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53화 (53/200)

53화 제작진 구성

서인하 부장의 한마디에, 온몸에서 긴장이 쑤욱 빠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그것만으로도 벌써 시청률 5%는 넘은 듯한 감동이 느껴졌다.

[74%]

그의 컨펌이 떨어지는 순간 확률이 상승했다. 하지만 고작 1%. 그동안 기안을 컨펌 받았을 때와는 다소 차이가 나는 상승이었다.

뭐지. 초안이라 그런가?

“좋아. 지금까지 없던 기획이니 신선하기도 하고, 최근 추세에도 어울리고. 근데…….”

그 이유는 서인하 부장이 설명해 주었다.

“이걸 일반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커버계 BJ들이라면 일반 가수와는 다를 거야. 인터넷에서 인기가 좋다 하더라도 일반 시청자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는 걸 전제로 해야 해. 시청자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겠어?”

그가 지적하는 부분은, 안쪽 꽉 찬 직구였다. 배트를 휘두를 기력조차 잃어버릴 만큼.

내 표정이 굳은 게 보였는지, 서인하 부장이 피식 하면서 손을 저었다.

“아니, 아니, 기획 엎자는 거 아니니까 그런 얼굴 하지 마라. 초안은 좋으니 이제 보충하자는 거지.”

정민우 PD를 보니 예상했다는 듯 태연한 얼굴이었다.

“왜 날 봐? 스스로 생각해야지, 스스로.”

“어…….”

그 순간 뇌가 풀로 회전했다. 뇌세포가 움직이는 소리가 귀에 들릴 것 같았다.

“……첫 화에, 경연과는 상관없이 무대를 꾸미는 건 어떨까요. 말씀하신 대로 자기 계정에 업로드하는 영상들은 어느 정도 편집이 들어갔을 수도 있고, 라이브 무대에서도 잘할지는 저도 확신이 없습니다. 소극장 라이브 영상들도 보긴 봤지만 다를 수도 있고…….”

그나마 EDM페스에서 봤던 BJ는 무대에서도 충분히 실력을 발휘하는 듯 보였다. 그 이외에는, 라이브를 본 적이 없다.

“그래, 그렇지. 첫 화를 경연이 아닌 공연으로 꾸민다, 괜찮겠네. 그 부분은 정 PD가 도와줘.”

“그럼요.”

“그리고? 그것뿐?”

서인하 부장이 재촉했다. 어서 더 내놓으라는 듯이.

“어…… 첫 화 공연과 함께, 각 BJ들을 소개하는 영상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시청자들에게 일단 알리고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 맞아. 그것도 넣어.”

서인하 부장, 정민우 PD, 두 베테랑과 대화를 나누니, 밤새 굳었던 사고가 다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들은 직접 지시를 내리지는 않았다. 내 의견에 부족한 부분을 꼬집고, 다른 방향으로 떠올리게 했다.

내 의견을 선행하지 않고, 이끌지 않고, 필요한 부분만 보태 주었다.

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초안 위에 빼곡하게 지시를 정리했다.

30분 정도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서인하 부장이 시간을 확인했다.

“오랜만에 재미있게 떠들었더니 시간이 이렇게 됐네. 나 이 다음 회의라서 바로 올라가야 해.”

“바쁜 데 저희가 시간 뺏었네요.”

“이런 시간이면 얼마든지 뺏어도 되지.”

정민우 PD의 말에 대꾸한 서인하 부장이 나를 보았다.

“강 PD는 오늘 이야기한 거 정리해서, 2차 기획안으로 만들어서 정 PD한테 컨펌 받아. 앞으로 나한테는 정리된 것만 보여 주면 돼.”

그가 일어나서 먼저 사무실을 나가고, 우리는 정리한 뒤 밖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뭔가 모르게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걸 보고 정민우 PD가 낄낄 웃었다.

“많이 긴장했어? 까일까 봐?”

“아…… 그것도 있습니다만, 뭔가,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게 머리에 들어간 것 같아서요.”

BJ에 대한 개념을 나보다는 잘 모르는 두 사람에게 설명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전부 내가 가르침 받는 시간이었다.

짧지만 엄청 농도 짙은 그 시간을, 내가 소화해 낼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넌 기대하는 만큼 잘하고 있어. 그러니 걱정 마라.”

정민우 PD가 등을 툭툭 쳐 주고는 먼저 걸어 나갔다.

나도 그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가 있는 방향으로 갔다. 아니, 가려고 했다.

엘리베이터 쪽에서 오는 두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서, 우리는 거기서 걸음을 멈추었다.

둥글둥글한 얼굴, 안경 밑의 날카로운 눈빛.

현준영 PD였다.

“이게 누구신가요. 정 팀장님 아니신가요. 아침에 뵙는 건 오랜만이네요.”

“아, 현 PD……님. 아직 팀장 아니니 그렇게 안 부르셔도 됩니다.”

