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어쩌면 이 확률은……
“엥……?”
나도 모르게 맹한 소리를 냈다.
“네?”
“예?”
두 사람이 똑같이 반문해 왔고, 난 서둘러 고개를 저어 보이면서도 확률이 급상승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근데…… 회사에서는 뭐라고 하십니까?”
“녹음이 완전히 마무리된 건 아니라서…… 안무는 거의 나왔으니 빨리 타이틀부터 완성하고 뮤비 촬영 들어가자고 보채시네요.”
송일현 매니저의 어색한 웃음을 따라 나도 어색하게 웃었다. 말만 들어서는 내 기획안이 통과될 확률은 거의 사형 선고를 받은 거나 다름없어 보이는데…… 왜 확률이 뛴 거지?
그때, 내 스마트폰이 진동을 했다. 확인해 보니 편성 회의에 들어갔다던 서인하 부장의 전화였다. 무슨 일이지?
나는 양해를 구하고 카페를 빠져나와 전화를 받았다.
“예, 부장님.”
“그래, 강 PD. 이야기 잘 되고 있나?”
훅 치고 들어오니 할 말을 잃었다. 잠시 지체한 끝에 겨우 입을 뗐다.
“좋진 않습니다. 들어보니 컴백 콘셉트도 거의 다 나온 상태인 것 같고…… 곡도 녹음만 마무리 지으면 되나 봅니다.”
“50일 남았다더니 일정이 생각보다도 빡빡한 모양이네. 다른 그룹들하고 컴백 시기 조절하려고 그러나 보지?”
“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 다른 수는 있어?”
서인하 부장이 넌지시 물었다. 다시 말문이 막혔다. 그렇지 않아도 바로 수가 떠오르지 않고 있었으니까.
“부담 주자는 건 아니지만, 편성 회의 때 기획안에 대해 이야기했거든. 다른 부장들도, PD들도 흥미가 있어 해. 재미있을 것 같다고. 그중에 가장 흥미 있어 하는 건 정민우 PD였고.”
아, 나도 아는 이름이다. 정민우 PD. 몇 년 전 타사에서 우리 회사로 이적해 왔다는 그는 베테랑이었고, 뮤직스케치를 성공리에 론칭한 인물이었다.
“<뮤직스케치> 메인 PD 말씀이신가요?”
“아무래도 그쪽은 라이브 무대에 힘을 싣고 있으니까, 콘셉트적으로도 딱 맞아떨어져 보인다 이거지. 그래서 꼭 버스킹 기획대로 방영되어서 <뮤직스케치>와 연계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더라고.”
아…….
그 말을 듣자 무언가 생각나는 게 있었다. 확인해 볼 게 있어서 나는 아예 좁은 골목 구석까지 들어갔다. 그러면서 스피커 통화로 전환하고, AGD 앱을 열었다.
[현재 ‘아이돌 리얼리티 버스킹 기획의 대중적 화제성 획득’의 확률 보기를 사용 중입니다.]
[61%]
어쩌면 이 확률은…….
“부장님. 그 대화, 좀 전에 나누신 겁니까?”
“응? 그렇지. 회의 중에 이야기한 거니까.”
확률이 상승한 원인은 플래티넘이 아니라, 정민우 PD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기획의 성공 여부는 엑시트와 <뮤직스케치>를 어떻게 엮느냐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황급히 [상점]을 뒤졌다.
[현재 적립 포인트/사용 가능 포인트]
[5,843P/2,343P]
몇 개월 동안 근근이 사용한 결과, 누적 포인트가 [5,000P]를 넘어섰다.
[상점]에서 몇몇 새로운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게 됐는데, 그중에 지금 상황과 잘 맞는 아이템이 있었다.
[아이템 ‘변수 보기 Lv2’를 사용하였습니다.]
[사용 포인트: 2,000P]
[현재 사용 중인 ‘아이돌 리얼리티 버스킹 기획의 대중적 화제성 획득’ 확률의 변동을 위해 필요한 변수를 표시합니다.]
[확률 구성에 필요한 변수 중, 주요 3가지 변수를 표시합니다.]
[주요 변수: 무대, 기한, 곡]
‘무대, 기한, 곡’. 이 3가지 변수를 조절하면 확률을 상승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역시. <뮤직스케치>와 관련이 있는 건 확실한 듯 보였다.
“부장님, 가능 여부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여쭤봐도 될까요?”
스피커 모드를 종료하고 다시 귀에 스마트폰을 대면서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뭔데? 회식 가야 해서 빨리 물었으면 좋겠는데.”
서인하 부장이 누군가에게 소리를 치는 듯하더니 말했다.
“엑시트 측과 딜해 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런데 <뮤직스케치> 측하고 연계가 되어야 할 것 같아서요.”
