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솔로 싱글
직접 기타를 들고 어쿠스틱으로 연주까지 해 보인 효명이가 긴장한 눈으로 우리 둘을 보았다.
“음원이 낫네.”
“어쿠스틱은 좀 배우고 나서 해.”
장난스럽게 못 박는 준혁이 형을 따라 나도 장난을 치자, 효명이는 기가 팍 죽었다.
효명이는 혀를 차면서 기타를 구석에 다시 세웠다.
“나중에 라이브용으로 하나 편곡해 놔야겠네요. 물론 배. 우. 고. 나. 서. 요.”
저거…… 진짜 삐친 건 아니겠지?
“타이틀 이걸로 확정하는 거야?”
“글쎄요. 아직 답이 없어서…….”
어쿠스틱 버전으로 연주하기 1시간 전쯤, 효명이는 가완성된 음원 ‘브레이브’를 송일현 매니저에게 보냈다.
파일을 보낸 지 5분쯤 뒤에 허겁지겁 전화가 왔다.
이거 네가 만든 거냐, 너 지금 어디냐, 누구랑 있냐, 당장 회사에 가지고 가겠다 등등.
하지만, 그 뒤로 연락이 없었고, 그때부턴 하염없는 기다림만 남았다.
기다리다 보니 술자리로 이동하기도 뭣해서, 우리는 마냥 작업실에서 맥주나 홀짝이는 중이었다.
“하긴, 타이틀 정하는 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것도 아니고.”
아까 들은 세 곡에 비해 ‘브레이브’가 훨씬 좋긴 하지만, 결정이 쉽진 않을 거다. 더욱이 밴드 음악은 마이너하다는 인식이 있는 장르인 만큼, 회사 차원에서는 더더욱 결정에 난항이 생길 수밖에 없겠지.
준혁이 형과 효명이는 그렇게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나로서는 입이 근질거렸다.
AGD 앱이 마지막 수정 버전에서 알려준 확률이 ‘93%’이었다.
편곡을 삼바로 하지 않는 이상, 대박 날 걸 확신할 수 있다.
자연히 회사에서도 콜이 올 것을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때였다.
“어, 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화다.
송일현 매니저에게서 다시 전화가 온 거다. 각자 합을 맞춘 것처럼 맥주캔을 내려놓고, 테이블에 둔 스마트폰에 집중했다.
효명이가 스피커로 전화를 받았다.
“제목 바꾸자.”
송일현 매니저의 첫마디는 그것이었다.
그리고.
“바꿔서 타이틀로 가자.”
“컨펌 떨어졌어요?”
“안 떨어졌게? 사장님이랑 작곡가님이랑 아주 난리 났다. 대박 스멜이래.”
데뷔 타이틀에 이만큼 어울리는 곡이 없다, 나조차 그런 자신감이 들었다.
“특히 작곡가님은…… 자기가 너를 잘못 봤다고, 미안하다던데.”
그 말에 효명이가 몸을 덜덜 떨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ㄷㄷㄷ’의 현실 버전 같았다.
“나중에 전화 한 통 드려야겠네요.”
“그렇게 해. 나머지 정리는 회사 들어와서 하자. 너 아직 홍대에 있지?”
“예. 준혁이 형님이랑 대한이 형이랑요.”
“아직 듣고 있습니다.”
“송 매니저, 나도.”
그제야 스피커폰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는지, 송일현 매니저는 잠시 민망해했다.
“효명이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회사 측에서 두 분에게 뭔가 보답이라도 드리겠습니다.”
“뭐지, 효명이 회사 바꿨어? 같은 회산데 뭘 보답까지 해?”
준혁이 형은 송일현 매니저와 말을 놓고 지내는지, 쉽게 농담을 했다.
다만, 편한 건 일방뿐인지, 송일현 매니저는 안절부절못했다.
나는 눈치를 보다가 예능팀 소속다운 청탁을 했다.
“전 그냥 나중에 한번 SOS 치면 잘 받아 주십시오.”
“얼마든지요!”