매우 반가워하는 척하지만, 그게 아님은 여기 있는 누구나 알고 있으리라.

두 사람이 가식적으로 인사하는 동안, 난 현준영 PD 뒤쪽으로 눈인사를 했다.

그 뒤에서 어색하게 미소 짓고 있는 것은 권민헌 PD였다. 예능국 체제로 바뀐 것도 아닌데, 벌써 현준영 PD에게 불려 다니고 있는 모양이었다.

“강 PD, 입봉하게 되었다고요?”

갑자기 내 이름이 나와서, 나는 눈을 돌렸다. 최대한 어색하게 보이지 않게 인사한 뒤 말했다.

“예. 그렇게 됐습니다.”

“이제 3년차 아니냐고, 너무 빠른 것 같다고 주변에서 말이 많아요. 그래도 뭐, 나는 기대하고 있어요. 강 PD, 내 밑에 있으면서 많이 배워 갔잖아요?”

속이 뻔히 보이는 인사치레 다음에는 자기 띄우기인가.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그저 웃으며 열심히 하겠다고 한마디만 했다.

어색한 자리는 그래도 금방 끝났다. 밤을 새운 마당에 아침부터 재수도 없지.

나는 피곤할 것 같아 대충 안부를 건넸고, 나머지 사람들도 서로 안부나 하고 스쳐 지나갔다.

권민헌 PD와 서로 눈빛으로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엘리베이터 앞에 선 정민우 PD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쯧. 권 PD도 불쌍하지, 하필 1팀에 들어가게 되어서는.”

“무슨 일 있습니까?”

“원래라면 권 PD가 프로그램 하나 맡았어야 해. 입봉은 했어도 몇 년 전에 했어야 하는데 방수정 PD 밑에서 더 배우고 싶다고 <당잠사> 팀에 자진해서 들어갔던 거니까. 그런데 이번에 현준영이 팀장 달면서 권 PD를 달라고 그렇게 요구를 했나 봐.”

“왜 권 PD님을……?”

<당잠사> 팀의 마지막이 좋지 못했다. 현준영 PD라면 당시 팀원들은 다시는 보기 싫었을 텐데 왜일까.

“<당잠사> 시즌 5가 제작 불발된 건 알 거고, 현준영은 자기 스타일대로 여행 예능 하나 만들려고 하나 봐. 그러려면 방수정 PD 밑에서 배운 권 PD만 한 서브가 없는 거지.”

“아…….”

그저 탄성만 나왔다. 결국, 자기 프로그램 때문에 권민헌 PD의 앞길을 막았다는 소리다.

인사 발령을 본 권민헌 PD의 어두운 얼굴이 다시 상기되었다. 정말 여러 감정을 담은 얼굴이었던 것이다.

“현준영 PD한테는 최고의 팀원이겠지. 권 PD로서는 딱하지만.”

그렇게 이야기한 타이밍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그가 사무실로 내려가는데 내가 같이 갈 필요는 없었다. 내가 인사를 하려 하자, 그가 문을 잡고 잊고 있었다는 듯 말했다.

“그래. 말이 나와서 말인데, 기획안 수정해 오면서 팀원 인선도 가져와.”

“예? 제 맘대로 말입니까?”

“맘대로 팀 다 꾸리는 건 안 되지. 최소한…… 서브랑 메인 작가, 둘은 희망하는 대로 뽑게 해 줄게. 나머지는 차차 이야기하고.”

서브 PD와 메인 작가.

내 희망대로 데리고 올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히 큰 전력이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 순간, 2명은 이미 정해졌다.

* * *

일단 예정했던 1명을 만나서 의사를 물어보려 했다.

그렇지만 내 상태도 그렇고, 당사자의 여건도 좋지 않아 결국 만난 것은 다음 날 저녁이었다.

퇴근 시간은 분명 지났지만 곧 들어가 봐야 한다고 해서, 카페에 앉아 커피가 나오기도 전에 단도직입적으로 내 입봉 프로그램에 합류해 주지 않을까 의향을 물었다.

“말 안 하면 한 대 때리려고 했어.”

민희는, 내 우려와는 다르게 너무나 담백하게 받아들여 줬다. 내가 더 놀랐다.

“그래도 돼?”

“물어본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 않아?”

“아니…… 너 지금 프로그램 하고 있잖아. 임 작가님 밑에서.”

서브 작가나 다름없다고 알고 있는데, 빠져도 되는 건가?

“어제도 이야기했잖아? 개편 때 팀 구성 바뀔 수 있다고.”

그러긴 했다. 그걸 기억하고 물어본 거니까.

“그때도 작가 필요하지 않냐고 물어보려 했는데, 네가 말릴 새도 없이 먼저 가 버렸지…….”

“아…….”

기억났다. 마지막 헤어질 때의 민희의 묘한 표정이.

당장 내가 바빠서 그냥 갔었는데, 새삼 떠올리니 미안해졌다.

“미안해.”