“오호라. 강 PD. 또 재밌는 걸 생각해 낸 모양이구나. 잠깐만 있어 봐.”
그는 조용한 데로 이동한 뒤 나에게 말해 보라고 했다. 나는 일단 정리되지 않은 아이디어를 그에게 이야기했다.
내 짤막한 이야기를 잠시 되씹던 서인하 부장이 콜 사인을 보냈다.
“일단 질러 봐. 여긴 내가 책임질 테니까.”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카페로 복귀했다. 자리를 비운 보람이 있었다.
이제는 나한테도 무기가 하나 생겼다. 어떻게 써먹느냐에 따라 처음으로 구성한 기획안의 존폐가 결정된다.
“효명아. 송 매니저님. 이런 건 어떠실까요.”
도박을 해 본 적은 없었지만, 막상 도박을 한다면 희열과 초조함, 긴장감이 뒤섞인 지금 기분과 비슷하지 않을까.
나는 그런 여러 감정을 담아 운을 떼고 말을 이어 갔다.
“일단 이 버스킹 기획대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곡을 만들어요. 그래서 최종적으로…….”
두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거지만, 사실상 효명이에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확률 변동에 가장 중요한 변수는 ‘기한’과 ‘무대’, 그리고 ‘곡’.
그중에서 ‘무대’와 ‘곡’은 효명이가 밝힌 바람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아까 효명이는 말했다. 밴드 연주에 대해 갈증이 있다는 것을.
그것도 효명이뿐만 아니라 엑시트의 다른 멤버들까지도 그렇다고 했다.
물론 이 사안에 대해 효명이가 결정권을 가진 건 아니란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기댈 만한 구석은 효명이를 자극하는 것뿐이었다.
“<뮤직스케치>에서 컴백 스테이지를 갖는 겁니다. 라이브 무대를 통해서요.”
“네?”
“<뮤직스케치> 무대에서 말입니까?”
<뮤직스케치>가 단숨에 자리를 잡은 건 화제성 때문이었다. 중요한 건 왜 화제가 되었냐 하는 부분인데, 바로 제작진의 노력 때문이었다. 관객들과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한 라이브 무대를 혼신을 다해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가수와 팬덤, 쌍방에게 호응을 얻었던 것이다.
<뮤직스케치>는 차라리 소극장 라이브 같은 소규모 콘서트에 가까웠다.
하지만 아이돌 위주로 편성되는 여타 음악 방송과는 달리 발라드나 밴드 음악 등에 집중하다 보니, 여태껏 컴백 무대로 활용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첫 번째 케이스가 되는 겁니다. 분명 화제 몰이는 충분히 될 겁니다.”
플래티넘은 단순히 컴백 리얼리티 프로그램만으로는 탐탁지 않아 하고 있었다.
기존 계획을 엎을 만큼의 계산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뮤직스케치>라면 달라질 수도 있다.
여태껏 어떤 아이돌도 시도해 보지 못한 무대면서, 동시에 각광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어때? 효명아.”
[61%]
힐끗 확인한 확률은 아직 그대로였다. 그러나 떨어지지도 않았다.
효명이와 송일현은 침묵한 채 무언가를 생각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때, 서인하 부장에게 메시지가 왔다.
[서인하부장: <뮤직스케치> 콜!]
정민우 PD의 콜 사인이 나왔다. 그 즉시 확률이 변동을 시작했다.
[68%]
속 시원하게는 아니지만, 다시 껑충 뛰었다. 70%대를 눈앞에 두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잘 되지 않을까. 이 기획을 성공시킬 수 있지 않을까!
“……후우, 분명 회사 입장에서도 혹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송일현 매니저가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다만, 여전히 부정적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 지금 당장 노선을 변경해서 뛰어들기엔…….”
그때, 그의 말을 자르며 효명이가 한마디를 던졌다.
“형, 저 하고 싶어요.”
송일현 매니저가 놀란 눈으로 효명이를 돌아봤다.
“지난 솔로 싱글 때부터 머릿속에서 계속 생각했어요. 한 번이라도 앨범 전체를 충실하게 밴드 음악으로 채워 보고 싶다고. 그때도 결국 타이틀만 밴드 음악이었고, 나머지는 아니었잖아요. 그런 게 새로운 시도가 되지 않을까 하고 멤버들하고도 이야기했었어요.”
“뭐? 근데 왜 나한텐 이야기 안 했어?”
“형 입장 곤란해질까 봐요. 우리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회사 방침이 안정적인 걸로 가자고 결정됐는데, 그럼 형이 회사랑 싸워야 하잖아요. 중간에서 형이 곤란해지는 거, 저도 멤버들도 싫어요.”
송일현이 말문이 막힌 듯, 인상만 찌푸린 채 효명이를 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기회가 왔는데도 입 꾹 다물고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저희, 밴드 음악을 한번 제대로 해 보고 싶어요.”