송일현 매니저는 그렇게 기분 좋게 답을 하더니, 효명이더러 내일 꼭 회사로 들어오라는 신신당부를 남기기까지 했다.
전화가 끊어진 뒤, 효명이가 의자에 늘어지게 등을 묻었다.
“으아…… 두 분, 감사해요. 진짜 두 분 아니었으면 일주일쯤은 더 헤매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아직 안 끝났잖아? 다른 곡 준비도 해야지.”
준혁이 형이 담담하게 말하자, 효명이가 잘생긴 눈썹을 찌푸렸다.
“그건 나중에 고민할래요. 오늘은 걍 마시죠?”
결국 새벽까지 술판이 이어졌다.
한참 새로 나올 효명이의 싱글 이야기, 준혁이 형한테 들어온 대본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문득 묘한 의문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 다 내년 1분기 스케줄을 이야기하는데, 무언가 빠져 있다.
“내년 1분기면…… 아마 <당잠사> 시즌4 제작 들어갈 텐데? 플래티넘에 연락 안 갔어요?”
둘을 번갈아 보며 그렇게 묻자, 두 사람은 살짝 굳었다가 눈을 마주쳤다.
입을 연 것은 효명이었다.
“저희 <당잠사> 다음 시즌 안 할 거예요.”
“뭐?”
담담하기까지 한 그 어투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현준영 제외 제작진 전원 하차.
하필이면 종방연 때 퍼진 터라, 아는 사람이 워낙 많았다.
다행한 건 아직 그 소식이 기사로 노출되진 않았다는 건데, 사실상 제작진 교체가 큰 이슈가 못 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출연진은 그대로 유지한다고 내부에선 확정해 뒀던 것이다.
그런데 중요 멤버인 이 두 사람이 안 한다고?
“솔로 싱글 건이 먼저이기도 했고, 방금도 보셨지만 아마 몇 달은 정신없이 준비를 해야 해요.”
“나도 내년 중반까지는 빠짐없이 드라마, 영화 스케줄로 찰 거야. 지금도 그래서 고르고 있는 거고.”
“준혁이 형님, 소처럼 일해야 해요. 저희 회사랑 계약 사항 중 하나라서요.”
농담처럼 그렇게 말하긴 하지만, 나도 눈치가 없는 건 아니라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뭐라고 말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러자 효명이가 맥주캔을 손으로 흔들면서 이렇게 말했다.
“뭐…… 의리가 있지. ……형이 안 한다는데 해서 뭐 해요.”
“야, 그건 아니지…….”
반사적으로 그렇게 말하려 했지만, 효명이는 고개를 저으며 내 말을 끊었다.
“사실 가장 큰 건 현 PD님에 대한 불신이에요. 준혁이 형님도 마찬가지고요. 그분이 다른 제작진이 없는 상태에서 제대로 <당잠사>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회사에도 이 이야기는 충분히 해 놓은 상태야. 뭐, 결국엔 알겠다며 항복하더라. 전 회사였음 아마 사흘은 들들 볶였을 텐데.”
류준혁이 피식 웃으면서 하는 말에, 나는 도리어 말문이 막혔다.
“진짜 저 때문이에요?”
“아니, 가짜지. 내가 방송 짬이 몇 년인데, 막내 PD랑 의리 지킨다고 내 인지도를 내 손으로 던져?”
우스갯소리를 섞는 어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괜히 울컥할 것 같아서 억지로 맥주를 들이켰다.
방송계 생활 약 1년, 생각지도 못했는데, 내 주변에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새삼 생각해 보니 효명이도, 준혁이 형도, 박주영 선배도, 이민희도,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내가 배울 것이 있고, 내가 아껴야 하는 사람들.
그래, 난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있다.
내가 실수한 건 인정하고, 잘못된 건 받아들이자.
그리고 이제 그만 숨고, 떨치고 일어나자.
그렇게 결심하며 연거푸 맥주를 삼키자, 효명이와 준혁이 형이 씩 웃으며 건배를 하자고 캔을 들이밀었다.