“됐어. 어차피 이렇게 되었으니까. 그럼 메인 작가는 나 시켜 주는 거지?”

“물론이지. 내가 누구한테 맡기겠어.”

민희에게는 그동안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녀가 메인 작가가 되어 주면, 이 프로그램은 그녀에게도 입봉작이 된다. 그게 보상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민희 말고는 메인 작가로 다른 사람을 떠올려 보지도 않았다.

나한테 결정권이 없었다면 때를 써 보려고도 했으니까.

“기획서 줘 봐.”

난 노트북을 꺼내서 PPT를 꺼내 주었다.

새로운 아이디어까지 정리한 2차 안이었다.

어느 정도 설명을 들은 민희는 금방 기획 의도와 방식을 이해했다.

“이거 캐스팅이 만만치 않겠네. 소속사 있는 BJ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없는 BJ들은 하나부터 다 찾아봐야 하는 거야?”

“편하게 하자면 소속사 있는 BJ들만 집중 공략하는 게 좋겠지만……”

“그래서는 출연진이 골고루 갖춰지지 않겠지. 10명을 생각한다면, BJ인 만큼 구독자 수는 맞춰야 할 거 아냐.”

역시 말이 빠르다.

몇 번 대화가 오가는 사이, 기획안이 좀 더 다듬어졌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포인트.

기획안에 『메인 작가: 이민희』라고 적어서 민희의 이름을 올렸다.

그러자 확률이 변화했다.

[80%]

민희의 합류와 함께 드디어 확률이 80%대에 도달했다.

더더욱 이 기획안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제목은?”

“아직 못 정했어.”

“그럼 정식 합류까지는 나도 제목 생각해 볼게.”

“임 작가님한테는 언제 말할 거야?”

“오늘 가서.”

헉 하는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이렇게 빨리?”

“뭐든 빨리 해야지. 윤주 작가님도 크게 반대하진 않을 거야. 이야기 끝나는 대로 연락 줄게.”

난 민희의 호탕한 진행에 그냥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했다.

그렇게 민희를 보낸 뒤 한 시간 정도 지나고 나서, 민희에게서 짤막한 메시지가 날아왔다.

[이민희작가: 오케이 받음 (오케이)]

[ㄱㅅ! 고생했어. 별말 없었어?]

[이민희작가: 가서 잘하라고만 하시네. 네 이야기도 하셨고.]

[내 이야기?]

[이민희작가: 네가 입봉한다고 여기저기 좀 말이 많잖아. 그래서 고생할 수도 있는데, 초짜 둘이서 잘 만들어 보라고. 이거 칭찬인가 긴가민가해.]

임윤주 작가도 우리 회사에서 잔뼈가 굵으니 아무래도 이야기를 듣진 않았을 리가 없다. 괜히 민희에게 미안해졌다.

[이런 프로그램에 합류하게 해서 괜히 미안하네.]

[이민희작가: 뭐래. 이젠 내 입봉작이기도 해. 그러니까 고생도 같이 하는 거지.]

[그렇게 말해 주면 고맙고.]

[이민희작가: (으쓱) 그나저나. 서브한테는 이야기했어?]

손가락이 멈칫했다.

민희를 돌려보내기 전에 그녀에게 상담을 했다.

서브로 데리고 오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 대상에 대해 민희도 우려를 표시했지만, 그래도 이야기는 해 보라고, 이야기도 안 하면 나중에 자기처럼 섭섭해할 거라고 했다.

그래서 일단 용기는 내보려고 했지만…….

[아직 이야기 못함]

[이민희작가: 할 거면 빨리 해. 필요하면 나도 도울 테니까 부르고.]

[고마워]

[이민희작가: (엄지척)]

민희는 벌써 메인 작가로서의 역할을 해 주고 있었다.

안 그래도 민희가 아니었다면 아직까지도 나 혼자 끙끙대고 있었을 거다.

그녀가 합류했다는 것만으로도 좀 더 자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내 문제뿐.

난 집안을 잠시 좀 서성이다가 컴퓨터로 기획안을 열었다.

제작진 명단에 있는 내 이름 아래에 점찍어 둔 서브 PD 이름을 써 넣었다.

[80%]

확률은 변화하지 않았다.

이게 아직 확정을 짓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이 인선이 제작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뜻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확률 때문에 생각을 바꾸고 싶진 않았다.

나는 내 감정에 솔직하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그 사람하고 같이 하고 싶었다. 내 제안에 상대가 화를 낸다고 하더라도 내 의사를 전하고 싶었다. 민희 말마따나 말 안 하고 나중에 섭섭하단 소리를 듣는 것보다, 말하지 않고서 내가 후회하는 것보다 솔직하게 행동하는 것이 훨씬 나아 보였다.

에라, 모르겠다.

폰을 열어서 메시지를 보냈다. 언제나 쓰던 단체방이 아닌 개인 메시지였다.

[선배, 혹시 내일 시간 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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