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55화 (55/200)

55화 모르는 곳에서

“면담이요?”

마지막 촬영 준비가 끝난 뒤, 박주영은 메인 PD의 부름을 받았다. 면담이란 갑작스러운 말에 무슨 일인가 싶어 회의실 문을 열었는데,

“어, 오랜만이야. 박 PD.”

회의실 안에는 예능 5팀장이 될 정민우와 3팀장이 될 한지훈이 있었다.

한지훈에게 인사를 한 뒤 정민우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초면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정 팀장님.”

“그래. 전에 지원 나오고,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지?”

하지만, 회사에서 오가며 본 것과 <뮤직스케치> 지원 나갔던 일 빼고는 접점이 없었다.

그만큼 회사 내에서도 그다지 면식이 없는 인물이었다.

왜 이 자리에 있는 걸까. 궁금해하면서도 박주영은 그들 앞자리에 앉았다.

“주영아. 너 우리 3팀으로 오게 되어 있잖냐.”

“예.”

한지훈이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박주영은 어쩐지 감이 왔다.

어떤 말이 나올지 알 것 같았다.

“5팀으로 가라는 말씀이십니까?”

“강요는 아니고. 네 의향도 물어보자 싶어서 부른 거야.”

단도직입적인 말에 한지훈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정 선배…… 정 팀장님이랑 이야기하다가 1명씩 트레이드하자는 말이 나와서 말이야.”

“트레이드?”

“선배가 하도 널 원해서, 재능 있는 친구 그냥 보낼 순 없고, 5팀 예정인 친구 하나를 보내 달라고 했지.”

“딱 좋은 거래인 거지.”

박주영은 다시 정민우를 보았다. 그도 별로 숨길 생각은 없어 보였다.

“정 팀장님, 대한이 때문입니까?”

그래서 박주영도 숨기지 않고 물어보았다.

며칠 전, 강대한이 자기 팀에 서브로 들어와 달라고 설득하러 왔던 일이 다시금 떠올랐다.

박주영은 솔직하게 말해서, 화가 났다.

자신을 제치고 후배가 먼저 입봉하게 된 거야 다소 입맛이 써도 웃어넘길 수 있다. 그렇다 해도, 그 밑에서 서브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연차도 2년 앞서고, 편집 실력도 더 좋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이것은 자존심의 문제였다. PD로서의 자존심 문제.

하지만 박주영은 선뜻 거절할 수 없었다. 욕이라도 퍼붓고 싶었지만, 그것도 눌러 참았다.

자존심 상하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고, 강대한이 어떤 심정으로 자신에게 말했는지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도 저도 못하는 동안 날짜가 흘렀다.

오늘까지는 그래도 마지막 촬영 준비로 바빴다 치더라도, 이젠 정말 결정할 타이밍이 왔다.

그 타이밍에 정민우가 나타나, 5팀으로 오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의심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대한이 그 자식이 정 팀장님한테 부탁이라도 한 겁니까?”

그렇게 말하는 박주영의 말투는 다소 날카로웠다. 하늘과 같은 연차 차이가 나는 팀장급 PD들에게 하기에는 다소 격한 어투였다.

“아닌데?”

하지만 정민우는 무슨 소리냐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거기서 강 PD 이름이 왜 나와? 친한 건 알고 있었지만, 둘이서 무슨 이야기 있었어?”

“네?”

그가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자 표정이 무너진 것은 박주영이었다.

정민우가 한지훈에게 뭐 아는 거 있냐고 물었다가, 그가 고개를 젓자 다시 박주영을 보았다.

“강 PD랑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박 PD 필요하다고 한 건 우리 팀 구성 때문이야. 아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 팀 연차 구성이 엉망이거든. 박 PD 같은 5~6년차가, 허리가 딱 필요해.”

부서 개편이 되면서 각 팀별로 연차 배분이 공평하게 되도록 서인하가 힘썼다고는 하는데, 현실상 그게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예능 5팀은 곧 3년차가 되는 강대한 위로 연차가 다소 벌어져 있었다.

“괜찮은 사람 없나 하고 있던 중에, 딱 괜찮은 연차인 박주영 PD가 있고, 전에 지원 왔을 때 본 적도 있고 하니 내가 한 팀장한테 부탁한 거야. 데리고 가도 되겠냐고.”

한지훈 입장에서야 정민우가 하도 요구를 하니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었다.

