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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성공할 확률 100%-28화 (28/200)

28화 씁쓸한 인사

TV 소리와 왁자지껄 각자 떠들어서 시끄럽던 고깃집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어? 뭐라고?”

서인하 부장이 잔을 든 채 유수현 작가를 돌아보았다.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저희 작가들은 다음 시즌 합류 안 할 거라고요. 미리 알려 드리는 거예요.”

“어, 잠깐. 수현아.”

생각지 못한 발언에, 알코올 기운으로 느슨하게 풀어졌던 서인하 부장의 얼굴이 굳기 시작했다.

그와 반대로 잔을 든 채 잠시 굳었던 현준영은 이내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그렇군요. 작가분들은 다른 일이 예정되어 있으신 거 같고. 그럼 우리 연출들은?”

미소를 돌린 곳에는 권민헌 PD를 비롯한 PD들이 있었다.

권민헌 PD는 분연히 고개를 들었다.

아마 현준영의 눈치를 1초도 안 살피고 말하는 건, 실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죄송합니다. 저희도 다음 시즌은 안 합니다.”

“민헌아. 너까지 왜 그러냐.”

서인하 부장은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아무도 변명하거나 핑계를 대려 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부장님. 그렇게 됐습니다.”

그저 그렇게 고개를 숙여 보일 뿐.

사실 이 사태는 이미 우리끼리는 예정하고 있던 거였다.

오늘 최종화가 방영되기 전, 현준영은 우리에게 희희낙락하게 이야기했었다.

“시즌4 확정 났어요. 내년 초니까 다들 미리미리 스케줄들 비워 놓으세요.”

그냥 통보였다.

심지어 며칠 전 출연진에게 이야기할 때와는 말투의 온도도 달랐다.

마치 노예더러 하라고 시키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현준영은 그렇게 선언해 놓고는 신나게 전화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권민헌 PD가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시선을 모니터로 돌리는데.

“전 안 할 겁니다.”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박주영 선배였다.

“다음 시즌, 전 저 인간이랑 같이 안 할 거예요.”

“선배.”

조용한 사무실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발언에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권민헌 PD도, 다른 PD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박주영 선배를 보았다.

“그렇잖아요. 아니, 대장 취급해 주니까, 우리가 지 쫄따구입니까? 며칠 전에 결정된 사항을 출연진 앞에선 몸 배배 꼬면서 이야기하더니 뭐? 스케줄 비우라고요? 저딴 인간이랑 다음 시즌을 또 같이 하라고요? 전 못합니다. 무엇보다!”

박주영 선배가 옆자리의 나를 쳐다보았다.

“그날 미션 새로 짠 거나 편집이나 대한이가 다 한 건데! 시발, 막내 공을 가져다 뺏어 먹는 놈이랑 뭘 같이 해요. 양심도 없는 놈이랑!”

박주영 선배는 분노하고 있었다.

“맞아.”

그런 마음은 권민헌 PD도 같았나 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지.”

그리고 다른 선배들도.

“같은 일을 두 번 당할 순 없고…….”

“우리한테도 거부권은 있으니까.”

시즌3 때는 그래도 방송에 대한 애정이라도 있었다.

하물며 나처럼 방수정 PD의 유산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던 선배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시즌4는 다르다. <당잠사>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선배들의 애착은 여전해 보였지만, 현준영이 너무했다.

그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부분마저 건드렸다.

이제 우리 팀에 남은 건 현준영에 대한 적대심뿐이었다.

“나도 안 할 거야.”

“저도요.”

“하필 내년 초에 다른 좋은 방송이 시작되네요.”

“그게 뭔데. 나도 같이 해.”

“이제부터 기획해야죠.”

딱딱해지려던 분위기가, PD들의 농담으로 연하게 풀어졌다.

“…….”

그들의 시선이 내게 향하는 것을 보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죄…… 송합니다. 저 때문에…….”

“뭐래. 누가 너 때문이래? 다들 맘에 안 드는 건 알잖아.”

“그래. 대한아. 너는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권민헌 PD도 그렇게 말해 주었지만, 나라고 마음이 다를 리가 없다.

“저도 같이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한 직후,

문이 벌컥 열렸다.

모두가 쫄아서 문 쪽을 돌아봤는데, 거기 서 있는 것은 유수현 작가였다.

“그런 작당 모의는 안 들리는 곳에서 해야지.”

“작가님…….”

“됐다. 나도 끼자. 아니, 우리 작가들 전부 다.”

“예?”

“현 PD 맘에 안 드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거든. 그러니까, 다음 시즌은 우리 전부 보이콧 하자고.”

