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41화 (41/200)

41화 불화

케이 록페스 무대를 향한 진행은 매우 순조로웠다. 성사시키는 것이 까다로웠지, 성사된 다음에는 그저 연습과 연습뿐이었다.

가장 걸렸던 것이 임윤주 작가의 설득이었는데, 일단 순조롭게 받아들여 준 덕에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런데 확률이 왜 이렇게 나와?

“강 PD.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왜 안 좋아?”

서인하 부장이 나에게 물었다. 임윤주 작가도 나를 보았다.

“뭐야, 강 PD는 자신 없어요?”

“그럴 리가. 케이 록페스 무대에 세우자고 한 게 강 PD이고, 엑시트나 그쪽 섭외팀장 설득한 것도 강 PD인데.”

김유미 팀장을 설득한 것은 내 노력이라기보단 엑시트의 실력이었지만, 서인하 부장은 그것도 내 공로로 치하해 줬다.

그러나 당장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아닙니다. 저, 기획안에 빠진 내용이 있다는 것을 방금 깨달아서요. 보완 좀 하고 오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꾸벅 인사를 하고 즉각 부장실을 나섰다.

향한 곳은 휴게실.

몇 명의 직원들이 있어서 눈으로만 인사하고, 구석에 자리해서 폰부터 꺼냈다.

[현재 ‘엑시트의 고양 K-Rock 페스티벌 무대 성공’의 확률 보기를 사용 중입니다.]

[62%]

잘못 본 게 아니었다. 확률은 여전히 ‘62%’였다.

뭐가 문제인 거지?

[아이템 ‘너 자신을 알라’를 사용하였습니다.]

[사용 포인트: 1,000P]

[현재 사용 중인 ‘엑시트의 고양 K-Rock 페스티벌 무대 성공’의 부족 확률의 원인 변수를 표시합니다.]

[확률 구성 중 가장 비중이 큰 중요 변수만을 표시합니다.]

부족한 확률이 무엇 때문인지, 그중 가장 비중이 큰 변수를 표시해 주는 아이템.

[중요 변수: 불화]

모아 뒀던 [2,000P]의 절반이 단숨에 날아갔지만, 그것을 아까워할 때가 아니었다.

불화라니.

멤버들 사이에 불화가 생긴다는 건가?

당장 나흘 전인데?

오늘은 임윤주 작가의 허락이 떨어지는 대로 엑시트를 만나러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AGD의 예측대로라면…… 애초에 무대 자체가 위험할 가능성까지 있었다.

일단은 연락을 취해 봐야겠다.

[효명아 연습 잘되냐?]

금방 답이 돌아오진 않았다.

[엑시트최효명: 이제 한 곡 맞춰 봤어요 (땀)]

[엑시트최효명: 너무 그렇게 압박 안 주셔도 저희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요! (뒹굴)]

[엑시트최효명: (사진)]

지극히 효명이다운 답장이 이모티콘과 함께 돌아온 게 3분 뒤였다. 지옥 같은 3분이었다.

그러면서 증거라는 듯이 사진을 하나 보내 줬다.

각자의 자리에서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는 다섯 멤버가 보였다.

아…… 아니다. 그중 1명만은 시선을 카메라로 두고 있지 않았다.

그 멤버는.

“창호…….”

원체 시크한 멤버라서 평소라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불화라는 변수를 봤기 때문인지 그 모습에서 불안함이 느껴졌다.

[멤버들은 다 괜찮아? 안 힘들어해?]

[엑시트최효명: 힘들어는 하죠. 그래도 뭐 다들 고생을 즐기자고 하고 있어요. 언제 이런 기회가 또 있겠어요]

[기한이나 창호는?]

일부러 가장 말수가 적은 기한도 언급했다. 그동안 몇 번 봤지만 감정 파악이 잘 안 되는 멤버이기도 했으니까.

[엑시트최효명: 기한이는 원래 말없이 열심히 하는 애예요. 정말 힘들면 말하고.]

[엑시트최효명: 창호야 뭐…… 아, 그 잠깐만요.]

효명이의 답은 그렇게 뚝 끊겼다.

5분을 기다려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불길함이 적중한 듯한 느낌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이대로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나는 서둘러 부장실로 달려갔고, 급한 노크 뒤에 허락도 없이 문을 열었다.

아직 서인하 부장은 임윤주 작가와 이야기 중이었는데, 내 다급한 모습을 보자 대화를 끊고 나를 쳐다보았다.

