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39화 (39/200)

39화 오디션

무심결에 서인하 부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프로젝트는 그날 7명만 알자고 합의한 상황. 아무리 섭외 담당이라고 해도 엑시트의 정체를 알려주는 것도 다시 생각해 보자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왜 알고 있지? 서인하 부장이 벌써 밝힌 건가?

“내 추측이에요.”

그러나 김유미 팀장은 가볍게 부정했다.

“저도 정보통은 좀 가지고 있어서. 요새 버스킹 프로그램 찍고 있잖아요? 엑시트가.”

부산에서의 성공적인 버스킹 이후로도 몇몇 곳에 촬영차 방문했다. 벌써 버스킹을 한 것도 네 번. 엑시트의 행보는 SNS를 통해서, 그걸 베이스로 한 인터넷 기사들을 통해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졌다.

그 프로그램이 어디 것인지는 정식 보도자료가 나간 적도 없어서 의견이 분분할 뿐.

그러다 그것만으로도 김유미는 확신을 하고 있었다.

“아이돌 밴드잖아요. 어쨌든 실력에 대해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하다못해 무대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인디 밴드의 출연권을 아이돌이 빼앗아 간다는 소리를 들을 거예요. 그런 위험 부담을 마냥 짊어질 순 없어요. 우리 회사에서도 이 페스티벌은 꽤 중요하거든요.”

김유미 팀장이 소속된 공연기획회사는 케이 록페스 외에도 국내외 굵직한 콘서트를 기획하고 성공시킨 회사다.

고양 K-Rock 페스티벌은 가뜩이나 한류월드에 새로 생긴 야외 콘서트장에서의 첫 이벤트인 만큼 더욱 공을 들이고 있다.

엑시트의 실력 확인이 없이 무조건적인 확언을 절대 줄 수 없다는 말의 이유였다.

나는 서인하 부장의 눈치를 봤다.

안 그래도 만에 하나 섭외 담당자와 이야기가 안 될 때를 대비해, 정체를 공개하고 가편집본을 보여 주자는 플랜B를 상정해 놓긴 했었다.

서인하 부장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공개해도 좋다는 의미인 거다.

“맞습니다, 엑시트. 하지만 여타 아이돌 밴드와는 분명 다릅니다. 밴드 경험도 있고, 악기를 꾸준히 다뤄 오기도 했고요.”

“그러니까, 그걸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확정해 줄 수 없다는 거예요.”

김유미 팀장의 태도는 확고했다.

결국 서인하 부장이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를 데리고 룸을 나왔다.

“김 팀장, 최효명의 솔로 싱글은 이미 들어봤대.”

서인하 부장이 말했다.

“음방도 봤다는데 그게 백 프로 라이브인 건 아니잖아. 더욱이 이번엔 연주도 모두 엑시트가 해야 하는 거니까, 더 불안한가 봐.”

“엑시트인 건 정말 추측으로 말한 건가요?”

“아까 나한테 M 쪽 총괄하고 있지 않느냐더라고. 그렇다고 했지. 그 몇 가질 가지고 엑시트를 추측해 낼 줄은 몰랐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어.”

와…… 감이 되게 좋은 사람이네.

“어떻게 하죠? 실력을 확인시켜 달라고 하면…….”

“1화 가편집, 얼마나 됐어?”

“아직 절반도……. 하지만, 그걸 보여 준들 만족할까요.”

그럴 것 같지 않았다. 눈앞에서 직접 보여 주지 않는 한 말이다.

차라리 이럴 바에야 들이박는 게 낫지 않을까.

“효명이한테 연락하겠습니다.”

“어쩌려고?”

“엑시트의 실력에는 자신 있습니다. 원하는 대로 보여 주면 되지 않을까요.”

서인하 부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결국 그 방법밖에 없는 건가…….”

이윽고 그가 한마디를 남기며 문고리를 다시 잡았다.

“정공법으로 나가야 할 때도 있는 법이지. 연락해 봐. 안 된다고 해도 되게 해. 이 기회밖에 없다고.”

“네.”

서인하 부장이 룸으로 돌아가고, 나는 가게 밖으로 나와 전화를 걸었다.

