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찌라시라는 것
놀라서 하마터면 뿜을 뻔했다.
‘96%’라니.
티저 작업을 하면서도 처음부터 이런 확률인 건 보지 못했다.
‘인연’이 발매일에 음원 사이트들 1위를 찍을 확률이 무려 ‘96%’라는 말이었다.
“다음 주에 기대 곡들이 많이 발매된다고 하더라고요. 쟁쟁한 분들 곡이 많아서, 저희 멤버들끼린 그냥 발매하는 것만으로도 기쁘게 생각하려고요.”
싱글 잘 내면 되죠, 뭐. 그렇게 최효명은 웃었다.
데뷔 이후로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중일 텐데도, 그 인기에 취해 있거나 하는 인상은 전혀 없었다.
“잘될 겁니다.”
난 그렇게 말해 주었다.
“이 노래, 대박 날 거예요.”
그것은 확신이었다.
“야, 대한아.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 노래 잘 알아?”
“그러게요. 우리 모르는 사이 음악 전공이라도 했어요?”
선배와 이민희가 장난스레 받아쳤지만, 나는 말을 바꾸지 않았다.
“전 잘 모르긴 해도, 그래도 그런 감이 옵니다. 이 노래, 음원 사이트 1위 할 거예요.”
물론 4%는 부족한 확률이지만, 이 상황에서 4%의 변수가 대단하진 않을 것 같았다.
앱이 알려 주는 확률이 100%는 아닐지언정, 나는 그것이 100%라고 확신했다.
“대박 날 겁니다.”
“……나 요새, 이상하단 말이야.”
내 말에 대꾸한 것은 박주영 선배였다.
“이 녀석이 하는 말에 이상하게 신뢰가 가. 근거는 없는데, 뭔가 그럴싸하게 느껴진단 말이지.”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나도 그래요. 대한 씨가 요새 감이 너무 좋잖아요.”
이민희가 선배의 말을 거들었다.
최효명이 조금 흥분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럼 믿어도 될까요? 강 PD님 감을?”
여기에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이렇게 기대에 찬 눈으로 쳐다보면 좀 불편한데.
“뭐, 대박 안 나면 대한이가 사재기라도 해 주겠죠. 책임지라고 해요.”
“그래요. 그렇게 바람 잡았음 책임져야지. 아, 저희 보너스도 받거든요.”
선배랑 이민희가 먹잇감을 노리는 사자처럼 달려들자, 나는 더 물릴 수가 없었다.
“그래요, 효명 씨. 제가 책임지죠.”
술기운 탓이라고 하고 싶은 호언장담 후에, 우린 모두 웃음을 터뜨리고 건배를 했다.
결국 그날.
본방을 스마트폰으로 함께 보고, 12시 가까이 술잔을 나누다가 우린 모두 형, 누나, 동생이 되어 헤어졌다.
[엑시트최효명: 오늘 감사했어요, 형! 음원 1위 먹으면 또 한턱낼게요! ㅎㅎㅎㅎ]
[그래. 1위 안 되면 내가 한턱낼게. 내 월급이 허락하는 데서.]
* * *
『엑시트, 선공개 신곡 ‘인연’! 7대 음원 사이트 1위 싹쓸이!』
『엑시트 과거 곡들 역주행 시작!』
『오전 10시, 1위 ‘인연’, 7위 ‘패션, 디자이어’ 점령!』
『금주 화제의 곡 ‘인연’, ‘엑시트’ 데뷔 5년 만에 음원 1위를 기록하다!』
엑시트의 선공개 곡 ‘인연’이 발매한 날.
아침부터 온갖 기사들이 쏟아졌다.
―명리더가 한 건 했다!!!!
―노래 개쩔ㅠㅠㅠㅠ
―감성 쩐다 진짜ㅠㅠㅠㅠ 이런 좋은 곡을 언제 또 숨겨놨대ㅠㅠㅠㅠ
―어제 라방 보니까 당잠사 갔다 온 다음에 바로 작곡했다더라
―그래서 근가 노래가 존나 진실성이 있네
―진실성 하면 또 우리 효명이 오빠지ㅠㅠㅠ
―엑시트가 드디어 빛을 본다!
엑시트의 팬클럽이 몽땅 출동한 듯이, 기사마다 그런 댓글들이 달렸다.
효명이가 술 마시면서도 딱히 이야기한 적 없는 정보들이 있어서 도움이 되는 댓글이었다.
“이야, 사재기 안 해도 되겠다.”
박주영 선배가 이야기했는데, 딱히 놀리는 투가 아니었다. 감탄했다는 어감에 더 가까웠다.
“진짜 어떻게 알았어요? 노래 좋긴 했지만 1위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이민희도 그렇게 물어 왔지만, 그렇다고 ‘앱 덕분에요’라고 할 순 없어서 그저 웃고 말았다.
기사를 본 직후에 효명이한테 메시지를 보내 주었다.
[1위 축하한다, 한턱 쏘는 거냐?]
[엑시트최효명: 당연하죠!(엄지척) 이게 다 형 덕분인데! 이번엔 한우 가실까요?]