유수현은 곧장 작가실로 가서 그 의견을 전했다. 그리고 단 한 명의 반대도 없이, 우리들의 의견은 일치되었다.

심지어는 카메라 감독, 음향 감독 등의 의견도 전원 일치했다.

만장일치가 그렇게 어려운 거라던데, 우리 팀 앞에선 다른 문제인가 보다.

어쨌든 이제 문제는 언제 이 사실을 밝힐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빅엿을 날리자고 했다.

그렇게 마지막 회식 날을 우리의 독립일로 잡은 것이었다.

“자, 잠깐. 이 자리가 이런 자리였나? 다음 시즌도 잘해 보자, 으쌰으쌰, 이런 자리 아니었어?”

서인하 부장이 당황한 가운데, 노기를 감추지 못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가진에 이어 연출진도 보이콧 선언을 할 줄은 몰랐을 테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우리도 사실 그에게는 죄송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애초에 현준영 체제로 바뀔 때 윗선과 중재를 했던 것이 그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부분을 고려하기엔 현준영의 폭정이 너무 심했다.

“모두 심사숙고한 결과입니다. 현준영 PD님하고는 처음부터 잘 안 맞았지만, 어떻게든 했던 거라서요. 다음 시즌까지 이어 가라고 강요하시면, 차라리 제가 대표로 퇴사하겠습니다.”

유수현 작가는 당당하게 밝히고선 서인하를 보았다.

“이봐, 유 작가. 왜 이러는 건데, 갑자기.”

“갑자기가 아니에요. 아마 제일 잘 알고 있을 현준영 PD 본인하고 이야기해 보세요.”

하지만, 정작 유수현 작가의 시선을 받은 현준영은…….

아, 순간 욕이 나올 뻔했다.

왜 그런 말을 듣는지 모르겠다는 순진무구해 보일 정도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허허…… 사람이 저렇게 해맑을 수 있나.”

박주영 선배도 옆에서 이죽거렸다.

아무튼 저 모습, 현준영이 의도한 거면 말 그대로 사람 빡치게 하는 데는 능력이 제대로 있는 거다.

“하. 모르시겠다 이건가요? 그래요 뭐, 모른다고 가르쳐 줄 문제도 아니고. 아무튼 우린 다 관둘 테니까 알아서 하세요.”

그사이 고깃집 구석에서 틀어 뒀던 <당잠사> 시즌3 마지막회가 끝났다. 크레딧 자막이 올라가는 한편, 마지막 촬영 때 출연진과 함께 찍은 사진이 떠 있었다.

사진 속 모두가 밝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저때부터 이미 제작진의 감정은 메말라 있었다.

유수현 작가가 가방을 챙겨들었다. 그러자 이민희를 비롯한 다른 작가들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부장님, 저흰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부장님께는 정식으로 내일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녀가 정중한 인사를 남기고 고깃집을 빠져나가자, 서인하 부장이 서둘러 그 뒤를 따라 나갔다.

그때, 누군가가 내 등 뒤로 와서 어깨를 톡톡 쳤다.

돌아보자 현준영이 나를 보고 있었다.

“강 PD도? 같은 의견이에요?”

뭔가 배신이라도 당한 듯한 표정이다.

하…… 이 인간.

“나 따라다니면서 많이 배우지 않았어요? 내가 기회를 줬으니까 편집권도 가질 수 있었던 건데요? 5화도 그래서 편집할 수 있게 된 거잖아요?”

“PD님.”

다소 격해지려는 그의 말투에 권민헌 PD가 일어서려 했다.

“아니요, 그건 앞뒤가 잘못된 말인 것 같습니다.”

내가 말을 꺼내자, 권민헌 PD가 주춤하는 게 보였다.

나는 참지 않고 말했다.

“기회를 주셨다는 건 당신만의 생각이죠. 정확히는, 기회를 줄 수밖에 없던 거 아닙니까?”

그래, 내가 강범람이다. 오늘, 내 별명답게 하극상 한번 제대로 해 보련다.

“애초에 아무 문제 없었다면 기회를 줄 필요나 있었나요? 편집 방향 잘못 잡힌 걸 고쳐 줬는데, 그걸 기회를 받았다고 말해야 합니까?”

“…….”

“뭐, 물론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죠. 그 부분에 대해선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굳이 배우지 않았어도 될 걸 많이 배웠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선 곧 죽어도 감사하다고 못합니다.”

방수정 PD가 현준영에 대해 말해 줬던 게 문득 떠올랐다. 관행이라거나, 태도라거나.

