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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성공할 확률 100%-47화 (47/200)

47화 휴가 전의 여흥

현준영 PD는 눈매가 조금 날카로운 편이지만, 인상 자체는 둥글둥글했다. 어디까지나 첫인상은 좋은 사람으로 비치는데 오늘은 달랐다.

눈이 마주치면서 서로가 조금 굳었다. 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뭐, 그래.”

감출 생각도 없다는 듯 아래위로 나를 훑어보는 그의 기분은 명확하게 언짢아 보였다.

둥글둥글한 인상도 옅어지고, 날카로워 보이는 눈매만 남았다.

그의 <당잠사> 시즌4는 우여곡절 끝에 론칭하긴 했다.

다만, 제작진도 전부 바뀌고 출연진도 전원 교체되었다 보니 프로그램 콘셉트도 변경되었다.

힐링 여행 예능이 아닌 보다 게임 예능에 가깝게 변질되었는데, 시청자들의 반응은 너무 선을 넘었다는 평이었다.

적절한 선에서 여행 예능 콘셉트를 유지했다면 또 모를까 하는 평도 있었다.

어쨌든 그로 인해 기존 시청자들이 이탈했고, 그 결과 시즌4의 평균 시청률은 3%대.

시즌3에 비교하면 반의반 토막짜리 결과였다.

케이블 채널이니 3%라는 숫자가 당연히 나쁜 것은 아니지만 회사 내외적으로 다음 시즌 제작은 없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런 상황이니 현준영 PD의 상태가 좋을 리 없었다.

그런 중에 <드림 어게인>이 화제를 일으키며 대성공을 했고, 내 이름이 대중에게 알려졌다.

나도 이제 현준영 PD의 캐릭터가 어떤 캐릭터인지는 안다.

그가 이 상황을 즐거워할 리가 없다.

“인기 많다면서요? 인터뷰 요청도 여기저기서 들어온다고?”

“네, 뭐…….”

“이럴 때 그런 유명세도 좀 타 보고 하는 거예요. 옛날처럼 PD가 방송만 만들면 끝인 그런 세상이 아니거든. 그런 것도 이용할 줄 알고 해야지.”

뭐지, 왜 그럴싸한 조언을 해 주는 거지?

“잘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래요. 열심히 하고.”

잔뜩 굳었던 얼굴을 못 본 줄 알았나? 자주 본 빙글거리는 미소를 짓고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는 곧장 아래로 내려갔다.

현준영 PD가 이 층에 왔다는 건……. 그런 예상을 하면서 부장실의 노크를 하고 들어가자, 서인하 부장과 정민우 PD가 앉아 있었다.

“오면서 현 PD랑 안 마주쳤어?”

나에게 앉으라고 손짓하면서 묻는 서인하 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엘리베이터 앞에서.”

“타이밍도 참 알맞게 부장실에 와서는 네 이야기 하더라.”

“제 이야기요?”

“인터뷰 요청 들어온 거 들었다, 짬밥 없는 애 너무 밀어주는 것도 방송사 속 보이는 짓이다, 뭐 그런 이야기 말이야.”

그 인간이……. 왜 안 하는 짓을 하나 했다. 정말 속 보이는 짓을 하고 간 모양이다.

“짬밥 먹고 그러는 거 아닌데 말이야. 하는 짓이 참 신 이사랑 똑같아요. 신 이사가 데려와서 그런가. 그쵸?”

정민우 PD가 이사진을 언급하며 서인하 부장에게 말했다. 서인하 부장이 됐다는 듯이 손짓을 하자, 딱히 동의를 구한 건 아닌 듯 낄낄 웃으며 표정을 바꾸었다.

“그러나 저러나, 강 PD한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아. 우리 시청률 봤지?”

“예, 축하드립니다.”

“축하는 무슨. 내가 공중파에서도 몇 번 못 올려 본 시청률을 직접 올려 주신 분한테 들을 인사는 아니지. 오히려 우리 팀이 다들 고마워하고 있어.”

<드림 어게인>이 최종 7%를 돌파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사이, <뮤직스케치>도 5%가 넘으면서 방송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순간 최고 시청률은 8%를 넘어가기도 했는데, 바로 엑시트가…… 나를 소개할 때였다.

