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16화 (16/200)

16화 아이템 '변수 보기'

[2,416P/2,416P]

내가 현재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는 2,416.

전에 ‘상점’ 설명을 봤던 만큼, 사용 방법은 익히 알고 있었다.

다만, ‘상점’ 기능을 활용하기 전에 필요한 게 있었다.

AGD 앱으로 확률을 보는 데에는 제약이 존재한다.

세상 만물의 확률을 알려 주지만, 사용자의 이해도에 따라 확률 정확도가 달라진다.

내가 정보를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는가. 또 필요한 것을 얼마나 연구했는가.

그에 따라 더 명확한 수치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정확한 확률을 도출하려면 조금이라도 더 필리핀에 대해서 알아야 했다.

그래서 팀 상위층 사이에서 회의가 오가는 중에, 나는 여행사 자료나 블로그 검색 따위를 해서 필리핀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

그중엔 알고 있던 것도, 새로이 알게 된 것들도 있었다.

또 기획서에 포함시키면 좋을 것 같은 것들도 찾을 수 있었다.

벼락치기였지만 충분히 효과를 봤다.

“음…… 그래도 뭔가 좀 부족한데…….”

현준영이 버릇처럼 볼펜으로 기획서를 톡톡 두들기는 사이, 나는 준비를 끝마쳤다.

나는 옆에서 보이지 않게 주의하면서 ‘상점’의 아이템 리스트를 확인했다.

[객관식: 확률 보기 개수를 일시적으로 늘린다.]

[변수 보기: 확률 변동에 필요한 변수를 보여 준다.]

[너 자신을 알라: 부족 확률에 대한 원인 변수를 알려 준다.]

.

.

.

[적립 포인트 부족으로 정보를 열람할 수 없는 아이템입니다.]

아이템들의 상세 설명들도 미리 봐 두어서, 지금 상황에 어떤 아이템을 써야 할지는 이미 결정했다.

리스트를 내려 터치했다.

[아이템 ‘변수 보기’를 사용하였습니다.]

[사용 포인트: 1,000P]

[현재 사용 중인 [‘<당신이 잠든 사이> 시즌3가 시즌2만큼의 시청률을 기록할 확률’의 변동에 필요한 변수를 표시합니다.]

[확률 구성에 가장 비중이 큰 중요 변수만을 표시합니다.]

[중요 변수: 촬영 장소]

앱의 푸시와 함께 시야에 변화가 생겼다.

고개를 들어 노트북 모니터를 보자, 커서와 같은 화살표가 기획서의 글자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 가지가 아니었다.

PPT 페이지를 넘기면서 화살표가 가리키는 글자를 전부 확인했다.

역시 생각대로였다.

모든 화살표가 미션이나 숙소를 가릴 것 없이, 촬영이 이루어지는 장소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물론 개중 화살표가 떠 있지 않은 곳도 있었다.

그 촬영 장소는 괜찮다는 의미겠지만, 나머지 표시된 곳들은…….

한 번 더 기획서를 훑는 사이, 화살표들이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곧 화살표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아이템 ‘변수 보기’의 사용이 완료되었습니다.]

[현재 적립 포인트/사용 가능 포인트]

[2,416P/1,416P]

마지막 사라질 때까지 촬영 장소를 훑은 뒤, 나는 생각에 잠겼다.

대충 감이 왔다.

변수 표시가 의미하는 게 무언지.

‘촬영지’가 아니라, ‘촬영 장소’가 문제인 거다.

필리핀 자체는 괜찮다. 그러나 세세한, 미션이 이루어지는 곳, 숙소, 식당 등의 장소가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나는 여행사 자료에 포함되어 있던 지도를 열었다.

“왜 그래?”

내가 혼자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자 박주영 선배도 흥미가 돌았는지 나를 보았다.

난 지도의 한곳을 가리켜 슬그머니 보여 주었다.

그 위치를 본 박주영 선배도 지도와 기획서를 번갈아 보더니 속삭였다.

