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주목받는 아이돌
회의실 안.
방수정과 유수현은 한 남자를 마주하고 있었다.
배우 류준혁의 매니저인 황대훈.
언뜻 보면 매니저가 아니라 건달처럼 보이는 인상의 그는, 이 바닥에서 매우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수정도 당잠사1 기획 때부터 미팅을 가져온 터라 그 점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가 이렇게 쳐들어온 이유도 잘 알았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희는 공정한 편집 과정을 거쳐서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공정이라. 설마하니 제가 그 공정성 문제를 거론해서 근간부터 문제 삼을 거라 생각하시나요?”
‘말투 한번 고약하네.’
방수정은 속으로 상대를 한번 쏘아 주었다.
3밀리 수준으로 짧게 자른 머리카락은, 조금만 인상을 써도 더욱 험악하게 보이는 효과를 준다.
꽤 오래 봐온 사이지만 아직도 적응이 안 되는 그 얼굴에, 수정은 비웃음을 머금었다.
“더군다나 공정한지 아닌지는 제작진이나 제가 결정하는 게 아니죠. 시청자들이 결정할 문제 아니겠습니까?”
“……무슨 말씀이시죠?”
“포털만 조금 둘러봐도 다 보이지 않습니까. 어딜 가나 최효명, 최효명뿐인데. 공정한 입장에서 편집하신 거라면, 왜 죄다 최효명 이야기밖에 없을까요? 아, 물론 그 친구 잘하긴 하더군요. 이름도 몰랐던 친구가 아주 날고 기더라고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우리 준혁이보다 잘할까요?”
그 오만하기까지 한 발언에 수정과 수현의 얼굴이 굳었다. 예상 못 한 바도 아니었건만 이렇게까지 쏘아붙일 줄은 몰랐다.
황대훈은 아랑곳하지도 않았다.
“생각해 보십시오. 능력으로 보나 인지도로 보나, 준혁이가 위입니다. 경력도 꼴랑 1, 2년 차이도 아니라고요. 그런데 이런 결과가 나오나요? 이래도 공정한 편집이었다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그는 혀를 쯧쯧 차면서 고개를 저었다.
“우리 준혁이 설득시켜서 시즌1부터 그렇게 꽂아 드렸는데, 참 섭섭합니다. 이거 원, 토사구팽도 아니고.”
억지다. 다시 듣고 곱씹어도 억지일 뿐인 이야기였다.
다만, 그 억지 사이에 딱 하나 맞는 말이 있었다.
배우 류준혁의 존재다.
<당잠사> 시즌1의 최초 마케팅 포인트가 바로 그것이었다.
『최고의 배우 류준혁과, 여행 예능의 마술사 방수정의 만남!』
그것만으로도 포털 검색어 1위를 했다.
개국공신이나 마찬가지인 류준혁이 없었다면 당잠사가 그렇게 빨리 자리 잡을 수는 없었으리라.
그렇기에 수정과 수현은 이 말도 안 되는 억지를 그냥 흘려넘길 수가 없었다.
“불쾌하게 생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류준혁 씨는 혹시 방송을 보고 어떻게 말씀하시던가요? 저희가 최대한 조치를 해 볼 테니 조금 힌트라도 주시면…….”
“준혁이야 뭐…… 아시잖습니까, 걔 성격. 별말은 안 했지만, 분명 속에 쌓아 두고 있을 겁니다.”
순간, 수정과 수현이 눈을 마주쳤다.
황대훈의 이 말은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류준혁은 아무것도 모를 가능성이 크단 뜻이다. 황대훈이 독단으로 쳐들어왔다는 말이라고 본다면.
“알겠어요……. 혹시 나중에라도 따로 코멘트 주신다면 저희가 최대한 반영하겠습니다.”
“뭐, 알겠습니다. 저희가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니고. 아무쪼록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리죠.”
황대훈은 그 말만 남겨 놓곤 쌩하니 회의실을 나갔다.
음료수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상태로.
그가 사라진 뒤, 수정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의자 깊이 등을 기댔다.
“한동안 조용하다고 했더니, 저 인간 또 난리네.”
“그러게…… 자기가 왜 나서는 거야?”
“매니저니까. 아마 회사에서도 한 소리 들었겠지. 거기도 지금 류준혁 말고는 딱히 이름값 하는 애들이 없으니까.”
