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메인 PD의 고민
“정식 발령까지는 아직 시간 있으니까, 공들여서 잘 생각해 봐. 콘셉트에, 팀원 구성도 어느 정도는 나와야 할 테니까.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고.”
“네, 감사합니다.”
정민우의 격려에 대답하는 강대한의 표정은 전과 달리 무거워 보였다.
하기야, 서인하와 정민우, 두 사람의 PD가 그 실력을 인정하고 있다 한들 강대한은 이제 겨우 2년차 PD에 불과했다.
그 연차에 입봉을 준비하려니 머릿속이 복잡할 테고 심적으로도 부담스럽기 짝이 없을 터.
그것을 알기에, 정민우는 그저 묵묵히 힘내길 기원했다.
그러다 서인하를 돌아보며 한마디를 던졌다.
“잘하겠죠.”
정민우가 태평하기까지 한 어조로 말하자, 서인하가 피식 웃었다.
“팀장 될 사람이 너무 태평한 것 같은데?”
“말이라도 그렇게 해 보는 겁니다. 도울 건 도울 거고요. 아시잖습니까, 요새 강 PD 안 좋게 보는 애들 많은 거.”
서인하는 묵묵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대한이 회사 밖으로 유명해졌다.
2년차 PD가 단독 인터뷰 대상이 되고, NBS의 대표 유망주 PD가 되었다.
요물이다, 아이돌 심폐소생 전문가다 하는 별명이 생기는 만큼, 그것을 고깝게 보는 사람도 분명 있는 것이 이 바닥.
서인하나 정민우 정도의 위치가 되면, 싫어도 그런 이야기가 들려오는 법이었다.
“아직 반발이 좀 심한가?”
“그렇지 않아도, 입봉작 맡을 수 있다는 소문이 이미 퍼진 것 같아요. 동기들이나 선배들까지 제치고 입봉하는 거라서 항의도 가끔 듣습니다.”
물론 공식적인 항의가 아닌 불만을 토로하는 정도에 가까운 행위들이었다.
“그래서 조심했던 건데.”
“이사진 컨펌이 난 이상 어차피 소문이 퍼질 건 당연한 일이죠.”
“대한이 녀석이 잘 버텨야 할 텐데.”
서인하의 말에 이번에는 정민우가 피식 웃었다.
“그동안 봐 온 강 PD가 이런 일로 쉽게 좌절하거나 할 것 같진 않습니다. 부장님도 아시잖아요. 그래서 이 팀 저 팀에 넣어서 얼굴 트고 경험 쌓게 하신 거 아닙니까?”
서인하가 괜히 강대한을 여러 팀으로 지원을 돌린 것이 아니다.
방수정이 나가고 현준영이 들어온 이후, 이사진들 입에서 부서 개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서인하 부장은 싹이 보이는 신입들을 제대로 키워 볼 생각을 가졌다.
권민헌이나 박주영도 그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어쨌든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역시나 강대한이었다.
서인하는 강대한의 능력을 <드림 어게인>을 진행하는 동안 확실히 알아챘다.
그렇기에 그 싹을 제대로 꽃 피울 수 있도록 그동안 알게 모르게 여러 일을 벌였다.
다른 팀 기획회의에 참가시키고, 정민우와 합심하여 촬영 지원을 보내고, 입봉에 대한 기회까지.
전부 그 계획 안에서 벌인 일들이었다.
“그 녀석은 결국 다 받아먹는단 말이지. 신기한 녀석이야.”
어느 팀에 들어가든, 강대한은 실적을 남겼다.
기회를 줘도 크지 못하는 인재가 있다. 부장직인 서인하는 방송계에서 그러한 후배들을 아주 많이 봐 왔다.
그러나 강대한은 달랐다. 어느 자리, 어느 위치에 넣어도 그 이상의 일을 해냈다.
좋게 보지 않을 수가 없는 인재였다.
“요물은 요물이지. 우리는 그 요물이 잘 크도록 해 줘야 하는 거고. 그래도 이번 입봉은 좀 걱정이 되긴 해. 내가 제대로 밀어붙이는 건가 하는 걱정.”
“부장님 판단력이야 언제나 믿고 있습니다, 전.”
정민우가 신뢰가 섞인 눈빛을 보내자, 서인하도 결국 부끄럽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보다, 현준영 PD는 좀 어때? 들은 거 있어?”
“여전히 신 이사랑 자주 만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제 얼굴 봤을 땐, 강 PD 입봉 건으로 대놓고 항의하더군요.”
“나한테도 왔었어. 평소엔 보고도 잘 안 오면서 이럴 일 있을 때만 꼭 행동이 빠르지.”
현준영의 얼굴을 떠올린 서인하가 비웃음을 띠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내 선에서도 알아서 대응할 테니 정 PD도 잘해 줘. 아니지, 이젠 정 팀장이라 불러야겠네?”