“거기다가 최효명이 강 PD님 감사합니다 해 버린 바람에 말이야. 화제가 안 되겠어. 안 그래?”

정민우 PD는 다시금 낄낄대고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마워, 강 PD. 우리 <뮤직스케치> 팀 전체를 대표해서 인사할게. 인사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제가 한 게 뭐 있나요. 다 엑시트가 잘해 줘서 그렇습니다.”

“그래. 그 자세야. 겸손함도 필요한 법이지. 그래도 말이야, 근거 있는 자신감도 괜찮아. 누구처럼 근거 없이 그러면 그게 문제인 거지.”

누구를 말하는 걸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한 사람뿐이리라.

정민우 PD는 정말 용건은 그것뿐이었는지 악수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강 PD, 이 은혜는 꼭 기억하고 있을 테니 나중에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알았지?”

그가 나간 다음, 서인하 부장이 흐뭇해하는 미소를 띠고 말했다.

“사실 <뮤직스케치>가 좀 간당간당했거든.”

“예? 잘되고 있지 않습니까?”

“시청률이 답습 상태였잖아. 떨어지지도 않고, 내려가지도 않고. 화제성도 처음보다 약하고. 유지는 할 수 있지만 방송 만드는 사람으로선 위기를 느껴야 할 대목이지. 그런데 그걸 강 PD 네가 살려 줬으니, 아마 저 감사 인사는 진심일 거야.”

내가 그렇게 큰일을 했나……. 거기에 대한 실감은 별로 없었다.

몇 가지 고비를 넘기면서 방송을 어떻게든 잘 만들어 냈다는 성취감이야 있지만, 이렇게 영향력이 꼬리에 꼬리를 물 줄은 몰랐다.

내가 속으로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자니, 서인하 부장이 피식 웃었다.

“아까 굳이 현 PD 이야기 꺼낸 건 이 말을 해 주려고 한 거야. PD로서 영향력을 커질수록 그걸 잘 다루는 사람이 있고, 거기에 무너지는 사람이 있어. 현 PD는 안타깝게도 후자에 있는 사람이지. 스스로 깨닫고 나아지면 좋으련만.”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차고, 그가 다시 나를 보았다.

“강 PD 너는 이제 시작하는 입장이니까 그걸 잘 구별하면서, 조절하면서 살아가라고.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예, 물론입니다.”

“그래. 넌 머리도 좋고 감도 좋으니 잘해 나갈 거야.”

나를 인정해 주면서, 동시에 조언도 아끼지 않는 분들.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괜히 방수정 PD도 보고 싶어졌다. 처음 나를 인정해 준 사람이었는데…….

“열심히 하겠습니다.”

난 그저 그렇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런 의미에서.”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서인하 부장이 어조를 바꾸었다.

“너 인터뷰 좀 몇 개 해야겠다.”

“예?”

“나한테 너 인터뷰 좀 하게 해 달라고 요청 온 데가 몇 군데 있거든? 그중에 세 군데 정도 골라 줄 테니까, 인터뷰 좀 해.”

“……예? 방금 잘 구별하고 조절하면서 하라고 말씀을…….”

“그래. 이번에는 내가 구별해 줄게. 언론사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서인하 부장이 근래 참 자주 보는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회사 입장도 좀 생각해 줘야지. 수정이 이후로 이렇게 PD 이름이 뜬 적이 없잖아? 그러니까 몇 군데 인터뷰 좀 해서 회사 이름 좀 널리 퍼지게 하고, 그렇게 해. 휴가 가기 전 여흥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어디가, 어떤 면이 여흥인 거죠?”

“그럼 여흥 없이, 휴가도 없이 그냥 바로 다음 일 하면 되고. 너한테 시킬 건 널렸거든.”

“인터뷰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좋은 자세야.”

나에게 거부권은 없었다.

결국 그날 오후부터 사흘 동안, 하루 1곳씩 인터뷰를 가졌고.

『<독점> 업어 키운 엑시트! 외삼촌으로 소문난 강대한 PD 전격 인터뷰!』

『<금주의 화제 인물> ‘당잠사’부터 ‘드림 어게인’까지, 숨은 주역을 찾다!』

『<인터뷰> 케이블 종편 채널의 맹주, NBS 예능의 새 얼굴 ‘강대한 PD’』

그렇게 강제로 인터넷 없는 원시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

* * *

<드림 어게인>의 제작 기간은 약 두어 달이었다. 일반적인 예능보다 제작 기간이 훨씬 짧았지만, 전국을 돌아다니는 로케이션을 진행했다 보니 영수증이고 뭐고 자잘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그런 작업, 인터뷰, 팀원들의 놀림까지 겹쳐서 휴가일이 될 때까지 아주 신나게 시간이 지나갔다.