“암튼, 쫑파티도 제대로 못 끝냈는데, 여기서 제대로 끝내죠. 다들 고생한 것을 격려하면서요.”
효명이의 말과 함께 우리는 뒤늦은 쫑파티를 했다.
깡―
* * *
겨우 의욕을 찾았지만, 하필이면 그게 휴가 마지막 날이었다.
새벽까지 맥주를 퍼부었더니 정신이 없었다.
비몽사몽한 몸을 추슬러 겨우 출근을 했는데.
“분위기가 좀 이상하네요.”
예능팀 사무실에 뭔가 묘한 기류가 돌고 있었다.
살펴보니 서인하 부장이 쓰는 부장실이 시끄러웠다.
그쪽을 보고 있으니, 때마침 옆자리로 돌아오던 박주영 선배가 대답해 주었다.
“방수정 PD님, 사표 냈대.”
“예?”
이건 또 무슨 폭탄이야…….
방수정 PD는 NBS의 예능 에이스였고, 그 자체로 간판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사람이 사표를 냈다고……?
바람 잘 날 없는 예능팀이었다.
사표를 낸 이유는, 그날 저녁에 알 수 있었다.
유수현 작가가 기존 <당잠사> 팀을 전부 불러 모았고, 그 자리에 방수정 PD와 서인하 부장도 함께했다.
“유학 좀 가려고. 그동안 많이 고민했었는데 딱 지금이 타이밍인 것 같아서.”
“에휴, 야, 수정아. 아, 진짜 이 정신 나간 게…….”
서인하 부장은 여전히 방수정 PD를 설득하려고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괜히 내가 서인하 부장에게 죄송한 마음이 더 커졌다.
그의 입장에선 어찌 됐든 <당잠사> 팀이 계속 트러블을 일으키고 있는 거니까.
그걸 다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 얼마나 힘들지…… 조금은 느껴졌다.
“<당잠사>를 만들면서 여러 부족한 점이 많다는 걸 스스로 깨닫기도 했고, 또…… 새로 채워야 할 때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좀, 놔주세요, 부장님.”
말하면서 슬쩍 나를 쳐다본 것 같은 건 그냥 착각일까.
“너 돌아올 날만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냐……. 알잖아, 우리 방송사 내년에 새 채널 개국하는 거. 너한테 그거 맡기려고 얼마나 힘을 써 놨는데.”
새 채널 개국이라. 나는 내 일 하기도 바빠 관심이 없었지만, 그간 소문은 쭉 있었다.
소문만 무성하던 게 결국 확정된 모양이었다.
“현준영 PD한테 맡기세요. 원래 음악 프로그램 쪽 잘하던 PD잖아요. 잘하겠죠.”
“야! 현 PD는……!”
서인하 부장은 차마 말을 끝내지 못했다.
오늘 휴가 복귀 후 대충 들었다.
<당잠사> 시즌4를 맡게 된 현준영이지만, 사실상 제작진 모으는 것도 쉽지 않은 형편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다 못해, 아작을 낸 상황이다.
NBS 안에 이미 현준영에 대한 소문은 쫙 깔린 상황. 이런 상황에 누가 나서서 그 밑으로 들어가려 할까.
거기다 류준혁과 최효명이 합류 거부를 할 거고, 도미노처럼 안 좋은 상황이 쭉 이어질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방수정 PD와 서인하 부장의 말다툼을 지켜보았다.
서인하 부장은 자리가 파할 때까지도 설득을 멈추지 않았다. 다 큰 어른치고는 유치하기까지 한 협박까지 해 가면서 매달렸다.
하지만 역시 방수정 PD의 고집은 전설적인 것이었다. 결국 마지막 승자는 그녀였다.
그녀는 본인의 의사대로 결국 퇴사를 받아 냈다.
헤어지면서 그녀와 인사할 기회가 있었다.
“<당잠사> 시즌3 때 일, 수현이에게 들었어. 넌 앞으로도 잘할 거야, 강대한.”
