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스타PD
<뮤직스케치>는 촬영 시작이 11시부터다. 심야 라이브 무대라는 콘셉트인데, 그런데도 관객들이 충분히 들어차는 게 참으로 신기했다.
거기다 오늘은 평소의 두 배 가까운 관객들.
엑시트는 그 관객들을 완전하게 지배하며 뜨거운 무대를 보여 주었다.
‘브레이브’를 시작으로, 엑시트의 데뷔곡이었던 ‘패션’의 밴드 버전.
그것도 모자라 버스킹에서 만들어진 곡까지 메들리로 연주했다.
급기야 케이 록페스 무대에서 전설을 찍은 창호의 자작곡 ‘메이크 더 월드’가 나오자,
“꺄아아아악!”
“우와아아아아아!”
“효명아! 창호야!”
“혀어어어엉!”
이제 관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메이크 더 월드’는 하드코어에 가까울 정도의 정통 록이었다. 모두가 일어나서 라이브클럽처럼 무대를 즐겼다.
서인하 부장은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여서 어정쩡하게 앉아 박수만 치고 있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어설피 일어났다.
우리 중에서 가장 열성적인 건 민희였다. 소위 말하는 스웩 가득한 몸짓을 하고 있었는데, 온몸으로 음악을 느낀다는 게 저런 건가 싶었다.
“민희가 저런 캐릭터였냐?”
“저도 지금 알았습니다…….”
말로만 듣던 인싸가 내 친구라니. 뭐지, 이 묘한 거리감은.
한차례 폭풍이 그렇게 지나간 뒤,
“휴우. 저희 물 좀 마실게요. 앉으세요, 앉아.”
효명이가 웃음을 일으키며 호흡을 정돈했다.
“방금 들으신 곡은, 케이 록페스 때 저희가 인형탈을 쓰고 불렀던 ‘메이크 더 월드’였습니다. 이 곡은 창호가 만들었어요. 창호야, 곡에 대해 한마디?”
지목을 받은 창호가 기타 조율을 하다가 마이크를 잡았다.
“음, ‘메이크 더 월드’는…… 한동안 좀 답답했던 시기가 있어서, 그 답답함을 타파하려고 만든 곡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식으로 나오게 될 줄은 몰랐지만요.”
“오늘 <드림 어게인> 5화를 보셨을지 모르겠는데…… 방송에는 아마 잘렸을 수도 있어요. 저희가 연습을 하던 중에 대판 싸운 적이 있거든요.”
효명이가 돌연 그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이런 멘트를 할 거라고 이미 멤버들끼리 이야기가 되어 있었는지, 아무도 발끈하거나 놀라지 않았다. 잠자코 다음 말을 기다릴 뿐.
“케이 록페스 무대를 위한 연습 중에 서로 의견이 안 맞아서…….”
“그룹 깨질 뻔했어요.”
“야, 그 정돈 아니지.”
중간에 아론이 끼어들어서 효명이가 핀잔을 주었다.
“뭐가 아니야, 아니긴. 그때 우리들 아니었으면 진짜 깨졌을 거 아니야. 보컬 두 분 그때 대판 싸웠다니까요. 완전 초딩이야.”
“아이고, 예. 감사합니다. 참으로.”
아론이 초딩이라면서 끔찍하다는 제스처를 표하자 관객석에서 웃음이 튀었다. 이후 효명이가 깊숙하게 배꼽 인사를 하자 웃음이 더 커진다. 이런 장면 하나하나가 엑시트의 케미를 보여 주는 거겠지.
카메라로 못 찍은 게 아쉬울 정도였다.
“그 장면 최소한으로 줄이지 않았나? 이럴 거면 그냥 좀 더 분량 늘릴걸 그랬어.”
“어차피 카메라 끈 상태여서 쓸 만한 분량도 없었습니다.”
싸우기 시작한 초반과, 다 해결된 다음의 영상만 녹화되었으니 어차피 제대로 건질 건 없었다. 그래서 열의와 열정을 보여 주는 한 과정으로 활용했다.