휴가 첫날.

효명이를 만났다.

“아이고, 외삼촌! 안녕하세요!”

주로 만났던 일식집에서 얼굴 보자마자 그런 소리를 해 대서, 반가움을 담아 목을 졸랐다.

“크헥! 아니 왜요! 내가 뭘 했다고!”

“아니야. 그냥 죽자. 나랑 죽어!”

한참 시끌시끌하게 소란을 피웠다가, 메뉴를 가지고 온 여직원에게 비웃음을 산 뒤에야 마주 보고 자리를 잡았다.

“대체 그날 왜 그런 거냐…….”

<뮤직스케치> 무대 이후, 엑시트가 쇼케이스에 컴백 활동에 정신없이 보내는 중이라 이제야 물어보았다.

“왜긴 왜겠어요. 형이 그렇게 고생하고 우리를 위해 힘써 주는데, 형은 아무것도 가져가는 게 없어 보여서 그렇죠.”

“나 월급 받아. 보너스도 받았고, 이렇게 휴가도 받았잖아.”

일개 사원이 그 정도면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당연한 거고요. 형은 좀 더 유명해져도 돼요.”

“난 유명해지고 싶진 않은데.”

“PD로서 유명해지면, 그것도 다 일로 연결되는 거 아니에요? 서인하 부장님이나 방수정 PD님도 그랬고, 뭐, 현준영 PD님도 그렇고.”

그건 맞는 말이지만.

난 아직도 그런 유명세를 즐길 만큼 낯짝이 두껍진 않은 모양이다.

서인하 부장님도 잘 조절하면서 해 나가라고 했지만, 아직은 그 조절하는 법도 잘 모르는 기분이랄까.

배울 게 많다. 여러모로.

“멤버들은 다 잘 있지? 창호도?”

내 이야기만 하면 계속 불리할 것 같아 엑시트에 대해 물었다.

“바빠서 잠 잘 못 자는 것 말고는 괜찮아요, 다들. 아, 그래. 이번 밴드 활동 반응이 좋아서, 앞으로도 계속 할 것 같아요.”

“진짜? 회사에서 허락해?”

“이만큼 결과물이 나왔는데 사장님도 무턱대고 반대는 안 하시더라고요. 매니저 형이 싸워 주기도 했고.”

한 번은 댄스, 한 번은 밴드. 그런 식으로 콘셉트를 번갈아 싱글을 내게 될 것 같다고 한다.

거기다 추가로 멤버들의 솔로 활동 계획까지 들어간다고 하니, 향후로도 더 바빠지면 바빠졌지, 한가해질 일은 없을 듯했다.

“너하고 이제 프로그램 하나 하려면 대기 순위 한참 기다려야겠네.”

“걱정 마세요. 외삼촌이 불러 주시면 당연히 가야죠!”

“너랑 나랑 나이 차이 얼마나 난다고 외삼촌이야, 외삼촌.”

아무래도 저놈의 외삼촌이라는 호칭이 팬덤 내에서 굳어지고, 바깥세상에서도 굳어질 모양이었다.

형도 아니고 외삼촌이라니, 정말 앞길이 아찔했다.

그렇게 효명이와 투닥대면서 오랜만에 여유롭고 즐거운 한때를 보내던 중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음? 민희네.”

[이민희작가: 토요일에 뭐해?]

간단한 메시지였다. 일요일까지 휴가라서 토요일에는 집이라도 다녀올까 하던 참이었는데.

[본가 가려고. 왜?]

[이민희작가: 아 그래? 그럼 안 되겠네.]

[무슨 일인데.]

잠깐 텀을 두고 답신이 날아왔다.

[이민희작가: EDM페스, 같이 가자고 한 친구가 못 가게 돼서 표가 남았거든. 같이 갈래?]

“민희 누나예요? 뭐래요? 지금 한가하면 여기 합류하라고 해요. 누나랑 술 마신 지도 오래된 거 같은데.”