“앞으로는 다른 분에게 정중히 배우겠습니다.”

그렇게 종지부를 찍듯 말하자, 현준영은 마치 큰 도발이라도 당한 듯 벌게진 얼굴로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슬쩍 주변을 보니 선배들의 얼굴에 같은 단어가 떠올라 있었다.

저 미친놈…….

아니…… 이래야 속이 후련할 것 같아서요.

그렇게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을 때였다. 서인하 부장이 신경질적으로 고깃집에 들어온 것은.

“……휴우, 진짜 지 친구 닮아서 성질하고는. 뭐야, 여긴 또 왜 서 있어? 싸웠어?”

서 있는 현준영와 나를 번갈아 보던 서인하 부장이 상황도 듣지 않고 화를 냈다.

“그래, 너희 마음은 잘 알겠어. 무슨 생각인지도. 하지만 꼭 오늘이어야 했냐? 나도 이렇게 있는 자리에서?”

“……죄송합니다, 부장님. 하지만…… 차라리 부장님 있는 자리에서 해결을 내야 한다는 게 저희 중지였습니다.”

권민헌 PD가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혀를 찬 서인하 부장이 자리를 둘러보았다. 아직 고기가 몇 점 올라가 있는 불판은 이미 불을 껐다. 이 분위기에 고기 주워 먹을 만큼 눈치가 없는 사람은 없었다.

“후우…… 일단 앉아 봐. 앉아 보래도.”

나와 권민헌 PD가 다시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서인하 부장이 이번엔 현준영을 보았다.

“현 PD도 앉아 봐. 일단 내가 중재를 할 테니 잘 이야기해 보면…….”

“아니에요. 부장님.”

현준영이 잔을 내려놓고서 다시 말했다.

그 표정은 좀 전까지 부들부들 떨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졌다.

평소 같은 그의 얼굴로 돌아갔는데 그 와중에 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 미소에는 냉정함마저 감돌았다.

“그렇게 안 맞는다면 어쩔 수 없지요.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잘 와 닿지 않았나 봐요. 그럼 제 탓이죠.”

제 탓은 무슨.

반성한다는 태도는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도 거기에 대해서 태클을 걸진 않았다. 태클도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니까.

“이봐, 현 PD…….”

서인하 부장은 끝까지 중재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현준영은 그 말마저 잘랐다.

“위에 보고해 주세요. 시즌4는 제가 팀을 꾸려 볼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고요.”

그러더니 그가 다시 잔을 들었다.

“어쨌든, 그럼 마지막으로 고생했다는 건배나 하죠. 어차피 강대한 씨나 여러분들이 퇴사할 건 아닐 테고. 앞으로 얼굴 마주칠 일도 있을 텐데, 이렇게 초상집 분위기로 끝낼 순 없잖아요?”

팀원들은 권민헌 PD와 나의 눈치를 보았다. 나는 권민헌 PD를 보았다. 그는 가라앉은 얼굴로, 잔을 들었다.

모두가 잔을 들었다.

나도 마지못해 잔을 들었다.

서인하 부장도 한숨을 푹 내쉬더니, 결국 자리에 도로 앉아 빈 잔을 채워 들었다.

“<당잠사> 시즌3 필리핀 편, 다들 고생 많았어요.”

“수고…… 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고생했다.”

씁쓸함이 감도는 인사.

<당잠사> 시즌3의 마지막이었다.

* * *

프로그램 제작 완료 이후에 으레 지급되는 휴가 기간 동안, 나는 원룸에 드러누워서 멍하게 지냈다.

뭐랄까.

이젠 아예 <당잠사>라는 브랜드에 관여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뭔가 한 시대가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착잡하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하고.

참으로 복잡한 심정이었다.

사실 회식 날 대형사고를 쳤다는 생각에 이불킥도 했다.

그 대형사고를 친 다음 날 아침에는 출근하기도 싫었다.

어머니 용돈만 생각하며 어렵게 출근했더니, 현준영은 보이지 않았다.

권민헌 선배 말로는 전날 짐을 싼 것 같다고 했다.

새 팀에 합류하기 전에는 제작부 사무실에 한번 들러야 했는데, 거기서도 현준영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휴가를 맞이했다 보니 더 찝찝함이 컸다.

멍하니 하루하루 까먹다가 어느새 휴가 마지막 날이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사람에게 메시지를 받았다.

[엑시트최효명: 형, 휴가 잘 보내고 있어요? 오늘 뭐해요?]

[엑시트최효명: 일 없으면 준혁이 형님이랑 한잔 콜?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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