방수정 PD는 그렇게 NBS를 떠났다.
* * *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흘렀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사실이 그랬다.
입사 1주년은 별 특별한 일 없이 지나갔다. 끽해야 박주영 선배나 이민희에게 잡혀서 술을 진탕 먹었을 뿐.
1주년 전이나 1주년 후나, 나는 난민이었다. 이 팀, 저 팀을 난민처럼 오가며 서포트를 했다.
우리 NBS는 창설 때부터 예능 자체 제작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다만, 윗분들의 욕심은 늘 끝이 없어서 언제나 그렇듯 PD의 숫자는 항상 부족했다.
그런 실정이다 보니 어느 팀에 묶여 있지 않은, 나 같은 난민은 매우 귀한 대접을 받았다.
말이 난민이지 귀족이나 다름없다.
<당잠사> 시즌2 초창기 때 같은 궂은일은 어느 팀에서도 시키지 않았다.
나는 마음껏 AGD 앱을 활용할 기회를 얻었다.
나로서도 도움이 되었고, 내가 서포트하는 모든 팀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나는 지식과 경험을 쌓으면서 확률의 디테일을 점차 높일 수 있었고,
해당 제작팀에는 알게 모르게 시청률을 확보해 주고 있었다.
“PD님, 저, 촬영지를 한번 바꿔보시는 건 어떨까요?”
“촬영지를? 이제 와서?”
“아무래도 지난주랑 그림이 너무 겹치는 것도 같아서요. 여기라면 지금 바로 연락해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 괜찮은데. 좀 너무 멀지 않아?”
“출연진은 제가 설득해 보겠습니다.”
“그래, 알았어. 잡으라고 해둘 테니 넌 일단 전화부터 돌려.”
[‘신선한 연출이 가능한 미션 촬영지 찾기 확률’의 100%를 달성하였습니다.]
그런 식으로 [100%]의 확률을 달성하는 나날이 지나갔다.
그렇다 보니 제작팀 서브 PD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대한아, 너 그냥 우리 팀 들어올래?”
“강 PD, 우리 사람 딸려. 알지?”
한편, 새해가 밝고 NBS에도 변화가 생겼다.
음악 채널이 드디어 신설된 것이다.
원래 NBS2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재방송 특화 채널을 음악 전문 채널로 변경한 거였다.
정식 명칭은 ‘NBS-M’.
관심을 안 두고 있어서 몰랐는데, 이미 채널 운영을 위한 여러 기획이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들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NBS-M인 거고.
우리 NBS는 지금껏 음악 프로그램을 따로 다룬 적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신설 음악 채널에 대중의 관심이 쏠린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NBS-M의 총대는 방수정을 대신해 서인하 부장이 매기로 했다.
그의 지휘 아래 야심차게 준비된 것이 바로 <추희열의 뮤직스케치>.
가수들의 라이브 무대를 꾸민다는 콘셉트로, 방송국 전체의 전폭적인 지지하에 중박을 터트렸다.
기존 프로그램과 딱히 차별점이 있는 건 아닌 데다 원래 대박을 터트릴 만한 프로그램도 아니었지만, 기대 이상이었다.
추희열의 입담도 예상보다 좋았고, 방송국의 캐스팅 전략도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뮤직스케치>를 비롯한 주간 음악 방송, 아이돌 홍보 예능 등이 자리를 잡으면서 NBS―M은 그야말로 승승장구했다.
내가 난민 생활을 하는 동안, 서인하 부장은 다음 단계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그 다음 단계에 내가 관여하게 될 줄은 몰랐다.
“기회가 왔어요.”
뜬금없이 찾아온 이민희가 나한테 다짜고짜 말했다.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이지.
“무슨 기회요……?”
“대한 씨의 특기를 살릴 기회요.”
“내 특기……?”
설마 AGD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가 싶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런 내 맘을 모르는 이민희는 흉계를 꾸미는 듯한 미소를 짓고서, 손에 들고 있던 파일을 나에게 보여 주었다.
“나랑 작업 하나 같이 안 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