“너 설마 또 나서려고?”

“방송 말아먹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요?”

“그건 그런데…….”

박주영 선배의 반응은 좋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도 회의는 쳇바퀴만 돌 뿐이다.

이대로 회의를 못 본 척 넘기고 나면, 이대로 방송이 망할 확률을 내버려 두면 어떻게 될까.

뭐, 본방 전까지 의외의 곳에서 내가 인지하지 못한 대박이 터질 가능성도 있다.

어쩌면 회의를 거쳐 보완되거나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확률을 본 이상 방관자가 되고 싶진 않았다.

내가 나선다고 해서 포털 사이트에 내 이름이 화제가 되는 것도 아닐 테고, 내 이름이 알려질 것도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가 속한 팀인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말은 해봐야죠.”

무엇보다 마땅한 대안을 누구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

필리핀이라는 수를 내민 현준영도 말도 못 내고 있는 건 매한가지였다.

나는 박주영 선배가 말리기도 전에 일단 손을 들었다.

“저, 현 PD님.”

현준영 PD를 비롯해 모두가 시선을 들었다.

“이름이…… 뭐였죠?”

“강대한이라고 합니다.”

“아, 그래. 대한 씨. 아직 입사 1년이 안 됐다고 했던가요?”

“이제 곧 2년차입니다.”

“그래요.”

현준영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나를 다시 보았다.

“그런데 왜?”

그 질문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었다.

무슨 의견이 있느냔 의미보다는 너 따위가 왜 갑자기 나서느냔 의미가 더 커 보였다.

“촬영 장소에 대해서 의견을 좀 드리고 싶습니다.”

그치만 세상 뭐 있나. 일단 저지르는 거지.

옆에서 선배가 굳은 얼굴로 나를 보다 현준영 쪽을 보았다.

현준영은 여전히 볼펜을 톡톡 두들기고 있었다.

잘은 몰라도 불만스러워한다는 것만은 알겠다.

현준영이 뭐라고 입을 달싹였다. 그때, 그보다 빨리 유수현 작가가 먼저 말했다.

“강 PD는 아직 경력은 길지 않은데, 지난 시즌에서도 많은 도움을 줬어요. 한번 의견을 들어보는 게 어떨까요.”

방수정 PD와의 회의 때보다 훨씬 더 정중한 태도.

유수현 작가 정도 짬이어도 현준영이라는 PD가 쉽지 않음을 단적으로 알려 주는 장면이었다.

현준영은 둥그런 턱선을 몇 번 쓰다듬다가.

“뭐, 그래요. 지금은 의견이 하나라도 더 있어야 하니까. 뭐죠?”

됐다. 떨떠름한 대답이라도 허락은 떨어졌으니.

나는 노트북을 들고 현준영 가까이로 갔다.

“지금 말씀 나누시는 부분이, 아무래도 세세한 촬영 장소들이 기존 그림들과 많이 겹치고, 또 신선한 이미지를 주기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건 맞아요.”

“그래서 좀 찾아봤는데요…… 섬 투어는 어떨까요.”

필리핀에는 유명한 섬들이 많이 있다. 당장 <당잠사> 시즌2 팀이 휴가차 다녀온 보라카이도 그랬고, 보홀, 세부 같은 곳도 누구든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큼 유명한 섬들이다.

“하지만 카미긴이나 파나이, 샤르가오처럼 한국인이 잘 모르는 곳도 있더라고요.”

“한국인은 잘 모르는 섬이라. 자료에 있던가요?”

“자료에는 이름만 실려 있는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직접 찾아봤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은 블로그나 영상들을 현준영에게 쭉 보여 준 다음, 기획서를 다시 열었다.

“이런 섬들은 아직 한국인들에게는 생소한 곳이기도 하고, 섬마다 또 특색 있는 풍경들이 있어서 신선한 이미지를 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각각의 섬을 순례하는 걸 미션으로 엮는다면, 투어처럼 서로 다른 그림도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고요.”