시즌2 제작 시작 때만 해도 분명 류준혁이 다시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뚜껑을 따고 보니 웬걸, 최효명이 류준혁이 가졌어야 할 화제성을 다 가져가 버렸다.
더욱이 그 화제성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금방 해체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소속 그룹이 싱글 제작을 확정했다.
최효명 개인은 데뷔 후 첫 CF 계약 이야기도 오가는 상황이다.
류준혁의 회사에서는 배가 아파도 아주 장이 뒤틀릴 지경으로 아플 것이다.
“류준혁도 그만하면 충분할 텐데. 저건 누구 욕심일까?”
“뻔하지. 회사나 저 매니저.”
방수정과 유수현은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공유하다가, 일어섰다.
“일단 부장님한테 보고하고 올게. 애들한테는 말하지 마.”
“그래, 뭐. 다들 열심인데 찬물 끼얹으면 안 되지.”
* * *
나를 비롯한 팀원들이 불안에 사로잡혀 있을 때.
방수정 PD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굳은 얼굴로 자기 자리로 가더니, 이내 서류철을 가지고 사무실을 도로 빠져나갔다.
뒤따라 사무실로 들어온 유수현 작가도 금방 작가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작가실에서 이민희가 나오는 걸 발견했다.
그녀의 동선이 탕비실인 걸 확인한 나와 박주영 선배가 눈빛을 교환했다.
우리는 잽싸게 이민희에게 따라붙었다.
“뭐야, 무슨 일인데?”
“모르겠어요. 통 말을 안 해 주시네요.”
“류준혁 매니저면 벌써 다음 시즌 베팅하러 온 거 아냐?”
“뭐, 일리가 없는 건 아니죠.”
그렇게 말한 이민희가 검지를 입술에 물고 생각에 잠겼다.
“류준혁이면 반드시 안고 가야 할 패이니까 선수 치러 온 걸 수도 있긴 한데……. 근데, 그런 거면 말 안 해 주실 리가 없잖아요?”
이민희가 커피를 타려고 해서 나는 옆에서 붙어 도왔다. 듣다 보니 의문이 생기긴 했다.
“류준혁 씨야 당연히 캐스팅 1순위인데, 뭘 베팅하러 온 거죠?”
“얘가 뭘 모르는 소릴 하네. ‘야, 이…… 하하, 그래서 류준혁 안 쓸 거야? 얼마 줄 건데?’ 이런 베팅이지, 당연히.”
“아…….”
우와,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면 저런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지?
그 방향은 생각 못 했다. 하긴, 류준혁이 캐스팅되지 않으면 손해인 것은 <당잠사> 팀이다.
저런 역베팅을 할 상황일 수도 있겠구나.
“류준혁 씨가 그런 사람인 줄은 몰랐네요. 출연료 받는 배우로서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류준혁 씨가 아닐걸. 그 회사가 문제지.”
“회사요?”
“거기가 원래 그런 쪽으로 좀 이야기가 많은 회사야. 제작진 목줄 쥐고 출연료 부풀리기로.”
헐. 그건 또 몰랐다. 방송계에서 일하면서도 너무 가십에 귀를 닫고 있었던 걸까.
작가실에 대령할 커피가 전부 마련된 뒤, 이민희가 쉿 하고 손가락을 입에 댔다.
“정확한 건 아니니까 그냥 조용히 하고 있어요. 방 PD님이나 유 작가님이 어련히 말씀해 주시겠죠.”
박주영 선배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돌아왔지만, 역시 흥미를 잃지 못해 한동안 수군대야 했다.
* * *
5화가 방영되었다.
『당잠사2, 5화 만에 10% 시청률 돌파!』
5화 시청률은 무려 10.7%였다.
“아, 0.3만 더 나왔어도 11% 넘어갔는데 아깝네.”
박주영 선배가 그렇게 헛소리를 해 대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우리 NBS는 케이블 방송사라 시청률이 5%만 넘어도 대박이라고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5화 만에 10%가 넘었으니, 이건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옆동네 <신유람기>도 마지막 화에 이르러서야 10%를 달성했으니 엄청나게 고무적인 일이었다.
“얘들아! 보너스 나왔다!”