연습하느라 정신이 없는지 한 번에 연결되진 않았다. 두 번, 세 번 걸었을 때 겨우 효명이의 응답을 들을 수 있었다.

“어, 형. 미안해요. 연주하느라 못 들었어요.”

“아니야, 괜찮아. 다들 연습 잘 돼?”

“록페스 무대 올릴 곡들 초안 몇 개 나왔어요. 한번 녹음해서 보내드릴게요.”

“그래. 근데 할 말 있어서 연락한 거야. 사실…….”

나는 조심스레 지금의 상황을 설명했다.

극비로 진행하자고, 엑시트의 정체는 최대한 숨기자고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힘들다. 김유미 팀장에게는 얼굴을 보여야 할 것 같다는 설명을 하며 미안하다고도 전했다.

“그러죠, 뭐.”

그런데 효명이의 대답이 참으로 간결했다.

“어? 그래도 돼?”

“그런 록페스 무대에 서는 건데 검증 한번 없이 지나가진 않을 것 같았어요. 멤버들끼리 그런 이야기를 했거든요. 생각이랑 다르게 얼굴 까야 할 수도 있을 거라고.”

뭐지…… 우리도 준비할 만큼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 친구들도 나름대로 준비와 각오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섭외 담당자 만나고 있다고 하셨죠? 지금도 같이 계세요? 여기 연습실로 바로 오실래요? 매니저 형한텐 자리 좀 비워 달라고 말해 놓을게요.”

“어, 어어. 그래.”

효명이는 출발할 때 연락 달라고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난 잠깐 어안이 벙벙해졌다가 서둘러 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서인하 부장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연주하는 모습 보여 주겠다고, 지금 연습실로 오라고 합니다.”

목소리를 낮춰 그렇게 전달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김유미 팀장을 보았다.

“김 팀장, 지금 오디션을 보러 가지. 위약금 물어 준 값 제대로 할 만한 연주를 보여 줄게.”

“참 신기하긴 해요. 보통 그런 대사는 소속사에서 하는 편인데…… 방송사 제작부장님이 그런 말을 다 하시다니. 어쨌든 좋아요. 가시죠.”

“한 가지만 약속해 줘, 김 팀장.”

“예, 말씀하세요.”

“김 팀장만 알고 있는 걸로 할 수 있을까? 엑시트의 연주가 맘에 들어서 무대에 올리든, 맘에 안 들어서 까든 말이야.”

김유미 팀장은 씨익 고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머, 제가 그렇게 믿음이 없던가요, 부장님? 저희 공연 녹화방송 기획할 때도 제일 먼저 연락드렸었는데, 잊으셨어요?”

“알아. 아는데, 워낙 중요해서 그래.”

“걱정 마세요. 이 바닥이 신뢰와는 거리가 먼 곳이라고 해도, 전 신뢰를 중시하니까.”

그녀는 반쯤 차 있던 막걸리 잔을 호기롭게 비우곤 먼저 일어났다.

“그럼, 가실까요?”

* * *

술자리에는 차를 가지고 나가는 일이 없는 서인하 부장이라서, 우리 셋은 택시를 탔다.

도착한 곳은 플래티넘 회사 건물 인근이어서,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다.

운전기사에게 돈을 지불하는 서인하 부장 대신 내가 지하로 김유미 팀장을 안내했다.

“여기가 연습실입니다.”

“네.”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면서 뒤따라 내려오는 김유미 팀장의 표정은 여전히 여유 있었다. 이것이 팀장 경력의 여유인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평소였으면 안무 연습을 했을 곳에서 엑시트는 한창 악기 연습 중이었다. 내가 그쪽으로 가 엑시트를 인사시키려 할 때였다.

“잠시만요.”

김유미 팀장이 돌연 나를 멈춰 세우더니, 귀를 기울이는 시늉을 했다.

연습실에는 방음이 제대로 되어 있는 편은 아니었다. 연주를 시작했는지, 안쪽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여기서 좀 들을게요.”

김유미 팀장의 의도가 뭔지 알겠다. 아직 그녀가 도착했다는 것을 모를 테니, 새어 나오는 소리라곤 해도 좀 더 자연스런 연주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서인하 부장의 눈치를 보았다. 나는 속이 타 죽을 것 같은데, 서인하 부장은 태연했다. 하긴, 처음 케이 록페스 프로젝트를 전했을 때도 이런 표정이었었다.