여기까지는 장점이자 어필할 수 있는 부분.

“다만 좀 걸리는 건 있습니다. 이 섬들 곳곳이 필리핀 본토에서 한 시간은 더 들어가야 하는 식이라, 시간 소비가 좀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미션을 엮어도 될 것 같네요. 출연진에게 알아서 찾아가라는 식으로.”

옆에서 유수현 작가가 지원사격을 해 주었다. 슬쩍 쳐다보자 한쪽 눈을 깜빡이는 것으로 그녀가 대답을 대신한다.

“그래도 전체 촬영을 가져가는 것은 어려울 테고, 사흘 정도의 기간을 이용하면 재미난 그림이 나올 것 같습니다.”

“으음…….”

현준영은 의외로 쉽게 고민하는 얼굴이 되었다.

설득하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좀 더 쉬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괜찮은 기획이라고 생각됩니다, PD님.”

반대편의 권민헌 PD도 나섰다.

“방금까지 저희가 한 이야기는 전부 필리핀 본토로 한정돼 있었는데, 나쁘지 않네요. 안 그래도 필리핀 섬 곳곳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고 아는데, 타이밍도 좋을 것 같아요.”

그가 내민 것은 자신의 스마트폰이었다.

그사이 필리핀의 섬들을 검색해 본 모양이다.

“으으음…….”

3명이 그렇게 어필을 하자, 현준영의 얼굴에 더욱 고심이 찼다.

뭐랄까. 방수정 PD만큼의 결단력은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결정권이 있다는 건 변함이 없으니, 이때 밀어붙여야 했다.

[70%]

나는 내가 애착을 느끼는 <당잠사>를 위해, 이 애매한 수치를 어떻게든 상승시키고 싶었다.

“원하신다면 조금 더 자료를 찾아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랑 일했던 여행사에 부탁하면 자세한 자료를 보내 줄…….”

“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내 말을 자르고서, 현준영이 고개를 들었다.

“자료는 내가 더 요청할 테니까 그쪽이 신경 쓸 건 없고. 확실히, 괜찮아 보이네요. 써먹을 그림도 많은 것 같고.”

[78%]

꽤 큰 폭으로 확률이 상승했다. 드디어 70%대 후반까지 올라간 것이다.

“유 작가. 내일까지 내가 자료를 달라고 할 테니까, 그거 기반으로 동선이랑 촬영 가능 일자 알아봐요. 권 PD는 지금까지 이야기 나눈 걸로 2차 기획서 내일까지 정리해서 아침에 내 자리에 올려두시고.”

“아…… 내일 아침까지 말입니까?”

모두가 시계를 슬쩍 보았다.

마라톤 회의를 하다 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우리한테 시간이 많았던가요? 확정하고, 윗선에 결재받고, 그러고 해야 할 텐데?”

“아, 알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그렇게 알고.”

현준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 이사님이랑 저녁 약속이 있어서 먼저 나가 볼게요. 내일부터 또 열심히 해 봅시다, 우리.”

그러더니 자신의 짐을 챙겨 들고 쌩하니 회의실 밖으로 사라졌다.

좀 전까지 뾰족한 수가 없어 골치 아파하던 사람의 행동력 같지는 않았다.

“마치 회의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새네.”

권민헌 PD가 툭 내뱉은 말에 모두가 공감한다는 듯 끄덕거렸다.

“이사님과 자리면 중요한 자리겠지. 아마 괜찮은 수가 안 나왔으면 그냥 그대로 가자고 했을 거야.”

“생각해 보면 현 PD님, 필리핀으로 촬영지 바꾸자는 것 말고는 이렇다 할 의견이 없었잖아요?”

모두가 공감하다는 듯 재차 끄덕거렸다.

“쉿. 자제해.”

유수현 작가가 권민헌 PD를 보며 한소리 하고는, 아직 서 있던 나를 돌아보았다.

“대한아, 잘했어. 네가 또 우리 팀 살렸다.”