광고와 협찬 등등, 연속으로 완판되었다는 소리가 들리더니 6화 방영이 나가는 오늘 오전에는 서인하 부장이 직접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
모두가 보너스 명세서가 적혀 있는 봉투를 받아 들고 기뻐하고 있는 중에, 서인하 부장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마지막 화까지 10% 유지하면, 팀 전원 보라카이 간다!”
“우, 우와아아아!”
“진짜요?! 정말?!”
“포상휴가 가는 건 처음이야!”
아직 1년도 못 채운 나야 당연하지만, 나보다 몇 년은 더 경력이 쌓인 선배들도 포상휴가는 처음인 모양이다.
박주영 선배가 귀띔해 주기로는 드라마팀에서나 있을 법한 게 포상휴가란다.
그 말에 나까지 흥분해 버렸다.
“마지막 화까지 잘 부탁하마. 오케이?”
“예!”
서인하 부장은 즐겁게 웃은 뒤 방수정 PD를 데리고 사무실을 나갔다.
우린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한발 빠르게 보라카이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연출 쪽에서는 선배 중 1명이 시즌2 여행지로 보라카이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놀거리, 볼거리, 먹거리에 아주 빠삭했다.
“보라카이는 역시 해변이지. 아, 리조트 어디가 좋은지 알아봐야겠다.”
“잘 부탁해요, 선배.”
“선배만 믿습니다.”
우린 편집할 때보다 더욱 단합하여 선배를 쳐다보았다.
“야, 박주영. 강대한. 나와 봐.”
그때, 서인하 부장이랑 같이 사무실을 나갔던 방수정이 돌아와 우리 둘더러 손짓했다.
재빠르게 복도로 나가자, 방수정이 회의실로 우리를 이끌었다.
“오늘 최효명 만나러 간다고?”
“어, 네.”
나와 박주영 선배, 그리고 이민희까지 세 명이 최효명과 저녁 약속이 잡혔다.
최효명은 단단히 한턱 쏘겠다고 아주 각오가 대단했다.
방수정은 주변을 슬쩍 둘러보다가, 품에서 뭔가를 꺼내 우리에게 주었다.
“헐.”
선배가 받아서 쳐다보다가 넋 나간 듯 한마디를 흘렸다. 나도 옆에서 같이 보다가 눈을 크게 떴다.
서인하 부장의 이름이 적힌 법인카드였다.
“이, 이건……?”
“알지? 위에서 시즌3 오더 떨어진 거? 부장님이 최효명 꼭 잡아 오래.”
그런 자리가 아니었는데.
나는 놀란 얼굴로 박주영 선배를 쳐다보았다.
선배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볼 뿐이었다.
우리 둘을 보고 방수정이 피식 웃었다.
“너무 부담 갖지 마. 너희더러 반드시 잡아 오라고 압박 주는 건 아니야. 오늘 돈 좀 크게 쓸 일 있으면 그걸로 쓰라는 거야. 다음 시즌에 최효명이 합류하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니까.”
우리만이 아니라 서로한테.
방수정은 그렇게 말을 남기곤 회의실을 먼저 나갔다.
“저게 부담 갖지 말라는 거라고?”
“누가 봐도 팍팍 가지라는 소린데요…….”
벌써 위에 경련이 이는 것 같다.
하지만…… 역시 2002 월드컵의 응원 구호는 명언 중의 명언이었다.
꿈은★이루어진다.
“시즌3이요? 함께할 수 있으면 저야 영광이죠!”
슬그머니 던진 말에 최효명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오케이를 해 주었다.
박주영 선배랑 내가 더 당황했다.
“어, 아니. 효명 씨. 아직 딱히 정해진 건 아닌데…….”
“기사 봤습니다. 시즌3 제작 확정되었다면서요?”
그건 그렇지만.
“아직 출연진을 그대로 갈지 정해지진 않았습니다. 별문제 없으면 그렇게 되겠지만. 출연진들 개개인의 사정도 있고…….”
“제 사정은 아주 괜찮거든요. 회사가 안 된다면 싸워서라도 함께하겠습니다!”
그는 아주 밝게 웃으며 그렇게 말해 주었다.
하하, 서인하 부장의 법인카드를 가져 나온 게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여긴 상암동의 작은 일식집, ‘수해랑’.