효명이의 갈증이 내 생각보다 컸던 모양이었다.
하기야, 원래 밴드로 데뷔하려고 준비했다가 댄스 그룹으로 바뀌었으니 속에 묻어 둔 열망이 남다를 만도 했다.
“<뮤직스케치> 무대면 환경적으로는 가장 좋다고 알려진 데잖아요. 거기서 컴백 무대를 가진다면 생각만 해도 진짜 멋질 것 같아요.”
이야기가 이렇게 되자 설득은 이제 내가 하는 것이 아니었다.
“형, 형이 던진 떡밥이 너무 좋아서 덥석 물 수밖에 없잖아요.”
나한테 장난처럼 투덜댄 효명이가 다시금 송일현 매니저를 돌아본다.
“형한테 이런 짐 얹어 줘서 미안해요. 하지만 저도 같이 회사랑 싸울게요. 이 버스킹, 하면 안 될까요?”
“…….”
송일현의 얼굴이 버라이어티하게 변했다. 효명이를 쳐다봤다가 나를 봤다가, 기획서를 한번 내려다봤다가, 나를 노려봤다가 헉 놀래서 고개를 다시 돌리고.
그러다 결국,
“……애들한테 먼저 말해야 하지 않겠어?”
“멤버들은 제가 설득할 수 있어요. 안 나온 이야기도 아니고. 중요한 건 회사죠.”
“하으…….”
송일현이 배를 부여잡았다. 앞일을 생각하니 속이 쓰린 모양이었다.
이걸 죄송하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이미 기호지세라 뻔뻔해지기로 했다.
“송 매니저님. 이 기획, 분명 잘될 겁니다. 저희도 그렇고 엑시트의 인지도도 분명히 더 좋아질 겁니다. 엑시트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도록, 정말 죽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송일현이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리다가 마침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직감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게 콜 사인이란 걸.
“강 PD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거기다 효명이까지 이러면 내가 뭐가 되냐. 제가 뭐, 엑시트 잘못되라고 이러는 건 아니잖아요.”
“압니다.”
“알고 있어요, 형.”
효명이가 애교 있는 얼굴로 웃어 보였다.
“해 주실 거죠?”
“……에휴. 알았어, 회사에다 말할게.”
“아싸!”
효명이가 양손을 번쩍 들어서 환호했다.
“대신, 꼭 같이 설득해야 한다. 내 모가지 걸고 해도 역부족이란 말이야.”
“물론이죠. 멤버들도 동원할게요. 내일 전부 회사로 모이라고 할까요?”
“그래라, 그래…….”
송일현 매니저가 엑시트를 아낀다는 건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한데 오늘 보니, 내가 아는 건 빙산의 일각이었다.
저 모습은 마치 아끼는 친동생을 대하는 듯했으니까.
하기야, 유랑민 생활을 하면서 선배들한테 귀동냥으로 들은 건데, 원래 이 바닥이 그렇다더라.
연예인과 매니저가 아침 밤낮으로 붙어 다니니, 연인은커녕 가족보다 더 친해질 수밖에 없다고.
제작자인 PD의 입장으로서도 그 모습이 여실히 보이는데, 당사자들은 얼마나 애틋할까.
그 분위기에 취해 나도 모르게 호언장담을 해 버렸다.
“저도 한손 거들 수 있을까요? 상황을 저지른 장본인이 전데……. 아, 필요하면 저희 제작부장님도 같이 모셔오겠습니다. 이번 리얼리티 메인 PD시거든요.”
“평소라면 거절하겠지만……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전 멤버들한테 전화하고 올게요!”
한밤의 회동은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끝났다.
서인하 부장을 대동할 문제와 내일 더 힘든 설득을 해야 한다는 문제점을 남긴 채로.
[71%]
그리고…… 확률도 20% 가까이 상승한 채 말이다.
* * *
헤어진 직후, 서인하 부장에게 전화했다.
그사이 끽해야 2, 30분 정도 지났을 뿐인데 이미 얼큰하게 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서인하 부장에게 나는 상세히 보고했다.
잘했다는 치하와 함께 내일 자신도 가겠다는 이야기를 전해 왔다.
“플래티넘을 찾아가는 거라면 내가 움직이는 게 맞아. 너한테만 맡겨둘 순 없지.”
아…… 지르고 후회했던 게 생각보다 허탈하게 풀렸는데?
다행한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래. 대신 다들 내일 일찍 출근하라고 단톡방에 알려 줘. 빠르게 움직여야 할 테니.”
“예.”
전화를 끊자, 그제야 긴장이 쑥 빠지면서 온몸이 늘어졌다.
피로감이 어깨를 짓눌렀지만, 어쩐지 기분만은 상쾌했다.
“한고비 넘겼네…….”
내일부터는 또다시 고비가 오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