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스페셜 촬영
“이른 아침부터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이 정말 마지막이네요.”
방수정 PD가 즐겁게 인사를 나누면서 출연진들과 인사를 하고 다녔다.
옆에서 카메라가 돌아가고, 카페 안에서는 아직 분주하게 촬영 준비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곳은 홍대의 스튜디오형 카페.
마지막 촬영을 위해서 섭외한 곳으로, 유럽풍으로 디자인된 카페였다.
파리 로케를 한 우리 팀과 딱 맞는 곳이었다.
“민희가 이런 데는 기막히게 찾아낸단 말이야.”
유수현 작가가 그런 말을 남기고 가서, 이 카페를 섭외한 사람이 이민희라는 걸 처음 알았다.
반나절 동안 전세 낸 카페에 신경을 써서 자리를 배치했다.
방송에는 시간만 알려 주고 자유롭게 도착하는 형식처럼 나갈 테지만, 실은 원활한 촬영을 위해서 제작진과 매니저들 사이에 도착 시간을 어느 정도 조율한 상태였다.
“이쪽에 앉으세요.”
세팅이 끝나자 방수정 PD가 카페 안으로 서열이 가장 높은 출연자를 모시고 왔다.
그러더니 그녀가 맞은편에 앉으면서 자연스럽게 근황 이야기가 오갔다.
분위기가 잡히자 카메라, 소품 배치까지 끝낸 제작진은 몇 명만 남겨 두고 자연스레 밖으로 빠졌다.
리얼리즘이니 뭐니, 자연스러움을 중시하는 요즘 예능 유행에 맞춰, 카페 내부 상황은 많은 제작진 없이 고정 카메라로만 촬영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제작진은 밖에서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3번 마이크 소리가 좀 작은 것 같은데 올려 봐.”
“5번 카메라 쪽에 빛이 반사되는데 뭐 가릴 거 없어?”
음향팀과 카메라팀이 가끔 바쁘게 설정을 바꾸거나 배치를 수정하던 중에,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엑시트최효명: 형! 저 5분쯤 뒤에 현장 도착할 듯!]
[엑시트최효명: (만세)]
[ㅇㅇ]
늘 생각하지만 이모티콘 참 잘도 쓴다.
확실히 나랑은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다.
“최효명, 5분 뒤에 도착이랩니다.”
“오케이. 음향팀 준비해.”
방수정 PD를 대신해서 현장을 조율하고 있던 선배 PD가 지시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 골목으로 밴이 미끄러져 들어왔다.
안에서 내린 것은 최효명.
가벼운 캐주얼 슈트 차림의 늘씬한 아이돌이 내리자 현장이 갑자기 환해졌다.
여성 제작진이 어머 하는 얼굴로 쳐다보던 중에, 음향팀 막내가 빠르게 다가가 마이크를 채웠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최효명은 제작진들과 싹싹하게 인사를 하면서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나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안으로 들어가라고만 해 주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냉큼 카페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선배님들! 안녕하세요!”
모니터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조금 달라졌다.
그전까진 조곤조곤하게 대화를 나누는 분위기였는데, 최효명이 등장함으로써 스튜디오 예능 같은 떠들썩함이 나타났다.
“효명이 쟤, 친화력 하나는 타고났나 봐.”
“갑이네요, 정말.”
“저런 스튜디오 예능으로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다른 PD들과 카메라 감독들이 그렇게 평가하는 소리를 들으니 어째 내 콧대가 올라가는 기분이다.
크흥흥, 하는 소리를 낼 뻔한 것을 꾹 눌러 참는 중에 다른 출연진도 도착했다.
그렇게 도착한 출연진들이 각자 빈자리에 앉고 서로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촬영이 시작되었다.
인원이 늘어날수록 카페가 북적대기 시작했다. 어느새 8명의 출연진 중 7명이 모였다.
우리가 이상함을 감지한 것은 그즈음이었다.
출연진과 이야기를 나누던 방수정 PD가 시계를 보는 듯하더니, 바깥을 향해 눈짓으로 사인을 보냈다.
서브PD 선배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작가팀에 이야기했다.
“야, 류준혁 확인해 봐.”
이상한 것은 류준혁 때문이었다.
도착할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아직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류준혁은 오늘 오전에 광고 촬영이 미리 잡혀 있어서, 그 촬영 후에 합류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물론 스케줄을 조율할 대로면 이미 도착해도 도착했어야 할 시간이었다.
좀 떨어져서 통화를 시도하던 작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쪽으로 왔다.
“매니저가 전화 안 받는데요?”
“뭐? 다시 해 봐.”
“이미 두 번 해 봤어요. 안 받아요.”
결국 심상찮은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선배 PD는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하는 모습이다가, 결국 헤드셋을 벗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그는 방수정 PD와 함께 카페 밖으로 다시 나왔다.
“뭐? 류준혁 위치 확인이 안 돼?”