최효명이 예약해 둔 개인실에 우리 넷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우리가 퇴근했을 때는 이미 최효명이 가게에 도착해 있던 상황이었다.
“여기 준혁이 형님이 맛있다고 알려 주셨는데, 다른 연예인들도 많이 온다고 하더라고요. 맛도 있고 해서, 꼭 한번 여러분께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바쁘지 않냐고 물었더니 오늘 저녁 약속을 위해 스케줄 안 잡았단다.
한층 더 부담스러웠다.
프라이버시가 지켜지는 공간에서 어느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분위기가 좋아진 다음에 장난스레 다음 시즌 출연 이야기를 꺼냈던 건데, 즉답도 이런 즉답이 없다.
“회사에서도 거절할 리가 없어요. 저희 신곡 내는 것도 다 <당잠사> 덕분인데, 다음 시즌도 할 수 있다면 더 좋을 일이 없지요.”
최효명의 표정은 너무나 밝았다. 이것이 검색어 1위의 위엄인가.
그저 빛빛빛이었다.
뭐, 덕분에 우리의 즐거운 저녁 시간은 더욱 즐거워졌다.
“아참.”
두어 병 술도 비어진 이후에 최효명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폰을 꺼냈다.
“저희 노래 녹음 끝났는데, 들어 보실래요?”
“어머, 싱글 나온다던 그거요? 들어도 돼요?”
이민희가 반색하며 달려든다.
“녹음 어제 끝났거든요. 싱글은 좀 더 걸릴 거고, 선공개 형식으로 하나 먼저 녹음했어요. 이 노래는 여러분께 먼저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그가 주섬주섬 음악 앱을 켜더니, 저장된 음악 파일을 재생했다.
“제목은 ‘인연’이에요.”
노래는 잔잔한 발라드였다. 요즘 같은 초여름 저녁에 잘 맞을 듯한 분위기의 노래.
조용히 음악을 즐기면서 듣던 중에 이민희가 물었다.
“이거 효명 씨가 작사 작곡 한 거예요?”
“어라, 어떻게 아셨어요?”
“전 사실 저번 노래도 좋아했거든요. 그거랑 풍이 비슷한 것 같아서.”
숨은 엑시트 덕후가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최효명이 작사 작곡까지 하는 줄은 몰랐는데.
그가 부끄럽다는 듯 손사래를 치는 걸 보니 진짜인 모양이었다.
“아직 배우는 중이라서 혼자 만든 건 아니에요. 회사 작곡가 형 도움받아서 만든 건데…… 괜찮나요?”
“청량한 분위기도 좋고, 멤버들 목소리도 잘 어울리고. 괜찮은 것 같습니다.”
박주영 선배가 그렇게 평하면서 언제 발매하는지를 물었다.
최효명은 다음 주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아직 발매도 하지 않은 아이돌의 음원을 미리 듣다니, 이것도 참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대박까진 아니어도 어느 정도 괜찮아야 <당잠사>에 누를 안 끼칠 텐데 말이에요.”
회사 입장에선 <당잠사> 반응이 좋은 지금 신곡을 내고 싶었으리라. 그래야 곡이 흐름을 탈 테니까.
“10위권은 충분히 들 것 같은데요?”
“대박 날 겁니다, 대박.”
그렇게 이야기하는 이민희와 박주영 선배에게, 최효명은 머쓱하게 웃어 주었다.
“저희가 데뷔 후로 아직 20위권에도 제대로 머물러 본 적이 없어요. 전 그냥 첫날 20위 안에만 들면 좋겠어요.”
그는 겸손하게 웃었다.
음악에 대해 잘 모르긴 하지만 ‘인연’은 참 좋은 노래였다.
가사는 긴 인생 동안 숱하게 만나는 사람과의 시간 중에서 너와 만난 것이 정말 큰 인연이라는 내용이었다.
매우 흔한 테마지만, 어휘 선택과 멜로디가 좋았다.
이런 노래면 10위권은 노려 볼 만할 것 같은데.
그 순간, 나는 노래가 재생되고 있는 최효명의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물건이 있긴 하네.
이 노래가 대박 날 확률도…… 볼 수 있을까? 발매일에 음원 사이트들 1위를 찍었으면 좋겠는데.
그때였다.
최효명의 스마트폰 위로 숫자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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