논리적인 말을 듣고 있자니 박주영은 잠시 격앙될 뻔한 것이 조금 민망해졌다. 그래도 의심을 완전히 걷을 순 없었다.

“정말이십니까?”

“딴 이유가 뭐가 있겠어.”

태연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도통 속을 알 수가 없었다.

박주영은 결국 말을 몇 번 씹어 삼켰다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오해를 했나 봅니다.”

“뭐, 갑자기 한 이야기니까 다소 혼란스러울 순 있지. 이해해.”

“생각할 시간이 있습니까?”

“많진 않아. 가능하다면 내일까지는 이야기해 줬으면 싶은데. 안 되면 나도 딴 사람 찾아야 하니까.”

“잘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래, 잘 좀 부탁해, 박 PD.”

박주영은 양해를 구하고 다시 일어섰다. 회의실 밖으로 나가려는 그를, 아, 그래, 하는 말로 정민우가 잠시 돌려세웠다.

“강 PD랑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알잖아? 그 친구가 어떤 친구인지. 서로에게 좋은 일이 될 거라고 여겨서였을 거야. 오해하지 말고, 좋게 생각해 줘.”

“어휴, 자기 새끼라고 벌써부터 팀원 챙기시는 겁니까, 정 팀장님?”

“당연하지. 내 새끼 내가 챙기지, 누가 챙겨?”

1년 선후배 사이인 한지훈과 정민우가 가볍게 투닥대는 소리를 듣고, 박주영은 묵례를 하고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몇 번 더 투닥대는 동안 정민우의 눈길은 그런 박주영을 좇고 있었다.

한지훈도 슬쩍 그쪽을 봤다가 말했다.

“진짜는, 뭡니까?”

“무슨 소리야?”

“주영이 쟤가 눈치는 좋더라고요. 촉이 좋은 건지. 암튼, 쟤가 본 게 진짜죠? 강대한인가 하는 친구 부탁인 거.”

“이상한 소릴 다하네. 다 우리 5팀 좋다고 하는 일인데 진짜고 뭐고가 어디 있어?”

정민우는 뻔뻔하게 대답하고서는 일어섰다.

“어차피 서로 좋자고 하는 거야. 그러니 잘 좀 설득해 봐.”

“고집은 있는 애라서요. 그래도 뭐, 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 *

[82%]

확률이 왜 변했는지 한참 머리를 굴려 봤지만, 결국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이템을 써 볼까도 했다가 어차피 포인트가 없고, 그렇게 해서 알아낼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파악하지 못한 어떤 변수가 변화해서 그런 걸 테니…… 하는 생각만 하고 일단 퇴근을 했다.

그리고 주말이 지나갔다.

커버계 BJ 등의 각종 인터넷 방송들을 찾아서 정보를 모으고 하면서 이틀의 주말이 금방 지나간 뒤, 월요일 출근을 했다.

“어, 선배.”

얼마 뒤면 사라질 제작부 사무실에는 박주영 선배가 있었다.

어젯밤 술이라도 퍼마셨는지 묘하게 퀭한 눈이었다.

그가 나를 보더니 슬쩍 손을 들어 보였다.

“저 보러 오셨습니까?”

희망을 품고서 물어보았더니 선배는 핀잔을 주었다.

“내가 시커먼 남자 놈을 보러 왜 와.”

나는 괜히 뚱해져서는 다시 물었다.

“주말 동안 마지막 촬영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고생하셨어요.”

“내가 한 게 있나. 다른 PD들이 만들어 둔 거에 중간에 합류한 건데.”

“그래도 할 일은 다 하셨잖아요. 고생할 건 다 하셨다던데.”

나름 솔직하게 격려해 준다고 한 건데, 그가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꿍꿍이속이 다 보이네. 그래 봐야 딱히 네가 원할 만한 결과는 없어.”

“어…… 아니, 뭔가를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요.”

“뭐야, 바라는 게 없어? 그새 마음이 바뀌었냐?”

난 대놓고 얼굴을 찌푸렸다.

“선배가 싫다고 하셨는데, 어쩔 수 없잖아요.”

“내가 언제 싫다고 했냐.”

뭐라는 거야, 이 사람이.

“그럼 제 팀에 합류해 주시는 겁니까?”

“난 3팀인데?”