“예. 매니저가 전화도 안 받습니다.”
“알았어. 내가 해볼게.”
방수정 PD가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녀가 인상을 찌푸리며 신경질적으로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수현이 좀 나오라고 해.”
안에 남아 있던 유일한 작가인 유수현 작가도 결국 바깥으로 불려 나왔다.
“촬영 끊어 갈까요?”
“아니, 일단 그냥 둬.”
카페 안은 분위기가 좋았다.
최효명이 마치 MC처럼 진행을 잘 해 주고 있었다.
“너든 나든 한 명은 안에 있어야 할 텐데.”
유수현 작가가 모니터를 힐끔 보며 걱정스러워했다. 방수정 PD도 잘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제작진을 둘러보았다.
“류준혁이 보이콧을 한 것 같아.”
“예?”
“류준혁 씨가요?”
방수정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에 제작진이 모두 놀랐다.
“그래. 그러니까 일단 류준혁 없이 오늘 촬영 간다고 생각해. 통화는 다시 시도해 볼 텐데, 안 되면 어쩌겠어. 그냥 가야지. 수현아, 일단 안에 가서 이야기 좀 잘 전해 줘.”
“알았어.”
유수현은 다시 바삐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류준혁 씨가 앞선 촬영이 많이 길어지나 봐요.”
이윽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소리가 마이크 너머로 전해졌다.
그 음성을 끊듯이 방 PD가 지시했다.
“너는 거기 회사 쪽에 알아 봐. 류준혁 매니저 다른 번호 아는 사람?”
비상이 걸렸다.
조금이라도 연차가 있는 PD, 작가들은 전화기를 뒤져서 류준혁과의 소통 창구를 수소문했다.
거기서 나와 박주영 선배는 제외되었다.
모니터링 할 만한 마지막 경력자가 선배뿐이고, 인맥과는 거리가 먼 나였기 때문이다.
“저번에 류준혁 매니저가 찾아온 게 아무래도 출연료 딜이 아니었나 본데.”
“그러게요……. 단순히 출연료 딜이면 이렇게까진 안 하지 않나요?”
모니터링을 하면서 우리가 그렇게 수군대고 있을 때, 연락에 실패한 이민희가 뒤쪽으로 와 목소리를 낮추어 이야기해 주었다.
“들어 보니까 그게 아니래요. 출연료 때문이 아니라 방송에서 류준혁 비중이 너무 없다고 항의한 거래요.”
“뭐? 정말?”
“너무 효명 씨만 보인다 이거죠. 이번에 찌라시 뿌린 것도 거기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이민희가 설명해 준 상황에 나는 어이가 없어졌다.
편집은 어디까지나 공정하게 진행되었다.
시청자들의 판단도 그랬다. 시청자 반응이 좋았던 것은 그저 최효명이 방송을 잘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류준혁 분량을 늘렸을 때, 방송이 늘어진다는 평가를 들었다.
그런데 그거 때문에 그 류준혁이 최종 촬영을 보이콧했다고?
“류준혁 그렇게 안 봤는데, 양아치네?”
“그쵸? 그런 뒷소문은 전혀 없는 사람이었는데.”
나보다 방송 연차가 높은 선배와 이민희도 실망했다는 듯 이야기하는데 나도 마찬가지였다.
촬영본에서 봐도 류준혁은 성실하게 임하는, 아주 이미지 좋은 배우였는데.
어쨌든 당장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박 PD님은 아는 사람 없어요? 류준혁 본인도 지금 전화를 안 받는다는 것 같은데.”
“나? 글쎄…… 없는 것 같은데…….”
선배가 스마트폰에서 주소록을 찾아보는 것을 보고, 나도 가만있기가 뻘쭘해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래 봤자 방송 업계 사람은 내가 더 모르는데, 나한테 류준혁과 연결된 전화번호가 들어 있을 확률이…….
[89%]
……있다고? 미친?
시야에 홀연히 숫자가 떠오르면서, 푸시가 연속으로 떴다.
[‘확률 보기’를 사용합니다.]
[‘배우 류준혁과 통화가 가능한 번호 찾기 확률’을 표시합니다.]
“저, 저기. 잠깐만요.”
“대한 씨? 왜? 헉, 혹시 번호 알아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좀 찾아보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홍대 어딘가 구석진 골목으로 갔다.
확률이 ‘89%’라면, 꽤 높은 확률로 류준혁과 통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러 변수가 있겠지만, 아주 믿을 만한 숫자였다.
문제는 주소록에 있는 번호 중 어딜 거쳐야 할지 모른다는 건데,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난 숫자를 주시하면서, 주소록에 저장된 번호 중 가능성 높은 것부터 하나씩 터치했다.
[56%]
[34%]
[67%]
.
.
[12%]
말도 안 되는 확률들로 변화하면서, 리스트를 죽죽 내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97%]
갑작스럽게 확률이 폭증했다!