“부장님, 엑시트 연습실에 한번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응? 그래. 안 그래도 임 작가도 간다고 했으니까 같이…….”

“아뇨, 저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내 태도가 워낙 급해 보여서인지, 그가 눈치 빠르게 임윤주 작가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나를 데리고 부장실을 나왔다.

“뭔데? 왜?”

“어쩌면 멤버들끼리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뭐라고? 지금 타이밍에?”

서인하 부장이 헉 하는 얼굴을 했다가, 임윤주 작가가 아직 있는 부장실을 힐끗 하고 다시 물었다.

“걔들 사이좋았잖아?”

“저도 그래서 놀랍긴 한데…… 일단은 한번 가 보겠습니다.”

“그래. 빨리 가. 가서 수습해.”

그래, 어차피 수습해야 할 문제인 거다.

“네.”

짧게, 그리고 다짐하듯이 대답하고 나는 급히 방송국을 뛰쳐나왔다.

* * *

“또 톡질이냐?”

강대한에게 보낼 답장을 쓰고 있던 효명이 고개를 들었다. 창호였다. 대충 메시지를 마무리해 놓고 다시 창호를 보았다.

“톡질은 무슨. 누가 들으면 내가 연애라도 하는 줄 알겠네. 대한이 형이야. 우리 연습 잘하고 있냐고 확인해 왔어.”

“거, 더럽게 쪼네.”

“말 그렇게 하지 마. 우리한테 중요한 무대잖아. 기회도 줬고, 신경도 쓰면 좋은 거 아냐?”

대한에 대해서 창호가 거친 말을 하자, 효명의 말투도 다소 날카로워졌다.

“기회를 준 거야 나도 감사하지. 그걸 제대로 받아먹느냐가 문제겠지만.”

창호는 시크하게 이죽댔다. 평소와도 비슷한 태도였지만, 오래 알아 온 효명은 그의 말투에서 감정을 읽어 냈다.

“창호 너. 또 뭐가 불만이야?”

강대한에게나 제작진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효명은 <드림 어게인>이 시작된 후로 창호의 태도가 묘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원래 냉랭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그것과는 좀 달랐다. 무언가 불만스러움을 숨기고 있는 태도였다.

“불만이 있으면 그렇게 이죽대지만 말고, 똑바로 말해. 그래야 풀든 말든 하지.”

효명이 의자에서 일어나 창호와 같이 섰다.

두 사람이 선 채 그렇게 노려보고 있자, 악보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던 다른 멤버들도 묘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뭐야, 왜 그래?”

“둘이 싸워?”

채를, 악기를 내려놓고 일어선 세 멤버를 향해 돌아선 것은 창호였다.

“너희는 이런 식으로 하는 게 괜찮냐?”

“뭐?”

창호는 자기 몫이었던 악보를 가져와, 던지듯 바닥에 뿌렸다.

“곡은 곡대로, 연습은 연습대로 저 새끼는 자기 맘대로만 몰고 가잖아. 안 그래?”

“야, 정창호. 이게 무슨 짓이야.”

효명의 언성이 올라갔다. 그러나 창호는 멈추지 않았다.

“그래 놓고 PD한테 알랑방귀 뀌면서 시시덕대기나 하고. 니가 그러다가 연습 멈춘 게 벌써 몇 번인지 알아?”

“뭐? 연습 중간 상황 보고하는 게 뭐가 잘못됐어?”

“그것도 한두 번이지! 보고보다 합주 한 번 더 맞추는 게 우선 아냐?”

그 부분은 효명도 동의했다. 그렇지만 그는 촬영을 위해서, 정말 최소한의 보고만 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방금도 카메라 배터리를 체크하러 일어나지 않았다면, 메시지가 온 줄도 몰랐을 것이다.

“아, 카메라.”

그 순간, 효명은 연습실 곳곳에 둔 개인 캠들의 존재를 깨달았다.

방송에 쓰기 위해, 공식 연습 촬영이 아닌 이런 자체 연습 시에는 제작진이 준 개인 캠들을 곳곳에 배치해 찍고 있었다.

“야, 일단 카메라 끄고 이야기해.”

“하? 이럴 때도 또 방송만 신경 쓰지?”

“방송 신경 쓰는 게 뭐가 나빠? 우리 이런 모습, 제작진이 알아봤자 좋을 거 없어!”