“아이고, 국장님. 왜 이러십니까.”
맘이 맞는 사람이 있다는 건, 이 팍팍한 방송업계에서 참 좋은 일이다. 그래서 서인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
* * *
언덕 하나를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재차 새로운 언덕이 나타난 기분이었다.
거기다 이번에는 언덕이 몇 개나 있어서, 어느 방향으로 가든 쉽지 않은 언덕이었다.
오늘도 다른 팀의 회의에 참여하고서 퇴근을 했다.
주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은 많았다.
곧장 집으로 돌아가기보다는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서인하 부장과 정민우 PD가 준 파일을 열어 보았다.
『NBS-M 경연 프로그램 기획』
경연 프로그램이라.
NBS-M 오리지날 프로그램 제작 확대가 진행되면서, 어쩌면 경연 형식의 프로그램도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 적은 있었다.
경연 프로그램, 특히 가수들 대상의 경연 프로그램이라면, 단숨에 화제성과 수익성을 끌어내기에 딱 좋으니까.
만약 경연 프로를 제작한다면 1순위로 꼽힐 PD가 바로 현준영일 거라 생각했다.
그가 스카웃된 것이야말로 타사에서 만들어 낸 오디션 프로그램 때문이지 않았던가. 그 프로그램은 현재 시즌5까지 만들어지면서 전통성을 이어 가고 있다.
그런 만큼, 나 말고도 현준영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언제고 맡지 않겠냐고 생각하던 사람은 많았는데…….
서인하 부장은 이 기획을 내게 주었다.
“하긴, 나 말고도 다른 입봉 PD들에게 다 넘겼을 수도 있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번 개편 때 입봉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이 역시 당연한 거지만, 하나같이 나보다 연차도 많은 선배들뿐.
어쨌든 나도 뒤처지거나 뒤떨어지지 않을 생각이었다. 최선을 다할 거다.
내가 가진 능력을 전부 다 끌어내더라도.
주문한 샌드위치 세트를 받아 와서 씹으며 기획안을 정리했다.
클라우드에서 오래된 아이디어 노트를 꺼내서, 거기서 괜찮은 아이디어들을 따로 모았다.
대학교 때부터 모은 데이터들이라서 쓸 만한 것도, 아닌 것도 있었다.
“이건 이미 써먹었고…… 이건 이미 다른 방송사에서 나왔고…….”
일반 외국인들의 여행을 리얼리티로 찍는다거나, 스타들의 냉장고를 빌려서 요리를 한다거나, 서로 다른 장르의 가수들을 듀엣으로 묶어서 무대를 만들다거나.
그런 아이디어 중에, 미리 머릿속에 정리해 둔 방향으로 세 가지 안을 정리했다.
“……이거하고 이거는 하나로 묶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예전이었다면 이런 것도 안 보였겠지. 어쩐지 그동안 기획회의에 끌려다니면서 확률 없이도 선구안이 생긴 것 같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들여서, 어설프게나마 두 가지 기획 초안을 모니터에 띄울 수 있었다.
『가수 단체 버스킹 여행 예능』
『음악 관련 BJ 연합 콘서트 리얼리티』
NBS-M이라는 특성에 맞추어서 생각한 것이, 음악을 기본 콘셉트로 한 예능이다.
하나는 여행, 하나는 리얼리티.
버스킹 여행은, 지난 <드림 어게인>과 몇 가지 리얼리티 기획을 지나면서 한번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드림 어게인>은 엑시트만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었지만, 이건 가수들 여럿을 섭외하는 걸 기본 골자로 삼는다. 각 장르에서 유명한 가수들을 한 팀으로 묶어서, 해외로 버스킹을 떠나는 콘셉트였다.
<드림 어게인>을 하면서 느낀 게 있었다. 국내에서 유명 가수를 대상으로 버스킹을 해 봐야, 결국에는 인지도에 의해 사람이 모이게 된다.
물론 엑시트의 노래가 완성도가 좋았지만, 완벽하게 노래만으로 버스킹을 성공했냐 하면 아니었다.
과연 아무도 몰라 볼 타지에서 버스킹을 한다면, 한글로 된 가사로나마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을까.
여행의 재미와, 전혀 얼굴이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의 버스킹에서, 긴장감과 리얼함이 동시에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BJ 연합 콘서트는 민희와 EDM 페스를 다녀온 이후 떠오른 아이디어다.
시대적 흐름에 따라 세상은 바뀌고 있다.
더 이상 TV는 과거처럼 절대적 권력을 뽐내지 못한다.
인터넷 BJ들이 일반 연예인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가지고, 소위 셀럽이라 불리면서 활동해도 아무런 의문도 생기지 않는 시대.