“어…… 아닙니다. 괜히 선배님들 힘들게 해 드린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힘들게 하긴. 다 잘해 보자고 하는 건데. 정 미안하면 권 PD가 기획서 정리하는 것 좀 도와줘.”

“예. 물론입니다.”

유수현 작가가 내 팔을 툭툭 두들겨 주고는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자, 퇴근 시간 다 돼서 할 말은 아닌데. 현 PD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 사정이 그다지 여의치 않은 건 다들 알지? 움직이자.”

“네.”

“알겠습니다.”

그녀의 지시에 현준영 PD가 말했을 때보다 모두가 싹싹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쩐지 그 모습이 현준영이 우리 팀에 녹아들지 못했다는 증거처럼 보였다.

* * *

결국, 그날 제대로 퇴근하지 못했다.

몇 시간 뒤 현준영의 연락을 받은 유수현 작가가 필리핀 관광섬에 대한 자료들을 받아 넘겨주었다.

작가진에서 자료들을 검토하여 미션, 촬영 일정 등을 따지는 사이에, 권민헌 PD와 나는 컴퓨터 앞에 붙어서 PPT를 만졌다.

[‘<당신이 잠든 사이> 시즌3가 시즌2만큼의 시청률을 기록할 확률’의 사용을 종료하였습니다.]

[100% 확률을 달성하지 못하였습니다.]

[포인트가 적립되지 않습니다.]

[‘서인하 부장 결재가 한 번에 통과될 <당신이 잠든 사이> 시즌3 2차 기획서 완성’에 대한 확률 보기를 사용합니다.]

AGD의 도움을 받아, 권민헌 PD에게 이것저것 의견을 개진했다.

권민헌 PD는 대부분 내 의견을 수용해 주며 기획안을 고쳤다. 지난 시즌부터의 내 활약을 잘 알고 있다면서.

좀 낯부끄러웠다.

늦은 새벽, 혹은 이른 아침.

뻑뻑한 눈을 한참 감았다가 떴는데, 드디어 ‘100%’ 확률이 나타났다.

[‘서인하 부장 결재가 한 번에 통과될 <당신이 잠든 사이> 시즌3 2차 기획안 완성’의 100%를 달성하였습니다.]

[현재 적립 포인트/사용 가능 포인트]

[2,643P/1,643P]

권민헌 PD와 하이파이브를 하자, 사무실에 있던 다른 팀원들도 모두 힘없이 박수를 보탰다.

그리고 아침.

회사 샤워실에서 겨우 씻고, 아주 잠깐 눈을 붙이고 하는 동안에도 현준영은 나타나지 않았다.

기획안에 자기가 직접 관여할 생각은 전혀 없는 모양이다.

그는 지각하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푸석푸석한 얼굴로 나타났다.

“음, 그래요.”

그 뒤에 기획안을 확인하더니, 짤막한 말만 남기고 위층에 다녀왔다.

“결재 났어요. 출연진에 일단 1차 연락 돌리고, 가일정에 따라서 협의하세요. 아니지. 내가 한번 보자고 했다 하고 약속 잡으세요.”

그렇게 지시를 내렸다.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출연진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그것마저 내팽개치면 어떡하나 하고 다들 은근히 걱정하던 중이었다. 다행이었다.

시작은 삐걱대긴 했지만 어쨌든 <당잠사> 시즌3는 슬슬 제작되기 시작했다.

권민헌 PD와 나는 현준영이 자리에 앉은 것을 기다렸다가, 간단히 아침이라도 먹고 오겠다는 이야기를 하러 움직였다.

그런데 그때, 다가오는 나를 먼저 발견한 현준영이 말했다.

“강 PD, 별로 바쁜 일 없죠?”

막내가 그렇다.

일단 시키는 게 없어도 찾아서 일을 만들어야 한다지만, 사실 정해진 일은 없다.

그렇다고 그걸 냉큼 긍정해야 하나 하고 생각하는데 현준영이 먼저 말했다.

“출연진들 만날 때, 날 따라다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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