[정산되면 불러ㅎㅎㅎㅎ]
내 인생에, 아이돌에게 한우를 얻어먹는 날이 오다니.
회의 시간에도 ‘인연’ 이야기가 나왔다.
“이번 엑시트 신곡 들어본 사람?”
방수정 PD가 그렇게 운을 띄우자, 회의에 들어온 대부분이 손을 들었다.
“저흰 지난번 만났을 때 들었습니다!”
“발매 전에 들은 유일한 사람들일걸요?”
박주영 선배와 이민희가 자랑을 하자, 선배들이 핀잔을 던지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곡, BGM으로 어때?”
방수정 PD가 스크립트를 넘겨서 이번 주 방영분 자료를 스크린에 띄웠다.
“여기, 류준혁이랑 최효명이랑 둘이서 밤에 맥주 한잔 하는 장면 있잖아. 발코니라서 야경도 깔리고, 여기에 깔면 딱 좋을 것 같은데.”
“좋은 것 같은데? 딱 시기도 좋고.”
“그렇지? 플래티넘에 확인해서 음악 수정해.”
음악 감독이 비명을 지르겠지만 방수정 PD는 쿨내가 진동할 뿐, 신경 쓰지 않았다.
결국 그 자리에서 플래티넘에 연락을 해서 사용 허락을 받고, 동시에 음악 감독에게 연락이 갔다.
그렇게 그 주 방송이 나간 후.
『엑시트 ‘인연’, 1위 고수!』
『엑시트의 곡들, 역주행을 멈추지 않는다!』
『‘인연’이 깔린 때 ‘당잠사’, 순간 최고시청률을 찍다!』
『‘당잠사2’ 최고 시청률 12.3% 기록!』
‘인연’은 일주일 넘게, 여타 쟁쟁한 가수들의 곡을 따돌리고 음원 사이트 1위를 고수했다.
음원 사이트마다 변동이 생긴 곳도 있지만, 가장 큰 음원 사이트인 ‘망고’에서는 1위를 고수하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인연’이 깔린 발코니 장면은 미편집 클립으로 만들어 온라인에 공개했고, 최고 조회수를 또 한 번 갱신했다.
『류준혁-최효명, 두 남자의 케미』
『선후배의 본보기, 류준혁♡최효명』
―남배우랑 그렇게 케미가 좋다던 류준혁이 또....
―준혁이형ㅠㅠㅠ 형 왜 또 멋있는데ㅠㅠㅠㅠㅠ
―야 근데 최효명도 좋은 듯. 둘이서 드라마 하나 안 찍나
―류준혁이 보스고, 최효명이 생짜 신입 조폭이고... 아 그림이 그려진다.
―감독들 어디 갔냐. 천만 배우들이 저기 있네.
클립 영상이 인터넷을 또 들썩이는 반응을 만들어 내자, 서인하 부장이 또 사무실로 내려와 치하해 주었다.
“강대한, 이거 진짜. 어디서 이런 복덩이가 굴러 들어왔냐.”
그가 내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고 간 사이, 다른 연출 선배들도 질투 섞인 축하를 해 주고 갔다.
마지막으로 방수정 PD가 내 자리로 와서는.
“수고했어.”
어깨를 툭툭 쳐 주며 말했다.
한때 그녀를 두고 안하무인에 고집만 센 사람이라고 생각한 게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역시 이래서 사람은 신중하게 봐야 하는 걸까.
그렇게 모두가 행복해하는 결과를 얻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방송을 만든 보람이 있는 듯했다.
하지만, 모두의 생각이 똑같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 * *
『인기 그룹 E의 리더 C가, 외국 촬영에서 스태프들에게 욕을 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
최근 예능을 통해 각광 받고 있는 중고 신인 그룹 E의 리더 C가 해외 촬영 중 스태프들에게 욕설 섞인 폭언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그다음 주.
편집회의 시간에 생각지도 못한 기사로 인한 안건이 하나 올라왔다.
찌라시 수준의 기사 때문이었는데, 거기 등장하는 인물이 누군지 우리 팀에서 모를 리가 없었다.
“최효명 이야기야.”
방수정 PD는 잘라 말했다. 박주영 선배가 물었다.
“최효명이 파리에서 우리 팀에 욕을 했었어요? 촬영 중에?”
“아니, 카메라는 전부 꺼진 상태였고, 숙박업체 직원이 헛소리를 해 대서, 최효명이 우리를 대신해 항의하다가 일어난 일이야. 프랑스어였고, 현지 스태프 말로는 욕하는 건 아니랬었어. 누가 악의적으로 퍼트린 것 같은데.”
그랬다면 다행인데. 루머가 안 좋은 쪽으로 확산되지만 않으면 좋겠다.
“방송에 타격은 없을까요?”
“큰일도 아니고 아예 신빙성이 없는 일이니까 금방 사그라들겠지. 어차피 찌라시잖아?”
일단 그렇게 위안을 삼으며 편집회의를 마쳤다.
하지만 일은 우리의 예상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인기그룹 C 리더, 평소 행실에 문제가 많아』
『폭언을 당한 파리 현지 직원, 단독 인터뷰!』
후속 기사가 계속 생산되었다.