심지어 정보를 텍스트로 얻던 시대도 끝났고, 요즘 아이들은 미투브에서 정보를 검색한다고 했다.
그렇다 보니 방송계에도 미투브 같은 동영상 플랫폼들과 연계한 프로그램들이 하나씩 등장하는 추세다.
TV 방송만의 오리지널이 좋아서 PD가 된 나지만, 그런 시대적 흐름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런 시기에, EDM페스에서 만난 BJ 가수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주로 커버 곡 콘텐츠를 진행하는 그들의 숫자가 내 막연한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보게 되었고, 그들도 이름난 가수 못지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것저것 조사 겸 즐기던 와중에 300만 구독자수가 넘어가는 대인기 BJ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다 보니 떠오른 생각이, 이들을 한데 모아서 콘서트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거였다.
소극장 콘서트를 하는 BJ도 있다던데, 아예 라인업을 짜서 콘서트를 기획한다면, 그리고 그 과정을 리얼리티로 찍는다면 지금 시대에 잘 먹히지 않을까.
때마침 공연 기획에 대해서 도와줄 사람도 있었다.
바로 김유미 팀장. 초안에 적지는 않아도, 만약 진행된다면 바짓가랑이라도 잡아서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내가 만들어 낸 두 가지 초안을 검토한 뒤,
“……문제는 이거네.”
서인하 부장이 넘겨준 경연 프로그램 초안.
초안의 내용은 정말 별거 없었다.
가창 대결, 오디션 등 경연 콘셉트의 프로그램을 기획 방영한다는 것이 다였다.
경연이라는 형식만 지켜진다면 어떤 기획이라도 괜찮다는 의미였다.
자유성이 높은 만큼, 오히려 떠오르는 것이 잘 없었다.
10분 정도 머리를 굴려봤지만, 역시 감이 잘 잡히진 않았다.
“할 수 없지……. 일단 이걸로 정해 볼까.”
내 손에는 총 세 가지의 초안이 있다.
이 셋 중에 어떤 초안을 선택해야 나의 입봉을 성공으로 이끌어 줄 수 있을까.
시청률도, 회사 내외의 평가도 모두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초안은 어떤 것일까.
[‘성공적인 예능 프로그램 입봉을 위한 초안 선택’의 확률을 볼 수 없습니다.]
[선택지가 많습니다.]
[선택지를 하나로 줄인 뒤, 다시 시도해 주십시오.]
시야에 뜨는 메시지들. 그럴 줄 알았다.
실물이 존재하는 초안이지만, 확률은 어디까지나 한 가지 실물을 대상으로만 가능하다.
그것이 제한적 조건.
하지만 나에게는 이 상황을 무난하게 뛰어넘을 방법이 있었다.
폰을 꺼내 AGD 앱을 열었다. [상점]에 들어가자, 내가 필요로 하는 아이템이 있었다.
[객관식 Lv. 2 : 확률 보기 개수를 일시적으로 늘린다.(제한: 3종)]
전에 사용했던 [변수 보기 Lv. 2]와 함께 추가된 아이템이었다.
기존 [객관식] 아이템은 일시적으로 볼 수 있는 확률 개수를 하나 늘릴 수 있었다.
[객관식 Lv. 2]에서는 3종까지 가능하다.
즉.
세 가지 초안의 확률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포인트도 충분하겠다, 경험을 위해서도 이 타이밍에 내가 아이템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이템 ‘객관식 Lv. 2’를 사용하였습니다.]
[사용 포인트: 2,000P]
[‘성공적인 예능 프로그램 입봉을 위한 초안 선택’의 확률 보기 개수가 일시적으로 3종으로 늘어납니다.]
사용 메시지가 사라지는 동시에, 모니터와 종이 기획안 위로 홀로그램처럼 숫자들이 떠올랐다.
『타 장르 가수들 버스킹 여행 예능』[43%]
『음악 관련 BJ 연합 콘서트 리얼리티』[52%]
『NBS-M 경연 프로그램 기획』[62%]
스르르 떠오른 숫자들을 보고, 나는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초안 상태이니 전체적인 확률이 낮은 것은 감안해야 했다.
하지만, 경연 프로그램의 확률이 개중에서 가장 높다니.
“……이쪽으로 가야 하나.”
아직 명확하게 감도 잡히지 않는 경연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건가?
아니면, 내가 이걸 선택하면 성공할 확률이 가장 높단 뜻일까?
그도 아니면, 회사에서 밀어줄 프로그램이니까 높은 걸 수도 있다. 회사의 푸시가 있다면 그만큼 성공하기는 더 쉬워지니까.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으니까.
내 프로그램인데, 무엇보다도 내가 메인으로 처음 만드는 입봉작인데…… 그게 맞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