효명이가 대화에 관심을 표하면서 물어왔다. 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휴가 때 EDM페스 간다고 했었는데, 친구가 못 가게 되었다고 같이 가자네.”

“EDM페스요? 아, 이번 주에 가평에서 한다던?”

효명이도 알고 있었다. 그런 페스를 모르는 건 나뿐인가. 사실 엄청 유명한 거였나?

“나도 가고 싶었는데 스케줄이 겹쳐서 결국 못 갈 것 같거든요. 민희 누나는 그런 데 좋아하나 보네요.”

“그렇더라고. 난 근데 사실 잘 모르니까.”

“그러신 분이 케이 록페스는 어떻게 아셨대요.”

“그것도 민희가 알려 줬지.”

“아하…… 그럼 고마워서라도 같이 가야지 않을까요?”

그런가.

그러고 보니 케이 록페스 무대의 힌트를 준 거에 대해서 보상해 주기로 했었지.

이게 보상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거절할 때는 아닌 것 같았다.

[몇 시까지 가면 돼?]

[이민희작가: 본가엔? 안 가도 돼?]

[먼 것도 아니고, 내일 잠깐 다녀오면 돼.]

그렇게 민희와 약속을 정한 뒤, 폰을 다시 내려놓았다.

효명이를 다시 보자 표정이 묘하게 변해 있었다.

“무슨 표정이야, 그건.”

“다 큰 어른 남녀가 단둘이 가평까지 페스를 참가하러 간다라……. 이거 데이트 아니에요?”

“뭐?”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할 말을 잠시 잃었다.

아이돌로서 살아오느라 연애도 못해 봤나. 요새 아이돌들은 할 거 다 한다던데.

나는 효명이를 딱하다는 눈으로 봐 주었다.

“연애가 고픈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런 거 아니다. 동료끼리 그러는 것도 아니고.”

“사내연애 몰라요? 내가 모르긴 몰라도 PD랑 작가랑 결혼하는 케이스 꽤 많다고 아는데요?”

“아니라고.”

난 으름장 놓듯 말했다. 효명이가 과장되게 어깨를 움츠리고는 낄낄댔다.

“알았어요, 알았어. 농담도 못 하나요.”

“말이 되는 농담을 해야지. 너나 빨리 연애해.”

“아이돌은 팬이랑 연애하는 거예요. 외삼촌이 조카 잘되라고 하진 못할망정 연애를 종용하다니.”

“외삼촌이라고 하지 말라고.”

효명이와 잔을 마주치면서 휴가 첫날이 지나갔다.

* * *

둘째 날에는 오랜만에 본가를 다녀왔다.

입사 이후 나와 살다 보니 같은 서울인데도 참 얼굴 보기 쉽지 않은 부모님을 뵙고, 식사를 하고, 기사 난 것 봤다고 어화둥둥 좀 당하고, 그러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제의 토요일.

[박주영선배: 민희랑 이디엠페스 간다고?]

아침부터 인사도 없이 대뜸 날아온 메시지에 한숨부터 쉬었다.

[효명입니까.]

[박주영선배: 내가 다른 팀 간 사이에 어느새 그런 사이가 된 거야?]

[그런 사이라뇨.]

[박주영선배: 둘이 사귀면 인마 선배한테 따박따박 보고를 했어야지.]

[그런 거 아닙니다.]

[박주영선배: 아니라고? ㅋㅋㅋㅋㅋ 근데 휴가를 왜 같이 보내, 회사에서 얼굴 보는 걸로도 모자라서.]

[그거야 제가 빚도 좀 있고]까지 쳤는데, 진동과 함께 패널에 ‘이민희작가’라는 이름이 떴다.

“……효명이도 그렇고, 박 선배도 그렇고, 이상한 소리 해대서는.”

괜히 전화 받는데 긴장되잖아.

큼큼, 헛기침을 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준비 다 했어?”

“아까. 어디로 가?”

“너 사는 건물 밑에 와 있으니까 내려와.”

어라, 우리 집 밑?

박 선배에게 보낼 답장은 무시하기로 하고, 가방을 챙겨 들고 건물 밑으로 내려갔다.

건물을 나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민희가 보이진 않았다. 뭐지? 다시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빠앙-!

차 경적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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