하지만 어쨌든 결정하는 것은 김유미 팀장.

우린 뒤에 서서 잠자코 그녀가 움직이길 기다렸다.

연습실에서 한 곡의 연주가 끝나고.

“그렇군요.”

김유미 팀장이 들고 있던 백을 어깨에 멨다.

“재밌네요. 들어갈까요?”

“어, 네.”

내가 얼른 연습실 문을 열었다.

기타, 베이스를 담당하는 효명이, 창호, 허민이 서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드럼채를 휙휙 돌리고 있던 아론은 굳어서 채를 떨어뜨렸고, 키보드 페달을 조절하고 있던 기한은 누른 채로 굳었다.

연습실로 들어온 우리 셋을 보고,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그래도 효명이였다.

“어서 오세요.”

기타를 내려놓고 그가 다가왔다.

“오신다고 연락 받았습니다. 김유미 팀장이시죠?”

효명이가 특유의 친화력 돋보이는 미소와 태도로 김유미 팀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고혹적인 미소로 싱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김유미예요. 요즘 인기 최고인 아이돌을 이렇게 뵙게 되어서 영광이에요.”

“저희야말로,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효명이도 지지 않고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랄까.

둘 다 웃고 있는데, 왜 등 뒤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는 거 같지? 내 기분 탓인가?

“이쪽으로 앉으시죠.”

하지만 곧 고개를 털어 상념을 흩으며, 나는 준비된 의자로 김유미 팀장을 안내했다. 서인하 부장도 말없이 그 옆에 앉고, 효명이는 다시 위치로 돌아가 기타를 들었다.

“바로 해도 될까요?”

별다른 설명도 없이, 효명이는 김유미 팀장에게 말했다. 오디션이라면 오디션인데, 긴장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것은 김유미 팀장도 마찬가지.

그녀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상체를 살짝 내민 자세로 고개를 끄덕였다.

“보여 주세요.”

효명이가 멤버들과 눈을 마주쳤다. 준비를 마쳤다는 듯, 드럼의 신호와 함께 연주가 시작되었다.

노래는 ‘브레이브’. 부산에서보다 좀 더 연습을 쌓았기 때문인지 연주가 좀 더 풍성하게 바뀐 것 같았다.

5명은 김유미 팀장 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고, 서로의 호흡과 시선만으로 곡을 이어 나갔다.

방송 기획으로서 시작한 버스킹, 거기다 케이 록페스.

실력은 지금 들어도 충분해 보였다. 물론 나야 록에는 문외한이지만…….

나는 슬쩍 김유미 팀장을 확인했다.

그녀의 자세는 그대로였다. 리듬을 탄다거나 하는 기색도 없었다.

미소조차 없이 정말 진득한 시선만을 보내는 옆모습만 보였다.

새삼 깨달았다.

내가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 있음을.

PD이기에 도리어 출연진을 믿고 의지해야 하는 일이 있음을.

‘브레이브’는 시작과 마찬가지로 드럼과 함께 끝이 났다.

“다른 곡도 들어 보고 싶은데요.”

“그럼 한 곡 더 하죠.”

효명이가 창호에게로 가 뭐라고 귓속말을 나눴다. 그리고 그 의견을 다른 멤버들에게 전하고, 아론이 다시 드럼 신호를 보내면서 두 번째 연주가 시작됐다.

이번엔 서정적인 록발라드였다. ‘인연’을 어레인지해서 창호와 효명이가 보컬을 나눈 버전이었다.

효명이가 맑은 보컬이라면, 창호는 조금 더 중후하고 남성스러운 보컬이다.

그런데도 음역대가 넓다던가. 그래서 엑시트라는 그룹이 좀 더 다채로운 음악을 할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1절이 지나자 아론과 허민이 연주 중에 랩 파트를 이어 나갔고, 기한도 코러스로 뒤를 받쳤다.

난 무심결에 스마트폰 녹화를 시작했다. 옆에서 서인하 부장이 내 행동을 발견했음에도 묵인하는 것을 보고는 아예 대놓고 찍기 시작했다.

“……음.”