효명이 먼저 뒤쪽에 있던 캠의 전원을 꺼 버렸다. 눈치를 보던 아론과 허민이 후다닥 달려가 다른 캠들의 전원도 껐다.

“그렇게 방송 신경 쓸 시간에 연습이나 곡에 더 신경 쓰란 말이야.”

창호는 들고 있던 수건을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내팽개쳤다.

“야…… 무대 이틀밖에 안 남았어. 좀 참아, 창호야.”

“참으라고? 그동안 많이 참지 않았냐, 나?”

기한의 말에도 창호의 날카로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참았다고? 그래, 정창호. 네가 뭘 그렇게 참았는지 이야기해 봐.”

“야, 효명아. 너까지 왜 그래.”

“아니, 차라리 지금인 게 낫지. 감정 쌓인 채로 무대 설 순 없잖아.”

효명은 그렇게 말하더니 창호를 직시했다.

“정창호, 이야기해 봐. 네가 뭘 그렇게 참았는지, 뭐가 그렇게 불만이었는지. 무대 나흘 전에 이렇게 터뜨렸을 정도니까 보통 일은 아니겠지?”

엑시트도 벌써 6년차. 연습 기간까지 포함하면 같이 한 세월이 근 7. 8년이었다.

창호와는 인디 밴드 시절부터 알았으니 연이 더 길었는데, 그사이 이렇게 화를 터뜨리는 일은 몇 번 없었다.

효명은 리더로서, 그리고 오래된 친구로서 창호의 마음이 알고 싶었다.

“…….”

창호는 말없이 효명을 노려보았다. 효명도 물러서지 않고 그런 그를 마주 보았다.

다른 멤버 셋이 송일현 매니저라도 호출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수군댈 때,

“왜 그래, 너희들. 무슨 일이야?”

연습실 문을 열고, 강대한이 나타났다.

* * *

진짜였다.

택시를 타고 연습실에 올 때까지, AGD 앱이 실수했기를 빌었다.

하지만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는 AGD는 틀리지 않았다.

지하로 내려왔을 때 이미 안쪽에서 언성 높은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들었고, 문을 열자 대치하고 있는 효명이와 창호가 보였다.

“어, 형?”

“PD 형?”

효명이는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창호는 눈이 마주치자, 유일하게 혀를 쯧 차면서 몸을 돌렸다.

“무슨 일이세요?”

효명이가 놀라서 물었다.

“네 메시지가 갑자기 끊어졌잖아. 촉이 영 이상해서 와 봤어.”

버릇처럼 연습실의 캠들을 훑었다. 전부 꺼져 있었다. 그동안 연습 영상들도 성실하게 촬영해 줬던 애들인데, 이렇게 캠까지 꺼 둔 걸 보면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무슨 일이야, 대체. 왜 싸우는 건데?”

“그게…….”

효명이는 한숨을 푹 쉬더니 창호를 힐끔 보고는 이야기했다.

내가 오기 전까지 있었던 다툼에 대해서.

그것을 짤막하게 설명하는 효명이의 표정이나 다른 멤버들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난 등을 돌리고 있는 창호에게 말했다.

“창호야. 알겠지만, 이건 방송이야. 효명이가 틈틈이 진척도를 알려 줘서 우린 다들 고마워하고 있어.”

제작진 입장에서는 효명이가 방송을 그만큼 신경 써 주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당잠사> 때도 그렇고, 그런 방송 감각은 제작진 내에서도 매우 평가가 좋았으니까.

“…….”

“물론 네가 보기에는 그 연락이 과해 보였을 수도 있지. 연습 흐름을 깬 거라면 효명이가 사과를 해야 할 일이고. 하지만…….”

사실 효명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난 일부러 창호와 시선을 마주하기 위해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네가 화난 게 정말 그것 때문이냐?”

나는 창호를 잘 모른다. 다만, 효명이의 이야기에서 뭔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졌을 뿐이다.

왠지 창호의 불만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효명이가 연습 흐름을 끊고 방송만 신경 쓰는 것 같아서? 제대로 무대를 준비하지 않는 것 같아서?”

아니지?

눈으로 그렇게 묻자, 창호가 시선을 피했다.

효명이도 무슨 말인지 나에게 묻는 시선을 보냈다. 난 바닥을 턱짓했다.

창호가 흩뿌렸다는 악보가 널려 있었다.

효명이가 케이 록페스를 위해 만든 무대 곡들.

내 턱짓으로 시선을 내렸던 효명이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혹시 이 곡들이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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