이 번호로 연락할 시 류준혁과 닿을 확률이 무려 ‘97%’.
나는 지체하지 않고 전화를 걸었다.
초조하게 만들 만큼 한참 신호가 간 뒤,
“네, 여보세요. 수해랑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수해랑.
얼마 전 최효명과 함께 간 그 일식집이었다.
최효명이 아니었다면 모르고 살았을 분위기 좋은 일식집. 맛도 좋아서, 언젠가 한번 가족이랑 같이 가야겠다 싶어서 번호를 저장해 두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확률이 이 일식집에 쏠려 있었던 것이다.
“수해랑이죠?”
“예, 맞습니다. 예약하시겠어요?”
“아…… 그게 아니라.”
뭐라고 해야 하지. 에이, 몰라. 그냥 철판을 깔자.
“여기 방송사 NBS 예능팀입니다만, 혹시 류준혁 씨…….”
거기까지밖에 말하지 않았는데,
“아, 류준혁 씨 찾으세요? 지금 개인실에 계시는데, 누구라고 알려 드릴까요?”
나는 만세를 지를 뻔했다. 괜한 흥분에 손이 벌벌 떨릴 것도 같은 것을 억누르면서 침착하게 이야기했다.
“<당잠사> 팀이라고 알려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당잠사>요? 아,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수화기 너머 소리가 잠깐 끊겼다.
나는 그사이 통화를 스피커폰으로 바꾸고 급히 골목을 빠져나와 방수정 PD를 찾았다.
다행히 그녀는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여전히 어디로 전화를 하는 듯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난 급히 내 스마트폰을 가리켰다.
방수정 PD가 눈이 커지더니 급히 내 쪽으로 왔다.
“예. 류준혁입니다.”
그 순간 전파 너머에서 류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류준혁 씨. 안녕하세요, 여기 <당잠사> 팀입니다.”
“<당잠사>요? 혹시 <당잠사> 팀 어느 분이시죠? 제가 보통 방 PD님과 통화를 하다 보니…….”
“강대한 PD라고 합니다. 아, 방 PD님 바로 바꿔 드리겠습니다.”
난 재빨리 스마트폰을 건네주었다.
방수정 PD가 허겁지겁 내 스마트폰을 받아 들고 통화를 시작했다.
이 사태는 금세 제작진 전체로 퍼져 나갔다.
방 PD는 주변이 시끄러워지는 것을 고려해 촬영 버스 뒤쪽으로 돌아 들어갔다.
덕분에 설명은 내 몫이었다.
“뭐야, 찾았어? 류준혁 씨?”
“예. 방금 류준혁 씨랑 통화가 되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찾았대? 회사에서도 어디 있는지 안 알려 주던데?”
“매니저도 아예 다른 지역에 있다 그러고.”
PD, 작가 할 것 없이 몽땅 투입되어 류준혁의 행방을 찾았는데 찾지 못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내가 그를 찾아냈으니 모두가 신기하게 생각했다.
아, 열심히 일해도 문제네. 이걸 뭐라고 설명해.
확률 알려 주는 앱 덕분에 찾았다고 할 수도 없고…….
“최근에 알게 된 일식집 하나가 있는데, 전에 갔을 때 류준혁 씨도 온다고 해서 혹시나 싶어 전화를 했더니…….”
내가 생각해도 ‘이 편지는 영국에서……’로 시작하는 행운의 편지 설명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달리 할 말 또한 없는 게 사실이었다.
“헐, 대박. 근데 딱 거기 있었다고?”
“진짜? 구라 아니고?”
나는 머쓱하게 웃어만 주었다. 더 자세하게 설명할 수도 없었는데, 다행히도 그럴 일은 없었다.
“모르셨다고요?”
버스 뒤에서 터져 나온 방수정 PD의 목소리에 제작진의 신경이 전부 그쪽으로 쏠렸던 것이다.
“분명히 오늘이라고 전달 드렸잖아요. 예. 아니요, 저희는 날짜 바꾼 적 없어요.”
황당하다는 기색이 역력한 방수정 PD의 목소리.
그녀는 한참 더 통화하더니.
“네. 지금 바로 와 주세요.”
도로 우리 앞으로 나왔다.
제작진이 전부 그녀만을 쳐다보고 있었던 터라 그녀는 흠칫 놀란 모양이었다.
도로 내게 스마트폰을 넘겨준 그녀가 말했다.
“류준혁은 지금 개인 미팅 중이고 지갑도 집에 놓고 나왔대. 개인 일정 때는 원래 스마트폰 놓고 다닌다고 하고. 다행히 상암이라 그리 멀지 않아서 택시 타고 바로 온다니까, 도착하면 택시비 내줘.”
“예!”
“그리고 강대한.”
방수정 PD는 모든 제작진이 보는 앞에서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어깨를 툭 쳤다.
“잘했어.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예.”
폭풍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로부터 약 25분 뒤.
류준혁이 현장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