“헐.”

이 확률의 변동이 알려 주는 바는 명확했다.

오지환의 합류가 그다지 좋은 확률 변동 요인은 아니라는 것.

거기다, 그 이유가 민희와의 조합 때문이라는 것.

오지환의 반응도 그렇고, 민희와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그렇다면 오늘 인사시키는 게 옳은 선택은 아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급히 메시지를 보내려고 했다. 그런 내 어깨를 가벼운 손짓이 탁 때렸다.

“여기 있었네. 왜 이리 구석에 있어?”

민희였다.

“아…… 왔어?”

“뭐야, 이 반응은. 불러놓고 반기지 않는 투는 뭔데?”

민희가 투덜대면서 내 옆에 앉았다.

“박 PD님은?”

“담배 피우러.”

흡연 장소는 이 건물 뒤쪽이었다. 민희가 마주치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아직 시간은 있다.

“혹시 오지환 PD라고 알아?”

“오지환 PD? 그럼, 알지. 얼마 전까지 같이 일했는데. 우리 방송에 지원 나왔었거든.”

참, 이젠 우리 방송이 아니지, 하고 덧붙인 민희가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설마 인사시킨다는 PD가 그 사람이야?”

부정할 수도 없어서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너 바쁘면 그냥 나중에 인사시키는 걸로…….”

라고 이야기를 다시 꺼내려는 그 타이밍에,

“이 작가 왔어?”

뒤에서 박주영 선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차 싶어 돌아보자 곧바로 오지환의 얼굴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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