“그런데 사실 저희가 화해를 하고, 또 ‘메이크 더 월드’를 무대에 올릴 수 있게 도와주신 분이 또 있습니다.”
그때, 효명이가 갑자기 말투를 진지하게 바꿨다.
뭐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무대로 고개를 돌렸을 때, 효명이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착각인가?
“그때만이 아니죠. <당잠사> 때도 저는 이분이 아니면 합류하지 못했을 거고, 저희가 다시금 밴드로서의 꿈을 꿀 수 있게 해 준 것도 이분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엑시트로도 정말 은인 같은 분이죠.”
“응……?”
아니, 뭐야. 잠깐. 이 분위기 뭐냐, 효명아.
효명이가 손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강대한 PD님. 잠깐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그 말에 조명이 관계자석, 정확히는 내 위를 기다렸다는 듯이 비추었다.
나는 헉 한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고개를 돌렸다. 서인하 부장과 눈이 마주쳤다.
“알고 계셨습니까?”
“뭔가를 할 거라고만 들었지.”
“근데 허락을 하셨다고요?”
“내 방송도 아닌데 허락이고 자시고 할 거 있나? 거기다 엑시트가 원한다면 당연히 하게 해 줘야지!”
아주 즐거워 죽겠다는 얼굴의 서인하 부장. 이래서 회사에서 부장님들하고 놀지 말라나 보다. 그는 그런 내 얼굴이 더 웃기다는 듯 결국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 PD님. 제 손 뻘쭘한데, 이제 그만 일어서시죠?”
때를 맞춰 효명이가 무대 위에서 보챘다.
이 생각지도 못한 이중고……. 나는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명과 함께 ENG 카메라를 어깨에 멘 카메라 감독이 재빠르게 달려 들어왔다.
스태프 하나가 신속하게 마이크까지 건네주었다.
이 사람들, 죄다 짰네, 짰어.
“일단 자기소개 좀 해 주실까요?”
“그…… NBS 제작부 예능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강대한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박수!”
효명이가 유도하자 사람들이 거기에 호응해 크게 박수를 보내 주었다. 더 부끄러웠다.
“사실 강대한 PD님은 <드림 어게인> 버스킹 기획을 처음으로 제안하신 분이기도 하죠.”
쟤가 도대체 뭘 잘못 먹었나. 왜 저러지.
카메라가 부담스럽게 나를 줌인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 제발 좀…….
“<당잠사> 때도 많은 도움을 받았고, <드림 어게인>도 강 PD님 아니었으면 애초에 없었을 기획이니 정말로 저희 입장에선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감사할 따름이죠. 그리고 거기에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케이 록페스 무대에 서보는 건 어떻냐고 제안해 주고, 또 그 무대까지 성사시킨 것도 강 PD님입니다. 아, 딱딱하게 하려니 어렵네. 그냥 평소처럼 형이라고 할게요.”
효명이는 대놓고 나를 보기 시작했다.
“아무튼, 형. 형이 아니었다면 저희는 밴드도, 케이 록페스도, 오늘 이 무대도 못 했을 거예요. 그래서 한번 제대로 인사를 하고 싶었어요.”
아니야, 하지 마. 인사 필요 없으니까 돌아가.
“정말 고마워요, 형.”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효명이를 비롯해 아론, 허민, 기한, 심지어 창호까지 내게 허리를 숙여 보이며 인사를 했다.
평소 같음 감동이라도 느끼겠는데…… 문제는 감동이고 뭐고, 이 모습이 현재 TV로 방송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인하 부장을 보자, 흐뭇한 미소로 나를 보고 있었다. 민희는 아주 눈빛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최대한 몸을 숙이고 한마디를 하는데.
“대답, 대답하라고!”
……역시 이 와중에도 방송을 생각하다니. 프로여서라기보단, 자기 일이 아니라고 신난 것 같다.
“어…… 그, 그래……. 너희들이 잘해 줬으면 됐지 뭐…….”