그러자 댓글에서도 최효명의 이름이 간간이 이니셜로 언급되기 시작했다.
―CHM 아님?
―기사 보면 정황상 그게 맞는 듯
―설마 최읍명?
모두가 쉬쉬하는 분위기였지만, 그 와중에도 옹호하는 이야기는 있었다.
방송에 나온 최효명의 이미지가 워낙 좋았고, 5년 사이 알음알음 퍼진 인상도 괜찮았기 때문이다.
“일단 몇 개 기사는 더 확인했습니다만, 아직 걱정할 수준은 아닌 것 같습니다.”
편집회의 때 보고를 하자, 방수정 PD가 펜을 돌리다가 나를 다시 보았다.
“최효명은 뭐래?”
내가 최효명과 친해졌다는 건 이미 팀원이 다 알고 있었다.
“방송에 폐를 끼쳐서 미안하다던데요.”
“폐는 무슨.”
방수정은 잠깐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말했다.
“우린 우리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해. 싱글 준비나 잘하라고.”
“예.”
그렇게 회의는 마무리되고 일어섰다.
전부 나가는 줄 알았는데, 방수정 PD와 유수현 작가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눈치가 보여 얼른 테이블을 정리하며, 인사하고 회의실을 나서는데.
“황대훈이, 이렇게 나온단 말이지?”
문을 닫기 직전, 둘의 대화가 살짝 들렸다.
황대훈? 이름이 낯익은데.
내 자리로 돌아와서, 옆자리 박주영 선배에게 물었다.
“황대훈, 이름 익숙하지 않아요?”
“류준혁 매니저잖아. 저번에 왔었던.”
아, 그런가.
나는 그제야 기억해 냈다. 그 조폭같이 생긴 사람?
최효명과 다르게 류준혁은 방수정 PD가 직접 관리하는 출연자여서 나는 그 매니저를 직접 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 사람 이름이 왜 메인PD와 작가의 대화에서 언급되는 거지?
나로선 알기 어려워, 일단 다음 일을 위해 생각은 멈추었다.
그런데, 그날 다시 편집회의가 소집된 다음 방수정 PD가 이야기했다.
“일단 이번 주는 몸을 사리자. 최효명 부분은 조금 덜어내고, 류준혁 부분을 좀 더 살려.”
어라, 아침에 한 이야기와 다른데……?
“최효명 분량을 줄이는 건가요?”
때마침 이번 주는 최효명이 미션에서 활약하는 부분이 많았다.
스크립트 회의 때도 재밌으니까 충분히 살려 가자고 했고.
그러한 의문을 담은 질문이었는데, 방수정 PD는 냉정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기사가 우리 예상보다 훨씬 확산됐어. 위에서도 조금 조정해서 가자고 해. 어차피 시청률 좋으니까 호흡 조절하고 갈 타이밍이기도 하고.”
그게 맞는 선택일까 싶었지만, 우선은 넘어갔다. 나도 회사의 조직원인 이상 무턱대고 결정을 무시할 수만은 없으니까.
그래서 결국 7화는 새로이 편집되어 방송을 탔다.
시청률은 좋았다. 12%대를 유지했고, 더 올라가진 못했지만 떨어지지도 않은 적절한 숫자였다.
그렇지만.
―이번 주 좀 늘어지지 않냐.
―효명이 말이 중간에 잘린 거 같은데 나만 그럼?
―설마 이번에 뜬 그 찌라시 때문인가?
시청자 반응이 저번 회차들과 좀 달랐다.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도 편집이 다소 늘어지고, 지난 편들보다 흐름이 이상하다는 이야기가 다수였다.
물론 좋다는 이야기가 더 많았으나, 확실히 전 화들과 달리 비판하는 수가 늘어나 있었다.
나는 모니터링한 결과를 단체방에 띄워 두고, 방수정 PD 자리 옆으로 갔다.
“PD님. 최효명 부분 들어낸 장면들, 미방 클립으로 써도 될까요?”
최효명을 위해서 그 정도는 하고 싶었다.
미방분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얼마든지 클립으로도 할 수 있으니까.
클립 편집에 관해서는 나에게 맡긴다고 했으니 거기에 걸어 본 것이었다.
방수정 PD는 다소 고민하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가 대답했다.
“그래, 그렇게 해.”
그렇게 방송에 내보내지 못한 최효명의 활약을, 짧게 압축해 미방분 클립 영상으로 업로드했다.
반응은 좋았다.
―그래, 이런 게 보였어야지.
―방송에서 엄청 잘렸네.
―아니 ㅁㅊ 이걸 왜 본방에 안 넣고 클립으로 올려?
―제작진 도른?
제작진으로서 차마 댓글에 답글을 달 수 없었지만, 어쨌든 최효명에게 고개는 들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8화, 9화가 지나갔다.
10화 방영만을 남겨 둔 채, 우리는 새로운 촬영에 들어갔다.
스페셜 방송용 후일담을 위한 촬영으로, 모든 출연진이 다시 모이는 날이었다.
바로 그날. 일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