곡이 끝나자 김유미 팀장이 묘한 소리를 냈다. 표정은 그대로였다.

“마지막으로. 가장 자신 있는 곡, 한번 부탁드리죠.”

“자신 있는 곡이라…….”

효명이가 조금 고민하는 얼굴이 되었다가 멤버들을 돌아보았다.

“그거 할까?”

“그래.”

창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효명이가 김유미 팀장을 다시 보았다.

“케이 록페스 무대를 위해서 만든 곡이 있는데 그거, 보여 드릴게요.”

“그게 가장 자신 있는 곡인가요?”

“어떤 곡이든 전부 자신 있어요. 하지만 정말 케이 록페스만 보고 만든 곡이어서요.”

김유미 팀장이 ‘호오?’ 하는 얼굴을 하는 사이, 엑시트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효명이의 기타 솔로, 그 후 창호의 기타가 합류했다.

드럼 소리가 묵묵히 곡 전반에 깔리고, 일렉트릭 베이스 특유의 쟁쟁대는 사운드가 섞여 들었다.

마침내 전자 키보드의 독주가 시작되고, 단숨에 비트가 빨라졌다.

지금껏 엑시트가 연주해 온 곡과는 궤가 달랐다.

뭐랄까, 한여름의 록 페스티벌에는 제격인 음악이었다.

잠깐 들어도 신나는 코드로 무장된 곡이라, 절로 몸이 흔들거렸다.

스마트폰을 든 나는 흔들리지 않게 조심해야 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김유미 팀장 쪽을 잠깐 훑어봤다가, 깜짝 놀라 다시 쳐다보게 되었다.

발견했다.

꼰 다리 무릎 위에 올려둔 그녀의 손가락이 까닥이고 있었다.

몸은 여전히 아까 그대로인데, 손가락만은 리듬을 타고 있었다.

이건 뭐…… 비트 따라 움직여! 그거네.

아닌 척하지만 그녀 또한 이 연주를 즐기고 있음을 알게 되자 나는 기운이 났다.

그사이 연주는 끝났고, 엑시트 전원이 악기를 잘 내려놓으며 김유미 팀장 앞에 일렬로 나란히 섰다.

“아직 가사는 완성이 안 돼서 허밍으로 때운 부분도 있지만, 감안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효명이가 살갑게 말을 걸었음에도 김유미 팀장은 침묵하고 있었다.

손가락도 이미 멈춘 상태.

절로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분위기지만, 나는 그녀의 머리 위로 확률이 보이는 것 같았다.

김유미 팀장이 엑시트의 연주를 맘에 들어 할 확률은 보나 마나 ‘100%’

이럴 줄 알았으면 확률을 썼을 텐데. 포인트 거저먹을 기횐데, 아깝게 됐다.

이윽고 그녀가 입을 뗐다.

“……가사가 아직 없다고요?”

“아직 정리 중이에요.”

“그래요. 빨리 해야겠네요.”

김유미 팀장이 말했다.

“그 곡을 마지막에 배치하도록 하죠.”

“그, 그럼!”

송일현이 벌떡 일어났다. 나는 폰 렌즈를 그쪽으로 휙 돌렸다.

“총 네 곡. 준비 잘하고 오세요. 이왕이면 아예 엑시트의 느낌을 지운, 어레인지 말고 오리지널 밴드 곡을 더 추가해 주면 좋을 것 같아요. 가능할까요?”

“그럼요!”

효명이가 다른 멤버들 의견도 묻지 않고 신이 나 이야기했지만, 나머지 멤버들도 이견은 없다는 듯 박수를 쳐 댔다.

“네 곡이라. 빡시긴 하겠지만,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습니다.”

그 지원사격에 든든함을 얻은 효명이가 재치있게 답하자, 김유미 팀장이 진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잘 부탁하죠.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말하면서 본인의 핸드백을 열었다.

뭘 하는 거지……?

그 순간, 그녀가 뭔가를 꺼내 효명이에게 내밀었다.

“팬이에요. 사인 좀.”

뭐라고?

뭔가 했더니 꺼낸 건 효명이의 솔로 데뷔 싱글이었다.

아. 설마, 팬이었어?

아니…… 근데 오늘 어떻게 될 줄 알고 챙겨 온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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