“풉.”
결국 민희가 웃음을 터뜨리고, 효명이도 무대 위에서 빵 터져서 폭소했다.
관객석으로도 웃음이 번져 나간 뒤에야 나는 얼굴을 붉히고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한참을 웃은 효명이가 눈물까지 닦으면서 다시 마이크 앞에 섰다.
“저 형이 좀, 이런 경험이 없어서 숫기가 없어요. 앞으로는 더 잘하겠죠.”
PD가 카메라 앞에서 뭘 더 잘해, 잘하긴.
얼굴까지 간질거리는 기분에 그 뒤 어떻게 공연을 봤는지 모르겠다.
12시가 지난 지 꽤 됐지만, 엑시트의 공연은 이어졌다. 방송용 촬영은 끝났고, 앵콜 무대였다.
마지막 곡은 <당잠사> 때 발표한 ‘인연’의 어레인지 버전.
급기야 2절에 가서는 관객이고 가수고 할 것 없이 떼창을 부르고 즐기다 끝났다.
무대가 마무리된 뒤, 다섯 명은 악기를 내려놓고 앞으로 나와 손을 잡고 커튼콜처럼 인사를 했다.
“지금까지 엑시트였습니다!”
화제의 무대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 * *
<뮤직스케치> 방송이 끝난 직후부터 다시 인터넷이 들썩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화제의 중심에 엑시트만 있진 않았다.
[너는 인마, 진짜 미리 말 좀 하고 하라고!]
[엑시트최효명: 에이 그래서 미리 말했잖아요. 서프라이즈가 있을 거라고. (윙크)]
[관객들한테 서프라이즈인 줄 알았지!]
[엑시트최효명: 다들 즐거웠으면 된 거 아닐까요?]
“난 아니라고!”
결국 소리를 치고 말았다. 그래 봤자 원룸이라서 들어줄 사람은 없었지만.
분을 삭인 다음, 다시 메시지를 쳤다.
[다음에 보자 넌. 목 닦고 기다리고 있어.]
[엑시트최효명: 아 저 스케줄 있어서 이만! (도망)]
친해질수록 능글맞아지는 게 당할 수가 없다.
평소 같으면 웃고 넘겼겠지만, 지금 상황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잉―
이거 봐. 또 모르는 번호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모르는 번호들로부터의 전화.
무슨 용건인지 짐작이 가는 상태로, 침을 삼킨 다음 받았다.
“여보세요?”
“아, 강대한 PD님이십니까? 저는 서아일보의…….”
“죄, 죄송합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저쪽에서 뭐라고 하기도 전에 내 말만 하고 끊었다. 무례하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내 멘털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어제 <뮤직스케치> 라이브 무대 방송이 나간 후.
어떻게 내 번호를 알았는지 각종 매체에서 연락이 왔다. 퇴근이 늦은 만큼 늦은 오전까지 자다가 깨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받았다.
그런데 점심이 지나고 저녁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여전히 연락이 왔다.
인터넷에서 여러 이야기가 쏟아지는 것이 비례해 전화도 점점 늘어났다.
“이게 다…… 효명이 놈 때문이란 말이지…….”
확실히 목을 쳐야겠다.
지잉―
다시 핸드폰이 진동해서 헉 하고 화면을 확인했다.
민희와 박주영 선배와 쓰는 단톡방이었다.
[이민희작가: http://bitly.kr/wNAxzY6]
[이민희작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박주영선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사람들이 또 놀릴 거리를 찾으셨나.
호기심이 죄라고, 링크를 눌렀다.
『화제의 인물, NBS 예능PD 강대한! 그의 자취를 좇다!』
……아.
유명한 언론은 아닌 웹진이었는데, 별 이상한 특집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거기에는 내가 그동안 참여했던, 스태프롤에 말단이라도 이름을 올린 방송들을 어떻게 찾았는지 모아서 올려 놓고, 엑시트와의 관계도 서술해 놓았다.