이 인간이. 아침부터 갑자기 나타나서는 왜 말을 계속 빙빙 돌리지?

“그럼 어쩌라는 겁니까.”

박주영 선배의 마음을 읽기 힘들어서, 그냥 대놓고 물어보려는 찰나였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고. 인사부에 연락해서 발령 공고 다시 내라고 해.”

서인하 부장이 빠르게 지시하면서 부장실을 나왔다. 급하게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그를 뒤따라 나온 것은 정민우 PD와 한지훈 PD였다.

“어, 주영아. 와 있었구나.”

“예.”

“강 PD도 마침 와 있네. 다행이군.”

두 예비 팀장이 우리 둘을 보더니 말했다.

“박주영 PD는 5팀 소속이 되었어.”

“인사부에서 정식 발령 새로 낼 거야. 결정해 줘서 고마워, 박 PD.”

한지훈 PD가 박주영 선배와 악수를 하고는, 인사부에 알리러 가겠다면서 서둘러 나갔다.

우리 셋만 남고, 나는 여전히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정민우 PD만 쳐다보았다.

그가 손을 들었다.

“셋이서 커피나 한 캔 할까?”

자리를 옮겨, 휴게실에서 정민우 PD가 뽑아 준 커피를 든 채 나는 설명을 들었다.

한지훈 PD, 다시 말해 3팀장과 PD를 트레이드하려 했고, 트레이드 대상들이 각자 오케이했고, 서인하 부장의 컨펌도 방금 받았다는 거다.

즉,

“박 PD는 이제 우리 5팀의 팀원이라는 거지.”

“…….”

뭐지, 무슨 소리야?

정민우 PD가 나를 위해서 박주영 선배를 데리고 와 줬다는 건가.

내가 그런 의문을 담은 채로 정민우 PD를 보는데, 그가 내 눈길을 무시하고 박주영 선배를 보았다.

“박 PD. 어려운 결정이었을 텐데, 고마워.”

“아니요. 어차피 타이밍이 맞았잖아요. 저한테도 좋았고,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습니다.”

“그래도 말이야. 아무튼. 앞으로 잘해 보자고. 정식 개편 이후에도 잘 부탁해.”

둘이서 건배하듯 커피 캔을 부딪친 뒤에 정민우 PD는 갑자기 일이 생각났다면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이야기 좀 하고 와. 친한 사이지?”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티가 나는데, 박주영 선배는 그냥 커피만 마시고 있었다.

난 떠나가는 정민우 PD를 노려보았지만, 휴게실을 나가면서 그는 씨익 웃기만 했을 뿐이었다.

일이 어찌 되었든.

정민우 PD가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나는 직감했다. 이 자리가 마지막 기회임을.

“선배.”

“알아.”

“예?”

묻기도 전에 선배가 먼저 대답했다.

“안다고.”

“뭐……를요?”

슬쩍 나를 흘겨보더니,

“내가 불쌍해 보여서 그런 것도 아니고, 나를 무시해서 그런 것도 아니라는 거.”

“당연하죠. 절대 그런 마음 없습니다. 전 그저…….”

“같이 하고 싶냐, 나랑.”

너무 대놓고 그렇게 말해서 잠시 말문이 막혔다.

“……예. 같이 프로그램 만들고 싶습니다.”

박주영 선배는 조용히 커피 캔을 흔들었다. 둘밖에 없는 휴게실에, 캔 안에 커피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만큼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어쩐지, 무거운 침묵은 아니었다.

문득 그의 마음이 이해될 것 같았다.

후배한테 서브 제안을 받았으니 자존심에 상처도 났을 거고, 화도 났을 거고.

그래서 대답하지 않았지만, 거꾸로 그것은 정말 싫다는 부정은 아니었으리라.

맘속 어딘가에선 그도 나처럼 같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으리라.

그 마음과 자존심이 서로 싸워, 결국 대답을 미루고 미뤘으리라.

하지만 결국 이렇게 마주하게 됐다.

고마운 사람들에 의해, 고마운 사람과 함께 할 기회를 얻은 거다.

“조건이 있어.”

“말씀하십쇼.”

“다음에는 네가 내 서브 해.”

“그건…….”

“싫냐?”

“그럴 리가요. 당연하죠. 선배 입봉작에서는 제가 서브 하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박주영 선배가 캔을 내밀었다. 나도 캔을 마주쳤다.

난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선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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