반은 자료, 반은 소설인 기사였다.
『……앞으로도 이 뜨거운 아이돌 그룹과, 예능 PD와의 연계가 참으로 기대가 된다.
―오오 그저 빛이신 대한님 오오오
―이 정도면 강대한이 엑시트 업어키운 거 아니냐? ㅂㅂㅂㄱ
―엌ㅋㅋㅋ업어키운엑시트ㅋㅋㅋㅋ
―플래티넘 엑시트를 낳으시고, 강PD 엑시트를 키우셨네
―플래티넘이 부모니까 외삼촌 정돈 되겠다ㅋㅋㅋㅋㅋ』
그렇게 기사는 마무리되고 있었다.
[일일이 퍼 와서 보여 주지 않아도 되는데.]
[이민희작가: 외삼촌 걱정 마! 이게 끝이 아니지!]
[이민희작가: https://hoy.kr/K2f8U]
이건 또 뭐야. 링크를 터치하자, 민희가 이전에 한번 보여 줬던 아이돌 커뮤니티로 연결되었다.
『이 주식에 전 재산 투자한다! 최효명×강대한
님들 어제 뮤직스케치 봄? 안 본 덬들 없지?
봤으면 인정할 거야. 최효명과 강대한의 케미를.
오늘부터 이 주식 판다.
내 통장을 가져가!
―이건 ㅎㅇㅈ
―ㅇㄱㅁㄸ
―떡상 확실함 나도 탑승한다
―나 원래 효명×창호였는데 어제부로 바뀜.... 무서운 아이....최효명...강대한.....
―최강 커플 조합명도 어찌 이리 은혜롭냐』
욕을 안 할 수가 없었지만…… 눌러참았다.
[야! 이런 거 퍼 오지 말라고!]
[이민희작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박주영선배: 왜 좋은데 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꼭 초대해라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 뷔페가 좋지 국수는 싫다]
[..........]
차마 쓸 말이 없어서 스마트폰 액정을 깨 버릴 듯이 마침표만 연타했다. 기어코 분을 못 참아 스마트폰을 집어던지고 침대 위를 뒹굴었다.
“최효명!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 * *
월요일.
출근하는 길에 모두가 나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습게도, 그건 기분만이 아니었다.
“아이고! 우리 NBS의 스타PD 아니셔? 출근하시나?”
“강 PD님! 안녕하세요!”
그동안 본체만체 묵례만 했던 사람들이 전부 나를 아는 체했다.
개중에는 아침부터 대기하고 있던 기자도 있었는데,
“저희 단독 인터뷰 좀 해 주세요. 네?”
“전 결정권이 없습니다…….”
“그럼 서인하 부장님께 여쭈면 되죠?”
“아니, 아니. 진짜 물어보시면 안 되는데…….”
그런 실랑이를 벌이면서 사무실에 도착하자,
“우리 스타PD 강대한 PD님 오셨습니다!”
“NBS의 샛별! NBS의 라이징 스타!”
팀원들이 합세하여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는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그 자리에 넙죽 엎드렸다.
“제발 살려 주세요! 그만! 그만!”
팀원들이 나의 간절함에 폭소를 터뜨리고는 일으켜 세웠다.
“미안해, 미안. 우리들 PD가 이렇게 화제가 되는 경우가 별로 없잖아. 그래서 신나서 그래. 너 오면 부장실로 오라고 전하라더라.”
선배 PD가 수고하라는 듯 툭툭 어깨를 두들겨 주는 게 참으로 감사했다. 팀 막내가 혼자서 이렇게 화제를 독차지했는데 아무도 질투하지 않고 응원해 주다니.
참 좋은 팀을 만났다.
“넌 나중에 보자.”
그 사이에서 히죽대고 있는 민희에게는 한마디 던져 준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부장실로 올라갔다.
약간 들뜨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복잡한 기분이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싹 가라앉았다.
“…….”
열리는 문을 사이에 두고, 나와 눈이 마주친 사람은 현준영 PD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